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홈즈
전건우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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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유쾌한 소설 한 편을 이야기해줄게. 유쾌하다고는 하지만 살인도 벌어지고, 살벌한 결투도 벌어지는 하드 코어 요소도 담겨 있다고 해야겠구나.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함과 유머 감각은 유지한 소설, 전건우 님의 <살롱 드 홈즈>라는 소설이란다. 책표지 또한 그럼 유쾌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단다. 한참 전에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되어 구입한 책인데, 이제서야 읽었단다. 그 사이에 이 소설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그 드라마는 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화끈하고 시원하고 유쾌한 드라마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단다. 지은이 전건우 님은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다른 작품들도 함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1.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주부탐정단의 활약을 그린 소설이란다.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읽다 보면 배후 세력이 어떤 사람인지 추측이 되긴 하지만 문제되지는 않는단다. 주부탐정단이 어떻게 범인을 잡아가는지 초점을 맞춰 있으니까

주인공 공미리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남편을 죽이는 꿈을 자주 꾸지만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어. 공미리의 남편은 축구 중계에 미쳐 가정생활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란다. 그러니 공미리가 남편을 죽이는 꿈을 자주 꾸지. 공미리는 어렸을 때부터 추리 소설을 즐겨 있고 탐정이 꿈이었는데, 지금은 우울증에 걸린 아줌마로, 가끔씩 병원에 다닌단다. 얼마 전부터 옮긴 병원의 신경정신의 박도진의 상담을 받고 많이 좋아진 것 같았어.

공미리는 추경자, 박소희 등과 함께 전지현이 운영하는 광선 슈퍼에서 자주 모인단다. 그들은 광선 슈퍼에서 부업으로 곰인형의 눈을 붙이는 일을 하곤 했어. 나이 순으로 보면 전지현, 추경자, 공미리, 박소희 이런 순이란다. 추경자는 남편이 경찰이라서 그런지 좀 과격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박소희는 일류대학교에 합격했다가 못된 놈을 만나 임신을 하여 학교를 중퇴하고 미혼모로 부모님이 있는 광선아파트로 돌아온 거야. 아이 아빠는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내뺐다고 하는구나.

최근에 아파트 단지에 출몰하는 성추행범이 골칫거리였어. 그런데 그 놈의 물건이 작다고 하여, 쥐방울이라는 별명이 생겼어. 경찰에 신고를 해도 강력범죄가 아니니까,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어. 그래서 공미리는 우리들이 잡아보자고 제안을 했고, 다른 이들도 모두 오케이를 했단다. 그렇게 주부탐정단이 출범했단다.

주부탐정단은 아파트 경비인 김광규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김광규로부터 쥐방울 피해자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어. 피해자들이 여자이다 보니, 같은 여자들에게 이야기를 더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공통적으로 쥐방울에게서 흙냄새, 꽃냄새가 났다고 했단다. 주부탐정단이 쥐방울의 행적을 쫓는다는 소문이 나자, 어떤 아주머니부터 연락이 왔어. 이십 대인 딸이 있는데 이틀째 소식이 없다면서 말이야. 경찰은 이십대 여자가 이틀째 소식이 없는 것은 늘쌍 있는 일로 치부했지만, 자신의 딸을 가장 잘 아는 엄마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 딸은 퇴근 후 헬스장에 갔다고 나간 뒤로 연락이 끊겼다고 했어.

이건 그 동안의 쥐방울의 행적도 좀 다르긴 했지만, 성추행범들은 점점 과감해지고 강도가 세어진다는 통계로 봤을 때 피해자를 납치해서 더 심한 짓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주부탐정단은 역할을 분담하여 공미리와 추경자는 탐문 수사를 맡았고, 박소희와 전지현은 CCTV를 담당했단다. 그들의 이런 활동은 당연히 남편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무시를 받았단다. 그래서 남편들이 출근하고 나서 모여서 조사를 했어. 공미리는 신경정신의 박도진에게 이 사건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었지.

 

2.

소설은 중간중간 범인의 일인칭 시점의 글들이 있단다. 쥐방울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쥐방울이 아닌 살인범의 이야기했단다. 광선아파트에 쥐방울보다 더 살벌한 싸이코패스가 있었던 거야. 이 싸이코패스는 단독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를 뒤에서 코칭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 사람의 정체는 얼마 안 가서 드러나게 된단다.

경비원 김광규는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잘려진 사람 손과 스마일 배지가 들어 있는 검정색 비닐봉지 발견한단다. 스마일 배지는 몇 달 전 경기 남부에서 일어났던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일명 스마일맨의 상징이었단다. 며칠 동한 잠잠했던 살인사건이 이번에 서울 광선아파트에서 일어난 거야. 스마일맨의 특징은 시신을 유기하지만 머리는 버리지 않는 특징이 있었단다. 자신의 집이나 별도의 장소에 피해자들의 머리를 모아 놓았을 것이라는 것이 경찰들의 분석이었어.

