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0)

아니야, 그건 보통의 경우고 난 비적떼라는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일찍 냉수 마시고 속차려야 될 것 같애. 생각해 보면 51년 김홍일 장군 예편 때부터 우리 광복군이나 독립군 출신들의 앞날은 결정났던 거야. 도대체 김홍일 장군이 어떤 분인가. 김구 선생을 도와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사용할 폭탄을 제조한 독립투사고, 중국 정규군 소장으로 왜놈들과 맞서 싸운 걸출한 인물인 거야 세상이 다 아는 것 아닌가. 그런 분은 겨우 별 둘 달고 예편당하고, 독립군들 등뒤에 총질해 댔던 만군 출신 정일권이가 그 새파란 나이에 마구 별 달아대며 참모총장을 해먹는 판이니 볼장 다 본 거지. 말이 좋아 중국 대사로 파견이지 속을 들여다보면 김홍일 장군을 유배시킨 동시에 군부에서 독립운동 세력의 중추를 제거해 버린 것이었어. 그 다음부터 독립운동 세력은 진급은 안 되는 것만이 아니라 추풍낙엽 신세들이 되지 않았나. , 우리도 만군 출신 못 된 게 천추의 한이로구만 그래.”

 

(59)

그런데 동네사람들의 춤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작지가 그냥 자기들 것이 되는 줄 알았는데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돈을 내고 사게 되어 있었다. 그것도 헛김 빠지는 일인데 더 기막힌 일이 또 있었다. 논 열 마지기를 소작하던 사람을 예로 놓고 보면 그 사람 앞으로 돌아온 것은 서너 마지기뿐이었다. 나머지는 농지개혁을 하네 마네 하며 질질 끌어오는 몇 년 동안 지주들이 소작인들은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넘겨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실망한 소작인들이 더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딴 사람들에게 팔아넘긴 줄 알았던 그 논의 태반이 지주들과 짜고 명의만 살짝 바꾸어놓은 것이었다. 그건 결국 농지개혁을 하나마나였지만 법에 걸리지 않으니 소작인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112)

인간들만이 생존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물론이고 식물들의 세계에서도 생존경쟁은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그 경쟁은 동족과 동종 간에, 타족과 타종 간에 동시에 벌어진다. 여러분은 동물들의 세계는 모르지만 식물들의 세계에서 무슨 생존경쟁이냐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고 뱀이 개구리를 잡아 먹는 것처럼 쉽게 표가 나지 않고, 사람들이 무관심하기 때문에 잘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활엽수 속에서 침엽수는 햇빛을 못 받아 결국 고사하고, 속성수 속에서 보통 나무들도 그늘에 치여 다 죽고 만다. 식물들은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동족을 번식시키며 집단과 무리를 이룬다. 이러한 모든 현상을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116-117)

아닙니다. 이건 대처방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돼서 그런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경향신문>을 폐간시키면서 미군정법령 88호를 끌어다가 적용시킨 것에 대해 위헌이라고 한 것부터가 발상이 잘못됐고, 방향이 어긋났다 그겁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수립과 동시에 미군정은 종식됐고, 따라서 군정법도 완전히 폐기처분됐습니다. 그런데 엄연히 독립국가고 법치국가에서 집권자의 편익을 위해 미군정법을 끌어다 적용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독립국가의 정통성을 전면 부인하는 반역행위이고, 법치국가의 존엄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반란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미군정법을 끌어다 대는 건 일제 총독부의 법을 끌어다 대는 것과 뭐가 다르냐 그겁니다. 이 점을 부각시켜 정부를 비판하고 공격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위헌이다 뭐다 하고 있으니 일이 해결될 게 뭡니까.”

 

(119)

말 마. 성적표 받아오는 날이 사형 언도 받는 날이니까. 성적이 떨어지는 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제자리걸음만 해도 사형이지. 5등 이내의 경우는 예외지만, 그런 아이들이 가정교사 두는 게 어디 흔한가. 끝없이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는 부모들 욕심 앞에서 우리들 목숨은 하루살이야. 아까운 돈 쓰고 있는 부모들 욕심 탓할 게 아니라 가난한 우리들 신세를 탓해야지.”

어떤 선배가 쓰디쓰게 웃으며 한 말이었다.

 

(141-142)

상복을 입은 김선오는 아버지 영전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비가 아무리 심하게 퍼부었어도 아버지는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아니, 비가 심하면 심할수록 아버지는 더 나가서 논을 돌보려고 했을 것이다. 열 마지기의 논, 그건 아버지의 육신이었고 생명이었다. 소작인의 자식으로 태어나 손수 그 열 마지기의 논을 장만한 것은 아버지의 크나큰 긍지였고 자랑이었다.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 철저한 착취구조 속에서 그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자신이 고등학생이 되고서였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더욱 크고 강하게 보였다.

 

(245-246)

여기 대학의 양심은 증언한다. 우리는 보다 안타까이 조국을 사랑하기에 보다 조국의 운명을 염려한다. 우리는 공산당과의 투쟁에서 피를 흘려온 것처럼 사이비 민주주의 독재를 배격한다.

조국에의 사랑과 염원이 맹목적 분격에 흐를까. 우리는 얼마나 참아왔는가.

