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왜 파시스트는 폭력을 원할까요?” 에설은 수사적 질문을 했다. “바깥 힐스 로드에 있는 저들은 그저 소동꾼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저들을 조종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전략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싸움이 일어날 경우 그들은 공공질서가 무너졌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법률에 의한 지배를 회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할 겁니다. 그들이 말하는 비상조치에는 노동당 같은 민주적인 정당을 금하고, 노조활동을 금지하고, 재판 없이 사람을 구금하는 내용이 포함합니다. 바로 우리처럼 죄라고는 정부와 뜻을 달리하는 것 말고는 없는 평화적인 남녀를 말입니다. 제 말이 터무니없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것으로 들리십니까? , 독일에서 저들이 사용한 전략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어요.”


(285)

어머니는 같은 경로를 통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애썼잖아요.” 로이드가 말했다. “그리고 실패했죠.” 바로 지난 4월 노동당 여성 의원들은 남성 동료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 여성 공무원들에게 동등한 임금을 보장하는 의회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했다. 법안은 남성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투표에서 질 때마다 민주주의를 포기해선 한 돼.” 에설은 단호하게 말했다.


(289)

그들은 영국 국기를 들고 있었다. 로이드는 궁금했다. 조국의 좋은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싶어하는 자들은 왜 가장 먼저 국기부터 흔들어 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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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서정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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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에 대한 책을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몇 년 전에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고 프라다 칼로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안타까운 그의 삶과 독특한 미술세계로 인해 아빠의 뇌리에 각인된 그런 화가였단다. 그래서 언젠가는 프라다 칼로에 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당시에는 프리다 칼로에 관한 적당한 책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단다. 얼마 전에 다시 문득 프리다 칼로가 생각이 나서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니, 아빠 취향에 맞는 책이 한 권 검색되더구나.

그 책이 바로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 줄 서정욱 님의 <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였단다. 간단히 책 소개를 읽어보고 괜찮을 것 같아서 구매하긴 했는데, 혹시 책이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을 했단다. 아무래도 아빠와 거리가 먼 미술과 화가에 관한 이야기잖니. 그런데 책은 자세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쓰여 있었어. 문장도 높임말로 말하듯 쓰여 있어서 마치 지은이가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단다. 이 책을 통해서 프리다 칼로의 삶과 그림을 알게 되어 좋았단다. 여전히 프리다 칼로의 안타까운 사고와 그로 인해 고통을 점철된 삶은 여전히 안타깝구나.

 

1.

프리다 칼로는 1907 7 6 4녀중 셋째 딸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독일계, 어머니는 멕시코계였어.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던 프라다 칼로는 의사를 꿈꾸며 공부하던 어느날. 그 어느날은 1925 9 17일이었어. 프리다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프리다가 쇠파이프가 몸을 관통하는 끔찍한 중상을 입고 말았단다. 당시 병원에서는 프리다에 대해서 어렵다고 판단하여 치료도 하지 않았는데, 프리다의 남자친구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는 병원에 간절히 부탁을 해서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했어.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프리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없었을 거야.

==================

(45)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순간과 사람이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 역시 그랬습니다. 그녀의 경우는 좀 독특합니다.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그 순간을 함께했던 유일한 사람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프리다 칼로 하면 떠오르는 그 사고의 순간에 그 사람이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던 그 사고에서 프리다 칼로를 처음 목격한 의사는 그녀의 치명적인 부상을 보고 그녀를 포기하려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말렸던 사람도 그 사람입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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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가 극적으로 살아나기는 했지만, 자신도 일상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자신의 꿈인 의사도 포기하고,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단다. 알레한드로의 부모는 프리다와 자신의 아들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아들을 멀리 유럽으로 유학을 보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어. 프리다는 알레한드로를 붙잡기 위해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프리다가 그린 여러 자화상들 중에 가장 아름답게 그림 그림이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오늘 독서 편지에서 소개한 그림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들쳐보던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서 확인해 보렴.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도 많이 그렸고, 주변 인물들도 많이 그렸는데 자신의 남자 친구였던 알레한드로를 그린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의 초상>이란 그림을 그렸어.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928년인데, 1952년이 되어서야 알레한드로에게 전달되었고, 이후 쭉 개인 소장으로 있다가 1994년 알레한드로가 죽은 이후 그의 집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고 하더구나. 프리다 칼로의 여러 작품들이 그렇게 나중에 공개되는 경우가 꽤 있었어.

