(113-114)

어느 시대가 더 행복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때도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다만, 이런 맥락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는 현재 소설을 읽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소설은 갈등을 겪으면서 시작해요. 문제적 자아가 집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하면서 나는 누구?’라는 답변을 찾는 거예요. 답을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찾았다고 생각한 답이 오답일 수도 있고, 나중에 바뀔 수도 있죠.


(217)

여기서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인생, 그러니까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이야말로 에세이 쓰기가 밀접하게 접목되어 있습니다. 에세이는 나의 기억을 갖고 내가 쓰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에서 중요한 사물, 인물, 사건 등을 떠올리면서 잘 표현되지 않았던 내 감정이나 포착되지 않았던 내 생각을 다시 잡아서 쓰는 거예요. ,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합심해서 만드는 일종의 자아 찾기’, 이것이 바로 에세이입니다. 우선 자아를 찾아야지만 쓸 수 있냐고요? 아뇨, 쓰면서 찾을 수 있습니다!


(224-225)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大地)의 소작(小作)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대로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_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전문



(242)

그런데 일단 써보시면 아실 겁니다. 과정 자체가 힐링이 된다는 사실을요. 에세이를 쓰는 시간은 감정의 디톡스 시간이 됩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타인에게 보여주어야만 글입니까. 가장 소중한 내가 볼 건데요. 그러나 쓰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기쁨을 느끼실 거예요. 조금 더 열심히 쓰면 책으로 출간도 가능합니다. 요즘은 대량 생산만 하는 게 아니라 책 한 권만 출간해 주는 업체도 많거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어렸을 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많이 접하지 못했던 아빠가 기억력 유지가 잘 안 되는 어른이 되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봤는데, 읽을 때는 재미있는데 곧 잊혀지곤 한단다. 그래서 아주 유명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에 대해서는, 이름은 잘 알지만 어떤 이야기를 가졌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단다. 그래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재미있다는 생각이 있어, 관련된 책이 나오면 눈 여겨 보곤 한단다. 아빠가 오늘 이야기해 줄 책도 그렇게 알게 된, 제시 버튼의 <메두사>라는 책이란다.

메두사라고 하면 뱀의 머리를 가지고 있고, 메두사의 눈과 마주치면 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메두사에 관해 아빠가 알고 있는 전부란다. 어떤 사연이 있어 그렇게 되었는지 몰랐어. 눈만 마주치면 돌로 변한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존재겠니. 그래서 아빠가 어렸을 때 만화 영화 속에서 빌런으로 등장했던 기억도 있구나. 그 메두사에 관해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책이 바로 제시 버튼의 <메두사>라는 책이란다. 너희들도 기억력 좋은 어렸을 때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으니 메두사에 관해서는 아빠보다 더 잘 알겠지? 그래도 신화 속 메두사와 비교해서 이 책에서는 어떻게 메두사를 이야기했는지 한번 보자꾸나.

 

1.

메두사의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한 것은 아테나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그 이야기는 뒤에 나오니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할게. 메두사는 두 언니인 스테노와 에루이알레, 그리고 아르젠터스라는 개와 함께 바위섬에 유배를 와서 4년이나 지냈어. 언니들은 낚시하러 섬 밖으로 가기도 했단다. 어느날 페르세우스라는 한 남자가 오레이도라는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바다에서 길을 잃고 바위섬에 찾아왔단다. 하지만 메두사는 그의 앞에 모습을 내놓을 수 없어. 흉측한 괴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어. 메두사는 바위 뒤에 숨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단다. 페르세우스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물고기를 구워서 전달해주기도 했어. 물론 자신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말이야. 메두사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메리나라고 했단다. 둘은 바위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어.

페르세우스는 옛이야기를 하는데, 아버지는 제우스이고 엄마는 아르고스의 왕의 외동딸 다나에라고 했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의 대부분이 제우스의 자식들인 것 같구나. 그런데 페르세우스의 외할아버지는 손자가 자신을 죽인다는 예언을 듣고서는 그런 일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다나에를 탑 꼭대기에 가둬두었단다. 하지만 제우스의 눈에 다나에가 들어왔어. 몰래 탑에 찾아와 사랑을 나누었고 아이를 몰래 낳았는데 그가 바로 페르세우스란다. 외할아버지에게 들통나 엄마와 페르세우스는 궤짝에 실려 바다에 버려졌단다. 그런데 포세이돈이 이를 우연히 보고 구출해주어 살아날 수 있다고 했어. ..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포세이돈은 메두사에게는 악한인데 페르세우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로구나. 그들의 이야기는 언니들이 낚시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끝이 났고, 메두사는 페르세우스를 동굴 속에 숨어 있으라고 했단다.