보라! 갖가지 부정과 사회악이 민족적 정기의 심판을 받을 때는 왔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양심으로 일어나노니 총칼로 저지 말라. 우리는 살아 있다. 동포의 무참한 살상 앞에 안일만을 탐할소냐! 한숨만 쉴소냐! 학도여, 우리 모두 정의를 위하여 총궐기하자.”

 

(252-253)

고등학생들까지 터져나오고 있구나. 저것들이 세상이나 정치를 뭘 안다고. 투표권도 없는 미성년자들이. 헌데 아니야…… 고대생들이 데모를 일으키기 전에 전국에서 일어난 그 많은 데모는 전부 고등학생들이 일으키지 않았나. 데모대 중에 제일 무서운 게 물불 가리지 않는 고등학생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고등학생들이 왜 그렇게 대학생들보다 먼저 데모를 시작하게 된 거지? 가만있거라…… 그게…… 아아 그렇구나.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선거기간 동안 야당 유세장에 못 가게 아느라고 일요일에도 등교를 시키고, 갑자기 시험을 치르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글짓기를 시키고…… 그런 처사에 대해 유일표가 얼마나 불평 불만을 했던가. 그 따위 치졸한 처사들이 고등학생들을 자극해 불평불만을 사고 결국 정치의식까지 길러준 것이로구나. 이거야말로 자업자득이 아니고 뭔가. 그나저나 물불 가리지 않는 고등학생들까지 저렇게 터져나오면 이 판이 어떻게 될까? 정말 엎어지는 것 아닐까?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글쎄…… 한 정권이 그리 쉽게 무너질 리 있나. 한바탕 불평 불만을 터뜨리고 가라앉겠지.

 

(289)

나는 오늘 무엇이었는가. 방관자였는가, 구경꾼이었는가, 훼방꾼이었는가. 방관자는 비겁자다, 다같이 궐기하자고 하지 않았는가. 방관자보다도 더 나쁜 존재. 비겁자도 못 되는 나는 무엇인가. 비겁자보다도 더 나쁜 명칭……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 파렴치한…… 그 어느 것도 합당하지가 않았다.

유일민은 자신이 인간벌레 같은 부끄러움과 혐오감에 묻혀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구급차에 실리는 부상자들을 보았을 때, 피 흘리는 여학생이 업혀가는 것을 보았을 때, 피범벅된 시체를 떠메고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을 보았을 때 가슴 푸들거리는 데모의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끝내 행동화하지 못한 자신은 참으로 하잘 것 없고 한심스런 인간벌레였다.

 

(290)

그러나 오늘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혁명은 어째서 일어나는 것인지. 혁명은 어떻게 성취되는 것인지, 혁명을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 왜 혁명에 몸을 던지는 것인지, 구름이 걷히듯 확연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혁명이란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응결된 분노와 증오의 집단적 폭발이었다. 그 인식은, 불투명하고 원망도 섞여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해이면서 발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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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끝이야
콜린 후버 지음, 박지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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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가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기도 한단다. 그런 소설 중에 로맨스 소설이 제격이기도 하지. 그래서 중년의 아재인 아빠도 가끔 그런 로맨스 소설을 읽곤 한단다. 비록 공감이 안 가는 부분이 있어도 가볍게 로맨스 영화 한 편을 본다는 생각으로 읽곤 하지. 그러고 보니, 아빠가 젊었을 때 로맨틱 영화들을 쫌 본 것 같구나. 아빠의 친구들이 한 소리 할 만큼 말이야. ㅎㅎ 그런 취향이 여전히 아빠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구나.

오늘 이야기할 소설은 콜린 후버라는 사람이 쓴 <우리가 끝이야>라는 소설이란다. 동명의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빠가 요즘은 영화 볼 시간이 없다 보니 원작 소설이나 읽어봐야겠다고 책을 검색해 보았는데, 먼저 읽은 이들의 평도 좋아서 읽었단다.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아빠 취향의 소설은 아니었단다. 미국식 사랑 이야기에 미국식 가정 폭력의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가지 않았어.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아빠랑 정반대의 MBTI를 가진 이들인가? 아빠의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 독서편지는 무척 짧게 하련다.

 

1.

주인공 릴리.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단다. 아버지의 폭력대상은 어머니였어. 그런 아버지를 떠나지 못한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지.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을 한 릴리아버지와 거의 연락도 하지 않고 살았어. 최근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을 해서 추도사를 맡게 되었는데, 아버지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있다가 내려왔단다. 장례식을 마치고 보스턴으로 돌아온 릴리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어떤 건물의 옥상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라일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어. 라일은 원나잇만 즐기지,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이야기를 하는 남자. 잘 생긴 외모에 마음이 끌렸지만, 의사였던 라일의 호출로 짧게 끝나고 말았단다.