 

2.

프리다 칼로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자 멕시코에서는 국민화가로 알려져 있는 디에고 리베라라는 사람이란다. 프리가 칼로보다 21살이나 많고 이미 두 번이나 이혼을 했고, 바람둥이로 소문이 난 디에고 리베라. 주변에서 만류를 했음에도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을 한단다.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로부터 그림도 배울 수 있고, 치료비로 거금이 나가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를 진심으로 사랑했단다.

==================

(126-127)

이런 모든 상황에도 프리다 칼로는 남편을 비하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참으면서 묵묵히 기다릴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디에고 리베라. 시작

           디에고 리베라. 창조자

           디에고 리베라. 내 아이

           디에고 리베라. 내 남자 친구

           디에고 리베라. 화가

           디에고 리베라. 내 연인

           디에고 리베라. 내 남편

           디에고 리베라. 내 친구

           디에고 리베라. 내 어머니

           디에고 리베라. 내 아들

           디에고 리베라.

           디에고 리베라. 우주

           통합의 다양성

           왜 나는 그를 디에고 리베라라고 부르는가?

           그는 결코 내 것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자신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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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고와 결혼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원했지만, 바람 피우기를 밥 먹듯이 하는 디에고와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안정된 삶이었을 거야. 심지어 디에고는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도 바람을 피웠어. 프리다는 디에고와 동생에 대한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추억(심장)> 1937년에 그렸단다. 이 그림은 심장이 몸 밖에 나와 있는 그림으로 프리다 그림은 초현실주의와 보기 불편한 그림으로 화풍에 변해갔단다. <두 명의 프리다>라는 작품도 심장에 몸 밖으로 나와 있는데, 이 또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 그림이었어.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한 남편의 계속된 이혼 요구로 1939년 이혼을 하게 되었고, 마음의 고통을 <숲 속의 두 누드>로 표현하였단다. (1939년 작)

프리다 칼로는 이런 마음의 고통을 위로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위로가 된다면 여자도 상관없었어. 한 때 동성 연애도 했다고 했어, 그리고 얼마 후 프리다 칼로는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대상은 다시 디에고 리베라였단다. 다시 합쳤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그 이후에도 자주 별거를 했다는구나. 1940년 이후 본격적인 개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프리다 칼로의 걸작들이 나오기 시작했대. <가시목걸이와 벌새가 나오는 자화상> (1940년 작)도 이 즈음 그렸어. <디에고와 프리다>(1944년 작)는 프리다와 디에고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림이래. 이 책에서는 각 그림들을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풀어주는 느낌으로 아주 좋았단다. 그런 것들을 다 기억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대부분 휘발되었구나.

1949년 디에고는 영화배우 마리아 펠릭스와 바람을 피웠는데, 프리다는 이를 <디에고와 나>라는 그림으로 대응을 했단다. 프리다 칼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유명한 미국의 팝가수 마돈나도 프리나 칼로의 대표적인 광팬이라고 하는구나. 마돈나가 보유한 프리다의 그림이 있는데 <나의 탄생>(1932)이라는 그림인데, 아빠가 생각하기에 프리다의 그림들 중에 가장 기괴한 그림인 것 같구나.

프리다 칼로는 한때 트로츠키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대. 트로츠키? 아빠가 알고 있는 러시아의 그 트로츠키 맞단다. 레닌이 죽고 나서 스탈린이 반대파를 거침없이 숙청할 때 해외로 쫓겨난 트로츠키. 당시 갈 곳이 없던 트로츠키를 멕시코로 망명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이가 바로 프리다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였단다. 그런 트로츠키와 프리다 사이에 썸씽이 있었으니, 디에고 리베라도 아차 싶었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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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05)

