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노명식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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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이란 책이란다. 아빠가 프랑스 혁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찾아보다가 알게 되어 구입했던 책이란다. 파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인 프랑스 혁명과 파리 코뮌의 이야기라서 관심이 갔고 책의 평점도 좋아서 구입하게 되었단다. 당연히 외국 작가의 책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지은이가 노명식이라는 우리나라 역사가시더구나. 이 책을 처음 쓴 것도 지금으로부터 40년에 쓰셨다고 했어. 그리고 아빠가 읽은 책은 2011년 개간본이란다. 인터넷 검색을 보니 노명식 님은 2012년에 고인이 되셨더구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을 번역 없이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구나.

이 책이 우리나라에 나온 1980년이라고 하는구나. 우리나라 1980년은 또 다른 군사 독재가 시작되던 해로 정치적 혼동으로 시위가 끊이지 않던 시기였단다. 마친 프랑스혁명 전후에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시기와 비슷하게 말이야. 결국 1987년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이끌어내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 동안 끊임없는 국민들의 항쟁의 결과였단다. 그런 유사한 상황 때문에 1980년대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느낌이 달랐을 것 같구나. 2024년 또다른 정치적 혼란이 일고 있단다. 역대 최악의 친일파 정권에 나라 살림은 손 놓고 있어서 고삐 풀린 황소 같은 상황민심은 80년대 만큼 들끓고 있지만 아직은 다들 각자도생 하느라 거리로 나서지는 않는 것 같구나. 그를 찍은 사람들이 원망스럽구나.

아빠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을 많지는 않지만 몇 권 읽어봤는데, 오늘 이야기할 <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라는 책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 누군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을 추천한다고 하면 이 책을 추천할 것 같구나. 사실 이 책을 이번에 읽으려던 책은 이 책이 아니었단다. 아빠가 에밀 졸라의 <패주>라는 소설을 읽으려고 폈거든그런데 에밀 졸라의 <패주>라는 책이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과 파리 코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책을 읽기 전에 배경 지식을 좀 쌓고 읽으려고 <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먼저 읽게 된 것이란다. 그런데 이 책 참 보물 같은 책이로구나. 이 책이 품절되지 않고 계속 판매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란다.

 

1.

프랑스 혁명은 너희들도 알고 있는 것처럼 1789년에 일어났단다. 그 이전의 프랑스는 어떠했는가?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나? 먼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가 있었단다. 1715년 프랑스의 인구는 1500만명 정도였는데, 1789년에는 2400만명에서 2600만명이었대. 불과 몇 십 년 만에 1000만명 정도가 늘어난 거지.. 그렇게 인구가 갑자기 급증했는데, 물자의 증가는 따라가지 못했어. 그래서 물가가 급등해서 살기가 어려워졌다는구나.

모든 사람이 살기 어려워졌을까? 오늘날도 물가가 상승하면 서민들부터 힘들어지는 것처럼 당시에도 신분이 낮은 사람들부터 힘들어졌단다. 당시 프랑스에는 3개로 나뉘어진 신분제도가 있었는데, 1신분은 성직자들이었고, 2신분은 귀족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3신분으로 가장 많이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3신분 중에는 대다수가 농민들이었고, 소수의 부르주아들이 있었단다. 농민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힘이 없었어. 세금도 이중 삼중 과제로 내어 수입의 80~90%를 내고 있었어. 영주에 세금을 내고, 교회에 세금을 내고, 나라에 세금을 내고 그랬지.

그런데 부르주아들은 좀 여유가 있었단다.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상업이 발달하였는데, 부르주아들은 큰 돈을 벌게 되었거든. 비록 3신분이지만 큰 돈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그들은 3신분이다 보니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단다. 그런 것이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어. 지은이 노명식 님은 부자들의 불만이 쌓일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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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하고 발전하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바로 그러한 계급 사이의 불균형이 날카롭게 의식되었다. 혁명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으키지 않는다. 부유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이 무시되고 멸시당한다고 느낄 때 모순된 제도를 타도하기 위하여 혁명을 일으킨다. 바르나브(Antoine Barnave)가 열렬한 혁명가가 된 동기는, 일곱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 갔을 때 클레르몽 통네르라는 귀족에게 자기들의 좌석을 내주어야 했던 억울하고 불쾌한 기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많은 부르주아들이 품고 있었던 불평불만과 자존심의 훼손이 그들로 하여금 앙시랭레짐을 미워하게 하고 그것을 없애버리는 혁명으로 치닫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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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흉작이 일어나면서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졌고, 물가는 더욱 치솟았단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라는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단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말이야.

당시 인쇄술 보급과 함께 루소의 사회계약설 등을 비롯한 여러 계몽 사상이 퍼지게 되었어. 특히 부르주아들의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계몽 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 그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

부르주아들이 3신분이긴 하지만 경제력이 있다 보니 군대 등 국가의 일부 고위직을 갖고 있었는데,  2신분 귀족들이 이것에 불만을 품고 법을 바뀌어 고위직은 모두 귀족들이 갖게 되었단다. 어찌 보면 귀족들의 횡포이니 왕이 나서서 중재를 해야 하지만 왕은 무능했단다. 귀족들이 무능한 왕을 이용한 것이지. 귀족이 고위직을 다 차지하게 되자 왕권도 약화되었단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나라 빚은 점점 늘어가는데 1신분과 2신분은 세금을 안내고 있었어. 자꾸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과 오버랩이 되는구나. 세손 부족이 늘어나는데 부자감세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해.

각 신분의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삼부회가 1789 5월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렸어. 3신분도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2신분은 3신분 대표들을 멸시하고 굴욕을 주었단다. 이에 불만을 품은 3신분은 독립적인 또 다른 의회인 국민의회를 창설했단다. 1신분들 중에도 국민의회에 합류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찬반 투표가 이루어졌고 근소한 표차로 국민의회에 참석하게 되었단다. 배신을 느낀 루이 16세는 회의장 문을 잠그고 그들을 회의장 안으로 못 들어오게 했어.