이번 범행도 마찬가지였단다. 잘려진 손이 발견되고 얼마 안되어 나머지 시신도 발견했단다. 피해자는 앞서 이야기했던 헬스장에 갔다가 실종된 이십 대 여성이었어. 쥐방울 사건은 이제 사건도 아닌 것처럼 보였어. 주부탐정단의 타겟은 스마일맨이었단다. 그런데 그 시신이 발견된 날 주부탐정단의 막내 박소희가 실종되었어. 공미리와 전화통화 중에 갑자기 끊긴 전화와 함께이번 소행도 스마일맨이라고 생각했어. 공미리를 비롯한 주부탐정단은 이제 남 이야기가 아니었단다. 박소희를 죽이기 전에 스마일맨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어. 공미리와 추경자, 전지현은 범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단다.

그 와중에 자신이 스마일맨이라면서 자수를 했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되었어. 경찰도 그를 범인으로 단정짓고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공미리도 다니는 미소신경정신과의 박도진 의사의 환자였단다. 우연일까? 아니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공미리는 이 자수범을 알아 보고 경찰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경찰은 공미리의 말을 믿지 않으려고 했단다. 스마일맨이 자수를 했다고 생각한 경찰은 더 이상 수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지.

주부탐정단은 이제 그들끼리 진짜 범인을 찾아야 했어. 그들은 아파트 경비 김광규의 도움을 받아서, 스마일맨이 광선아프트 6 101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범인과 쫓고 쫓기고, 혈투까지 하게 된단다. 범인 뿐만 아니라 배후에 인물이 아주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까지 밝혀내게 되지. 그리고 박소희도 구할 수 있었어.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범인은 자주 등장하지 않아서 예측하기 쉽지 않았지만, 범인을 배후에서 조정한 이는 쉽게 예상이 가능했단다. 그래도 소설은 나쁘지 않았어.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각색되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 긴 드라마를 볼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김박복 할머니는 그날 밤 악마를 만났다.

책의 끝 문장: “살롱 드 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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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폴 오스터 : 항상 손으로 글을 씁니다. 대개 만년필을 쓰지만 종종 연필도 씁니다. 고쳐 쓸 생각이 있을 때는 연필로 쓰지요. 타자기나 컴퓨터에 직접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자판은 제가 글을 쓰는 것을 늘 방해합니다.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으면 명징하게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펜은 훨씬 더 원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말이 몸에서 흘러나오고, 그 말들을 종이에 새겨넣는 과정을 느끼는 것이지요. 늘 글쓰기는 촉각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육체적인 경험이라고 해야겠지요.


(156-157)

폴 오스터 : 저는 항상 스스로에게 되돌아가는 책에 이끌렸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를 책의 세계로 이끌어간 책에 이끌렸습니다. 비록 그 책이 저를 세상으로 데려가긴 했지만요. 말하자면 원고 자체가 주인공인 셈이지요. <폭풍의 언덕>은 그런 종류의 소설입니다. <주홍 글씨>는 또 다른 예입니다. 물론 틀은 허구적이지만 그것은 이 이야기들에 근거와 신빙성을 줍니다. 전통적인 형식의 이야기들은 작품을 실제라고, 이 소설에 사용된 틀은 작품을 환상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그리고 일단 소설 속에 일어난 사건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만들면, 그 비현실성이 역설적으로 이야기의 진실성을 높입니다. 말들은 보이지 않는 작가인 신에 의해 돌 위에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과 피를 가진 사람들의 노력을 재현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매우 매혹적입니다. 독자는 이야기에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보다는 이야기 전개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177-178)

폴 오스터 : 잘 모르겠네요. 이제 저는 오십 대에 접어들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하더라고요. 신간이 훌쩍훌쩍 흘러가 버리기 시작하고, 살아온 삶이 남은 삶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몸이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하고, 전에 통증을 느끼지 않던 부위에 통증과 고통을 느끼게 되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어요. 나이가 오십 쯤되면, 우리 모두는 귀신에 씌인 것처럼 살게 되지요. 귀신이 우리 안에 살면서, 산 사람들에게 하는 것만큼 죽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요.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스무 살 먹은 젊은이라고 해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요. 자신에게 이런 상실이 계속해서 쌓이는 것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그런 일들이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은 너무나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지요. 결국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하는 걸까요? 정말로 몇 사람뿐이겠지요. 몇 명 되지 않을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나면 당신의 내적 세계의 지도는 변할 겁니다. 제 친구 조지 오펜은 늙는 것에 대해 제게 어린아이가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인한 일인가.”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228)

이언 매튜언 : 저는 종종 모든 문장이 그 자체의 과정에 희미한 해설을 담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느낌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신이 이 느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기껏해야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지시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며, 언어가 한 사람의 정신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정신으로 생각과 느낌을 전달할 때 언어의 감각적이고 정신에 감응하는 능력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279)

필립 로스 : 일반 독자에게요?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지요. 기껏해야 작가는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꿀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또한 충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깊고 독특한 기쁨이며, ()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고 흥미롭고 신비로운 인간 활동입니다.


(348)

레이몬드 카버 : 좋은 소설은 부분적으로는 한 세상의 소식을 다른 세상으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 목적 자체로 훌륭해요. 하지만 소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거나 어떤 사람의 정치적인 입장을 바꾸거나 혹은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거나 고래나 레드우드 나무를 구하거나 하는 것은 못합니다. 당신이 이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이에요. 그리고 소설은 이런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하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37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글쓰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행해지는 일은 모두 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글쓰기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편입니다. 완벽할 때까지 글을 써야 하는 것 역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종종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어서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또한 사회적 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숭앙하는 것은 아주 잘 마무리한 글입니다. 여행을 할 때 조종사가 작가로서의 제 수준보다 나은 수준의 조종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무척 기쁩니다.