트로츠키가 일반인이었다면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연인의 작품을 걸어놓을 수 없었겠죠. 하지만 그는 러시아의 국민 영웅이며,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과 더불어 소련 공산주의 혁명의 3대 거물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걸어놓는다면 비난할 사람이 없었죠. 추종자들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프리다 칼로가 이 그림을 준 것은 어쩌면 그를 존경하던 디에고 리베라를 향한 보복 심리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배신했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가장 존경하던 인물을 자신이 차버림으로써 남편을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죠. 남편은 트로츠키를 대단한 혁명가로 평가했고, 그가 소련에서 축출당해 갈 곳이 없을 때 멕시코로 망명하는데 큰 힘을 쏟았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도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부인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부인의 불륜 상대가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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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리다는 트로츠키와 사랑은 금방 끝내고 헤어지면서 <레온 트로츠키에 바치는 자화상>(1937년 작)을 그려서 트로츠키에게 주었대. 이 그림은 보기 드물게 큰 그림으로 61x76cm나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나이차이가 28살이나 난다고 하는구나. 트로츠키는 헤어진 다음에도 끝까지 구애를 했지만 프리다는 끝내 받아주지 않았대. 아빠가 트로츠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좀 구차해 보이는구나.

 

3.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 이후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았고, 그 후유증으로 임신도 몇 번을 실패하고 결국은 아이를 갖지 못했대. 프리다 칼로는 아기를 엄청 갖고 싶었다고 하는데, 참 불쌍하구나. 유산을 하고 나서 <헨리포드 병원>(1932년 작)을 그렸는데, 사연을 모르고 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지만, 프리다 칼로의 사연을 알고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는 그림이란다. <나와 나의 인형>(1937년 작)은 세 번 유산을 하고 절망과 좌절의 시기에 그림이래. 세 번의 유산을 하고 인형을 사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인형과 함께 있는 자신을 그림 그림이란다. 인형이 아니라 아기와 함께 있는 그림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크고 작은 수술들을 계속 해왔어. 1950년 건강이 또 악화되면서 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 수술은 오히려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대. 그러다가 파릴 박사라는 사람의 수술로 몸이 좀 회복되었대. 그래서 그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해 <파릴 박사의 초상화가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그렸단다. 이 그림을 보면 좀 독특하단다. 파릴 박사의 초상화를 그리는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 있는데, 평범한 자화상은 아니었어.

프리다 칼로의 그림 몇 작품을 간단히 이야기를 해볼게. 자세한 설명은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구나. <작은 칼자국 몇 개>(1935년 작)이라는 그림도 그냥 보면 공포스럽고 기괴한 그림이란다. 이 그림은 남자가 여자를 칼로 죽인 사건을 신문 기사에서 보고 그린 그림이래. 아무래도 그 여자가 프리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서 공감하고 그린 그림일 거라고 했어. <>(1940년 작)은 늘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보니 달콤한 잠을 자는 것이 소원이었던 프리다 칼로가 그린 그림이란다.

죽을 때만이라도 자다가 평온히 죽는 것을 희망하는 그림. <생명의 꽃>(1944년 작)은 꽃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꽃을 상상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꽃은 붉고 기괴한 꽃이었단다. 자기만의 생각을 노골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받는 그림으로 그림 속의 꽃이 남녀 생식기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단다. <모세>(1945년 작)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모세와 일신교>를 읽고 감상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야. 복잡하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그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초현실주의 작품이야. <마르크스는 병자를 건강하게 하리라>(1954년 작)은 공산주의자였던 프리다 칼로가 마르크스를 추앙하고, 미국 자본주의를 멸시하는 그림이란다.

<인생이여 만세>(1954년 작)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으로 죽기 8일 전에 완성했다는구나. 프리다의 그림에서 보기 드문 정물화로 먹음직스러운 수박들을 그린 그림으로 프리다의 작품들 중에 가장 보기 편한 그림이 아닌가 싶구나. 평생 자신의 고통을 그림에 담은 것 같은 그림들을 그리다가 원래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 같은 마지막 그림. 그림 제목도 찬란한 <인생이여 만세> 예전에 민태기 님의 <판타레이>라는 책에서 영국의 락그룹 콜드플레이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에서 자신들의 노래 제목을 따왔다고 했는데 그 그림이 바로 <인생이여 만세>이고 스페인어로 <비바 라 비다(Viva la Vada)>이다.

오늘 독서 편지는 프리다 칼로는 죽기 얼마 전 남긴 일기로 맺을게.