그래서 국민의회는 베르사유 궁전 안 테니스 코트로 가서 회의를 했단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 선언된단다. 헌법 제정을 요구하고 국민의회가 공식적인 국민의 대표회의체로 인정하라는 것이었어. 1789 7월 더욱 거세지는 혁명의 물결. 나라에서는 국민의회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하려고 하자 파리 시민들은 결국 7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하였단다. 그렇게 국민의회 세력은 권력을 잡게 된단다. 1789 8월 봉건제 폐지를 선언했어. 농노는 바로 해방이 되었지만 토지 처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면서 매매를 통해 정리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4년이나 걸렸다고 하는구나. 실책 중에 하나였지. 그리고 인권 선언도 발표되었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오늘날 헌법에 적용해도 좋을 만큼 선진적이었단다. 교회 재산 및 토지 반환에 대한 갈등도 심했는데 11월 국민의회의 표결을 통해 국가에 반환되었다고 하는구나. 갑작스레 권력을 잡긴 했지만 여전히 계층간의 대립은 심했어. 그리고 혁명파 내부에서도 부르주아와 민중들 사이의 혁명에 대한 온도차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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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바스티유를 함락시킨 지 2 2개월 사이에 프랑스 국민은 새 국민으로 변하였다. 그 새 국민의 마음속에 지난 6월 이후 3개월 사이에 갑자기 분노와 불만이 쌓였다. 지금까지 왕당파를 노려보던 프랑스 민중의 눈은 혁명을 반역하고 민중을 배신한 푀양파로 돌려지고 있었다. 민중의 분노와 불만은 막 제정된 결함투성이의 헌법을 그대로 두지 않을 태세였다. 그 헌법을 진정한 민주주의 헌법으로 새로 만들고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데는 앞으로 1년이면 족하였다. 혈통의 특권적 지배를 무너뜨린 민중은 이제 돈의 특권적 지배를 오래 참고 견딜 생각이 없었다. 푀양파와 같은 보수적 부르주아는 헌법의 제정으로 혁명은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민중은 혁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혁명은 계속 민중의 힘에 의해 추진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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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루이 16세도 외국 세력과 손잡고 반전을 노리고 있었어. 심지어 프랑스를 탈출하려는 시도도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단다. 이 장면은 앙투아네트 이야기할 때 해주었는데 기억나지?

 

2.

1791년 헌법이 제정되면서 프랑스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했단다. 입헌군주제는 왕은 있지만 헌법 체제 안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제도였어. 그렇다 보니 왕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어 독자적인 권한은 거의 없었단다. 입법의회가 생겼는데 입법의회는 부르주아들과 일부 귀족들로 구성되었어. 그런데 농민의 권리를 너무 주지 않았단다. 선거권도 없었대.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폭동도 일어났다는구나. 그래서 입헌군주제는 1년만에 폐지하고 파리 시의회인 파리 코뮌이 주도적으로 행정을 이끄는 시대라 되었단다. 이 시의회의 리더는 법무장관 당통이 이끌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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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코뮌이란 무엇일까? 그 뜻은 파리 시의회(City Council)라는 뜻이었다. 파리는 본래 행정구역이 60구로 나뉘어 있었는데, 1790 5월에 48개의 섹시옹(section)으로 개편되었다. 섹이옹마다 1800명 정도의 능동 시민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표자들이 시 코뮌을 구성하는 반혁명 세력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8 10일 사건을 계기로 각 섹시옹이, 특히 노동자들의 섹시옹이 그들의 코뮌 대표자들을 수동 시민으로 교체하여 코뮌의 능동 시민을 압도하게 되었다. 수동 시민은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었으므로 압력에 의하여 능동 시민과 수동 시민의 차별을 없애고 보통선거에 의하여 새 국회인 국민공회 소집을 가결하였으므로 코뮌의 불법성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합법성의 기분은 이미 개정하기로 선포한 낡은 헌법의 원리에 의하여 측정될 것이 아니라 새 헌법의 원리에 의하여 측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 헌법의 원리에 보통선거의 원리였다. 그런데 이 보통선거의 원리를 입법회의로 하여금 승인케 한 것은 파리 코뮌이었으니, 입법회의는 파리 코뮌의 실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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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의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었어. 여러 계파가 다양한 이유로 전쟁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 중심의 일부만 반대 의견을 냈단다. 그렇게 되자 자코뱅 당은 분열하게 되었단다. 로베스피에르 중심의 산악파는 부르주아를 비판하고 민중을 옹호하였고, 자코뱅 클럽을 결성했단다. 온건 진영은 지롱드파로 모이게 되었어. 지롱드 파가 좀더 우세한 조직이었지. 이런 상황에서 왕정을 공식으로 폐지하고 공화정을 출범하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루이 16세에 대한 처형 여부 결정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거의 50 50으로 양분되었어. 아슬아슬한 표차로 루이 16세 처형이 결정되어 삶을 마감하고 말았어.

공화정이 출범하긴 했지만 순탄치 않았단다. 각 계파들의 알력 다툼은 점점 심해지고 반대파들을 꼬투리 잡아서 단두대로 보내기 일쑤였어. 프랑스 혁명의 유력 인사들의 많은 이들의 삶이 단두대에서 마감했단다. 산악파가 권력을 잡게 되면서 그들 간에도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산악파에서 관용파로 분류되면 당통도 제거되고 마라도 암살당했단다. 그러면서 로베스피에르가 거의 독재를 하다시피 했어. 공안위원회를 만들면서 공포 정치를 시행했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죽을지 몰랐어. 로베스피에르의 입장에서는 민중을 위한다고 했지만 너무 과격했어. 로베스피에르의 위협을 느낀 반대파들도 결국 헌법을 이용하여 로베스피에르도 단두대로 보냈단다. 이 부분은 아빠가 몇 달 전에 이야기해 준 <조제프 푸세>에서 자세히 이야기했었지. 로베스피에르를 죽인 것이 혁명력 테르미도르에 죽였기 때문에 그들을 테르미도르파로 불렀다고 하는구나. 혁명력이란 혁명이 성공하고 나서 달력을 새로 만든 것이란다.

로베스피에르를 죽이긴 했는데 테르미도르파는 뛰어난 리더도 없고 노선도 애매했어. 지은이께서 이야기하시기로는 왕이 없는 입헌군주제 노선이라고 했어. 정말 애매하구나. 그렇다 보니 이때가 기회가 싶어 왕당파들도 재건의 움직임을 보였는데 테르미도르파에 의해 진압되었단다. 그러면서 등장한 것이 총재정부라는 정부 형태였단다. 이때가 1795 1월이었어. 총재 정부는 5명의 총재가 공동으로 국가 행정을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일각에서는 부르주아 공화국이라고도 불렀어. 이런 정부 형태를 민중들이 좋아하겠니? 당연히 싫어하겠지. 그래서 또 여기저기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인 세력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때 나폴레옹도 처음 역사에 등장하게 된단다. 강력한 리더가 없어서 그런지 좌파와 우파간에도 계속 쿠데타를 일어났는데, 총재 중 한명인 시에예스가 나폴레옹과 손잡고 쿠데라를 일으켜 성공하게 된단다. 그리고 총재 정부를 끝내고 통령 정부를 세우게 된단다.

 

3.

