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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서정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2년 11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에 대한 책을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몇 년 전에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고 프라다 칼로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안타까운
그의 삶과 독특한 미술세계로 인해 아빠의 뇌리에 각인된 그런 화가였단다. 그래서 언젠가는 프라다 칼로에
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당시에는 프리다 칼로에 관한 적당한 책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단다. 얼마 전에 다시 문득 프리다 칼로가 생각이 나서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니, 아빠 취향에 맞는 책이 한 권 검색되더구나.
그 책이 바로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 줄 서정욱 님의 <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였단다. 간단히 책 소개를 읽어보고 괜찮을 것
같아서 구매하긴 했는데, 혹시 책이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을 했단다. 아무래도
아빠와 거리가 먼 미술과 화가에 관한 이야기잖니. 그런데 책은 자세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쓰여 있었어. 문장도 높임말로 말하듯 쓰여 있어서 마치 지은이가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단다. 이 책을 통해서 프리다 칼로의 삶과 그림을 알게 되어 좋았단다. 여전히
프리다 칼로의 안타까운 사고와 그로 인해 고통을 점철된 삶은 여전히 안타깝구나.
1.
프리다 칼로는 1907년 7월 6일 4녀중 셋째 딸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독일계, 어머니는 멕시코계였어.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던
프라다 칼로는 의사를 꿈꾸며 공부하던 어느날. 그 어느날은 1925년 9월 17일이었어. 프리다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프리다가 쇠파이프가 몸을 관통하는
끔찍한 중상을 입고 말았단다. 당시 병원에서는 프리다에 대해서 어렵다고 판단하여 치료도 하지 않았는데, 프리다의 남자친구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는 병원에 간절히 부탁을 해서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했어.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프리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없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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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순간과 사람이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 역시 그랬습니다. 그녀의
경우는 좀 독특합니다.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그 순간을 함께했던 유일한 사람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프리다 칼로 하면 떠오르는
그 사고의 순간에 그 사람이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던 그 사고에서 프리다 칼로를 처음 목격한 의사는 그녀의 치명적인 부상을 보고 그녀를
포기하려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말렸던 사람도 그 사람입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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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가 극적으로 살아나기는
했지만, 자신도 일상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자신의
꿈인 의사도 포기하고,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단다. 알레한드로의
부모는 프리다와 자신의 아들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아들을 멀리 유럽으로 유학을 보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어. 프리다는 알레한드로를 붙잡기 위해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프리다가
그린 여러 자화상들 중에 가장 아름답게 그림 그림이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오늘 독서 편지에서 소개한
그림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들쳐보던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서 확인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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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는 자화상도 많이
그렸고, 주변 인물들도 많이 그렸는데 자신의 남자 친구였던 알레한드로를 그린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의 초상>이란 그림을 그렸어.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928년인데, 1952년이 되어서야 알레한드로에게 전달되었고, 이후 쭉 개인 소장으로
있다가 1994년 알레한드로가 죽은 이후 그의 집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고 하더구나. 프리다 칼로의 여러 작품들이 그렇게 나중에 공개되는 경우가 꽤 있었어.
…
2.
프리다 칼로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자 멕시코에서는 국민화가로 알려져 있는 디에고
리베라라는 사람이란다. 프리가 칼로보다 21살이나 많고 이미
두 번이나 이혼을 했고, 바람둥이로 소문이 난 디에고 리베라. 주변에서
만류를 했음에도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을 한단다.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로부터 그림도 배울
수 있고, 치료비로 거금이 나가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를 진심으로 사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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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27)
이런
모든 상황에도 프리다 칼로는 남편을 비하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참으면서 묵묵히 기다릴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디에고 리베라. 시작
디에고 리베라. 창조자
디에고 리베라. 내 아이
디에고 리베라. 내 남자
친구
디에고 리베라. 화가
디에고 리베라. 내 연인
디에고 리베라. 내 남편
디에고 리베라. 내 친구
디에고 리베라. 내 어머니
디에고 리베라. 내 아들
디에고 리베라. 나
디에고 리베라. 우주
통합의 다양성
왜 나는 그를 디에고 리베라라고 부르는가?