==================

(345)

죽기 얼마 전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난 건강하게 잘 탈출했다. 나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절대 어기지 않을 생각이다. 디에고 리베라에게 감사하고, 나의 테레에게 감사하고, 그라시 엘리타, 그리고 딸에게 감사하고, 주디스에게 감사하고, 이사우아 미노에게 감사하고, 루피타 주니에게 감사하고, 파릴 박사와 폴로 박사와 아르만도 나바로 박사와 바르가스 박사에게 감사한다. 나 자신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를 위해 삶을 지탱하려는 나의 엄청난 의지에도 감사한다.

기쁨, 인생 만세. 디에고 리베라 만세. 테레 만세. 나의 주디스 그리고 내게 놀라우리만치 잘해주었던 모든 간호사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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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하는 일마다 너무 잘 풀려 세상 걱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책의 끝 문장: 유언은 그녀의 생전 이루지 못한 소원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프릴다 칼로는 다다이즘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927년이라면 새로운 미술 사조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때였고, 장래에 화가가 되기로 한 프리다 칼로는 그런 것들을 유심히 보고 따라 하려 했죠. 그중 하나가 이 실험 작품(미구엘 리라의 초상)입니다.
먼저 다다이즘이 무엇인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다이즘은 설명하기가 까다로운 미술 사조입니다. 설명을 확실히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다다이즘이 아닙니다. 알쏭달쏭하시죠? 다다이스트들이 한 말을 보시죠.
"우리가 다다라고 부르는 것은 공허에서 비롯된 엉뚱한 짓거리다." – 후고 발
"다다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 리하르트 웰젠베크
- P40

프리다 칼로는 평생 엄청난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아파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남자든 여자든 육체적 관계를 통해 고통을 위로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더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 P102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를 무척 자랑스러워했고, 상상 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사랑도 그 이상이었고요. 그것은 둘의 행동이나 편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 편력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이런 생각까지 한 것입니다. 자신과 디에고 리베라를 아예 반씩 잘라 붙여 하나로 만드는 것이죠. 한순간도 떨어지지 못하게 말입니다. - P119

<도르시 헤일의 자살>이 이렇게 그려진 것은 프리다 칼로 입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녀에게 고통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을 잊기 위해서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시간을 두고 희석시키는 것이죠. 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프리다 칼로의 방식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양편에 오해를 낳았던 이 그림은 한동안 모습을 감추었다가 현재는 익명으로 기증되어 피닉스 아트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P211

조금 아프다고 해서 수술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받는 것이죠. 또 한 번의 수술로 모든 증상이 해결된다면 다시 받을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안 되니까 자꾸 받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프리다 칼로는 사고 이후 32번 이상 수술을 받았습니다. 39살이 되던 1945년에도 프리다 칼로는 또 한 차례 척추 수술을 받게 됩니다. ‘혹시나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물론 잘못 되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위험도 있었지만, 이전 수술 이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고, 아직은 젊으니 기대를 해본 것이죠. - P281

1944년 프리다 칼로는 한 평론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가지 이유로 나는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 하나는 어린 시절 사고 당시 몸에 흐르던 피를 보았던 생생한 기억이고, 또 하나는 탄생, 죽음, 그리고 생명을 이끄는 끈에 관한 나름의 생각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엄마가 되고 싶은 바람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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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안내판 뒤쪽으로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폭풍>을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하고 셰익스피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616년 몸져누웠다. 그의 생애와 함께 흘러왔던 모든 것, 그가 이룩했던 모든 것이 절대적 단절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 먼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한번 쓰고 고치는 법이 없었던 창작과 달리, 고칠 때마다 새로 작성한 유서가 무려 134통이나 되었다.


(107)

로마인들이 배스를 건설한 것은 기원후 60년이었으니, 그들의 열정은 거의 2천 년의 세월을 건너와 나를 불가항력적인 감탄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대략 기원전 50년부터 5세기 동안 브리튼을 지배했다. 그들이 로마의 군대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마을을 불태우고, 산과 들과 강을 피로 물들였다. 브리튼인들은 로마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로마제국은 제 앞가림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샘의 족장들은 제각기 왕국을 건설하여, 브리튼에 일곱 개의 왕국이 생겨났다. 이른바 앵글로 색슨 7왕국이다. 브리튼 사람들이 로마에 구원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들은 로마제국에 대해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양가적 감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169)

괴테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특성, 즉 외적 감각에 호소하기보다는 내적 감각에 호소하는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우리의 내적 감각을 향해 말한다. 이것을 통해, 상상의 그림 세계가 활성화되며, 완벽한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덧붙일 수 없다. 정확하게 여기에 모든 것이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환상의 바탕이 놓인다.”