(384-38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주요한 이유는 명성이 개인적인 삶을 침해아기 때문입니다. 명성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지요. 명성은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을 계속 쓰기를 원하는 유명한 작가는 명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 테니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 명성이라거나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과 관련한 많은 일을 겪지 않도록, 제가 죽은 뒤에 제 책이 출판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제 경우에 명성과 관련한 유일한 이점은 명성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명성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문제는 하루 24시간 내내 유명하기 때문에, ‘, 난 내일까지 유명하지 않을 테야.’라거나 단추를 누르면서 난 지금 여기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422)

어니스트 헤밍웨이 : 맞습니다. 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그러나 의식적으로 관찰할 필요는 없으며 관찰한 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그러나 나중에는 그가 관찰하는 것 모두가 그가 알고 있거나 본 것들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자산이 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항상 빙산의 원칙에 근거하여 글을 쓰려고 애썼습니다. 빙산은 전체의 8분의 7이 물속에 잠겨 있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안 쓰고 빼버린다 해도, 그것은 빙산의 보이지 않는 잠겨 있는 부분이 되어 빙산을 더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작가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여 안 쓰는 것이라면 이야기에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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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기대도 받고 논란도 일으키고 있지만 이 사업으로 인해 드디어 우리나라 농어촌에도 숨통이 트이고 희망이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 농어촌은 역사 이래로, 특히 산업화 이래 소외와 착취와 배제의 대상이었다. 2000년 이후 본격적인 농어업, 농어촌 정책들이 추진되었지만 성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컸던 제 사실이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농어촌지역은 인구감소가 더욱 격화되어 감소를 넘어 인구 멸절의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농어촌의 소멸은 단순히 인구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의 생명과 지속성의 소멸을 의미한다. 농어촌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인류의 생존은 지속될 수 없다.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기본소득론자였던 고 김종철 선생님이 평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런 일을 하는 농부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14)

부동산 세제에서 가장 중요한 세금은 무엇일까? 보유세다.왜냐하면 보유세가 지대(임대) 수입을 일정부분 환수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부동산 가격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시세차익의 규모를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를 높이는 경우에는 투기목적으로 보유한 부동산을 안 팔고 버틸 수 있고, 또 가격 상승기에는 가격을 떠넘길 수 있지만, 보유세를 강화하면 버티기도, 떠넘기기도 불가능하다. 보유세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데, 그러나 2023년 현재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5%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0.33%의 절반 이하이며, 30개중 중에서 20위에 머물러 있다. 상위권 국가들(이스라엘 1.24%, 그리스 0.94%, 미국 0.83%)과 비교하면 5~8배 현저한 격차를 보인다.


(18)

국민주권정부인 이재명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만든 정부인가.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항쟁, 길게 보면 3, 짧게는 6개월 동안 더위와 추위, 비바람을 무릅쓰고 광장으로 나온 위대한 주권자 국민들의 항쟁으로 만든 정부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놀라워하고 부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한다. 그래서 부동산이다. 당장 큰 변화가 없더라도 국민들에게 이렇게 몇 년 지나면 나도 주거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하는 전망을 줘야 한다. 그래야 청년과 신혼부부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지방도 살아날 수 있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사회의 수많은 개혁과 추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동산 문제 해결에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다고.


(20)

초고령사회 문턱을 넘은 대한민국에서 나이 듦은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마주한 거대한 질문이 되었다. 그 질문의 한가운데에 노인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자리한다. 시가 8억이 넘는 아파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노인의 비극은, 이 질문이 단순히 주거빈곤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은 가졌을지언정,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채 고립된 삶은 존엄한 노후라 부를 수 없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고령 1인 가구는 급증하고 있으며, 이들의 일상은 외로움과 돌봄 공백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48)

앞으로 수년 이내에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세계의 환경을 과열시킴으로써 불러온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가 우리에게 닥쳐올 때, 인류는 다만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500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온-그리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인-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둘 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자본주의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성정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근본원리, 그리고 이것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국가시스템은 물러나고, 규모가 작고 오염을 일으키지 않으며 공격성이 없는 사회들로 구성된 세계가 들어서야 할 것이다. 이 사회들은 자원을 많이 소비하지 않고, 인간적인 규모의 자치정부로 유지될 수 있다.


(63-64)

이렇게 인류 대다수가 바라는 일을 어찌하여 각국을 대표하는 자들이 모인 국제회의는 의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대와 결과의 간극은 충격적일 정도로 크다. 지구 주민들은 이미 지구의 이익이라는 원리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발언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 있는가? 가끔 실시되는 여론조사 외에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가? 아무 데도 없다! 그러니까 다자주의 외교가 기후에 관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편파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재계나 산업계는 물론이고, 큰 시민사회단체들도 COP 협상가들과 만날 기회가 있지만 수십억 명의 보통사람들은 바로 자기자신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82)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트럼프의 이번 결정이 즉흥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APEC 회의가 열리기 전인 8월에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한미 정상회담 주의제는 관세협상이었으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대했던, 관세협상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것은 한국 핵잠수함 건조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관한 합의였을 가능성이 있다. 관세협상이 타결됨으로써 핵잠수함 승인과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가 타결됨으로써 관세협상도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93)

이스라엘은 2025 9 9일 사전 통보도 없이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카타르 수도 도하 소재의 하마스 건물을 탄도미사일로 공격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카타르의 반발에 놀란 미국은 서둘러 카타르 안보 보장을 약속하였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요 비나토 동맹국으로 받아들였다. 카타르 공습이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이스라엘은 미국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10 8일 하마스와 기자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은 3단계로 나뉘어 진행 중이지만, 휴전 이후에도 가자 주민이 무려 300명 이상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113-114)

2025 11 8일 오전 10, 산황동 417번에 우리는 모였다.