그는 결코 내 것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자신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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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고와 결혼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원했지만, 바람 피우기를 밥 먹듯이 하는 디에고와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안정된 삶이었을 거야. 심지어 디에고는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도 바람을 피웠어. 프리다는
디에고와 동생에 대한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추억(심장)>을 1937년에
그렸단다. 이 그림은 심장이 몸 밖에 나와 있는 그림으로 프리다 그림은 초현실주의와 보기 불편한 그림으로
화풍에 변해갔단다. <두 명의 프리다>라는 작품도
심장에 몸 밖으로 나와 있는데, 이 또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 그림이었어.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한 남편의 계속된 이혼 요구로 1939년 이혼을
하게 되었고, 마음의 고통을 <숲 속의 두 누드>로 표현하였단다. (1939년 작)
…
프리다 칼로는 이런 마음의 고통을
위로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위로가 된다면 여자도 상관없었어. 한 때 동성 연애도 했다고 했어, 그리고 얼마 후 프리다 칼로는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대상은
다시 디에고 리베라였단다. 다시 합쳤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그
이후에도 자주 별거를 했다는구나. 1940년 이후 본격적인 개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프리다 칼로의 걸작들이 나오기 시작했대. <가시목걸이와
벌새가 나오는 자화상> (1940년 작)도 이 즈음
그렸어. <디에고와 프리다>(1944년 작)는 프리다와 디에고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림이래. 이
책에서는 각 그림들을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풀어주는 느낌으로
아주 좋았단다. 그런 것들을 다 기억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대부분 휘발되었구나.
…
1949년 디에고는 영화배우 마리아 펠릭스와 바람을 피웠는데, 프리다는 이를 <디에고와 나>라는
그림으로 대응을 했단다. 프리다 칼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유명한 미국의 팝가수 마돈나도 프리나 칼로의 대표적인 광팬이라고 하는구나. 마돈나가
보유한 프리다의 그림이 있는데 <나의 탄생>(1932년)이라는 그림인데, 아빠가 생각하기에 프리다의 그림들 중에 가장 기괴한
그림인 것 같구나.
…
프리다 칼로는 한때 트로츠키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대. 트로츠키? 아빠가 알고 있는 러시아의
그 트로츠키 맞단다. 레닌이 죽고 나서 스탈린이 반대파를 거침없이 숙청할 때 해외로 쫓겨난 트로츠키. 당시 갈 곳이 없던 트로츠키를 멕시코로 망명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이가 바로 프리다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였단다. 그런 트로츠키와 프리다 사이에 썸씽이 있었으니, 디에고 리베라도
아차 싶었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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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05)
트로츠키가
일반인이었다면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연인의 작품을 걸어놓을 수 없었겠죠. 하지만 그는 러시아의 국민
영웅이며,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과 더불어 소련
공산주의 혁명의 3대 거물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걸어놓는다면
비난할 사람이 없었죠. 추종자들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프리다
칼로가 이 그림을 준 것은 어쩌면 그를 존경하던 디에고 리베라를 향한 보복 심리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배신했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가장 존경하던 인물을 자신이 차버림으로써 남편을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죠. 남편은 트로츠키를 대단한 혁명가로 평가했고, 그가 소련에서 축출당해
갈 곳이 없을 때 멕시코로 망명하는데 큰 힘을 쏟았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도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부인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부인의
불륜 상대가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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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리다는 트로츠키와 사랑은
금방 끝내고 헤어지면서 <레온 트로츠키에 바치는 자화상>(1937년
작)을 그려서 트로츠키에게 주었대. 이 그림은 보기 드물게
큰 그림으로 61x76cm나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나이차이가 28살이나 난다고 하는구나. 트로츠키는 헤어진 다음에도 끝까지 구애를
했지만 프리다는 끝내 받아주지 않았대. 아빠가 트로츠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좀 구차해 보이는구나.
3.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 이후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았고, 그 후유증으로 임신도 몇 번을 실패하고 결국은 아이를 갖지 못했대. 프리다 칼로는 아기를 엄청 갖고 싶었다고 하는데, 참 불쌍하구나. 유산을 하고 나서 <헨리포드 병원>(1932년 작)을 그렸는데,
사연을 모르고 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지만, 프리다 칼로의 사연을 알고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는 그림이란다. <나와 나의 인형>(1937년
작)은 세 번 유산을 하고 절망과 좌절의 시기에 그림이래. 세
번의 유산을 하고 인형을 사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인형과 함께 있는 자신을 그림 그림이란다. 인형이
아니라 아기와 함께 있는 그림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크고 작은 수술들을 계속 해왔어. 1950년 건강이 또 악화되면서 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 수술은 오히려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대. 그러다가 파릴 박사라는
사람의 수술로 몸이 좀 회복되었대. 그래서 그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해 <파릴 박사의 초상화가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그렸단다. 이 그림을 보면 좀 독특하단다. 파릴 박사의 초상화를 그리는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 있는데, 평범한 자화상은 아니었어.
…
프리다 칼로의 그림 몇 작품을
간단히 이야기를 해볼게. 자세한 설명은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구나. <작은 칼자국 몇 개>(1935년 작)이라는 그림도 그냥 보면 공포스럽고 기괴한 그림이란다. 이 그림은
남자가 여자를 칼로 죽인 사건을 신문 기사에서 보고 그린 그림이래. 아무래도 그 여자가 프리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서 공감하고 그린 그림일 거라고 했어. <꿈>(1940년
작)은 늘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보니 달콤한 잠을 자는 것이 소원이었던 프리다 칼로가 그린 그림이란다.