(200)

로미오는 자신을 순례자로, 줄리엣을 성자로 비유하며 손을 잡고 입을 맞춘다. 그렇지만 그가 사용하는 종교적 이미지들은 말 그대로 베일일 뿐이고, 이들의 행동과 말에는 자연적 세계관이 더 깊이 침투해 있다. 이 세계관으로 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그들의 욕망은 자연의 의지 또는 본성일 뿐이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던 이 세계관은 심리적 층위와 제도 및 관습적 층위 사이의 충돌을 조장하며 등장인물들의 말투에 역설과 모순을 주입한다.


(238)

전쟁 속의 사랑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이 또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두 남녀의 사랑을 참담한 역사적 현실 속에 던져두고 냉정하게 관찰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극이라는 미학적 전형까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투철한 현실주의와 빛나는 실험 정신이 런던의 극장가에서 환영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난파될 수밖에 없는 사랑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327)

테리 이글턴의 말을 들어보자.

셰익스피어의 대담한 말장난, 비유와 생략은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위협적이다. 사회적 안정에 대한 그의 신념은 발화되는 바로 그 언어에 의해 위협받는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에게는 글쓰기의 행위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불화하는 인식론(또는 지식이론)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몹시 당혹스러운 딜레마이며,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다수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들을 이해하는 데 바쳐졌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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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22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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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지난 편지에 이어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권을 이야기해줄게. 주인공 핍은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유산을 받고 신사수업을 받기 위해 런던에서 지내고 있었잖아. 핍의 첫사랑이자 짝사랑 에스텔라가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런던에 온다는 연락이 와서 핍은 잔뜩 들 떠 있었단다. 에스텔라는 미스 해비셤의 지시로 리치먼드에 있는 브랜들리 모녀와 함께 지내기로 했대. 런던에서 핍과 에스텔라는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 핍의 기대와 달리 그들의 관계는 사랑 측면에서 진척이 없었단다. 에스텔라는 핍에게 리치먼드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고, 핍은 에스텔라를 리치먼드까지 데려다 주었단다.

핍은 이제 런던에서의 신사다운 생활에 적응해 갔는데, 문제는 돈이 자꾸 들어간다는 거야. 막대한 유산이 있기 때문에, 핍은 일단 돈이 부족하면 빚을 졌단다. 그러다 보니 슬금슬금 빚도 불어났지. 핍은 친구들과 <작은 숲>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허버트도 그 모임의 회원이었어. <작은 숲>의 회원들 중에 드러믈이라는 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았어.

어느날 고향에서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어. 유일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누나의 부고 소식이었어. 핍은 큰 충격에 빠졌고, 장례식장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왔단다. 장례식을 마치고 홀로 남은 매형 조 가저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단다.

 

1.

어느덧 시간은 흘러 핍은 이제 성인이 되었어. 후견인 재거스는 후원자의 약속에 따라 핍에게 일 년에 500달러를 지급하였단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긴 핍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허버트를 남몰래 돕기로 했단다. 허버트는 취업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핍이 돈을 써서 취업을 하게 된 것이란다. 핍은 가끔 리치먼드에 가서 에스텔라를 만나는데, 어느날 에스텔라는 미스 해비셤의 새티스 하우스에 데려다 달라고 하여 핍과 에스텔라는 함께 새티스 하우에 갔단다. 에스텔라는 자신이 미스 해비셤에 의해 억압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불만을 미스 해비셤에게 이야기했어.  해비셤이 에스텔라를 입양한 이유는 에스텔라가 불쌍해서 아니었어. 에스텔라의 미모를 이용하여 남자를 유혹하고 그들을 걷어차게 해서 자신을 위해 남자들에게 대리 복수를 해주기 위해서였어. 에스텔라는 미스 해비셤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만, 미스 해비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억압된 생활을 해야만 했던 거야. 에스텔라는 이것이 불만이었지. 반면 미스 해비셤은 에스텔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불만이었어. 둘은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