다음날 메두사도 자신의 이야기를 했단다. 메두사는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동네방네 소문이 났단다. 4년 전 메두사가 열네 살일 때, 포세이돈이 메두사에게 구애를 했는데, 메두사는 이를 거절했단다. 그러자 화가 난 포세이돈은 메두사의 마을에 계속 폭풍우를 내리게 했어. 그렇게 되자 마을 사람들마저 메두사가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냐. 메두사가 먼저 포세이돈을 유혹하고 자극했다면서 말이야. 메두사는 얼마나 억울했겠니.. 그래서 메두사의 언니들이 아테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아테나는 메두사를 찾아왔단다. 그런데 질투의 신 아테나가 메두사의 외모를 보고 좋아했겠니아테나도 메두사를 탓하며, 신전에 숨어 기도하고라고 했단다. 그렇게 신전에 숨어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포세이돈이 그곳까지 찾아왔단다. 결국 메두사는 포세이돈에게 겁탈당하고 말았어. 집으로 쫓기듯 돌아온 메두사를 언니들이 위로하지만, 상처는 지울 수 없었단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며칠 뒤 아테나가 찾아와 한 말이었단다. 메두사가 신전을 더럽히고 파괴했다는 거야. 메두사의 언니들이 그 일은 포세이돈에게 가서 따지라고 했는데, 아테나는 메두사의 책임이 더 크다는 황당무계한 논리로 벌을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머리카락을 뱀들로 바꾼 것이란다. 괴물이 된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유배 오듯 섬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야.

메두사는 언니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되어 다음 이야기는 내일로 미뤘어. 언니 스테노는 메두사의 달라진 행동을 통해 사랑에 빠진 것을 눈치했어. 메두사에게 솔직히 이야기하라고 하자, 메두사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단다. 스테노도 페르세우스가 진정으로 메두사를 사랑한다면, 괴물의 모습을 한 메두사까지 사랑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 그래서 메두사도 용기를 내고 페르세우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2.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의 목적을 이야기해주었단다. 페르세우스아 엄마 다나에는 구출되어 세리포스란 곳에 머물렀는데,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테스 왕이 다나에에게 계속 수작을 부렸어. 다나에는 이미 제우스와 정을 통한 몸이기 때문에 거절했단다. 페르세우스도 엄마를 지키기 위해 옆에 꼭 붙어 있었지. 그러자 폴리덱테스는 페르세우스에 메두사의 머리를 베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단다. 그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엄마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했어. 폴리덱테스는 다나에 곁에서 페르세우스를 떼어내려고 했던 것 뿐일 텐데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죽이기 위해 죽음의 길을 떠나왔구나.

메두사는 페르세우스 앞에 모습을 보이려는 찰나 페르세우스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 거야. 다시 사랑을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에서 죽음의 공포메두사는 자신의 이름은 메리나가 아니고 메두사라고 이야기했어. 페리세우스는 믿지 않았지.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에게 그냥 돌아가라고 계속 이야기했지만,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죽여야만 한다고 했단다. 폴리덱테스에게 속아서 길을 떠나온 것 하며, 메두사를 죽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지 않고 무조건 죽이려는 것 하며, 페르세우스의 지능은 상당히 낮은 사람인 것 같구나.

결국 메두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는데, 메두사의 눈과 마주친 페르세우스는 그 자리에서 돌로 변하고 말았단다. 그제서야 메두사는 아테나가 이야기한 두 번째 형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 아테나가 이야기하기를, 다른 사람들이 메두사를 보면 화를 면치 못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바로 이 말이었던 거야. 메두사의 눈을 마주치면 돌로 변한다는 것낚시 갔던 언니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언니들은 페르세우스가 돌이 된 것은 메두사의 잘못이 아니라면서 위로해 주었고, 페르세우스가 타고 온 배를 타고 섬을 떠나자고 했단다. 그래서 그들은 4년 간 머물렀던 그 바위섬을 떠나게 되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아빠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사람들은 이름만 아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메두사를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보니, 그리스 신화에서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베는 것으로 나오더구나. 그렇게 되면 메두사의 삶은 너무 불쌍한 인생이로구나. 오히려 제시 버튼의 <메두사>에서처럼 메두사가 페르세우스를 돌로 만들어버리고 섬을 떠나는 것이

더 극적인 것 같구나. 그리고 그 이후 모험도 기대되는데, 지은이 제시 버튼은 이번 소설의 속편은 쓸 생각은 없으신지 모르겠다. 아빠는 메두사의 이름만 알았지,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몰랐는데,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와 소설 속 메두사를 비교하면서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이젠 메두사를 달리 보는 눈을 가진 것 같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내가 눈빛만으로 남자를 죽였다고 말하면, 당신은 나머지 이야기를 듣겠는가?

책의 끝 문장: 나를.

