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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예바의 눈물
손석춘 지음 / 동하 / 2016년 1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아빠가 오늘 이야기할 책에 대해 한창 썼는데, 컴퓨터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운이 되었다가 다시 전원이 들어왔는데, 쓴
글들이 다 날라갔구나. 최근에 정말 보기 드문 일이로구나. 자동
저장으로 일부라도 남아 있기를 바랬는데…. 그리고 아빠의 성격상 자주
Ctrl+S를 누르는 편인데, 오늘 따라 누르지 않았다가 그만 다 날라갔어. 다시 아까 썼던 그들을 써야 하는데, 좀 짧게 써야겠구나. 아빠가 23년 전에 재미있게 읽은
<아름다운 집>이 있는데, 그 책을
쓰신 손석춘 님의 책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책이란다.
23년 전에 읽은 <아름다운
집>은 지금은 연락이 끊긴 후배가 추천해주었던 책인데, 당시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구나. 지은이가 소설 속에 등장하여 마치 다큐멘터리 식으로
써서 누군가는 소설이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아. 그런 기법이
오늘 소개할 <코레예바의 눈물>이라는 책에도 사용되었단다. 자세한 것은 조금 이따가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8년 전에 조선희 님의 <세 여자>를 너무 재미있게 읽고, 그 책에 나온 실존 인물들을 폭풍 검색을
했었단다. 그 중에 주세죽이라는 분을 검색하다가 주세죽을 주인공으로 한 손석춘 님의 <코레예바의 눈물>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어. 오래 전 재미있게 읽은 <아름다운 집>의 지은이를 그렇게 다른 책으로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가웠단다. 그
책을 사 두고 언젠가는 읽겠지, 했는데 이제서야 읽는구나. <세
여자>를 읽은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서기록을
보고 7년이나 지났다는 것에 크게 놀랬단다. 다시 한번 뜨거운
열정으로 젊음을 불살랐지만, 안타까운 말년을 보낸 주세죽 님의 삶을 되짚어 볼 수 있어 좋았단다. 문화강국에 되어 전세계를 K열풍으로 만든 밑거름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모든 분들의 열정이 있다고 생각한단다. 주세죽 님도 그런 분들 중에 한 분이고 말이야. 그럼, 손석춘 님의 <코레예바의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1.
지은이가 여행 중에 우연히 들른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라는 지방에서 낡은 책장에 무심히 꽂혀 있는 주세죽 님이 쓴 수기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마치 실제 주세죽 님이 쓴 수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형식을 띠었지만, 이 모든 것은 지은이 손석춘 님의 설정이란다. 하지만 그런 수기가
실제로 어딘가 남아 있으면 좋겠구나.
…
주세죽은 1901년 함흥에서 태어났고, 10대 시절은 선교사가 운영하는 영생여학교에
다니다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어. 그리고 당시 경찰에 잡혀 1개월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앞서 이야기했던 <세 여자>의 또 다른 주인공인 허정숙을 만나게 된단다.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선교사의 조언으로 상해에 피아노 유학을 떠난단다. 주세죽은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을 알아본 선교사가 유학을 알아봐 주었거든. 상해에 도착한
주세죽은 그곳에서 다시 허정숙을 만나게 되었는데, 허정숙을 통해 박헌영을 알게 되었고, 얼마 안가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자연스럽게
주세죽도 피아노 공부는 접고 박헌영과 함께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게 되었단다.
박헌영은 임원근, 김태연과 함께 사회주의자 삼총사로 불리던 인물이란다. 임원근과 허정석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고, 김태연은 본명보다 가명인 김단야로 더 유명하니,
앞으로 김단야로 이야기할게. 박헌영은 너희가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거나 관련된 책을 읽을 보면
우리나라 초창기 공산주의의 거물급 인사로 자주 만나게 될 것이야. 당시 고려공산당은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로
갈려 갈등을 빚고 있었어. 박헌영은 이르쿠츠크파 하부 조직인 고려공청의 책임비서를 맡고 있었단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는
국내에 잠입하여 공산당 조직을 키우려는 야심을 갖고 1922년 국내에 잠입 시도를 하는데 국내 잠입하자마자
모두 체포되었단다. 이 일로 나중에 김단야는 첩자 의심을 받기도 했단다.
그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허정숙과 주세죽도 국내로 들어온단다. 주세죽은 함흥 고향집에 잠깐 들렀는데, 피아노 공부를 중단 것에 대해 엄마한테는 혼나고 영생여학교 선교사는 크게 실망했단다. 당시 주세죽의 나이 스물 남짓… 얼마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사랑을
하고 독립운동을 했겠니. 주세죽은 여성동우회에서 활동했어. 당시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을 써서 온 국민의 울분을 사게 만들었는데, 허정숙과 주세죽은 이광수에게 면담 요청을 해서 만나게 되었단다. 허정숙은
이광수를 만나자마자 한바탕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는데, 주세죽은 준비한 질문들을 이광수에게 했단다. 아참, 주세죽은 당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단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주세죽의 리즈 시절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미인인 것 같구나. 이광수가 허정숙의 화를 보고도 주세죽과 면담을 한 것은 아마 주세죽의
미모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주세죽과 인터뷰를 하던 이광수는 주세죽의 질문에 점점 심사가 뒤틀리더니,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단다.