릴리는 새로 꽃가게를 차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앨리스라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전 가게가 붙여 넣은 구인광고를 보고 릴리의 가게로 들어왔어.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된 앨리스와 릴리는 금방 절친이 되었고, 함께 꽃가게 인테리어를 하면서 개업 준비를 했단다. 그런데 앨리스의 남편이 엄청난 부자라서 이런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는데, 앨리스는 단지 자신이 이 일을 즐기기 때문에 하는 것 같았어. 인테리어 작업을 하다가 릴리가 발목을 삐끗하는 작은 사고가 발생해서 앨리스는 의사인 자신의 오빠를 호출했는데, 당연하게도 그 오빠가 몇 달 전에 옥상에서 만났던 라일이었단다. 그렇게 다시 만난 릴리와 라일은 서로 호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뻔한 밀당을 주고받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릴리는 엄마와 약속 장소에 라일을 데리고 갔어. 그런데 그곳에서 첫사랑 아틀라스를 만나게 되었단다. 9년 만인가. 하필 이 때 말이야. 그런데 그 첫사랑이 안 좋게 끝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가 한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거야. 주인공 릴리에게는 우연이 계속 너무 쉽게 일어나는구나. 15살 때 만난 첫사랑. 릴리의 10대 일기장을 가득 채운 아틀라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아틀라스도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가출하여 죽을 결심까지 했는데, 그때 나타난 사람이 릴리였고, 릴리로 인해 다시 삶에 희망을 갖게 된 거야. 릴리가 어른이 되어 라일보다 아틀라스를 다시 만난 것이 먼저였다면 아틀라스와 다시 사랑에 빠졌을 거야. 그런데 이미 라일과 사랑에 빠진 상태라서

 

2.

아틀라스와 잠깐 만나긴 했지만, 릴리는 라일과 사랑을 점점 키워나갔어. 서로 한눈에 반하는 선남선녀의 완벽해 보이는 사랑이야기라서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할 즈음, 라일의 본색이 드러나는 사건이 일어났어. 라일이 요리를 하다가 술을 데었는데, 가벼운 상처인지 알고 릴리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라일은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손을 다쳤는데, 웃고 있는 릴리를 보자 갑자기 욱해서 릴리를 때린 것이야. 릴리는 너무나 당황을 했고, 라일도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단다.

그 때 릴리는 아버지가 떠올랐어. 라일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여러 차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여 릴리도 라일은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 착각이었어. 라일은 얼마 못 가서 또 폭력을 행사했단다. 라일의 안에 어떤 것이 있길래 그런 폭력성이 나올까. 라일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릴리는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릴리는 어머니도 생각이 났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를자신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했는데

라일의 폭력성이 아픈 과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었단다. 라일의 폭력은 점점 심해졌고, 릴리는 어쩔 수 없이 아틀라스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어. 아틀라스와 함께 있으면 큰 위로가 되었어. 릴리는 결국 어머니와 다른 결정을 했단다. 라일이 자신의 폭력성을 고치려고 노력도 하고, 릴리와 한 동안 떨어져 지내기도 했지만, 릴리는 홀로 서기로 결정했단다이제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그리고 소설은 모든 상황을 겪은 릴리를 한없이 사랑해주는 아틀라스와 재회하면서 끝을 맺었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빠의 취향을 살짝 벗어난 소설이라서 이 정도로 오늘 독서편지를 마치련다. 이상 끝.

 

PS,

책의 첫 문장: 난간에 올라앉아서 양쪽으로 발을 늘어뜨리고 12층 아래의 보스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자살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책의 끝 문장: 우린 드디어 해안에 도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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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제 당신은 어떤 홀에 있고 오케스트라는 첫 번째 화음을 연주한다. 악기들로부터 음악이 솟아나 홀 전체로 퍼져나가지만 확률적으로만 그렇다. 게다가 넓은 홀 안의 침묵은 완벽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파동은 침묵 속에 퍼져나가고, 그때 갑자기 파동이 한 점으로 축소되어 청중 한 명의 귀에 닿는다. 나머지 청중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그다음 음이 두 번째 청중이 각자 단편적으로 들었던 것을 서로 주고받아야지만 그날 밤 연주된 교향곡을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76)

2018 11 16일 베르사유 컨벤션센터에서 전 세계 물리학자들은 역사적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 준비를 했다. 그것은 국제단위계의 변화였다. 참가자들은 열기가 넘쳤다. 각국 대표는 자기 차례에 일어나서 구두로 예스(Yes)’를 외치며 자국 표지판을 들었다. 우루과이 대표가 마지막으로 예스를 외치자 모든 과학자가 일어나 진심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들은 만장일치로 킬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결의했다.

 

(86)

그런데 불확정성 원리를 적용하면 열역학은 심지어 절대 영도에서도 원자들이 계속해서 조금씩 움직일 거라고 예상한다. 원자들은 영점 에너지(zero point energy)’를 가진다. 구체적이며 놀라운 결과로 절대 얼지 않는 액체 헬륨이 존재한다. 심지어 절대 영도에 대해 근접한 온도에서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생기를 얻은 조그만 움직임으로도 이 액체의 원자를 요동시키기에 충분하며, 결과적으로 원자들이 고체를 이루지 못하도록 막는다. 다른 액체는 모두 얼지만 헬륨 원자들은 상호작용이 극도로 적어 쉽게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134)