 


메두사, 메두사, 메두사. 반복해서 나의 이름이 불리고 판결이 내려지면서, 나의 삶, 나의 진실, 평온하던 나날, 영글었던 생각이 전부 무너졌다. 그래서 무엇이 남았냐고? 이 삐죽삐죽한 바위섬과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된 거만한 여자, 그리고 뱀들의 이야기가 남았다. 잔혹하게도, 변화는 내게 예외 없이 괴물 같았다. 또 한 가지 진실은 내가 외롭고 화가 났다는 것. 그리고 분노와 의로움은 결국 똑 같은 뒷맛을 남긴다. - P10

내가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받고 축복받는 존재임을 아는 삶,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허용되고 또 격려되는 삶,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커다란 거울 속에서 내가 완벽하다고 느끼는 삶…… 그런 삶이 나의 삶일 수도 있을까? 어쩌면 페르세우스가 그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발. 나는 신들에게, 유독 한 신에게 간청했다. 당신은 나에게 너무 큰 벌을 줬어요. 아테나, 제발 내게 이 한 줄기 달빛만은 허락해주세요.
나는 기다렸다. 그러나 아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P62

달콤한 위험을 맛본 적이 있는지? 그것이야말로 최상이면서 동시에 최악의 별미다. 그 무엇도, 정말이지 그 무엇도 그만큼 자극적이고 특별하며 유혹적인 맛이 없기에 최상이고, 한번 맛보고 나면 그 후로 먹는 모든 것이 밋밋하게 느껴지기에 최악이다. - P78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 핏속에 운명의 지도가 새겨져 있었다고 믿는다. 그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신들에 의해? 아니면 인간의 탄생과 별빛의 신비로운 조합에 의해? 그들은 인간의 삶이 완벽하게 계획되었으며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이미 마련된 길을 걸음 뿐이고 그 길에서 벗어나면 무너지고 죽는다고. 반면 인간이 백지상태로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인간이 샘물처럼 깨끗한 상태로 태어나고 자신의 태풍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 3권  <수도사의 두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게.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작년에 10권까지 나오고 잠잠해서 아빠가 걱정을 좀 했었는데, 최근에 21권까지 모두 출간되었더구나. 이제는 끊길 걱정하지 말고 고고해야겠구나.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수도사의 두건> 역시 책표지에 커다란 두 눈이 등장한단다. 두 눈만 크게 클로즈업해서 섬뜩한 기운도 드는데, 각 권마다 그 눈모양이 다르단다. 각 권마다 책표지의 눈모양이 다른데 그것이 무언인가 의미를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단다. 책표지 디자인은 워크룸이란 곳에서 했다고 하는데, 어떤 취지를 가지고 디자인했는지 궁금하구나.

그건 그렇고 곧바로 <수도사의 두건>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책 제목 <수도사의 두건>은 수도사의 두건을 닮았다고 하여 별명이 붙여진 독성 강한 약초를 뜻한단다. 근육통이나 관절에 좋은 것으로 피부에 발라서 치료하는 것인데, 잘못하여 먹는다면 죽을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독초가 될 수 있어. 이번 <수도사의 두건>의 사건은 어떤 식으로 벌어질 지, 제목을 통해서 대충 예상할 수 있겠구나.

 

1.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잉글랜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했잖아. 이번 3권에서도 마찬가지란다. 1138 12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는 여전히 내전 중인데, 캐드펠 수사 시리즈 2권에서는 캐드펠 수사가 머무르고 있는 베네딕토회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근처에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3권에서는 그 전선이 물러나면서 수도원은 조금은 일상을 되찾았단다. 수도원장 헤리버트는 교황청으로부터 재신임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고, 부수도원장 로버트가 대리 업무를 맡고 있었어. 헤리버트 수도원장이 나이도 있고 해서 로버트는 내심 이번에는 자신이 수도원장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어. 캐드펠 수사는 그런 권력에는 큰 관심 없이 수도원의 농장에서 일했단다. 캐드펠 수사는 농사뿐만 아니라 약초도 키우고 약초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어. 수도원이나 인근 마을의 아픈 사람들이 오면 약초를 처방해주기도 했어.

수도원 근처에 말릴리 장원의 영주 거베이스 보넬이라는 사람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말릴리 영주는 자신 소유의 장원을 수도원에 기부하고 싶다고 해서 그 기부 건에 대해 계약을 진행하고 있었단다. 어느날 부수도원장 로버트는 흔치 않은 메추리 요리를 먹게 되었는데, 흔치 않은 요리라서 그 요리를 거베이스 보넬에게도 나누어주었단다. 장원을 기부해주어 고맙다는 마음으로그런데 거베이스 보넬이 그 음식을 먹고 위중한 상태로 빠지게 되었어. 말릴리 장원의 농노인 앨프릭이 캐드펠을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어. 캐드펠이 뛰어 가서 응급 조치를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단다. 손쓰지도 못하고 거베이스 보넬은 죽고 말었어. 보넬 씨의 증상을 보니 누군가 수도사의 두건이라는 부르는 독성 강한 약초를 음식에 탄 것으로 보였어. 캐드펠이 그렇게 잘 아는 이유는 그 약초를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같은 메추리 요리를 먹은 부수도원장은 멀쩡한 것으로 보아, 수도원에서 요리를 받아서 보넬 씨의 집의 식당, 거실로 오는 동안에 누군가 독초를 요리에 넣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단다.