청량한 산소를 내쉬는 나무들 사이에서

생명의 종을 울리기 위해.

경종이며, 다시 시작하자는 초대의 울림이다.

우리는 나무와 새, 흙과 비와 바람의 이름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부른다.

민주주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알린다.

생존 네트워크의 형제자매인 숲 생명들.

우리는 그들의 권리를 대신해

종을 들었다.

오늘의 종소리는

한 그루 나무, 한 마리 새, 한 송이 꽃, 한 조각 차돌의 소리다.

개발이라는 미명, 경제라는 사탕발림으로 생태민주주의의 목에

도끼를 대는 자들이여, 함께 살아가자.

벨 데모크라시

폭력이 아닌 울림으로,

침묵이 아닌 공명으로,

학살 방조가 아닌 생명 껴안기로,

파괴가 아닌 회복으로 세상을 움직일 것이다.

-       벨 데모크라시 선언문


(154-155)

우리가 집단적으로 인간으로서의 목적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병든 사회가 맞습니다. 인류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학대하고 공격하는 사람을 우리는 정신적 장애가 있다고 진단하잖아요. 우뇌가 가능하지 않는 사회는 기계적, 관료적으로 과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감정이나 영적 측면에 대한 이해는 극히 피상적인 것이 되고, 예술은 기괴한 모습을 띠게 됩니다. 물론 나는 지난 세기의 미술이나 음악, ()가 모두 끔찍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아는 최고의 예술작품도 그 시기에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우리의 우뇌가 기능을 아예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비유하자면, 우리가 라디오 수신기를 하나 샀다고 해봅시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지만 결국 두어 개 방송밖에 안 듣게 될 거예요. 그러나 내가 수신을 하지 않는다고 다른 채널들에서 방송을 안내보내는 건 아니잖아요. 이것솨 똑같아요. 우리는 얼마든지 우뇌가 제공하는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157-158)

우뇌는 실재하는 것과 직접 접촉하지만, 좌뇌는 사물을 유형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재현합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가짜의 세계를 인식하는 거예요. 시인 워즈워스가 바로 그것을 지적했어요.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에는 산들이 말을 걸었고, 폭포, , 나무와 대화할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살아있는 존재들을 그 표상이 대신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좌뇌가 지배하는 우리 문화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런 살아있는 존재들을 모두 제거했고, 그래서 우리는 극히 빈약한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177-178)

며칠 전 서울에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퇴근시간이어서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일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문자만 오갈 뿐, 얼굴도 목소리도 사라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미디어가 깊숙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전화기가 발명되었을 때만 해도 얼굴은 보지 못해도 목소리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관계의 폭이 오히려 넓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자의 시대다. 과연 문자메시지가 눈빛과 온기를 대신 할 수 있을까. 관계는 약해지고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있다. 협동은 제도나 계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나누며 관심과 책임을 공유할 때 비로소 우리가 생긴다. 관계가 무너지면 협동도 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복잡한 정책과 이론이 아니다. 미디어 대신 사람에게 시선을 돌릴 때, 새로운 협동의 씨앗이 싹튼다.


(194)

우리는 아이들이 그들의 삶의 테두리를 넘을 수 있게 돕고자 했다. 농촌마을과 생명, 자연의 신비로움을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 가게가 없어서 간식을 사 먹기 어렵고, 문화적 혜택도 전무하며, 부모와 떨어져서 낯선 할머니 집에서 생활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것을 행복해하고 도시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참새 소리에 아침을 맞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시골마을, 공동체의 진가를 오히려 도시 아이들이 농촌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듯하다. 아이들은 안다. 온몸으로 느낀다. 인간의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아이들은 자유롭고 자존감 높고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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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 일러스트 레터 3
줄리엣 가드너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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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제인 에어>를 재미있게 읽고 나서 지은이 샬럿 브론테와 자매들에 대해 검색을 해보다가 그들의 슬픈 가족사를 알게 되었어. 여섯 남매가 태어났으나 둘은 어렸을 때 죽고 넷은 성인까지 자랐으나 모두 요절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아내도 일찍 죽고 아이들도 모두 요절하고 홀로 남은 늙은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루 상상하지도 못할 것 같구나.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들도 궁금했지만 그들의 삶이 더 궁금했어. 그들의 슬픈 가족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것도 있지만, 어떤 생활을 했기에 그 당시 세자매 모두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말이야. 그래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책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라는 책이란다. 그들이 남긴 편지와 기록들을 통해서 그들을 삶을 돌아보는 그런 책이란다.