게다가 양자물리학 논문에서 여러 해석 중 어떤 것을 언급하는 경우는 극히 머물다. 연구자 대부분이 취하는 입장은 데이비드 머민의 이 말로 잘 요약된다. “입 다물고 계산하라!” 과학의 역할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있다며 이들에게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의 목표는 무엇보다 사물이 어떻게작동하는지 설명하는 것이지 반드시 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189)

애초에 원자를 이해하려고 연구된 양자물리학은 입자물리학을 탄생시켰다. 이 학문은 소재의 세계와 IT 세계를 탐험했다. 마침내 입자물리학은 화학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흔히 물리학자들은 거만한 눈으로 동료 화학자들을 대한다. 아마도 이것은 두 학문의 역사적 기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물리학은 갈릴레이, 뉴턴과 함께 탄생했고 이들은 세계에 대해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을 제시했지만, 화학은 연금술사 덕분에 여러 의식으로 가득한 마법 세계에서 첫발을 떼었다. 양자물리학이 탄생한 이후 카드 패는 다시 섞였다. 화학과 물리학은 하나의 동일한 학문이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이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217)

그런데 저항이 완전히 0이라고 하거나 저항이 너무 약해서 측정될 수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점을 알아보기 위해 건전지를 제거해보자. 초전도체가 아닌 구리에서는 전류가 즉시 멈춘다. 전자들은 끊임없는 충격 때문에 계속해서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초전도체 고리에서는 전류가 계속해서 완벽히 흐른다. 한 시간 후에도 전자는 지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음 날이 되어도 전류는 여전히 그대로다.

 

(238)

양자 컴퓨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겉보기에는 고전적 컴퓨터처럼 비트와 논리 게이트를 가진 회로 같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보면 각각의 비트는 단순한 0이나 1이 아니고 둘의 중첩 상태로 나타난다. 각각의 양자비트, 큐비트(qubit)’ 8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시에 두 상태에 놓인다. 중요한 것은 스핀의 두 방향, 원자의 두 에너지, 광자의 두 분극이다. 핵심은 두 가지 상태의 중첩을 얻어내는 것이다.

고전적 컴퓨터와의 두 번째 큰 차이점은 큐비트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얽혀 있고  서로 복잡하게 섞여 있어 큐비트 하나에 영향을 주면 즉시 다른 모든 큐비트에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개별적인 0 1 대신 우리가 접하게 될 것은 0 1의 조합이 중첩되면서 동시에 얽혀 있는 상태다. 영원히 결속된 집단이 있는데 그 구성원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있어 나중에는 서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거기에 이 개인들 각자가 남자인 동시에 여자라는 점을 추가해보라! 이것은 바로 양자 컴퓨터가 시작된 토대다.

 

(267-268)

양자 컴퓨터의 수많은 잠재적 사용 분야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분자 시뮬레이션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비료를 다른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 슈퍼컴퓨터는 더 저렴한 또 다른 화학반응을 개발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며, 그 결과 화학공업의 새로운 촉진제가 발견될 것이다. 또 이 컴퓨터를 이용하면 이산화탄소를 고정하거나 광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과정을 연구할 수 있으며, 신약을 위한 분자를 고안하거나 몇 가지 암 치료에 핵심 역할을 하는 단백질 접힘 같은 메커니즘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효율적인 배터리 개발을 위한 인공 소재 발견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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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4년 겨울호 - 통권 188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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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25년 새해가 밝은 지 열흘이 지나갔지만, 아직 2024년에 살고 있는 기분이구나. 정말 힘들었던 2024. 특히 12월은 비현실적인 일들이 계속 일어나서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구나. 2024년에 내란을 일으키려는 이가 있다니.. 모든 국민들이 그가 내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는데, 그를 옹호하고 지키려는 정당이 있다는 것이 더 이해가 가길 않는구나.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내란을 옹호하는 것일까. 국민이 무섭지도 않은가. 역사가 무섭지도 않은가. 얼른 이 사태가 정리되어야 할 텐데, 방해꾼들이 너무 많은 것 같구나. 그리고 작년 마지막 일요일에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했단다. 조금만 주의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에 너무 크구나.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오늘은 녹색평론 2024년 겨울호 통권 188호에 대한 이야기를 할게. 이번 호의 부제는 <동학운동, 자유무역 이후를 꿈꾸다>로 되어 있단다. 130년 전 동학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단순한 백성들의 반란은 아니었단다. 그 이전에만 해도 나라의 지도층들은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어느 정도 했다고 했어. 그것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도 예전부터 내려오던 일종의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었지. 그런데 조선시대 말로 오면서, 지도층들이 그런 사회적 합의를 깨면서 백성들을 수탈하기 시작한 거야. 그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 바로 동학운동이었단다. 마치 오늘날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국민을 상대로 총부리를 들이대고, 내란을 선동하려고 했다니 그것은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것이란다. 내란을 일으키려고 준비해온 이야기 속에 북한을 자극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단다. 자칫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이를 끌어내리자고 온 국민이 거리로 나서는 것은 동학 운동의 후예다운 행동이었단다. 130년 전 동학운동은 실패했지만, 오늘의 응원봉 시위는 성공하여 하루빨리 내란 수괴를 감옥으로 보냈으면 좋겠구나.

….