여기서 잠깐 거베이스 보넬의 가계도를 좀 살펴봐야겠구나. 거베이스의 아내는 리힐르스인데 3년 전에 재혼한 사이였단다. 리힐리스에는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 시빌과 늦둥이 아들 에드윈이 있었단다. 에드윈은 이제 고작 열네 살이었어. 딸은 마틴 벨코트라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들 에드위가 있었단다. 에드윈이 늦둥이다 보니, 조카 에드위와 나이가 동갑이어서 둘은 친구처럼 지냈단다. 보넬 씨는 예전에 하녀와 정을 통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 하녀는 죽고 사생아 메이리그는 이미 성인이 되었지.

그렇다면 거베이스 보넬이 죽으면 누가 가장 이득이 될까. 당시 잉글랜드는 사생아에게 상속권이 없었기 때문에, 상속권은 친자는 아니지만 법적 아들인 에드윈이 갖게 된단다. 그렇다 보니, 이 사건을 조사하기 나온 행정관은 에드윈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었단다. 더욱이 사고 당일 에드윈은 보넬 씨의 집에 찾아와서 말다툼까지 한 것을 가족들과 하인들이 모두 보았어. 말릴리 장원이 아직 수도원으로 기부한다는 최종 계약이 안 되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장원의 권리는 에드윈이 갖고 있었단다. 그리고 보넬 씨와 말다툼을 한 에드윈은 그 집에서 뛰쳐나가 행적이 묘연해졌단다. 현실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추리 소설에서는 가장 범인 같지 않은 사람이 범인이니까 아빠도 에드윈은 무조건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가끔 그 허를 찌르는 작가도 있지만 말이야.

 

2.

그 시각 에드윈은 조카이자 친구인 에드위와 함께 숨어 있다가 밤이 되자 캐드펠 수사를 찾아왔단다. 에드윈와 에드위는 삼촌과 조카 사이라고 하지만, 쌍둥이처럼 비슷하게 생겼어. 캐드펠은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에드윈이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했어. 에드윈이 그날 보넬 씨를 찾아온 이유는 그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아서, 엄마의 조언대로 화해하려고 왔던 거야. 선물까지 준비해서 왔는데, 처음부터 대화가 틀어져서 선물도 주지 못하고 말다툼만 하고 뛰쳐나왔다는 거야.

캐드펠은 에드윈을 수사들이 잘 오지 않는 마구간 창고에 숨겨두었고,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어. 조수인 마크 수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2권에서도 등장했던 휴 베링어도 캐드펠 수사를 도와주었단다. 그런데 있잖니캐드펠이 보넬 씨를 구하려 갔던 날, 또 다른 일로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단다. 보넬 씨가 3년 전에 재혼한 아내이자 에드윈의 엄마 리힐거스가 알고 보니 멀고 먼 시절 캐드펠의 첫사랑이었던 거야. 수십 년이 지나 자신의 첫사랑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단다. 수도원에 제롬 수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캐드펠과 리힐거스의 그런 관계를 알아내고, 캐드펠도 용의자일 수 있다고 주장했단다. 리힐거스와 다시 관계를 맺으려고 보넬 씨를 죽였다는 거지. 그 독초도 캐드펠이 만든 것이니 말이야. 제롬 수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부수도원장은 판단하여 캐드펠에게 금족령이 내려졌단다.

그렇게 외출을 할 수 없는데, 에드윈이 숨어 있는 마구간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어쩔 수 없이 에드윈은 말을 타고 도망을 갔고, 사람들은 에드윈을 쫓아가 결국 잡아 왔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이 잡은 사람은 에드윈이 아닌, 에드윈의 조카 에드위였어. 중간에 둘은 옷을 갈아 입고 에드위가 에드윈인 척 한 거야.

금족령은 풀려났지만, 캐드펠은 이 사건으로 격리를 시키려는 부수도원장의 의도에 따라 멀리 양목장 관리로 파견을 가게 되었어. 양목장은 원래 두 명의 수사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수사가 병에 걸렸기 때문에, 그 수사를 치료도 할 겸 양목장도 관리하라고 캐드펠 수사를 그곳에 보냈단다. 그런데 우연찮게 근처에 말릴리 장원이 있었단다. 캐드펠 수사는 오히려 그 말릴리 장원을 살펴 볼 수 있었단다. 그런데 말릴리 장원은 잉글랜드와 웨일즈 땅에 걸쳐서 넓게 펼쳐져 있었어. 심지어 웨일즈 쪽에 훨씬 많은 땅이 있었단다. 그래서 말릴리 장원에 관련된 재판은 웨일즈 재판장에서 받을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웨일즈에서는 사생아와 무관하게 친자에게 상속권의 우선권이 있었어. 오호,, 그렇다면 강력한 용의자가 한 명 등장하는구나. 바로 보넬 씨의 사생아 메이리그

캐드펠은 말릴리 장원을 조사해보려고 갔는데, 그곳에 숨어 있던 에드윈을 만났단다. 에드윈이 거기에 숨을 수 있던 것은 메이리그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야. 메이리그는 에드윈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동생으로 여겼어. 하지만 얼마 후 이 사건을 조사하는 행정관이 말릴리 장원에 찾아와 에드윈을 체포해서 에드윈은 감방에 갇히게 되었어.