책 제목에 있는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너무나 유명한 소설 제목이란다. 아빠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줄거리만 문체가 좀 세다는 기억만 조금 남아있구나.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이 그들이 살았던 곳에서 유래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럼, 그들의 안타까운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1.

그들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어렸을 때 책을 좋아했는데 그것이 동네 목사의 눈에 띠어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고, 부목사가 되었대. 나중에 커서 영국으로 건너와 목사가 되었고 말이야. 결혼은 당시 나이 치고는 늦은 나이인 35살에 했는데 아내인 마리아도 29살로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였대. 그들은 여섯 명의 아이를 낳고 하워스로 이사를 갔어. 그런데 아내 마리아가 병에 걸려 1821 9 38살에 어린 아이들을 남기고 눈을 감았단다.

첫째 마리아가 열 살도 채 안 되었는데 그 밑으로 다섯이나 더 있었으니 패트릭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알고 지내던 여자에게 청혼했지만 거절 당했단다. 아이 여섯 달린 홀아비의 청혼을 승낙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 천사 아니고서야패트릭은 결국 딸들을 코완브리지라는 기숙학교로 보내기로 했어. 첫째 마리아, 둘째 엘리자베스, 셋째 샬럿, 다섯째 에밀리를 코완브리지에 보냈단다. 넷째 브랜웰은 아들이라서 집에 있었고, 막내 앤은 너무 어려서 집에 있었어.

그런데, 코완브리지 기숙학교는 시설이 그리 좋지 않았어. 위생 시설도 안 좋고 아이들 관리도 엉망이었어. 샬럿은 이 학교의 경험을 나중에 소설 <제인 에어>에서 로우드 학교의 모델로 삼았단다. 코완브리지 학교의 청결하지 못한 위생 상태 때문에 전염병에 쉽게 노출되었고, 1825년 첫째 마리아는 11살 때, 둘째 엘리자베스는 10살 때 연이어 폐결핵으로 죽고 만단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 패트릭은 샬럿과 에밀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단다.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이후 식구들은 거의 집에서만 지내면서 가정교육이나 책으로 공부했어. 이모 엘리자베스 브랜웰이 자주 와서 보살펴 주었고, 집안일은 50대 나이 지긋한 하녀가 도맡아 하고 있었어. 아버지는 아이들과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과 시사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구독해서 아이들에게 읽히게 하고 서로 토론하기도 했단다. 사교 활동도 거의 안하고 집에서 주로 집에서 지내는 그들에게 교회와 주일학교에 나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사교활동이었어. 그렇다고 그들이 집에서 지루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야. 그림도 그리고 그들만의 상상 속 왕국을 만들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놀았단다. 이런 놀이들이 향후 그들이 소설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그들이 그린 그림들 중에 아직도 남아 있는 그림들이 많고 이 책에도 많이 실려 있단다. 아빠가 그림을 잘 못 그려서 그런지 몰라도, 그들의 그림 솜씨가 다들 좋았단다. 샬럿의 남동생이자 에밀리와 앤의 오빠인 브랜웰은 커서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지.

십대 후반이 되어서 샬럿은 다시 학교에 갔는데, 로헤드라는 학교였어. 그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이 책에서 소개해 주었단다. 나중에 샬럿은 로헤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었어. 18살이 된 브랜웰은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기 위해 왕립미술원에 가기로 했어. 하지만 런던에서 2주간 머물다가 다시 돌아왔어. 방황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구나. 에밀리도 샬럿이 있는 로헤드 학교에 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세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단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보면 글이 좀 거칠면서도 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거침이 틀에 짜인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나 보구나. 샬럿과 에밀리의 스승이었던 에제는 에밀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모험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보면, 에밀리는 그의 글처럼 거친 면이 있었나 보다.

=========================

(175)

에제 씨는 에밀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위대한 모험가가 됐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매우 논리적이어서 브론테 자매들의 철도 주식을 도맡아 관리했다. 이들은 브랜웰 이모의 유산을 모조리 철도에 투자했다. 샬럿은 1845년 울러 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에밀리는 신문에 철로에 관한 기사나 광고가 나오면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읽으며 그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해 왔어요. 게다가 우리는 도박성 투자를 하지 않고 단순한 추측성 매입이나 매도도 삼가고 있어서 수익을 꽤 올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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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은 함께 일기소식지를 쓰면서 생각도 공유했단다. 일기를 함께 써나가는 것은 멋진 생각인데 너희들은 숙제 하느라 바쁘고 아빠도 이것저것 바쁘니 이런 것은 힘들 것 같구나.

에밀리와 앤도 나이가 들면서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근처의 학교에서 교사 일을 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1841 3월 샬럿은 이번에는 가정교사로 일하기 위해 리즈의 로던 지역으로 떠나고 앤은 요크쥬에서 가정교사 일을 했어. 이런 경험들이 <제인 에어>를 쓸 때 소설 속 제인 에어가 가정교사를 하는 부분에 도움이 되었겠구나. 그런데 가정교사 일도 쉽지 않았나 봐. 열악한 환경 탓으로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모였단다.