2.
2년 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는 모두 풀려났단다. 박헌영의 아호가 이정인데, 이 책에서는 이정이라는 호칭을 더 자주 썼단다. 하지만 아빠는 그냥
박헌영으로 할게. 주세죽과 박헌영은 드디어 신혼생활을 하게 되었어. 하지만
지하조직을 통해 사회주의 노선을 확장하려는 운동도 함께 했단다. 한편,
김단야는 서울에서 고명자라는 여자와 사귀고 동거를 했단다. 사실 김단야는 고향에 결혼한
아내도 있었지. 고명자는 앞서 이야기한 <세 여자>의 마지막 한 명이란다.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는 여성동우회 활동을 하면서 친해졌단다. 세 명이 청계천에 찍은 사진이 유명하단다. 박헌영의 지하 조직 활동은
조선공산당 창당까지 이어지는 성과를 냈지만, 그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1925년에 박헌영과 주세죽 모두 체포되고 만단다. 다행히 주세죽은 한 달 만에 풀려났지만, 박헌영은 다시 감옥에서 갇혀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교도소에서 주세죽에게
호출이 왔어. 덜컥 겁이 났지. 혹시 박헌영이 죽은 것은
아닌가 하고… 당시 교도소에서 수감 중에 죽는 일은 비일비재했으니까 말이야. 다행히 그런 일은 아니지만, 박헌영은 완전 미쳐버려서 병보석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어. 박헌영은 모진 고문을 제정신이 아닌 자신의 똥까지 집어 먹는 반병신이 되었단다. 그렇게 병보석으로 풀려난 박헌영… 알고 보니 미친 척을 한 것이었어. 모든 사람을 감쪽같이 속인 것이지.. 박헌영과 주세죽은 일제의 눈을
피해 몰래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모스크바로 행했단다.
모스크바에는 미리 가서 자리잡은
김단야가 있었어. 모스크바에서 박헌영과 주세죽은 각자 공부를 했단다.
이 때가 주세죽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닐까 싶구나. 박헌영은 한국의 여인이라는
뜻의 러시아식 이름 코레예바를 지어주었단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코레예바가 바로 주세죽의 러시아식
이름이야. 주세죽과 박헌형의 행복한 생활은 딸 비비안나가 태어나면서 정점을 찍었단다. 그리고 몇 년 뒤 공부를 마치고 그들은 상해로 가서 조선공산당 지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라고 했어. 비비안나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겨졌는데, 어린
나이에 엄마아빠와 헤어져 지내야 했으니 불쌍하구나.
아무튼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찾은 상해… 그들은 착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박헌영이
다시 체포되어 국내로 호송되었단다. 때는 1933년 7월 5일이었어. 박헌영이
체포된 이후 주세죽은 숨어 지내면서 김단야와 접선을 했단다. 그리고 얼마 후 소련으로부터 복귀 지령을
받았어. 아, 박헌영이 갇혀 있는 고국과 반대 방향으로 멀리
떠나야 하다니…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그런데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김단야는 국내 접선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는데, 박헌영이
옥사하고 말았다는 거야. 김단야는 이 소식을 주세죽에게 전달했는데, 그
소식이 사실여부를 따지기 전에 주세죽에게는 최대한 숨겼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을 당장 이야기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거든. 오래 전부터 몰래 주세죽을 짝사랑했던 김단야에게만 좋은 소식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그의 본심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책들을 통해서 그려진
김단야의 이미지는 그런 이미지였단다.
주세죽과 김단야는 우여곡절 끝에
모스크바에 도착을 했단다. 그 때부터 김단야의 계속된 구애가 시작되었단다. 주세죽이 생각하기에 김단야는 고향에 아내고 있고, 자신의 친구인
고명자와 사귀었던 사람이었기에 그런 구애가 부담스러워 계속 거절했단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여자 홀로
살아가는 것도 힘들고 계속된 구애에 결국 김단야와 결혼을 했단다. 만약 박헌영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 김단야와 주세죽 사이에서 아들 김세단이 태어났어.
…
3.
모스크바에도 스탈린이 정권이
잡은 이후 이상한 기류가 흘렀단다. 김단야를 고발하는 투서가 접수되었는데, 누가 봐도 모함이었단다. 하지만 김단야는 일본의 밀정으로 체포되고
말았고, 항변할 시간도 없이 1938년 2월 사형 당하고 말았어. 이 당시에서는 스탈린의 눈에 거슬리는 이라면
거침없이 숙청당하는 시절이었단다. 그런 시기 김단야도 희생양이 되고 말았어. 주세죽도 체포되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5년 유배형을 받게 되었어. 아들 세단도 함께 데리고 갔는데 가는 길에 그만 세단은 죽고 말았단다. 그렇게
그즐오르다에 도착한 주세죽은 노동자의 삶을 살았어.