핍은 다시 런던으로 왔어. 어느날 낯선 남자가 찾아왔단다. 자세히 보니 그 낯선 남자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도와주었던 탈옥수였던 거야. 핍은 깜짝 놀란 것과 동시에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그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단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하기를 자신이 핍을 신사로 만들어준 후원자라는 거야. 그러면서 그 근거들을 이야기하는데, 후원자가 아니면 모르는 내용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후원자가 맞았단다. 지금까지 자신의 익명의 후원자가 미스 해비셤이라고 생각했는데, 핍의 후원자는 탈옥수 매그위치였던 거야.

핍은 큰 충격을 받았단다. 어린 시절 자신을 협박하고 두려움에 떨게 했던 죄수가 자신의 후원자였다니. 매그위치는 죄값을 다 치렀다고 했지만, 그는 유형지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몸이었단다. 유형지를 벗어난 지금 또 다른 죄를 저지른 것이야. 매그위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목숨 바쳐 번 돈을 핍에게 후원한 것이야. 그는 자신이 신사가 되지 못한 것이 서러워 자신이 번 돈으로 다른 사람을 신사로 만들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어. 핍은 죄수의 돈을 받아 썼다는 것에 심적으로 괴로워했어. 일단 매그위치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지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 허버트가 집으로 돌아와서 핍은 매그위치에 존재에 대해 숨길 수 없었어. 매그위치는 핍과 허버트에게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핍은 마음에 큰 동요를 느끼고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단다.

 

2.

매그위치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불우하게 살아왔어. 돈을 벌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어. 성인이 되어서 콤피슨이라는 신사를 만나서 함께 사업을 했는데, 알고 보니 콤피슨은 사기꾼이었어. 콤피슨의 사기행각이 들통이 나서 콤피슨과 매그위치는 함께 재판을 받게 되었어. 그런데 콤피슨는 신사 신분이라는 이유로 금방 풀려났고 매그위치는 종신형을 살게 되었어. 이 때 알게 된 변호사가 재거스였기 때문에 매그위치가 나중에 핍에게 돈을 후원하기로 했을 때 재거스 변호사에게 부탁을 한 거야. 콤피슨의 사기 행각은 한둘이 아니야. 미스 해비셤의 결혼식장에 오지 않았던 신랑도 바로 콤피슨이었단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핍은 심한 동요를 했어. 자신은 신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신사라고 해서 도덕적인 사람과 같은 말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자신이 아는 신사 중에도 드러믈과 콤피슨 같은 사람은 못된 사람들이었거든. 그에 반해 신사는 아니지만 매그위치나 자신의 매형 조 가저리는 마음씨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이었거든. 신사의 기준이 도덕적인 품성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면 진정한 신사는 조와 매그위치 같은 사람이니까 말이야.

핍은 새티스하우스에 가서 미스 해비셤에게 왜 자신의 후원자인 척 했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어. 핍과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하네. 한편 핍의 애정 전선에도 문제가 생겼어. 핍은 자신의 후원자가 미스 해비셤이라고 생각했고, 미스 해비셤이 양녀인 에스텔라를 자신의 짝으로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에스텔라가 지금은 차갑게 굴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짝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자신의 후원자가 미스 해비셤이 아니니, 에스텔라와 결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핍은 에스텔라를 만나 사랑 고백을 했지만 에스텔라는 이를 단칼에 거절했단다. 에스텔라는 벤틀리 드러믈과 결혼하겠다고 했어. 핍이 생각하기에 드러믈은 돈만 많지, 완전 속물이었기 때문에 에스텔라의 이런 발언에 대해 크게 화를 했단다. 하지만 에스텔라는 결국 드러믈과 결혼하게 된단다. 사랑은 늘 어렵지.

매그위치의 지난 이야기를 들은 핍은 동정심이 생겨서 그를 도와주기로 했어. 사실은 핍이 매그위치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그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이라고 해야겠지. 매그위치는 따로 방을 얻었고 핍은 매그위치를 자주 찾아갔단다.