샬럿은 그래도 사회활동에 좀 적극적이었던 것 같아. 이모한테 부탁해서 샬럿과 에밀리는 벨기에 브뤼셀로 공부하러 갔단다. 당시 샬럿과 에밀리는 공부하기애 좀 많은 이십대 중반이었어. 그들은 나이도 어리고 문화도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했어. 오히려 그들은 선생님들의 눈에 띠었어. 그들의 학식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알고 학교에서는 그들에게 선생님 일을 겸하는 것을 제안했단다.

그런데 얼마 후 브랜웰 이모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집에 오게 되었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매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이모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들에게 큰 충격이었어. 장례식을 마치고 에밀리는 그냥 집에 머무르기로 했고 샬럿만 다시 브뤼셀 학교로 갔단다. 샬럿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는데 안타깝게도 그 대상이 유부남이었어. 예전에 스승으로 만나 알게 되었던 콩스탕탱 에제라는 사람인데 짝사랑을 하여 계속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에제는 선을 분명히 지켰다고 했어. 사랑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데 그 사랑이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라 힘들구나.

 

2.

책은 에밀리가 시집으로 먼저 냈단다. 그 이후에 세 자매가 함께 시집을 내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지만 응답이 없었어. 아일럿 앤 존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긴 했는데, 작가 자비로 출판한다면 해 준다고 했어. 브론테 자매는 그렇게라도 책을 냈단다. 하지만 여성 작가가 당시에는 약점일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 이름으로 된 필명으로 시집을 냈어. 하지만 그 시집은 실패하고 말았단다. 어떤 간행물에서 극찬을 한 경우가 있었으나, 판매량이나 인지도에서는 완벽한 실패였단다.

출판사에서는 오히려 시집보다 소설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단다. 그래서 샬럿은 <교수>라는 소설을,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을, 앤은 <아그네스 그레이>라는 소설을 썼단다. 이 소설들을 본 아일릿 앤 존스 출판사는 일단 출판을 거절해서 다른 출판사를 돌아다녔고, T.C 뉴비는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만 출간하기로 했어. 그것도 작가에게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 말이야. 이름 없는 신인 작가의 설움이라고 할까.

..

샬럿은 이어서 <제인 에어>를 집필했고 스미스 앤 엘더 출판사에서 출판을 했는데, 극찬뿐만 아니라 판매량에서도 크게 성공을 거두었단다. 하지만 샬럿이 이 책을 필명으로 써서 가족과 친구들도 몰랐다고 하는구나. 심지어 남동생인 브랜웰은 이 사실도 모르고 갑자기 병이 생겨 죽고 말았어. 브랜웰은 이십 대 들어서 술과 약물을 많이 했는데 그것의 후유증으로 일찍 죽었을 것이라고 하는구나. 샬럿의 아버지 패트릭도 샬럿이 <제인 에어>를 썼다는 사실도 성공한 다음에 알게 되었어.

샬럿이 성공한 이후에 사람들은 에밀리와 앤의 작품도 다시 보기 시작했어. 그래서 세 자매는 모두 인정 받는 작가가 되었고 이제서야 꽃길만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앞서 이야기한 남동생 브랜웰이 죽은 것이 1848 10월이었고, 두 달 뒤인 1848 12월 에밀리가 폐결핵으로 죽고, 다음 해인 1849 6월 앤도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단다. 1년도 안되어 세 동생이 모두 죽고 샬럿은 혼자 남았으니, 삶이 무너지는 듯 했을 거야.

이제 그 하워스 집에는 샬럿과 늙으신 아버지 둘이 지냈단다. 샬럿은 깊은 상심을 글쓰기로 치유하려고 했어. 소설 <셜리>를 이 때 썼는데, <셜리>라는 소설에는 에밀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하는구나. <셜리>라는 소설도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구나. 이제 샬럿은 성공한 작가로 대외 활동도 했단다. 런던에 가서 다른 작가들과 교류도 하고, 런던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기도 했어. 이런 작가들의 모임에서 엘리자베스 개스펠을 만나게 되는데 엘리자베스 개스펠은 나중에 샬럿이 죽고 나서, 샬럿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샬럿의 전기를 쓰게 된단다.

샬럿은 예전에 동생들과 함께 썼던 시집을 재출간하는 작업도 했어. 그리고 동생들의 소설들도 재출간했어.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을 재출간하면서 서문은 샬럿이 직접 썼단다.

샬럿은 창작활동도 계속하여 <빌레트>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것은 벨기에 브뤼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는구나. 이 소설을 쓸 때는 잘 안 써져서 우울증을 겪기도 하지만, 출판 이후에는 호평이 이어졌다고 했어. 이 책은 아빠가 읽으려고 사두었는데, 이 책도 읽어봐야겠다. 그렇게 성공을 했지만 동생들을 잃은 슬픔은 여전했을 거야. 그런 샬럿에서도 사랑이 찾아왔단다. 아버지의 부목사인 아서 벨 니콜스가 청혼을 했어. 처음에는 샬럿이 아서의 청혼에 거절했지만, 편지를 계속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자, 샬럿은 그제서야 청혼을 받아들였단다. 샬럿이 몸이 허약하고 나이도 적지 않아서 아버지가 반대를 했다고 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설득하여 1854 6 29 38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단다. 아일랜드로 신혼 여행도 다녀왔어.