5년이 지나도 유배형은 풀릴 줄 몰랐어. 모스크바에 항의 편지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단다. 우연히 주세죽은
박헌영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 주세죽은 박헌영에게 연락을 했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단다. 당시 박헌영이 마음을 좀더 넓게 썼다면 주세죽과 딸 비비안나를 평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을 텐데… 주세죽은 유형이 한참 끝나고도 크즐오르다를 떠나지 못하다가 풀려나 모스크바로 향했는데, 당시 폐결핵으로 몸 상태가 좋지 못했어. 모스크바에 도착했지만, 공연 때문에 지방에 가 있던 비비안나는 만나지 못하고, 사위가 보살펴
주었고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단다.
주세죽 같은 분의 삶을 알게
되면, 삶이라는 것이 한번이 아니고 환생 같은 것이 있어서 최소한 두 번은 살게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이전 삶에서 하지 못했던 일,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말이야. 손석춘 님의 이번 소설도 참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너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지만, 너무 바쁘시니….
…
이 책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세죽 님의 수기 형식으로 쓰여 있단다. 그러다 보니 주세죽 님이 당시 사용했을 법한 말들이 여럿 등장한단다. 아빠는 처음 보는 말들 또는 들어본 것 같지만 뜻을 모르는 말들.. 모르고
있던 우리말들이라서 그 뜻을 찾아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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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비임비 : 일을 자꾸 계속하는 모양. 또는,
일이 거듭되거나 물건이 거듭 모이는 모양.
생게망게하다 : 하는 행동이나 말이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다
애오라지 : 겨우'나 '오로지'를 강조해서 이르는 순우리말
온새미로 :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명사는
온새미)
울뚝밸이 : 갑자기 화를 벌컥 내어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는 것
으밀아밀 :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양
살매 :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초인간적인 위력에 의해 지배된다고 여겨지는 운명
여싯여싯 : 질기거나 끈질기게 무언가를 해나가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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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그 도시는 예정에 없었다.
책의 끝 문장: 모든 불평등에 정면으로 맞선 상징, 코레예바의 아름다운 눈물에 삼가
붉은 술 한 잔 울린다
내 이름은 주세죽. 1901년생. 직업, 조선 독립혁명가. 1919년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으로 감옥에 갇힌 이후 스무 성상 내내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줄기차게 싸워왔다. 그런데 항일 투쟁을 벌여갈 때 언제나 든든했던 ‘언덕’ 소련공산당이 돌연 나를 체포했다. ‘사회적 위험분자’로 훌닦은 뒤 1938년 5월 22일 카자흐스탄의 사막 도시 크즐오르다로 ‘유형 5년’을 명했다. 죄와 벌 모두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명백한 이유다. - P20
<올타>의 ‘철필 연주’를 디딤돌로 ‘직접 연주’에 들어가면서 내가 조선 땅에 있다는 사실이, 조선의 민중과 더불어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마웠다. 상해를 떠나기 전에 이정은 원근, 단야와 함께 조선의 청년 속으로, 나와 정숙은 여성 속으로 들어가 조직을 일궈내기로 혁명사업을 분담했다. 단야는 상해 시절부터 내내 혼자였다. 고향 김천에 일찍 결혼한 아내가 있었지만 자신의 뜻과 전혀 무관한 혼인이었고 소통을 끊은 지도 오래라고 푸념하곤 했다. 낡은 시대의 혼인관이 빚어낸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훤칠한 단야가 고개를 숙이고 낡은 외투에 두 손 찌른 채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종종 애처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판단하다면, 어린 단야와 결혼한 여성이야말로 더 큰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어 애써 그의 아내를 떠올렸다. - P110
"혁명 이후에 러시아 민중은 이혼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일부일처제를 여전히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실제로는 남성들의 가부장제가 남아 있지요. 가족은 혁명 러시아에서도 국가를 이루는 기본 단위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의 일부일처제와 마찬가지로, 혁명 러시아의 일부일처제도 또한 실질적으로는 일부다처제거든요. 여성과 남성 사이의 평등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는 한, 배타적으로 동등한 성애를 전제로 한 일부일처제는 불가능합니다." - P256
나는 소련의 속살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마르크스나 레닌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실, 우리가 레닌학교와 공산대학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속에 존재하는 어둠의 뿌리는 깊디깊더군요.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 저지르는 폭력이나 도무지 바닥을 모를 탐욕 따위가 그 대표적 보기입니다. 제 노선만이 옳다고 부르대며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 숱한 ‘엄숙주의자’들은 전장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심지어 공산당 내부까지 모든 영역에 깊숙이 똬리 틀고 있습니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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