통령 정부는 3명의 통령이 공동으로 정부를 이끌어가고 임기는 10년이라고 했어. 그런데 나폴레옹은 법을 바꾸어 1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2통령과 3통령의 권한을 축소했단다. 자신이 1통령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이후 또 법을 바꾸고 임기를 없애 종신 통령이 되었단다. 그러면서 반대파인 왕당파와 공화파의 세력을 제거해 나갔어. 결국 헌법을 한차례 더 개정하여 그는 황제가 되었단다. 왕이 아니고 황제가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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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나폴레옹이 왕이 아니라 황제간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르봉 왕가의 왕족들이 루이 16세의 어린 아들을 루이 17세라고 칭하였고, 그가 일찍 죽자 루이 16세의 큰 동생 프로방스 백작이 루이 18세라고 자칭하면서 왕정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판국에, 그들의 왕정을 부정하면서 다른 왕정을 창업한다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스스로 혁명의 아들로 자처하고 있었는데, 혁명이 낳은 왕이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역사상 프랑스인 최초의 군인 황제인 샤를마뉴의 정통 계승자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아헨에 있는 샤를마뉴의 사당을 참배했을 뿐만 아니라 샤를마뉴처럼 가톨릭교회의 성별을 필요로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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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교황에게 부탁해서 대관식까지 했단다. 교황도 자신의 입지를 키우는데 나쁘지 않다고 대관식에 응했단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진행되었는데, 나폴레옹은 관을 받아 자신이 직접 위에 얹었다고 하는구나. 황제를 불러들이긴 했지만 스스로 관을 쓰면서 자신의 힘에 의해서 황제가 되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했어. 그렇게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전쟁을 통해서 주변국을 점령하고 동맹국으로 만들었단다. 그리고 그 나라에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들을 왕에 세우는 족벌 정치를 했어. 그렇게 국토를 넓혀나갔지만 주변국에서 반기를 들기도 했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반기를 든 것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등 동부에서도 독립 투쟁을 했단다. 그 때마다 진격해서 진압을 하였지만 프랑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단다.

그 와중에 무리한 러시아 원정이 독이 되었어. 러시아 원정은 추위와 병으로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러시아 전술에 속아서 많은 군인들이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단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을 갔지만 약 10만명만이 돌아올 수 있었어. 그렇게 되자 나폴레옹은 1814년 실각하고 말았단다. 나폴레옹이 실각되었지만 여전히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이었단다. 프랑스 내에서는 부르주아는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였어. 하지만 극빈자들도 여전히 많았어. 노동자들 중에도 극빈자들이 많아서 불만이 쌓여갔지.

나폴레옹이 실각된 이후 백성들의 지지에 의해 루이 16세의 동생 프로방스 백작이 루이 18세가 되어 왕이 되었단다. 정부 조직은 1789년 이념을 기초로 구성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1815년 엘바섬을 떠난 나폴레옹이 3 20일 파리에 입성하면서 위협하자 루이 18세는 파리를 탈출하였단다. 나폴레옹이 다시 권력을 잡나 싶었으나 그의 권력은 100일로 끝이 나고 말았지.

그는 다시 실각되었고 루이 18세는 돌아왔단다. 루이 18세가 프랑스 혁명 이후 계속 외국에서만 지내서 프랑스 사정을 잘 모르고 민심도 잘 몰랐대. 그리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망명 귀족들을 데리고 와서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었어. 이렇게 하니 국민들의 불만이 또 쌓일 수밖에 없지. 거기에 나폴레옹이 100일 천하 동안 일으킨 전쟁에서 연합국에 패한 것에 대한 제2차 파리조약이 이루어졌어.

나폴레옹이 첫 실각 당시 맺어진 1차 파리조약에서는 아무런 배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2차 파리조약에서는 참을 수 없었지. 연합국은 프랑스 땅의 2/3를 차지하게 되었고 전쟁 배상금도 내야 했으며 프랑스 정치도 감시 받는 상황이 되었단다. 루이 18세도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의회와 손을 잡고 노력을 했으나 1824년 루이 18세는 죽고 샤를 10세가 왕위에 올랐단다.

 

4.

샤를 10세는 꼴통 왕당파로 왕당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어. 샤를 10세는 돌아온 망명 귀족들의 옛 재산을 찾아주기까지 했단다. 시민들의 불만은 점점 치솟았어. 그 불만이 쌓이고 쌓여 1830 7월 혁명이 일어나고 샤를 10세는 쫓겨났어. 그리고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 올랐는데 루이 필리프는 프랑스 혁명 초기에 혁명군 진영에 있던 사람으로 역시 혁명파였던 오를레앙 공의 아들이었어. 7월 혁명 이후 왕정을 시작해서 그들은 7월 왕정이라고 불렀어. 여전히 노동자의 생활은 열악했고 국민의 분열은 계속되었는데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어. 노동자 시위가 계속 일어나고 정부는 무력 진압하게 되었어. 노동자들은 이제 7월왕정에 불신을 가지고 공화파를 지지했단다.

그런데 1840, 7월 왕정의 실책이 또 나왔어. 나폴레옹의 유해를 파리로 이장했고 나폴레옹을 영웅화했단다. 1840년대 내내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은 불만이 계속되었고 곡물이 대흉작이 되면서 물가는 치솟고 주식은 곤두박질치면서 경제 사정까지 악화되었어. 다시 시위와 폭동이 증가하였고 무력 봉기까지 일어났단다. 1848년 공화파 주도로 2월혁명이 일어나고 결국 루이 필리프는 퇴위했단다. 공화파 주도로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었는데 의외의 인물이 당선되었단다. 나폴레옹의 조카인 샤를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이 대통령이 된 거야. 나폴레옹의 향수를 자극해서 말이지.

나폴레옹 3세는 가톨릭교회를 중시하였어. 그는 직권 이후 언론을 탄압하고 자유를 탄압했고 대통령이 된 지 1년 뒤에는 황제가 되었단다. 국내 정치에서는 이렇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성과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영국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이탈리아 전쟁에 관여하여 이탈리아 통일에도 기여를 했대. 그런데 오히려 이건 독이 되었다는구나.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거대란 견제 세력이 생긴 거야.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의 힘도 세지면서 프랑스와 대립하게 되었어.

프랑스 내부에서는 나폴레옹 3세에 대한 국민여론이 안 좋아지고 그것은 공화파의 의회 의석수가 늘어나는 결과를 냈단다. 나폴레옹 3세는 대의동맹을 맺어서 위기 타개를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 그 와중에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 원정에서 실패를 했고, 프로에센은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서 프랑스도 넘보려고 했어. 1869년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하면서 황제의 권력은 많이 약화되었단다. 그리고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결국 전쟁이 일어났는데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이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말았단다. 그러면서 나폴레옹 3세는 퇴위하게 되었고 다시 제정 시대가 끝이 났단다.