죽을 때만이라도 자다가 평온히
죽는 것을 희망하는 그림. <생명의 꽃>(1944년
작)은 꽃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꽃을 상상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꽃은 붉고 기괴한 꽃이었단다. 자기만의 생각을 노골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받는 그림으로 그림 속의 꽃이
남녀 생식기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단다. <모세>(1945년
작)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모세와 일신교>를 읽고 감상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야. 복잡하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그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초현실주의 작품이야. <마르크스는 병자를 건강하게 하리라>(1954년 작)은 공산주의자였던 프리다 칼로가 마르크스를 추앙하고, 미국 자본주의를 멸시하는 그림이란다.
<인생이여 만세>(1954년
작)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으로 죽기 8일 전에 완성했다는구나. 프리다의 그림에서 보기 드문 정물화로 먹음직스러운 수박들을 그린 그림으로 프리다의 작품들 중에 가장 보기 편한
그림이 아닌가 싶구나. 평생 자신의 고통을 그림에 담은 것 같은 그림들을 그리다가 원래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 같은 마지막 그림. 그림 제목도 찬란한 <인생이여
만세> 예전에 민태기 님의 <판타레이>라는 책에서 영국의 락그룹 콜드플레이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에서 자신들의 노래 제목을 따왔다고 했는데
그 그림이 바로 <인생이여 만세>이고 스페인어로 <비바 라 비다(Viva la Vada)>이다.
오늘 독서 편지는 프리다 칼로는
죽기 얼마 전 남긴 일기로 맺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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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죽기
얼마 전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난 건강하게 잘 탈출했다. 나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절대 어기지 않을 생각이다. 디에고 리베라에게 감사하고, 나의 테레에게 감사하고, 그라시 엘리타, 그리고 딸에게 감사하고, 주디스에게 감사하고, 이사우아 미노에게 감사하고, 루피타 주니에게 감사하고, 파릴 박사와 폴로 박사와 아르만도 나바로
박사와 바르가스 박사에게 감사한다. 나 자신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를 위해 삶을 지탱하려는 나의 엄청난 의지에도 감사한다.
기쁨, 인생 만세. 디에고 리베라 만세.
테레 만세. 나의 주디스 그리고 내게 놀라우리만치 잘해주었던 모든 간호사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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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하는 일마다 너무 잘 풀려 세상 걱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책의 끝 문장: 유언은 그녀의 생전 이루지 못한 소원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프릴다 칼로는 다다이즘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927년이라면 새로운 미술 사조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때였고, 장래에 화가가 되기로 한 프리다 칼로는 그런 것들을 유심히 보고 따라 하려 했죠. 그중 하나가 이 실험 작품(미구엘 리라의 초상)입니다. 먼저 다다이즘이 무엇인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다이즘은 설명하기가 까다로운 미술 사조입니다. 설명을 확실히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다다이즘이 아닙니다. 알쏭달쏭하시죠? 다다이스트들이 한 말을 보시죠. "우리가 다다라고 부르는 것은 공허에서 비롯된 엉뚱한 짓거리다." – 후고 발 "다다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 리하르트 웰젠베크 - P40
프리다 칼로는 평생 엄청난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아파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남자든 여자든 육체적 관계를 통해 고통을 위로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더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 P102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를 무척 자랑스러워했고, 상상 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사랑도 그 이상이었고요. 그것은 둘의 행동이나 편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 편력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이런 생각까지 한 것입니다. 자신과 디에고 리베라를 아예 반씩 잘라 붙여 하나로 만드는 것이죠. 한순간도 떨어지지 못하게 말입니다. - P119
<도르시 헤일의 자살>이 이렇게 그려진 것은 프리다 칼로 입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녀에게 고통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을 잊기 위해서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시간을 두고 희석시키는 것이죠. 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프리다 칼로의 방식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양편에 오해를 낳았던 이 그림은 한동안 모습을 감추었다가 현재는 익명으로 기증되어 피닉스 아트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P211
조금 아프다고 해서 수술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받는 것이죠. 또 한 번의 수술로 모든 증상이 해결된다면 다시 받을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안 되니까 자꾸 받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프리다 칼로는 사고 이후 32번 이상 수술을 받았습니다. 39살이 되던 1945년에도 프리다 칼로는 또 한 차례 척추 수술을 받게 됩니다. ‘혹시나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물론 잘못 되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위험도 있었지만, 이전 수술 이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고, 아직은 젊으니 기대를 해본 것이죠. - P281
1944년 프리다 칼로는 한 평론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가지 이유로 나는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 하나는 어린 시절 사고 당시 몸에 흐르던 피를 보았던 생생한 기억이고, 또 하나는 탄생, 죽음, 그리고 생명을 이끄는 끈에 관한 나름의 생각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엄마가 되고 싶은 바람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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