캐드펠은 웨일즈의 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러 갔다가 그곳에 증인들을 데리고 나타난 메이리그를 보았단다. 메이리그는 말릴리 장원의 상속권을 주장했어. 메이리그는 방청객에 캐드펠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메이리그가 상속권을 주장한 후, 캐드펠은 메이리그가 보넬 씨를 죽였다는 근거를 하나하나 이야기했단다. 메이리그가 가지고 있던 약병에 여전히 독초의 향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명백한 증거였단다. 그러자 메이리그는 재판장에서 뛰쳐나가 도망쳤단다. 그날 밤, 메이리그는 캐드펠을 찾아와서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고 지금은 깊이 반성하고 벌도 달게 받겠다고 했어. 메이리그의 진심을 알게 된 캐드펠은 그를 사죄하고 앞으로 반성하며 살아가라면서 그를 도망가게 했단다.

캐드펠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굳이 감옥에 가두지 않고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그 죄를 덮어주었단다. 2권에서도 그랬잖니일종의 고해성사로 생각한 것 같아.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면 하느님과 화해를 했다고 보는 거지메이리그가 진심으로 후회한 것이 맞기를캐드펠은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에드윈이 무죄라는 것을 입증했어. 그래서 에드윈도 풀려나게 되었단다.

….

재신임을 받으러 갔던 헤리버트 수도원장이 돌아와서, 자신은 이제 평수사로 봉사한다고 했어. 부수도원장 로버트는 자신이 수도원이 되는 줄 알고 좋아했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단다. 헤리버트는 새로운 수도원장이 될 라둘푸스와 함께 왔던 거야. 로버트는 좋다 말았네지은이 엘리스 피터스의 유머 코드인 듯소설은 그렇게 끝났단다. 이번 소설도 재미있었어. 너희들도 시간만 있다면 읽어보면 좋을 텐데요즘처럼 더운 여름에 더욱 어울리는 소설인 것 같은데..

이 소설은 책 뒤쪽에 주석 설명이 따로 모여 있단다. 그런데 책에는 27번까지 주석 번호가 있는데, 책 뒤쪽의 주석 설명은 25번까지만 있더구나., 마지막 2개가 빠졌어. 출판사의 실수.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1138 12월 초순, 캐드펠 수사는 평온한 마음으로 수도회 평의회에 참석했다.

책의 끝 문장: 결국 이것이 모든 이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9)

거울 속의 남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건장한 몸집의 남자. 한때는 짙은 색이었던 그의 머리카락이 이제는 희끗희끗하게 변해버렸다. 거친 피부와 주름진 얼굴, 벗겨진 이마, 작은 눈, 손질이 필요한 눈썹.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신체 부위 중에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발뿐이라 말하곤 했다. 그는 시선을 고정했다. 거울 속의 남자도 시선을 고정한 채 팔을 내리고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다 알고 싶어 하는 남자였다. 날씨, 바람, 시간.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43-44)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그 끝은 결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다. 끝은 모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딸을 목말 태우고 숲을 산책하는 날이 올 것이다. 산 위에 올라가 발밑의 풍경이 마치 나만의 것 같다고 느낀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가게에 가서 빵과 우유와 버터를 산 날, 마지막 여름. 마지막 수영. 그는 8월의 어느 날, 튜브에 등을 대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올려다보았고, 햇살에 데워진 바위 위에 앉아 눈을 감고 피오르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81)

그는 어떻게 하면 그녀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일지에 그렇게 적었다. 우리는 쉽게 건널 수 있는 깊은 소금물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을 뿐이다. 어느 날 그는 배를 정박시키고 그녀의 집이 있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두세 발자국을 떼었을까. 갑자기 용기가 사라졌다. 그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이제 그의 삶은 저 집 안에, 저 대문 너머에, 마르타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삶 속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119-120)

때때로 우리는 자연의 가장 장엄한 측면을 접하기도 한다. 어떤 집이나 배도 견뎌내지 못하는 바람, 심지어는 그 어떤 풍경도 경험한 적이 없을 낯선 바람, 피오르에 세차게 몰아쳐 배를 질식시키는 바람. 그런 바람이 불면 집은 갈라지고 부서지며 벽은 힘없이 땅에 쓰러지고 지붕은 마치 빈 정수리를 숨기기 위해 빗어 넘긴 옆머리처럼 허공으로 풀썩 솟아오른다. 내 안의 날씨도 이렇게 변한다. 그는 일지에 어딘가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피오르 같은 사람이다. 피오로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다가, 다시 부풀어오르고 가라앉는다. 그렇다, 페리 운전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이지만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피오르 안팎을 막론하고 항상 그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다. 마치 물이 부서졌다가 합쳐지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싸안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항상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그의 손목시계 바늘처럼. 그는 이미 앞을 향해 출발했고 곧 엔진을 끌 것이며 배는 완전히 멈출 것이다.