어느날 미스 해비셤의 호출이 있었어. 미스 해비셤은 이제라도 핍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고 했어. 핍이 돌아간 이후 미스 해비셤은 그제서야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를 했고, 에스텔라에게 한 짓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후회를 했단다. 먼지 쌓인 결혼 장식들도 없애려고 했던 것인지 그만 집에 불이 나고 말았어. 돌아가는 길에 새티스 하우스에 난 불을 본 핍은 다시 돌아와서 미스 해비셤을 구출했단다. 하지만 미스 해비셤은 중상을 입었고, 핍도 양쪽 손에 화상을 입었단다.

….

오래된 이야기들이지만 핍은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조각난 이야기들을 짜맞추어보니 엄청난 진실을 알게 되었단다. 에스텔라의 아버지는 바로 매그위치였고, 어머니는 재거스 씨 집에서 일하고 있는 하인이었어. 하지만 본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서로 죽은 줄만 알고 있었어.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재거스 씨를 찾아가 이야기를 했지만, 재거스 씨는 그 사실을 지금 안다고 해서 좋을 것이 없다면서 당사자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매그위치는 유형지를 벗어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핍과 허버트는 매그위치를 몰래 해외로 빼돌릴 궁리를 했단다. 그런데 매그위치의 철천지 원수인 콤피슨이 나타났어. 콤피슨은 경찰들을 데리고 매그위치를 쫓고 있었어. 그러다가 콤피슨과 매그위치가 결투를 하게 되었고, 콤피슨은 물에 빠져 죽었고 매그위치는 증기선에 부딪혀 중상을 입고 말았어. 재판에 넘긴 매그위치는 사형 선고를 받고 재산 몰수를 당했어. 그리고 매그위치는 중상 입은 것이 점점 심해져서 죽고 말았단다. 죽기 전에 핍은 매그위치에게 딸의 존재를 이야기했단다. 매그위치가 죽고 나서 핍도 병이 생겨 앓았단다. 조가 런던에 와서 간호해주었어. 조의 간호로 핍은 완쾌할 수 있었고, 핍은 허버트와 함께 이집트로 가서 사업을 했단다.

11년이 흐르고 오랜만에 핍은 고향에 돌아왔단다. 조는 예전에 식모로 집안일을 봐주던 비디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 핍은 새티스 하우스를 찾아가 보았어. 폐허가 된 새티스 하우스에서 우연히 에스텔라를 만났단다. 에스텔라는 남편과 사별해서 아이와 둘이 지낸단다 했어. 어쩌면 핍은 에스텔라와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친구로 남기로 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핍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진정한 신사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을 것 같구나. 핍은 조와 매그위치와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싶구나. 핍과 에스텔라의 사랑이 완성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현실이나 소설 속이나 쉽지 않구나. 이 책은 두 권으로 두께가 만만치 않지만, 고전 답지 않게 이야기가 술술 잘 읽힌단다. 나중에 너희들이 여유가 있다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재미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있고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덴마크에 도착한 우리는 그 나라의 국왕과 왕비가 부엌 식탁 위에 놓인 안락의자에 높이 올라앉아 어전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걷혀 가는 그 안개가 내게 보여 준 교교한 달빛이 광활하게 펼쳐지며 뻗어 나가는 모습 속에서, 나는 그녀와의 그 어떤 이별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내가 살았던 삶은 불행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산맥의 수많은 산들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고산처럼 그 모든 걱정거리들을 지배하듯 굽어보고 있던 한 가지 걱정거리는 내 시야에서 결코 사라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원인지 아직은 생겨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가 발각되었다는 공포감이 새롭게 찾아오는 바람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고, 밤이 되어 허버트가 귀가하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더 빨라지면 두려움에 떨면서 혹시 그가 나쁜 소식이라는 날개를 달고 오는 건 아닌지 잔뜩 귀 기울이며 앉아 있곤 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이라든가 그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그보다 더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계속 그대로 돌며 지속되었다.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고, 끊임없이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에 빠져 사는 선고를 받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던 나는 보트의 노를 저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안간힘을 다해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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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민주화하는 흉내라도 내야 유신 잔당도 희망이 있지. 18년 동안 지반을 뚫을 만큼 깊은 뿌리를 내렸겠지만 역사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야. 오늘 공화당이 계엄령 철폐안 통과에 동의하기로 한 것만 봐도 역사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알 수 있어. 계엄령이 철폐되고 자유선거가 실시되면 이제 군인들의 천하도 끝이라. 온 나라를 핫둘핫둘 구령에 맞춰 움직이려던 군인들은 이제 산중 막사로 돌아가고, 이제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민간인이 민간인을 지도자로 뽑는 진정한 민주의 시대가 열리는 거지. 그동안 거적때기로 엉성하게 가려놓은 죄상들이 백일하에 드러나면, 아마 이 땅에 발붙이고 살기는 어려울걸. 그걸 김종필이 모르지 않을 텐데도 울며 겨자 먹기로 저렇게 신민당이 제안한 법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니 얼마나 통쾌한가? 이것이 바로 역사의 힘이라. 해일을 수도꼭지로 막을 수 있겠나? 아무리 간교하고 뿌리가 깊어도 이번에는 버티기 어려울 거라. 비록 거리로 뛰쳐나가지는 않지만 최루탄 냄새도 꽃 내음 같고 시위의 함성이 사랑 노래로 들리는 것이 내 심경이다.”