1870 9월혁명으로 프랑스는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섰어. 프로이센은 전쟁에서 이긴 후 계속 프랑스로 진격하여 파리를 포위했단다. 포위를 뚫는 시도를 잇달아 했지만 실패하고 고립된 파리는 물가가 폭등하면서 궁핍한 생활이 이어졌어. 4800여명의 파리 시민이 사망을 했다는구나. 파리 고립이 길어지면서 파리 내부에서도 항복하자는 의견과 항전하자는 의견으로 양분되었어. 파리 시민들의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던 수비대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총격전이 벌어져서 50여명이 사상자가 발생했어. 당시 프랑스 정부의 파브로라는 사람이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와 비밀리에 휴전 협정을 했고 보르도에 의회를 만들게 되었단다.

이 소식을 들은 파리의 국민방위대는 반박을 했어. 휴전 협정 내용은 파리 시민을 더욱 열받게 했단다. 알자스 지방과 로렌 지방을 독일에 넘기기로 했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프로이센 군대가 파리를 48시간 동안 점령하기도 했다는구나. 이런 굴욕적인 조건을 어떤 파리 시민이 받아들이겠는가. 파리 국민방위대 중심으로 저항을 했단다. 그리고 파리 내부에서 또다른 의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파리 코뮌이란다. 이미 파리 코뮌은 프랑스 혁명 초기 때 있었던 파리 시의회인데 이를 부활한다는 의미였어. 보르도 의회는 베르사유로 이동했고, 파리 코뮌의 국민방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을 파리로 보냈단다.

그렇게 정부군과 국민방위대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단다. 같은 동족끼리 총을 겨누는 상황이 벌어진 거야. 72일간 이어졌는데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 없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이 불타고 말았대. 이 내전을 역사는 파리 코뮌 사건이라고 하는데 몇몇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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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432)

파리 코뮌 기간 중 벌어진 공전의 참변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럽 문화와 현대 문명의 중심지 파리에서 어떻게 하여 그런 끔찍하고 야만스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코뮌 직후부터 거기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사학의 생명은 해석에 있다고 하지만 파리 코뮌에 대한 해석만큼 오늘날까지 극심한 대립을 보이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파리 코뮌의 해석이 처음부터 유달리 현저한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농후하게 띠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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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루브르 궁전도 이때 화재가 일어나 서쪽 건물이 완전히 무너졌고 그때의 잘못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복원하지 않고 무너진 상태 그래도 두었다고 하는구나. 여기까지가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본 것이란다. 길게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맥락이 잘 안 이어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구나. 그건 아빠의 역량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니 양해 바란다. 그리고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이 책은 꼭 읽었으면 좋겠구나. , 이제 에밀 졸라의 <패주>를 읽어야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태양왕 루이 14세가 죽은 1715년 당시 프랑스의 인구는 1,400만에서 1,500만으로 추산되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에는 2,400만 내지 2,600만으로 추산된다.

책의 끝 문장: 끝으로 코뮌은 제3공화국의 불행한 서장으로, 코뮌이 없었더라면 제3공화국의 탄생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루이는 흔히 말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에는 유능하다든가 흑백이 분명하다든가 의지가 꿋꿋하다든가 책임감이 강하다든가 혹은 믿음직하다든가 하는 따위의 뜻은 들어 있지 않다. 루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뚱뚱한 몸집에 어디로 보나 호인형 남자였다. 미식가이고 무도회와 사냥을 즐기고 특히 열쇠를 만드는 취미가 있었다. 취미를 취미 삼아 즐기는 정도라면 골치 아픈 정무에 휴식을 제공하는 오락거리쯤으로 생각하겠지만, 루이는 골치 아픈 정치는 아예 질색이고 사냥과 열쇠 만들기에만 전념하는 편이었다. 그는 국왕 참의회에서 골치 아픈 일이 논의되면 곧 피곤해져서 회의석상에서도 졸곤 했다고 한다. 그러한 인물이었으니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한들 무슨 유익한 일을 과단성 있게 해낼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에 직면하여 어찌 일을 제대로 판단하여 책임성 있게 처리할 수 있었겠는가? - P52

따라서 자코뱅의 세 번째 전통은 참 민주주의의 이상이었다. 평등주의적 민주의의이며,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자코뱅이 제정한 1793년 헌법의 제5조는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면 봉기는 인민 전체에게도, 인민 각자에게도 가장 신성하고 불가결한 의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 수호의 최후 수단으로서의 민중 봉기를 국민의 권리를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코뱅의 자유에 대한 사랑과 민주주의의 이상이 어느 정도의 것이었던가를 말해 주는 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P179

나폴레옹 제국은 족벌 제국이었다. 황제의 형제들과 친척 및 부장들을 위성국가의 통치자로 봉하였다. 그러한 그가 1810년에는 가장 사랑하는 막내 동생 루이를 네덜란드 왕위에서 몰아내고 네덜란드를 프랑스에 합병하였다. 루이가 네덜란드의 밀무역을 철저히 단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륙봉쇄의 성패가 나폴레옹의 운명을 좌우하고 나폴레옹 제국의 모든 정책은 대륙봉쇄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해안 지역들을 프랑스에 합병하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고, 심지어 교황령이나 일리리아 지방까지도 무리하게 합병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런데 영국해에 접해 있는 가장 중요한 네덜란드에서 밀무역을 막지 못한다면 대륙봉쇄의 운명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 P258

샤를도 형 루이처럼 67세의 홀아비였으나 형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활동적이고 정렬적이고 명쾌한 성격만이 형과 다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력과 사상도 매우 달랐다. 샤를은 왕당파의 두목으로서 헌장을 우습게 여기고, 프랑스 혁명을 악마의 장난으로 믿고, 왕권신수설을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이제 왕권신수설을 부정한 헌장을 준수해야 하는 입헌군주가 되었으니 과연 그가 얼마나 헌장에 충실한 것이며 정당정치의 군주로서의 임무에 성실할 것인가는 매우 의심스러웠다. - P305

그런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혁명을 경험한 선진 산업국가들은 빈부의 격차가 생기는 원인을 미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누구의 눈에도 명백히 나타난 빈부의 격차를 어떤 방법으로든지 줄이긴 해야 했다. 이런 생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실천에 옮기려는 운동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는데, 이를 사회주의라고 하고 그 운동을 사회주의운동이라 한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은 갖가지 이론과 형태로 19세기 선진 산업국가들의 역사를 색칠한다. 특히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 그렇다. - P329