(153)

그는 여전히 이 몸 안에 있다. 시간은 그의 몸속에 존재하고, 그의 머릿속에 존재한다. 모든 것은 몸과 영혼, 앞과 뒤, 두 개의 반쪽 퍼즐 사이의 그 어딘가에 존재하며 서로 끼워 맞추어지려고 노력한다. 시간은 우리가 태어나는 날부터 시작해 우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더 커지고, 더 현명해지고, 더 빨라지고, 더 명료해질 때까지 함께 하다가 천천히 내리막길로 향한다. 우리는 더 약해지고, 더 느려지고, 더 취약해지며, 어떤 일을 해보려는 우리의 열정은 사그라든다. 그는 이제 이것을 알고 있다., 천천히 시작해 천천히 끝을 맺을 것이다.

(181)

이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그가 물었다.

뭐가요? 그녀가 되물었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말이에요.

물론,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가 속내를 털어놓고 조금이나마 화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살아가기가 더 쉬울 것 같긴 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194)

루나는 누구든 잠을 자는 동안에 얼굴이 변한다고 했다. 닐스, 당신도 알고 있었나요? 얼굴은 젊어질 수도 있고, 늙을 수도 있는데 그건 그 사람이 꿈이 앞으로 꾸는지 뒤로 꾸는지에 따라 달라진답니다. 닐스는 잠을 잘 때 자신의 얼굴은 어떻게 변하는지 물어보았다. 루나는 닐스의 얼굴이 늙어 보인다고 했다. 루나는 닐스가 뒤로 거슬러 꿈을 꾸기 때문에 얼굴이 늙어 보이며, 특히 왼쪽 얼굴이 눈에 띄게 더 늙어 보인다고 말했다.

루나는 닐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얼굴이 늙어 보일 때가 더 좋아요. 왜냐하면 당신의 얼굴이 울퉁불퉁한 산기슭처럼 보어거든요.

(208)

닐스는 하나의 이름은 운명이자 숙명이며, 모든 시를 시작하는 첫 단어라고 말했다. 비록 인간이나 배가 죽거나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이름은 항상 남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마르타는 그런 것쯤은 다 안다면서 자시는 바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당신은 어떤 이름이 좋을 것 같나요? 밤과 낮. 그녀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닐스는 코웃음을 치면서 배는 이미 완벽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피오르에 나가 있을 때, 그녀와 떨어져 있는 모든 밤과 낮에도 그는 항상 그녀 속에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 징그러워. 그녀가 쏘아붙였다.

(268)

닐스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젤소민아 2025-08-30 0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펐어요~~~~희망적으로 슬픈.

bookholic 2025-08-30 21:59   좋아요 0 | URL
희망적으로 슬프다는 표현이 딱 맞는 표현 같습니다...^^
 
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백수린 작가님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작년에 읽은 백수린 님의 <눈부신 안부>를 재미있게 읽어서 백수린 님의 다른 책들을 알아보다가 알게 된 책이 오늘 이야기할 <여름의 빌라>라는 책이란다. 2020년에 출간된 책이고, 8편이 담겨 있단다. 그런데 어떤 작품은 읽다가 왠지 읽은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있었어. 그래서 아빠의 독서 기록을 찾아보니, 백수린 님이 젊은작가상을 탄 적이 있는데, 아빠가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읽을 때 읽었던 것이더구나. <시간의 궤적> <고요한 사건>이라는 작품이 예전에 읽었던 작품이더구나. 그런데 이번에 읽는데, 왠지 읽은 것 같은 느낌만 있지, 줄거리는 전혀 생각나지 않더구나. 그래서 또 한번 아빠의 기억력에 좌절을 느끼는 순간이었어. 작년에 읽은 <눈부신 안부>도 좋게 읽었는데, 이번에 읽은 <여름의 빌라>도 좋았단다. 앞으로도 백수린 님의 작품들은 눈여겨봐야겠다.

 

1.