먼저 떠난 동생들의 행복까지 샬럿이 대신 살았으면 좋겠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참 얄궂구나.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되어 임신을 했는데 임신 중 병이 생겨서 그만 결혼한 지 9개월만 세상을 뜨고 말았단다. 샬럿의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었어. 아버지의 결혼 반대가 어쩌면 옳았던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모든 가족들은 모두 보내고 홀로 남은 아버지.. 어떤 삶의 의미도 없었을 것 같구나. 늙어서 거동도 불편했던 패트릭. 사위인 아서는 장인어른이 돌아가실 때까지 보살펴 드렸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브론테 자매들은 모두 하늘의 별들이 되었단다. 명작 몇 편만을 남기고 말이야. 그들이 평균적인 수명만 살았어도 더 많은 작품들을 남겨 아빠를 비롯한 오늘날의 독자들까지 읽는 즐거움을 더했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참 다행이구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읽었지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고, 앤 브론테의 <아그네스 그레이>도 한번 읽어봐야겠고, 샬럿 브론테의 여러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브론테는 자매들의 아버지인 패트릭 브론테는 이렇게 회고했다.

책의 끝 문장: 교회지기인 존 브라운에 따르면 니콜스는 샬럿의 유언대로 가족 중에 가장 오래 산 패트릭이 1861 6월에 여든넷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를 돌보았다.


이 아이들은 교제를 원하지 않았다. 이들은 유치하고 떠들썩한 모임에 익숙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보다 더 단단하게 결속된 가족은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아동용 도서가 없었을 것이며,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영국 문학의 유익한 문장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이 집의 하인들은 놀랍도록 총명한 브론테가의 아이들에게 크게 감명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 P86

에밀리 브론테는 이때 벌써 우아하고 나긋나긋한 자태가 두드러졌어요. 아버지를 에외하면 가족 중에 에밀리의 키가 제일 컸죠. 샬럿처럼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지만 역시나 언니처럼 꼬불꼬불한 곱슬머리를 부스스하게 방치했어요. 피부색도 언니처럼 색소가 부족한 듯 창백했죠. 에밀리의 눈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어요. 부드럽고 초롱초롱하며 투명한 눈이었죠. 하지만 너무 내서적이어서 사람들 똑바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답니다. 눈동자는 때로는 짙은 회색으로, 때로는 짙은 파란색으로 보였어요. 말수는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공명의 대상이었어요. 다른 누구도 그들 사이에 끼어든 적이 없었던 것처럼요. - P130

1843년 10월 14일 토요일 아침, 브뤼셀. 1교시 수업. 너무 춥다. 불도 없다. 아빠와 브랜웰과 에밀리와 앤과 태비가 있는 집에 가고 싶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지내는 데 지쳤다. 삶이 음울하다. 이 학교에는 호감을 품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 단 한 명뿐이다. 또 한 명은 장밋빛 설당 과자 같지만 실상은 색분필일 뿐이라는 걸 나는 안다. - P186

‘우리는 죽은 형제를 보이지 않는 곳에 묻었습니다.’ 샬럿이 1848년 10월 2일, 출판사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 ‘지난주의 우울한 소란이 잠잠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망자를 애도하듯 그를 추모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남자 형제가 떠난 것은 우리에게 징벌보다는 자비의 빛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브랜웰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누이들의 자랑이자 희망이었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그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죠. 옳은 길로 돌아오길 희망하고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결국에는 절망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던 생명이 이른 나이에 갑작스레 빛을 잃고 종결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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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며 난설헌(蘭雪軒)은 당호입니다. 초희는 미녀와 재원을 뜻함이고 경번은 중국의 여성시인 번희를 사모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난설헌의 난은 여성의 미덕을 찬미한다는 뜻이며 설은 지혜롭고 문학적 재능을 지닌 여성또는 고결하면서도 뛰어난 문재를 지닌 여성이라는 뜻으로 지은 당호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소망을 마음껏 담은 이름들이라 하겠습니다.


(27)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32)

사는 집이 장간리 마을에 있어

장간리 길을 오가며 살았었지요.

꽃가지 꺾어 님에게 묻기도 했었죠.

내가 더 예쁜가요, 꽃이 더 예쁜가요?


(40-41)

1

이웃집 벗님네와 내기 그네 뛰었어요.

띠를 매고 수건 쓰고 신선놀음 같았지요.

바람 차고 오색 그넷줄 하늘로 높이 오르자

쟁그랑 노리개 소리 버들에 먼지가 일었지요.


2

그네뛰기 마치고는 꽃신을 신었지요.

숨이 가빠 말도 못하고 층계에 섰어요.

매미 날개 배적삼에 땀이 촉촉이 스며

떨어진 비녀 주워달라는 말도 못 하고 말았지요.


(47)

자줏빛 퉁소 소리 붉은 구름 흩어지니

주렴 밖 찬 서릿발 우지짖는 앵무새

깊은 밤 비단 휘장 비추는 그윽한 촛불

때때로 성긴 별이 은하수 건너는 것 바라보아요.


또르륵 물시계 소리 서풍에 묻어오고

이슬 맺힌 오동나무 저녁 벌레 우는데

명주 수건으로 훔치는 깊은 밤의 눈물

내일이면 점점이 붉은 자국으로 남겠지요.


(48-49)

고요해요, 뜨락은. 살구 꽃잎 위에 봄비 내리고

나는 꾀꼬리, 백목련 핀 언덕에서 울어요.