이제 국민은 공화정을 확정할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는 1815년 이래 한번은 보수적인 또 한번은 자유주의적인 입헌주정을 시도했으나 두 번 다 실패하고 말았다. 전자는 프랑스 혁명 자체를 부정하려다가 실패하고, 후자는 프랑스 혁명은 인정하였으나 상층 및 중층 부르주아의 이익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실패하였다. 오를레앙 왕가는 프랑스 혁명이 내세운 국민주권의 원리를 시인하면서도 신흥 부르주아에 의한 권력 독점을 위해 지나친 제한선거를 고집하다가 무너졌다. 복고 왕정은 정통파를 만들어내고, 7월왕정은 오를레앙파를 만들어내어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정치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지만, 그들이 프랑스의 정치 무대를 차지하는 일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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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사회는 그렇게 쉽게 붕괴하지 않아요. 당신은 가이아로서 얘기하는데, 가이아는 자유로운 각 개인이 모여 사는 사회를 이해할 수 없어요. 이성과 정의에 근거해 확립된 규칙이 사회와 시대가 변하면서 그 유용성이 사라졌는데도 관성적으로 존속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그 규칙이 무용하게 되었다거나 심지어 해롭게 변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런 규칙을 위반하는 것 자체가 정당할 뿐 아니라 유용할 수 있어요.”


(195-196)

왜냐고요? 낭만주의자들은 대체적으로 그들이 죄를 저질러 응징자에게 벌을 받았다고 추측하지요. 그러나 이들은 응징자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벌을 주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아요. 이처럼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어요. 오히려 모든 분야를 로봇에 의지함으로써 사회가 나약해지고 퇴폐적으로 되면서, 아주 따분해지거나 혹은 사람들이 살려는 의지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어 발전이 정체되다가 마침내는 사멸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지요.

두 번째로 파견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로봇 없이 살아가면서 은하계 전체를 개발했지만, 지구에는 방사능 오염이 심해지면서 점차 생물이 살 수 없는 행성으로 변질되어 갔지요. 첫 번째로 파견된 그룹에게 영향을 받은 이후 지구에도 로봇화가 추진되어 그렇게 되었다는 게 통설이지요.”


(252)

생각해 보세요. 생태학적 균형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는 유인 행성은 한 군데도 없어요. 아마 지구에만 생태학적 균형이 이루어져 있었겠죠. 그곳에서 인류가 진화했다고 하니까. 그 전에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인류를 비롯해서 고급 문명을 발전시켜 주변 환경을 개발할 수 있는 어떤 지적 생물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어요. 그것은 계속 변화하면서 자연적으로 생태계 균형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해요. 그러나 다른 유인 행성들은 인간들이 동식물체를 번식시키는 등 인위적으로 주변 환경을 조심스레 가꾸면서 지구처럼 만들어 온 것이지요. 하지만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생태계는 그 자체로 불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어요. 인간들에게 필요한 생명체들만 퍼뜨렸을 테니까 그 종류가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었겠죠.”


(654-655)

지스카르는 죽기 직전에 로봇공학 3원칙의 제1조에 우선하는 또 하나의 로봇 원칙을 생각해 냈습니다. 우리는 달리 합당한 이름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것을 제0조라고 불렀습니다. 0조는 로봇은 전 인류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되며 또한 위험을 간과함으로써 인류에게 위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제1조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봇은 제0조와 상충될 때를 제외하고는 인간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또는 위험을 방관함으로써 인간에게 위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 2조와 제3조도 역시 수정되어야 합니다.”


(671)

로봇들은 우주인들이 사라진 이후로 인류의 역사에서 아무런 중요한 역할도 하지 못했어. 가이아도 아주 최근까지는 마찬가지 처지였지. 로봇들은 피조물이고 가이아는 로봇들의 작품일세. 따라서 로봇들과 가이아가 그 로롯공학 3원칙에 얽매여 있는 한 그들은 인간의 의지에 복종할 수밖에 없어. 다닐이 기울여온 지난 2만 년 동안의 노력과 가이아의 오랜 발전에도 불구하고, 트레비스가 말한 한 마디 단어, 바로 인간은 그러한 노력과 발전에 종지부를 찍게 될 거야. 이는 결국 인간이야말로 우리 은하계에서 지성을 가진 유일한 유기체가 될 것이며 심리역사학도 계속 유효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네.”


(672-673)

초공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의 은하계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요. 내가 아는 한 우리는 어떠한 다른 은하계에도 가 본 적이 없고 다른 은하계의 지적인 생명체도 우리를 찾아온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만일 외계종이 침략해 올 경우, 그들은 우선 우리 인간들끼리 반복하게 만드는 방안을 모색할 겁니다. 우리는 그런 소모적인 싸움에 익숙하잖아요. 침략자들이 우리가 서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 모두를 지배하거나 파괴하겠지요. 그래서 유일하고도 진정한 방어는 반복과 시기를 없애고 침략자들에게 최대한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는 갤럭시아를 건설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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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2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70
샬럿 브론테 지음, 나선숙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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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제인 에어> 2권을 이야기해줄게. 2권도 흥미진진 이어진단다. 약간 우연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재미가 막아줄 수 있지. , 그럼 시작할게. .. 오늘은 스포일러도 있으니 유의 바람..^^

제인이 리드 부인의 장례식을 마치고, 사촌 언니들이 부탁하는 것들을 도와주고 한 달 만에 손필드에 돌아왔단다. 그 사이에 손님들은 모두 돌아가고 손필드는 다시 조용해졌지. 어느 날 밤,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고백을 하며 청혼을 했단다. 로체스터가 잉그램 아가씨와 결혼한다는 것은 그저 소문뿐이었어. 1권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로체스터의 마음에는 이미 제인 에어가 가득 차 있었음을 알 수 있었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치 트랩 대령이 마리에게 품었던 마음과 비슷해 보였어. 제인 에어도 로체스터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페어팩스 부인의 반응은 약간 놀람이었단다. 나이차가 많이 나서 말이야. 하기야 제인 에어는 이제 10대 후반이고 로체스터는 30대 후반이니제인과 로체스터는 4주 후에 결혼하기로 했단다. 손필드 사람들만 모아놓고 교회에서 조용히 하기로 했어. 제인과 로체스터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사랑 또한 뜨겁게 타올랐단다.