<시간의 궤적>

주인공은 나이 서른 살.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미술사 석사 과정을 공부하러 갔어. 파리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녔는데, 그 학원에는 한국 사람이 두 명뿐이었어. 어느날 나머지 한국인이 주인공에게 말을 걸어와 밥을 같이 먹고 나서 친한 사이가 되었단다. 주인공보다 나이가 많아 언니라고 불렀어. 언니는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파리에 와 있다고 했고, 다른 주재원들은 가족들이 같이 왔는데, 자신만 미혼이라고 혼자 오다 보니, 다른 주재원 가족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색하다고 했어. 언니는 예전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주재원으로 온다고 해서 헤어지게 되었다고 했어.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는데, 여전히 가끔 연락한다고 하더구나. 아무튼 주인공과 언니는 엄청 친해져서 같이 놀러가고 같이 밥도 자주 먹었어. 주인공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고 브르스라는 남자친구를 만나 사귀게 되면서 남자친구와 같이 언니를 만나기도 했단다. 주인공은 브르스와 결혼하는 것을 고민했지만 결국 결혼했단다. 시간이 흘러 언니가 주재원을 마무리하면서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그 시기가 주인공이 브르스와 사이가 안 좋은 시기여서 망설이다가 같이 갔단다. 그런데 브르스는 자신보다 언니와 더 사이 좋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어. 주인공은 언니와도 거리가 좀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런 눈에 거슬리는 장면까지 만들고주인공은 언니에게 아직 유부남이 된 남자친구에게 연락하냐고 물어봤고, 언니는 그렇다고 하니까주인공은 속에 품고 있던 말을 쏟아냈어. 왜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냐면서 말이야분위기가 어땠을지 예상되지? 언니가 귀국 전에 다시 만나긴 했지만 예전의 그런 사이는 아니었어. 귀국 이후에 연락이 끊겼단다. 그래서 주인공의 쓴 소리를 들은 언니는 그 이후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싶구나.

….

<여름의 빌라>

두 번째 작품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여름의 빌라. 주인공 이름은 주아. 주아는 오래 전 유럽 유학 중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여행에서 며칠 묶었던 집주인 노부부인 베레나와 한스와 친분을 쌓았단다. 그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지냈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주아는 지호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둘 다 시간강사로 힘들게 일하고 있었단다. 한스 부부의 연락을 받고 함께 캄보디아 여행을 갔는데, 한스 부부는 손녀 레오나를 데리고 같이 왔단다. 그들은 예의를 지키면서 잘 지냈지만, 지호는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단다. 한스 부부가 캄보디아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지호 생각에는 자신들이 인종적으로 우월감을 가진 듯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어. 한스 부부는 돈을 내고 관광 서비스를 받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지호는 약간 삐딱한 시선을 두고 있었단다. 계속 그 감정을 참던 지호는 결국 폭발하여 말다툼까지 이어졌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지호라는 사람의 속이 좁다고 생각했어. 현지인들도 관광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결국 한스 부부와 안 좋게 헤어져 귀국을 했어. 얼마 후에는 베레나가 할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편지를 받았단다.

<고요한 사건>

지방에 살던 주인공의 가족은 부모님이 재건축을 노리고 서울의 소금고개라고 하는 곳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단다. 그런데 그곳의 환경은 정말 안 좋았어. 여름이면 악취로 창문도 열지 못하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날리는 그런 동네였어. 길고양이들도 많았는데, 길고양이를 보살펴주는 고양이 아저씨도 있었어. 이사와 함께 서울로 전학을 하게 된 주인공은 해지, 무호라는 친구와 친하게 되었어. 드디어 재건축이 결정되면서,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이 심해졌단다. 전세를 살고 있던 해지는 이사를 가야 했어. 주인공은 무호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전에, 무호는 주인공을 찾아와 해지에게 사랑 고백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단다. 사랑이라는 것이 쉽지 않지. 어느날 동네의 길고양이들이 죽은 채 발견되었단다. 재건축 찬성파들의 짓이 뻔했어. 길고양이들이 죽은 것에 대해 고양이 아저씨는 난동을 부렸고, 재건축 찬성파에게 의해 폭행까지 당했어. 주인공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아빠는 별일 아닌 듯 무관심하는 모습에 주인공은 충격을 받았단다. 그런 방법밖에 없었을까. 재건축을 하더라도 영리한 고양이들은 제살길 찾아 나섰을 텐데..

<폭설>

11살 때 부모임이 이혼을 하시고, 주인공은 아빠와 함께 생활했단다. 엄마는 아빠의 전 회사 동료인 케빈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지내셨어. 주인공은 방학 때마다 엄마를 만나러 미국에 갔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어. 특히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생기는 몸의 변화에 대해 조언해 줄 사람도 없었지. 14살 이후에는 미국에 안 가기로 했어. 엄마가 가끔씩 한국에 오면 만나곤 했지만, 그 만남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단다. 세월은 쏜살같이 빨리 흘러 주인공은 서른 살이 되었어.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 방황하기도 하던 시기오랜 만에 미국에 가서 엄마를 만났단다. 그리고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갔는데, 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폭설을 만나 차가 구덩이에 빠져 한 동안 둘이 차 안에 갇히게 되었어. 그러면 둘이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한번뿐인 인생.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며 자란 주인공. 엄마는 딸의 빈자리를 채웠을까?

….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주인공 희주의 남편은 성형외과의사야. 아이는 둘이고 둘째는 아직 수유중인 평범한 가족을 이루고 있단다. 아니다, 의사 가족이면 일반 평범한 가족의 범위는 벗어났다고 봐야겠구나. 희주의 친구 한나는 <카페 뮐러>라는 레스토랑을 차렸는데, 개업식날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발레를 하는 남자 후배를 만나게 되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그 후배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거야. 그리고 동네 공사장을 지나가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가 그 발레리노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보겠다고 공사장을 자주 지나가기도 하고생각으로만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것은 죄악인가? 사랑은 무엇으로 막으려고도 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어코 찾아 드는가 보구나.