이번 녹색평론에서는 동학운동을 통해서 오늘날의 난국을 헤쳐나가는 교훈을 가져보자는 의도가 있었단다. 동학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사상에 대해서 실려 있는데, 그는 생명과 사람에 초점을 맞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구나. 최시형에 대해서는 좀더 알고 싶어지더구나.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해보니, 김삼웅 님이 최시형 평전을 쓰신 게 있더구나. 올해에는 그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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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넷째, 무엇보다도 해월의 사상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보다 더 실질적으로 현실을 규정하는 세계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세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세계이다. 생명과 의식이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보다 더 근원적 실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하나, 물리적 세계보다 더 실질적으로 현실을 규정하는 힘은 바로감정이다. 사람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해월의 동학철학은 바로 그 감정에 집중한다. 감정의 세계를 떠나서 한울님을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기의 감정을 돌보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서 한울님을 섬긴다고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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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몇 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 사상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단다. 신자유주의가 좋은 사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유리하니까 그렇게 흘러간 것이란다. 예전에 미국은 농업은 자유무역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하는구나. 다른 공산품들은 자유무역이 유리하니 자유무역을 하자면서, 농업은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외하자고 주장을 했대. 그랬던 그들이 농업규모가 커지면서 농산물도 자유무역을 하자고 주장하면서 우루과이 라운드, FTA 등을 통해 수출의 길을 만들어 놓았단다. 갱단의 보스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미국의 국제 경제 정책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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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원래 ˝농업은 자유무역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던 나라는 미국이다. 1951년에 미국은 농업조정법을 발동하여 네덜란드 유제품 수입을 금지했는데, 가트로부터 위법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내국법에 따라 외국 농산물 수입을 제한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가트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결국 면제 인정을 받아냈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농업규모가 커졌던 것이다. 농산물 수출을 늘려서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줄이는 일이 급선무가 됐다(우루과이 협상이 시작된 1986년 미국의 농업지 원 예산은 250억 달러로, 1982년보다 6배 증가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농산물 자유무역이라는 통상원칙을 새로 정립했다 1988년 처음으로 유전자조작식품(GMO) 판매를 승인한 미국으로서는 이를 자유롭게 팔 수 있는 세계 농산물 시장도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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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트럼프가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구나. 지금까지도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는데, 자국 이익만 우선시 하는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으니,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구나.

 

2.

우리나라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란의 여파로 힘든 시절을 겪고 있는데 그 이전부터 여러가지 산재한 문제점들이 많이 있단다. 농촌과 농업 문제점은 그 이전부터 녹색평론에서 계속 다루고 있는데 이번 호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우리나라는 농산물 자급율은 너무 낮은데 이것은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를 하고 있지만, 현 정부는 이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것 같아. 하기야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자신의 집안일과 술뿐인 것 같지만..