어느 날 제인이 이상한 경험을 겪었어. 제인이 자고 있을 때 누군가 제인의 방에 들어왔어. 괴상한 모습을 한 여인이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한 동안 머물렀다가 간 거야. 그리고 웨딩드레스도 찢어졌단다. 잠결에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 싶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이 진짜 찢어져 있었어. 이 이야기를 로체스터에게 하자, 꿈이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옷은 그레이스가 그랬을 것이라고 했단다. 하지만 제인이 본 사람은 그레이스가 아닌 것이 분명했단다. 그 사람이 그레이스가 아니지만 그레이스가 계속 마음에 걸렸어. 그레이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시간이 흘러 드디어 결혼식 날. 집 앞 작은 교회에서 손필드 사람들만 불러서 조촐히 그리고 조용히 결혼식을 진행했어. 결혼 서약을 하려는 찰나 누군가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이 결혼은 무효라고 외쳤어. 그는 다름 아닌 메이슨과 변호사였어. 메이슨 기억 나지? 1권에서 손필드에 찾아왔다가 그레이스에 중상을 입고 의사와 함께 떠난 사람. 그가 왜 이 결혼을 반대하는 걸까? 그리고 그가 어떻게 제인과 로체스터가 결혼하는 사실을 알았을까.

리드 부인이 죽기 전에 제인의 친가 삼촌 이야기를 했었잖아. 그래서 제인은 친가 삼촌인 존 에어에게 편지를 썼단다. 편지에 결혼한다는 소식도 전했어. 그런데 존 에어와 메이슨이 알고 지내는 사이라서 메이슨과 제인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된 것이란다. 남편 될 사람이 로체스터라는 것도 알게 된 거지. 그런데 왜 이 결혼을 무효라고 하는 걸까? 그것도 변호사까지 데리고 와서 말이야. 리처드 메이슨. 그는 누구란 말인가.

 

1.

리처드 메이슨이 이야기하기를 로체스터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내도 살아 있기 때문에 또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했어. 심지어 로체스터의 부인은 손필드 저택에 있다고 했어. 뭐라고? 설마 그레이스가 로체스터의 부인인가? 결국 로체스터도 시인했어. 그리고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모두 이야기해주었단다. 로체스터의 아내는 리처드 메이슨의 여동생은 버사 메이슨이었어.

로체스터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버사 메이슨과 결혼을 했어. 당시 버사 메이슨은 서인도 제도 자메이카에 살고 있어서 로체스터는 자메이카까지 가서 결혼을 했단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버사는 미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단다. 알고 보니 버사의 어머니도 미쳐서 정신병원에 수감 중이었단다. 유전되는 병이었나 봐. 버사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의사의 진단도 버사가 미쳤다고 했단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없었어. 아무런 사유 없이 이론을 하는 것은 불법이었고 말이야.

4년간 자메이카에서 지내면서 로체스터는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여 자살할 생각마저 했다는구나.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손필드를 물려받게 되었단다. 좋은 생각이 났어. 버사를 손필드 저택에 감금하고 나서 자신은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단다. 영국으로 돌아온 로체스터는 버사를 손필드 저택 3층의 구석진 방에 감금했단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바로 버사 메이슨을 돌보는 그런 사람이었어. 버사의 존재는 손필드에서도 그레이스와 로체스터만 알고 있었어. 몇 달 전 리처드 메이슨이 손필드에 찾아왔다가 다친 것도 그레이스의 짓이 아니고 버사의 짓이었단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제인의 방에 나타나 옷을 찢은 것도 바로 버사의 짓이었어.

이런 버사가 손필드에 있어서 로체스터는 손필드에 거의 오지 않고 외국이나 타지에서 지낸 것이란다. 오랜만에 손필드에 오는 길에 제인을 만나고 첫 눈에 반하고 모든 것이 변해버렸지. 이야기를 하면서 로체스너는 제인에게 미안해 했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했어. 제인도 로체스터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지만 당시 영국법으로는 로체스터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갈등하다가 제인은 결국 손필드를 밤에 몰래 떠나게 된단다.

 

2.

갑작스러운 결정에 아무런 준비물도 없이, 돈도 조금밖에 없었어. 일단 가지고 있는 돈으로 마차를 타고 최대한 멀리 가서 내렸는데 그곳은 히트크로스란 곳으로 황무지였단다. 인전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지만 돈이 없어서 이틀 동안 노숙을 했고, 먹은 것도 거의 없었어. 쓰러지기, 어쩌면 죽기 직전에 세인트 존 리버스라는 목사가 제인을 보고 집에 데리고 갔단다. 그 집은 사실 세인트 존의 아버지의 집 무어하우스였어. 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존이 와 있는 것이었고, 같은 이유로 세인트 존의 동생들인 메리와 다이애나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어.

그들은 무척 친절했단다. 그들의 도움으로 제인은 며칠 만에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어. 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싶었어. 로체스터가 자신을 찾아 나설 수 있으니 말이야. 그 전에 겪은 일들은 최대한 비밀로 하고 요점만 간단히 이야기를 했단다. 메리와 다이애나는 제인을 친자매 대하듯 잘 해주었단다. 한 달 뒤 메리와 다이애나는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고, 세인트 존도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어. 제인이 세인트 존에게 일자리를 부탁했었는데, 세인트 존은 제인에게 빈민가의 여자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선생님을 제안했고 제인은 흔쾌히 수락했단다. 제인은 학교 옆에 딸린 조그마한 오두막에서 지냈단다.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쳐서 존경 받는 선생님이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세인트 존이 찾아왔어. 어떤 변호사가 사람을 찾는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제인의 과거 행적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그 변호사가 제인 에어를 찾고 있는 거야. 세인트 존은 이미 제인 에어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왜 변호사가 제인 에러를 찾고 있는 걸까? 앞서 이야기했던 친가 삼촌 존 에어가 있었다고 했었잖아. 존 에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만 얼마 전에 죽었고 그의 전재산 2만 파운드를 제인 에어에게 남겼다고 했어. 그래서 변호사가 제인 에어를 찾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변호사가 하필 세인트 존에게 물어본 걸까? 세인트 존의 엄마의 동생이 바로 존 에어였다는 구나. 그러니까 세인트 존에게 존 에어는 외삼촌이었던 거야. 가족 관계를 정리해야겠구나. 존 에어의 친조카가 제인 에어이고, 세인트 존의 엄마의 동생이 존 에어이면 세인트 존과 제인 에어는 무슨 사이? 바로 사촌지간이란다. 사촌이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줄 알겠지? 제인 에어의 아빠가 형제들과 연락을 끊고 살아서 친척들을 모르고 살았던 거란다.

제인은 자신이 큰 돈을 유산으로 받는다는 사실보다 갑자기 가족이 생긴 것에 더욱 깜짝 놀래고 기뻤단다. 그것도 자신이 살려준 이들이 바로 자신의 가족이라니어떻게 일언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가. 제인은 자신이 받을 2만 파운드를 세인트 존, 메리, 다이애나와 정확히 4분의 1씩 나눠 갖겠다고 했단다. 제인은 이제 돈도 충분이 많아져 넉넉해졌단다. 크리스마스 때 메리와 다이애나에게 연락해서 무어하우스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어. 메리와 다이애나도 진짜 사촌 자매가 된 제인 에어에게 더욱 잘해 주었단다. 행복한 날만 있을까?