<흑설탕 캔디>

돌아가신 할머니의 일기장에서 할머니의 따듯한 사랑 이야기를 발견하는 이야기란다. 주인공의 엄마가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함께 사시면서 주인공을 키워주셨어. 아빠가 프랑스에서 일하게 되면서, 주인공과 할머니도 함께 프랑스에 가게 되었단다. 할머니가 대학까지 나오셨지만, 프랑스어는 못하시고 프랑스에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단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살던 집의 아래층에 노신사인 브뤼니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어. 브뤼니에는 4년 전 사별하고 혼자 지내셨어. 일 층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에 우연히 인사를 한 브뤼니에와 할머니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같이 차도 마시면서 애틋한 정을 쌓아갔단다. 그런데 아빠의 갑작스런 귀국으로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브뤼네에와 헤어지게 되었단다. 할머니와 브뤼니에는 서로 호감을 갖고 있지만, 할머니의 귀국을 반대할 만큼까지 진전은 없었던 것 같아. 그들은 이것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

<아주 잠깐 동안에>

오랜 전 시절의 일을 회상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란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이 대부분 옛 이야기를 회상하는 전개 방식을 쓴 것 같구나. 지은이 백수린 님이 그런 스타일의 소설을 즐겨 쓰시는 건지, 아니면 여러 작품들 중에 그런 소설들만 묶은 건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유럽 배경의 소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건 지은이 백수린 님이 프랑스에서 유학한 경력이 있으셔서 그런 것 같구나. 무려 불문학 박사시구나. 이야기가 잠시 딴 곳으로 빠졌네. 다시 <아주 잠깐 동안에> 이야기를 해줄게.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란다. 주인공은 여주와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만나 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여주가 이사를 가면서 소식이 끊기고 회사에 취업한 이후 수소문하여 여주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에 골인하게 된단다.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생활해서 드디어 작지만 자신들의 집을 얻을 수 있었어.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도 했어. 집들이에 온 손님들을 배웅하고 집에 오는 길에 주인공은 세탁기를 리어카에 싣고 혼자 끌고 올라가는 할머니를 보았어.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집은 한참 올라가야했단다. 여주는 안주거리 만들어서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이 급해졌단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서였나, 뒤에서 밀던 할머니에게 세탁기가 깔리기도 했어. 다행히 할머니는 많이 안 다치시고, 주인공은 할머니 집에 세탁기를 내려 놓고 집으로 달려왔단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 주인공은 자신의 실수로 세탁기에 할머니가 깔려 병이 심해지신 것은 아닐까그 생각을 그 이후로도 계속 갖고 살았단다. 선한 목적이었으니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주인공은 중학교를 멀리 배정 받아 초등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다니게 되었는데, 반편성고사에서 일등을 하게 되어 그나마 친구들이 무시하지 못했단다. 새로 사귄 친구 중에 선주라는 아이가 있는데, 선주는 범생 스타일이었어. 얼마 후 좀 노는 아이 다미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다미의 친구 무리들과 노래방도 가고, 성행위와 키스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어. 다미를 통해서 사랑도 알게 되고 첫키스도 해보았단다. 그런데 얼마 후 다미는 임신을 하여 퇴학을 당하게 되었어. 그리고 소식이 끊겼다가 대학에 가서 다미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이미 아빠가 다른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단다. 자신의 처지를 불만이 없어 보였고 심지어 쿨해 보였단다. .

아빠의 기억력이 사라지기 전에 줄거리라도 적어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정신 없이 줄거리만 이야기한 것 같구나. 이미 잘못된 기억력으로 다르게 이야기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단편 소설은 늘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언니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나는 무사히 차도를 건너길 바라는 마음에서 눈으로 개를 좇다가, 그 개가 마침내 반대편 도로에 무사히 닿는 걸 확인한 후 고개를 돌렸다.


기차가 조금씩 속도를 줄이는 것이 느껴집니다. 편지를 마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도착역을 알리는 방송이 곧 나오고 기차는 역사 안으로 들어설 테지요. 때가 되면 우리는 옷가지와 부려놓는 짐을 챙겨들고, 열차에서 내린 후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할 거예요. 풍화된 것들 것 바람에 흩어져 없어지고 말겠죠. 그렇지만 나는 덜컹거리는 열차 위에 아직 타고 있고, 여전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당신이나 지호처럼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이 편지를 쓴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요, 베레나, 이것만큼은 당신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아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딸이 낳은 그 어린 딸이 내게 그렇게 말한 후 환하게 웃는 장면이요. - P71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꼼짝도 못하는 육체에 수감되는 형벌이라니.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할머니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치매나 언젠가 차게 될지 모르는 오줌 주머니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악몽에까지 찾아오는 공포는 언젠가 남편이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에서 보았던 뇌졸중 환자처럼 전신이 마비되고도 또렷한 의식을 지닌 채 울부짖으며 여생을 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다. - P1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