아빠는 농민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주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것이 어렵다면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소득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중에 하나가 농민들이 보유한 쌀을 국가에서 매입하는 것이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매입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공공비축미에 대해서도 일부를 가루쌀로 매입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농민이 아닌 기업에 돈을 주겠다는 이야기란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대통령으로 있었다는 것이 정말 열 받고 화가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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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일반적으로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쌀을 시장에서 격리할 때, 농가가 보유한 쌀을 가장 먼저 매입해왔다.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원칙이 무너진 것은 2024년이 처음이다. 정부는 그동안 네 차례 격리 발표를 했지만, 농민들의 나락은 단 한 차례도 매입하지 않았다. 그나마 정부에 팔면 조금 나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농민들은 크게 실망했다. 반면, 과거에는 농민들의 나락이 매입된 후에야 팔 수 있었던 유통업자들이 정부 매입곡을 독점하게 됐다. 정부가 농가의 경영 안정을 우선시하던 매입 방식(원칙)을 버리고, 유통업자들만 이익을 내는 방식으로 변경했다는 뜻이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 구곡 매입까지 강행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공공비축미 매입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비상시를 대비해 4t의 가루쌀을 공공비축미로 매입할 계획이다. 비상시를 대비하는 쌀은 언제든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밥쌀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가공을 한 뒤에야 사용할 수 있는 쌀을 공공비축비로서 무려 4t이나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 물량의 8%에 해당한다. 참으로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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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사람이 적게 산다고 혐오 시설을 농촌에 자꾸 짓는데 이것은 또 하나의 국가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단다. 이 문제점에 대해서도 녹색평론에서 여러 번 다루긴 했는데 다시 한번 각성하게 되었단다. 아빠가 나중에 은퇴를 하면 전원생활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집 근처에 혐오시설이 생길까 쉽게 못할 것 같구나. 나라는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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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어렵고 복잡한 애기가 아니다. 서울 강남에는 전봇대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농촌의 산과 들에는 765kV, 500kV, 345kv 초고압 송전탑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 송전탑은 그 지역 수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수도권 도시지역과 큰 공장들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원전 10(10GW) 분량의 전력이 필요하다. 일부는 천연가스(LNG)발전소를 인근에 건설해 조달한다지만, 대부분의 전력은 동해안 원전과 서해안 풍력-태양광에서 생산된 전기로 조달할 계획이다. 그러자면 동해안에서 경기도까지, 서남해안에서 경기도까지 초고압 송전선을 새로 건설해야 한다. 그 피해와 부담은 농어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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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님은 자본주의 다시 보기라는 연재를 통해 김건희의 주가 조작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실었단다. 우리나라 주식이 바닥 모르고 내려가는 요즘 이렇게 악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제대로 된 조사 한번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번 열 받는구나. 그 부부를 쌍으로 감옥으로 보내야만 열이 식히질 것 같은데…. 그런 시간은 또 더디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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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위 대화들은 김 여사의직접 운용이 아니라 권오수, 이정필, 김기현, 민태균 등 주가조작 세력들과 내통한 정황이다. DM 대주주와 BP가 실무선수들과의 유기적 협력 아래 돈잔치를 한 것! DM 주가조작은 (객관적) 검찰 공소장 기준, 3년간(2009. 12.~2012. 12.) DM 임직원, 주가조작팀, 투자자문사, 전현직 증권사 임직원들이 91개 실명(김건희 포함)의 계좌 157개를 동원, 101건의 통정매매 및 가장매매와 3,083건의 실제 거래(총 거래가액 650억 원)를 통해 2,000원대 후반의 주가를 8,000 원대까지 끌어올린 경제범죄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2011 12 월까지만 쳐도 검건희( 14)와 최은순(9)은 총 23억 원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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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우리나라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정리되었으면 좋겠구나. 내일이라고 내란 수괴가 체포되어 수사를 받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올해에는 우리나라에 좋은 일만 일어나서, 나라 때문에 열 받고 스트레스 받고 잠 못 자는 일이 없길 바란다. 앞으로 국민들이 제대로 된 사람에게 투표하길….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다시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몇 가지 거짓된 이야기가 미디어에서 무비판적으로 되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책의 끝 문장: 이것이 삼보일배와 오체투지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그 지역의 태양광 풍력 발전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실업률과 온실가스 배출을 동시에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 일본의 다국적기업들이 WTO 규정(내국민 대우)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중재재판부가 기업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이 성공적인 정책은 애석하게도 몇년 만에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인도정부는 홍수로 불시 큰 피해를 입은 우타라칸드주 지역의 재건을 위해서 그곳에서 생산된 태양광에너지에 보조금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미국 기업에 제소를 당했다. 우리나라에 서도 자동차 탄소배출을 경감하기 위한 제도를 기껏 만들어놓고도 자유무역협정(FTA)에 발목이 잡혀 시행해보지 못하고 폐기한 예가 있다. 정부의 손발에 재갈이 물려 있는 이런 현실은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 P4

둘째, 경제적으로도 동학농민혁명이 주는 가르침이 적지 않아 보인다. 현대사회는 화폐 중심의 신용경제를 절대적인 것으로 신봉하고, 대규모 산업만을 과잉 발달시키는 데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극화와 자본집중을 불러일으켜 민생에는 도리어 큰 피해를 준다. 더구나 우리에게 익숙한 제국주의적 무역거래는 소수의 강대국의 편에서는 유익하더라도, 대다수 약소국의 처지에서는 영원한 빈곤의 원인이 될 뿐이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깨달음과 성찰이 있다면, ‘유무상자(有無 相資)하는 것이 삶의 원칙이라는 동학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것이 옳겠다 - P19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서 ‘세계화‘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더 많이 의지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본질적으로 권력관계를 일컫는 것이다. 이 힘은 특정 국가들에 ‘제재‘를 부과하는 행위를 통해서도 행사되지만,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도 행사된다. 이러한 권력 행사야말로 제국주의의 특징이다. 세계화된 자본의 패권을 만들어내는 ‘세계화‘가 그런 것처럼, ‘제재‘ 역시 가차 없는 제국주의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인 것이다. 즉 이른바 ‘탈세계화‘는 ‘세계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완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 P69

자연성이 되살아나도록 낙동강을 흐르게 하면 여러가지 변화가 동반될 것이다. 녹조문제 해결은 기본이고, 평균 6m 이상이던 수심이 낮아지면서 지금 마치 호수와 같은 단조로운 구조가 습지, 모래톱과 낮은 물길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구조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다양한 생명이 깃들 수 있게 된다. 온갖 동식물, 다양한 저서생물들과 곤충들이 자리를 잡고 온전한 생태계가 복구되면서 강이 원래 가진 뭇 생명들의 서식처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수질이 맑아져 우리는 안전하고 건강한 식수를 얻게 되고, 녹조 독이 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먹게 되고, 녹조 독이 없는 맑은 공기를 마시게 될 것이다. - P104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가공식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최근의 ‘햇반‘ 사태는 결국 수입쌀 운용 정책이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데 이용되었다는 걸 보여줬다. 실제 2022년 CJ제일 제당은 국내산 쌀을 사용하는 대신 수입쌀로 ‘햇반‘을 출시한다. 원재료의 가격은 3분의 1로 낮아졌지만 소비자 가격은 그대로였다. 2022년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만약 우리도 일본처럼 수입된 40만t의 쌀이 사료용으로 사용되었다면 지금의 논란은 있을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남는 쌀‘ 운운하며 이런 시간 낭비는 하지 않을 것이었다. 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은 102%를 휠씬 상회하고, 선진국인 호주 270%, 캐나다 195%, 미국은 130%이며,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일본도 30%가 넘어갈 정도로 국제적으로 식량주권을 위해 힘을 쏟는 시대에, 정작 우리 정부는 주식인 쌀의 감축을 농민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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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살아 있다는 것