 

3.

당시 세인트 존은 인도로 선교를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어. 어느날 세인트 존은 제인을 찾아와 자신과 결혼해서 인도에 함께 가자고 했단다. 제인에게는 자신과 결혼하자는 것이 너무나 뜻밖이었단다. 제인이 보기에 세인트 존이 결혼하자는 것은 사랑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자 의무로 결혼하겠다는 것으로 보였어. 그래서 제인은 그 청혼을 거절하고 그냥 동생으로 가자고 가면 같이 가서 도와주겠다고 했단다. 하지만 세인트 존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제인을 찾아와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어. 제인은 계속 거절하고, 세인트 존은 계속 청혼을 하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지만 거의 스토커 수준이었단다. 읽는 아빠가 무서울 정도라니까

계속 거절하던 제인은 결국 승낙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제인을 세 번 부르는 소리를 들었단다. 환청인가? 하지만 제인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로체스터인 것 같았어. 세인트 존과 결혼을 하더라도 로체스터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은 해야겠다 싶었어. 그래서 정말 제인은 손필드로 갔단다. 손필드는 폐허가 되어 있었단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큰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 화재로 버사는 죽고 말았고, 로체스터는 한쪽 손을 읽고 장님이 되었다고 했어.. 지금의 그의 시골 별장에서 지낸다고 했단다.

제인은 다시 로체스터를 찾아가 결국 다시 만났단다. 그리고 제인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어. 로체스터를 사랑을 다해 보살폈단다. 제인은 그곳에서 로체스터와 결혼하였단다. 그리고 10년이 흘렀고, 아이도 생겼고, 그 동안에 로체스터는 한쪽 눈 시력까지 되찾았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샬롯 브론테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구나. 아빠가 몇 달 전에 책표지가 예뻐서 산 책 <빌레뜨>란 책을 지은이를 확인도 안하고 샀는데 그 책의 지은이가 샬럿 브론테의 책이더구나. 그 책도 조만 간에 읽어봐야겠구나. 그리고 브론테 자매들의 책도 찾아봐야겠구나. 오래 전에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읽었으니 앤 브론테의 책도 함 찾아서 읽어봐야겠구나.1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브론테 자매의 짧은 삶이 너무 안타깝구나. 그들의 머릿속에는 많은 작품들이 담겨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아무튼 이 책은 너희들도 꼭 한 번 완역본으로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로체스터 씨가 나에게 허가한 휴가는 일주일뿐이었다.

책의 끝 문장: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정말로 저는 떠나야 돼요. 제가 여기 남아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자동인형인 줄 아세요? 감정 없는 기계처럼 보이나요? 내 입에 문 빵 조각을 빼앗기고 내 컵에 담긴 생명수가 엎질러지는 걸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기고 작다고 해서, 영혼도 마음도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잘못 생각하셨어요! 나도 당신처럼 영혼을 갖고 있어요. 당신과 똑같이 마음이란 걸 갖고 있어요! 하느님이 나에게 미모를 선물하시고 부유함을 허락하셨다면, 내가 지금 당신을 떠나는 게 힘든 것처럼, 당신도 나를 떠나기 힘들었을 거예요. 나는 관습이나 전통이나 죽어 없어질 육신을 매개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말하는 거예요. 우리 둘 다 무덤을 지나, 하느님의 발치에 동등하게 서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동등하니까요!" - P26

"한동안은 아마 지금과 같으시겠죠. 아주 잠깐 동안요. 그 후에는 냉정해지실 거예요. 그러다 변덕스러워지시겠죠. 그러다 엄해지실 테고, 저는 나리의 마음에 들려고 많은 고생을 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저에게 많이 익숙해지시면 어쩌면 다시 저를 좋아하게 되시겠지요. 절 사랑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실 거라는 말이에요. 나리의 사랑은 6개월이나 그 이전에 거품이 되어 사라질 거예요. 남들이 쓴 책을 보니, 남편의 열정은 아무리 오래 지속돼 봐야 그 정도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친구와 동료로서는 저의 친애하는 주인께서도 저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 P37

‘외롭다’고 표현한 이유는, 내 눈에 보이는 골짜기 굽이에, 나무에 반쯤 가려진 교회와 사제관을 제외하고는 건물을 하나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 저 멀리 끝에 부유한 올리버 씨와 그의 딸이 살고 있는 베일 저택의 지붕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눈을 가리고, 돌로 된 문설주에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곧 나의 작은 마당과 그 너머 풀밭을 가르는 쪽문을 밀어 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리버스 씨의 포인터인 늙은 개 카를로라는 것을 금세 알아보았다. 세인트 존은 팔짱을 끼고 거기에 기대 서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언짢아 보이는 얼굴로 근엄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들어오겠느냐고 물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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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1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69
샬럿 브론테 지음, 나선숙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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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읽은 키두니스트의 <고전 리뷰툰 : 냉정과 열정-열정 편>에서 첫 번째로 리뷰 및 추천한 책이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란다.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제목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거야. 아빠도 제목은 알지만, 완역본을 읽어 본 적이 없는 그런 책이지. 너희도 어렸을 때 도화로 번안 편집된 책을 읽어서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을 거야. 고아인 주인공 제인 에어의 그저 그런 성장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이번에 읽고서 그저 그런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엄청 흥미진진하고 반전도 있고, 스릴도 있는 그런 소설이었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소설들은 뭔가 다르긴하구나.

<제인 에어>의 지은이는 그 유명한 브론테 자매 중에 한 명인 샬럿 브론테. 브론테 자매 모두 소설을 쓸 정도라면 유복한 집안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모두 짧은 생을 살다가 갔더구나. 샬롯 브론테는 셋째 딸로 태어났지만 언니들이 모두 어렸을 때 죽어서 첫째나 다름 없었다고 했어. 밑으로 동생이 세 명이 있었는데, <폭풍의 언덕>으로 유명한 에밀리 브론테가 30살에, 또 다른 브론테 자내 앤 브론테가 29살에 삶을 마감했다는구나. 남동생도 하나 있었는데 남동생도 31살에 죽었대. 어머니도 이미 샬럿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 샬럿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고 하더구나. 그러다가 38살에 결혼을 하고 되었고, 그 다음해에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그만 임신 중에 죽고 말았대. 19세기 중반의 일이었어. 당시만 해도 삼십 대 후반에 임신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던 것이란다.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 보내고 혼자 남은 아버지는 84살까지 장수를 했다고 하지만 홀로 된 삶은 얼마나 쓸쓸하고 비참했을까. 브론테 자매들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을 텐데, 안타깝구나.