(255)

쿠데타가 또 일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지? 그동안 권력은 군부의 손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어. 권력자에게나 국민에게나 독재는 지겹도록 신은 낡은 구두 같은 거란 말이야. 반면 민주는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새 구두지. 언제까지나 낡은 구두를 신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장은 새 구두보다 편안해. 군부는, 우리에게 다시 헌 구두를 내밀면서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신으라고 말할 거야. 지금 민주의 희망을 꺾고 다시 군부독재의 시절로 돌아가도록 강압한다면 사람들은 새 구두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새 구두를 신고 발뒤꿈치가 쓸리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할 테지.


(259)

선배의 눈빛을 보자마자 못마땅해하는 거 알 수 있었어요. 사실 나, 선배의 그런 눈빛 때문에 선생님이 되려는 꿈도 접고, 평생 구겨진 바지만 입고 살겠다고 결심했던 적도 있었어요. 기억나요? 영등포의 인쇄소에 선전 문건 초안을 받아 들고 갔던 날, 내가 면바지를 다려 입고 왔다고 선배는 화를 냈잖아요. ‘도대체 정신이 있는 얘야? 아까 다섯 시 전에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지금 도대체 몇 시야? 다들 양치질도 못하고 며칠씩 날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는데 너는 집에 가서 바지나 다려 입고 왔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었지요.”


(262)

지금도 나는 가끔 그런 질문을 해요. 사람들의 피가 담벼락을 적시고 하수구로 흐르는 그날이 온다면, 나는 과연 거리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이제는 주변에 동지들도 없으니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더욱 내밀한 나 자신의 응답에 귀 기울일 수 있지요. 나는 교사다. 교사가 교단에 서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거리의 핏물을 외면한들 아무도 나를 욕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 놓고 대답해보아라, 하지만 나의 내면은 벙어리가 되었는지 대답을 하지 않네요. 눈을 꾹 감고 붉은 땀만 흘리는 돌부처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네요. 하루라도 나의 갈 길을 확신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의심 없이, 두려움 없이, 흔들림 없이, 광화문 앞의 해치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온몸에 휘감고 담대하게 내가 걸어야 할 길을 갈 수 있다면 말이에요.


(337)

문득, 지금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들도 아버지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버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절대적인 권위가 오늘날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힘이 되지 못하고, 아버지가 애써 생각해낸 위로의 말이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할머니가 저렇게 한심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책임지지 못하고, 아버지가 한 번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끔찍한 무력함일 것 같았다.


(349-350)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단다. 네 힘으로 당장 고칠 수는 없어. 중요한 건 네게 나중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잘하는 거야. 언젠가 박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지금 해답이 될 수 없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만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내가 커서 할 일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벌써 중요한 시간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 네 식구가 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손수건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곳에 선생님이 영상이 맺히기를 기도하며 멀리 있는 선생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선생님과 나의 영혼이 어디론가 서로 통하고 있으리라고 믿는 것, 먼 곳에서라도 나의 외침을 들은 선생님이 답을 가르쳐주실 것이라는 믿는 것,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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