 

뭍에 잡혀 올라온 물고기가

온몸을 던져

바닥을 치듯이

그렇게 절망이 온몸으로

바닥을 친 적 있는지

그물에 걸린 새가

부리가 부러지도록

그물눈을 찢듯이

그렇게 슬픔이 온 존재의

눈금을 찢은 적은 있는지

살아 있다는 것은

그렇게 온 생애를 거는 일이다

실패해도 온몸을 내던져

실패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돌릴 겨를도 없이

두렵게 절실한 일이다

 

(16)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밤늦게까지 시를 읽었습니다

당신이 그 이유인 것 같아요

고독의 최소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사랑을 만난 후의 그리움에 비하면

이전의 감정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도

 

시 아니면 당신에 대해 얘기할 곳이 없어

내 안에서 당신은 은유가 되고

한 번도 밑줄 긋지 않았던 문장이 되고

불면의 행바꿈이 됩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당신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22-23)

희망은 가볍게 잡아야 한다

 

희망은 가볍게 잡아야 한다

새처럼 날아가 버릴지 몰라 힘껏 움켜쥐면

손 안에서 숨 막혀 죽는다

이제 막 날갯짓 배운 어린 새를 감싸듯이

손의 오목한 곳에 올려놓아야 한다

아니면 공중을 나는 깃털처럼

무게도 중력도 없이

머리 위에 내려앉게 해야 한다

다른 머리 위에도 날아갈 수 있도록

너무 세게 붙잡아 모서리가 부서지거나

매달리며 애원해선 안 된다

절박할수록 가만히 희망을 품는 법을 배워야 한다

희망은 숨을 쉬어야 하고

나무 위의 새처럼 스스로 노래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희망은 가볍게 붙들어야 한다

부서지기 쉬운 껍질 안에 절망이 웅크리고 있으므로

희망이 날아갔다가 언제든 다시 날아올 수 있도록

사방의 벽을 없애야 한다

그렇게 무한히 열려 있어야 한다

내가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50-51)

나의 전기 작가에게

 

불안한 생이 아니라 단지

불안한 날들이 몇 날 있었다고 적어 주기를

허무의 계절이 아니라 계절마다

허무한 감정이 두세 번 찾아왔을 뿐이라고

실수 많은 세월이 아니라

선택의 세월이었다고

발 헛디뎌 자주 넘어진 게 아니라

나만의 춤을 춘 것이었다고 써 주기를

우울한 시간이 아니라 다만

혼자 더듬어 나간 시간이었다고

고뇌의 날들이 아니라

희망의 불씨 뒤적인 날들이었다고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다지만

집착이 아니라 소망이었다고 써 주기를

허약한 몸이 아니라 껴안다가 조금

부러졌을 뿐이라고

검은색 옷을 편애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격렬 감추기 위함이었다고

달처럼 이따금 혼자였을 뿐

어두웠던 것은 아니라고 적어 주기를

 

(66-67)

시가 써지지 않을 때면

 

시가 써지지 않을 때면

낯선 고장에서 혼자 산 두 해 동안

불타는 밀밭과 삼나무와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고독한 얼굴을 2천 점 넘게 그린

고흐를 생각한다

자신의 심장 안으로 태양을 훔치려다 미쳐 버린 사람

정신병원의 작은 창으로 보이는

별이 빛나는 밤을

그 창 크기의 화폭에 담은 사람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고 말한 사람을

 

불안한 예감에 기쁨이 반으로 줄어들 때면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 가면서도

매분 매초마다 빛의 변화를 감지하며

수련과 연못을 250점이나 완성한

모네를 기억한다

빛 번짐을 막기 위해 고독한 밀짚모자 눌러 쓰고

팔레트에 가득한 초록색 물감 섞고 또 섞어

수련과 연못의 경계를 지운 사람

날마다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한다고 말한 사람을

 

내 운명이 내 운명인 것이 무거울 때면

중력의 법칙을 어기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연인을 그린

샤갈을 떠올린다

닭과 염소와 꽃다발도 따라서 날고

한 여인을 사랑해 그녀가 죽어서도 창문으로 들어와

자신의 그림을 인도하며

푸른 캔버스 위를 날아다녔다고 말한 사람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사랑과 혁명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을

 

 

(92)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 것은

당신을 발견한 내 눈을 사랑한 것이고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내 귀를 사랑한 것이고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나를 사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에게 다가간 내 목숨을 사랑한 것이고

당신 곁에서 웃는 나의 아픔까지 사랑한 것이고

당신의 폐에 들어갔던 공기를 숨 쉬는

나의 폐를 사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지대가 꽃나무가 사랑하듯이

슬픔의 무게로 기쁨의 가벼움을 사랑하듯이

아무도 모르게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96-97)

곤충의 임종을 지키다

 