수실 늘어진 비단 휘장에 꽃샘추위 스며들고

박산 향로에서 한 줄기 연기가 올라요.


어여쁜 사람 잠에서 깨어 화장을 고치니

향그런 비단옷 허리띠에 새겨진 원앙 무믜.

겹으로 드리워진 발을 거두고 비취 휘장 치고서

시름없이 은쟁을 잡고 한가락 봉황곡을 타지요.


금 굴레 잡고 안장 위에 계시던 내 님은 어디 가셨나?

다정한 앵무새만 둘이서 창가에 속삭여요.

풀섶에서 노닐던 나비는 뜨락을 날아 사라지고

꽃그네 줄 엮어 난간 밖까지 날아올라요.


어느 집 연못가에서 피리소리 들려오는가.

금 술잔 위로 요요한 달빛만 노니는데

시름 많은 아낙은 밤새 홀로 잠 못 이루어

날 밝으면 비단 수건에 눈물 자국만 가득하여요.


(55)

난간에 기대어 멀리 계신 님 그리워하니

말 타고 창 꼬나잡고 청해 물가를 달리시겠지.

휘몰아치는 모래와 눈보라에 갖옷은 해어졌을 테고

향그런 안방 그리워하며 눈물로 수건 적시겠지요.


(66)

공령 여울 어구에 내린 비 이내 개이고

무협의 어스름 안개 자욱해요.

한스러워라, 님의 마음도 저 물과 같이

아침에 나가더라도 저녁엔 돌아왔으면!


(76)

창가에 놓아둔 난초 화분

난초꽃 벙글어 향기 그윽했는데

건듯 가을바람 불어와

서리 맞은 듯 그만 시들었어요.


어여쁜 모습 비록 시들었지만

여전히 코끝에 맴도는 난초의 향기.

마치도 시든 난초가 나인 듯 싶어

흐르는 눈물 옷소매로 닦아요.


(80-81)

이웃집 살림은 날로 좋아져

높은 다락에 풍악 소리 일어나는데

또 다른 이웃은 입을 옷도 없고요

쑥대밭 어우러진 집 배곯고 있다네요.


그런데 어찌 짐작이나 했을까요.

하루아침에 높은 다락 기울어지고

오히려 가난한 집을 부러워해요.

하늘의 운명은 어떨 수 없는 일인가 봐요.


(85)

지난해 귀여운 딸을 잃었고

올해는 또 사랑하는 아들이 떠났네.

슬프고도 슬프다.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오슬오슬 바람이 일고

숲속에선 도깨비를 반짝이는데

지전 태우며 너의 넋을 부르며

너의 무덤 앞에 술잔을 붓는다.


안다, 안다. 어미가 너희들 넋이나마

밤마다 만나 정답게 논다는 것.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하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기나 바랄 것이냐.


하염없이 슬픈 노래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 혼자 삼키네.


(98-99)

1

얼굴이며 맵시, 남들한테 빠지는 게 아니에요.

바느질에 길쌈 솜씨는 또 어떠하구요.

다만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에 자라난 탓에

중매쟁이들 모두 날 몰라라 해서 그래요.


2

춥고 굶주려도 얼굴에 내색을 않고

하루 종일 창가에서 베만 짭니다.

부모님만은 가엾어라 여기시지만

이웃의 남들이야 어찌 이런 나 알겠나요?


3

밤 깊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노라니

베틀 소리만 삐걱삐걱 처량하게 울려요.

베틀에는 베가 한 필 짜여 있지만

이 베가 마침내 누구의 옷감 될까요!


4

손에 가위 들고 옷감 자르면

밤도 차가워 열 손가락이 곱아와요.

남들 위해서 시집갈 옷 짓는다지만

해마다 나는 홀로 잠을 잔답니다.


(106-107)

봄바람 화창하여 온갖 꽃 피어나고

철 따라 만물이 번성하니 감회가 새로워요.

깊은 방에 묻혀서 그리움 끊으려 해도

님 생각 가슴에 머물면 심장이 터질 듯해요.


밤 이슥토록 잠을 이룰 수 없음이요!

새벽닭 우는 소리 꼬끼오 들리네요.

빈방에 비단 휘장이 둘러지고

옥돌계단에 푸른 이끼만 돋았어요.


깜빡이던 등불도 꺼져 벽에 기대어 있으려니

비단 이불 어설퍼 추위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요.

베틀 소리 내며 회문금을 짜 보지만

무늬도 시원치 않고 마음만 어지러워요.


인생 운명을 타고남이여, 사람마다 치아가 많아

남들은 즐기며 살건만 이 내 몸은 쓸쓸하기만 하답니다.


(132)

머나먼 갑산으로 귀양 가는 나그네여

함경도 길 가시는 걸음 바쁘시리다.

쫓겨나는 신하야 가태부지만

상감이야 어찌 초나라 희왕이시겠는지요!


가을 햇살 비낀 언덕엔 강물이 찰랑찰랑

변방의 구름은 저녁놀에 얼굴 붉혀요.

서릿바람 맞으며 기러기떼 날아가는데

걸음마저 더디어 차마 길 가지 못하시리.


(155)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를 넘나들고

파란 난새가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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