초록 여치 한 마리, 한 시간 넘게

가느다란 다리를 떨고 있다

작은 곤충에게도

죽는 일이 사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듯

지금까지 겪은 어떤 일도

이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제 끝인가 하고 보면

또다시 이어지는 경련

한 치의 벌레에게도 닷 푼의 혼이 있다는데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존재를 잃는 전율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통과해야만 하는 영역

한 생을 얻는 일보다 한 생을 내려놓는 일이

몸서리치게 벅차다는 듯,

내가 죽을 때

당신에게는 그것이 살아 있는 내 모습을 보는

마지막 순간이겠지만

내가 당신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마지막 순간도

그것이라는 듯,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둘 다 고통이니

오랴, 내 차례여

나를 생각해 망설이지 말아라

 

 

(110-111)

나의 마음

 

봄날처럼 다정했다가 뼈를 부수는 서리처럼 냉정하고

무한허공처럼 넓었다가 토끼굴처럼 속 좁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다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부자유하고

꽃 피는 소리 들릴 만큼 고요했다가 벌집처럼 소란하고

목화솜처럼 부드러웠다가 호랑가시나무처럼 날카롭고

무슨 일에도 무심했다가 사소한 일에 감정 과잉이고

오체투지 수행자처럼 인내심 많았다가 극의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초조하고

속수무책으로 매혹되었다가 속절없이 환멸에 젖고

민들레 풀씨처럼 놓아주었다가 도깨비바늘처럼 달라붙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가슴 뭉클했다가 반나절 만에 안색을 바꾸고

거리의 상점처럼 열려 있다가 봉쇄수도원의 덧문처럼 닫히고

새로 핀 분꽃처럼 희망찼다가 구겨진 포장지처럼 근심으로 얼룩지고

시냇물처럼 재잘거리다가 무너진 흙처럼 시무룩하고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잊게 했다가

한 개의 슬픔이 천 개의 기쁨을 잊게 하고

반딧불이의 꼬리처럼 환했다가 반딧불이의 얼굴처럼 어둡고

모두가 나였다가 누구나 타인이고

그래서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가 무조건적인 마음이고

그래서 더 바랄 게 없는 천국이었다가 혼자만의 지옥이고

삶의 암호를 이해한 것 같았다가 때로는 암호 그 자체인

나의 마음

 

(130-131)

물음표

 

우리의 눈은 사랑하는 사람을 발명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을까?

내 눈썹을 그릴 때 신은 어디서 검은 색을 얻었을까?

바다의 결정체인 소금은 왜 파란색이 아닐까?

숯은 불을 어디에 감추고 있을까?

바람은 자신을 손짓하는 나뭇잎을 어떻게 찾아갈까?

돌이 흘리는 눈물은 왜 냉정하지 않고 고단해 보일까?

무는 세상의 무엇이 보고 싶어서 흰 목을 빼고 있을까?

지빠귀처럼 사람도 자신의 얼굴을 정하고 태어날까? 그 얼굴은 어디서 고를까?

아득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동안 빗방울의 심장은 두려울까? 두근거릴까?

거리에서 혼잣말하는 여인은 누구와 이야기하는 걸까?

속으로 우는 울음만큼 절창이 없다는 걸 갈대 피리는 언제 알았을까?

모든 전등은 왜 약간은 떨면서 켜져 있을까? 자신이 돌아갈 어둠에 맞서기 때문일까?

내가 그리워한 첫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금 간 사랑을 꿰매려면 얼마나 긴 인동초 꽃실 빌려야 할까?

왜 우리는 평생을 함께 지내는 자신과 향복하지 않을까? 더 큰 형벌이 있을까?

억새는 왜 지나가는 모든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까?

내일을 알려면 얼마나 많은 어제를 불러 모아야 할까?

수십 억 인구 중에 왜 둘만으로 부족함이 없는 걸까?

나는 언제부터 당신의 나이고

당신은 언제부터 나의 당신이기로 결정했을까?

누가 인간의 몸을 본떠 물음표를 만들었을까?

 

 

(158-159)

낮달맞이꽃 피어 있는 곳까지

 

안데스산에 사는 케추아족은

미래를 뒤쪽이라 부르고

과거를 앞쪽이라 부른다지

 

미래는 볼 수 없지만

과거는 볼 수 있기 때문이지

 

저 앞에서 걸어가는

수많은 나를 보네

시인이 될 줄 모르고 처음 시를 쓴 나

운명이 불안한 영혼을 건드리던 나

물집 같은 사랑이었던 나

아무리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르던 나

 

중고 책방들에 흩어져 있는 내 시집을 발견한

작년의 나

지구의 그림자 속을 걷던 지난겨울의 나

낯익은 것은 낯설음뿐인

언제나의 나

내일의 나를 희망한 어제의 나

 

수많은 내가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낮달맞이꽃 피어 있는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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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1-11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를 외우고 다녔었는데... 오늘 bookholic 님을 통해 시인의 시을 보게되니 옛 생각이 나네요. 추억을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bookholic 2025-01-12 23:54   좋아요 1 | URL
최근에 출간된 류시화 님의 시집을 통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주말이 금방 휙 지나갔네요...
내일부터 시작하는 한 주도 즐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