 

1.

, 그러면 이제 <제인 에어>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여러 출판사에서 <제인 에어>를 출간했는데, 아빠는 몇 년 전에 사둔 더클래식출판사의 책으로 읽었단다. 두 권으로 되어 있어서 오늘은 1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제인 에어가 10살 때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이미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외삼촌은 리드 삼촌이 제인을 기른다고 데려가셨는데, 리드 삼촌 마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단다. 리드 삼촌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리드 외숙모와 사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단다. 다정한 리드 삼촌과 들리 리드 숙모는 신데렐라 계모 맞먹는 악녀였단다. 제인을 하녀보다도 못한 취급을 하면서 온갖 집안일을 시키고 툭하면 독방에 가뒀단다. 사촌 오빠와 언니들도 제인을 못살게 굴었단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와 알고 지내던 로이드 씨가 방문하여 제인을 자선 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리드 부인을 설득했고 리드 부인도 자신의 손에서 떼어내는 것이니 좋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제인은 마리아 템플 교장 선생님이 운영하는 자선학교인 로우드 시설에 갔단다. 그곳은 교칙이 엄격한 기독교 기숙 학교였단다. 이 학교는 주로 고아들 또는 편부모를 둔 아이들이 있었어. 제인은 그 학교에서 헬렌 번스라는 친구와 친하게 되어 서로 의지하였단다. 헬렌은 기독교 신념이 강한 아이로, 죄를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아이였어. 학교 생활이 엄격하고 기부금으로 운영하다 보니 먹는 것이 부실해서 힘들었는데, 제인은 헬렌에게 의지하면서 꿋꿋하게 학교 생활을 했단다.

어느날 로우드 학교의 총 책임자인 목사 브로클허스트 씨가 학교를 방문했는데, 교칙을 어긴 것과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이유로 교장 선생님에게 심한 질책을 했어. 뿐만 아니라 제인 에어에게는 공개적으로 벌을 주었어. 이유는 브로클허스트 씨가 리드 부인과 아닌 사이였는데, 리드 부인이 한 제인의 험담을 그대로 믿었던 거야. 제인이 거짓말쟁이에, 리드 부인에게 못되게 군 아이라면서 전교생 앞에서 벌을 준 거야. 제인은 억울하면서 친구들이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속상해하면서 울었어. 이 때 헬렌은 와서 위로를 해주었는데 큰 힘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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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그래, 내가 나를 좋게 생각해야 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날 사랑하지 않으면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외톨이로 미움받는 건 견딜 우 없어. 헬렌 여길 봐. 너한테든, 아니면 템플 선생님에게든, 내가 정말 사랑하는 누구에게든 진정한 애정을 받을 수 있다면 내 팔이 부러져도, 황소가 나를 내던져도, 사나운 말 뒤에 섰다가 발굽에 가슴을 차이는 한이 있어도 난 기꺼이 감수할 거야.”

===================

브로클허스트 씨가 돌아간 다음 탬플 선생님이 와서 제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인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확인한 다음 전교생에게 제인이 결백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제인에게 헬렌과 템플 선생님은 고귀한 존재였단다. 얼마 후 로우드 자선 학교에 티푸스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어. 전교생 80명 중에 45명이 걸렸고, 많은 아이들이 죽었단다. 그 죽은 아이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헬렌이 포함되었어. 헬렌은 죽기 전에 격리 생활을 했는데, 제인은 몰래 헬렌을 찾아갔어. 헬렌은 그 어린 나이에 죽음에 초연했고, 심지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어. 전염병이 진정되고, 학교 시절이 열악하고 환경이 엉망이라서 이런 전염병이 돌았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어.

이 사실을 알게 된 여러 독지가들에 의해 로우드 시설은 많이 개선되었단다. 제인은 그곳에서 8년을 더 지냈어. 6년은 학생으로 나머지 2년은 선생님으로 지냈단다. 어린 시절 불우했던 제인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듯 했단다. 하지만 그런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이 조금은 지겨워지기 시작했단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가 된 거지.

 

2.

제인은 학교에 이야기를 하고 가정교사 광고를 냈단다. 밀코트에 살고 있는 페어팩스 부인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가정교사로 일하기로 했단다. 밀코트까지 가는 길은 16시간이나 걸리는 멀리 있는 곳이었어. 제인이 머무르는 곳은 손필드 저택이라는 곳이었어. 당연히 페어팩스 부인이 그 저택의 주인인 줄 알았는데, 저택의 관리인이자 가정부라고 했어. 조인은 로체스터라늘 사람이고, 집에는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어. 제인이 가르칠 학새응ㄴ 아델 바랭이라는 7~8살 되어 보이는 아이였어. 아델 바랭은 프랑스에서 살다가 6개월 전에 영국으로 와서 영어가 서툴다고 했어.

제인은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워서 아델과 이야기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어. 아델 바랭의 유모 소피도 함께 살았고, 그 외에 하인, 하녀들이 그 저택에 함께 살았단다. 그렇다면 아렝 바탤이 로체스터 씨의 딸이냐고? 그건 아니야. 로체스터가 한때 사랑했던 프랑스 오페라 무희의 딸이었어. 그 무희가 죽고 나서 홀로 된 아델 바랭을 어찌지 못하고 로체스터가 데리고 온 것이란다.

손필드 저택에 있는 하인들 중에 그레이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좀 이상했어. 그레이스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는데, 방에 있을 때 괴상한 웃음소리와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곤 했단다. 그 외 손필드 저택에서 생활은 무난했단다. 아델도 제인을 잘 따랐어.

몇 달이 지나고 편지를 붙이러 마을에 가다가 말에서 떨어진 여행객을 만나 도와주었는데, 나중에 손필드 저택에 돌아오니 그가 바로 손필드의 주인 로체스터였단다. 30대 후반의 독신남. 스캔 끝. 로체스터는 변덕스러운 명도 있고,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주인장 행세를 하기도 했어. 하지만 제인이 로우드 시절 그렸던 그림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제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 처음에는 퉁명스럽고 사무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서로 사랑이 감정이 싹트는 것이 보이더구나.

어느 날 밤 복도에서 괴이한 소리에 잠을 깼어. 아무래도 그레이스 같았어. 복도에 나가 보았는데, 로체스터 씨 방에서 불이 난 것을 알게 되어 제인은 로체스터 씨를 깨워서 그 불을 껐단다. 다행히 크게 번지지는 않았어. 로체스터는 나중에 자신의 실수로 불이 났다면서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켰단다. 로체스터는 그레이스의 잘못을 감싸는 듯했단다.

로체스터는 두어 주 손필드 저택을 떠나 외출을 했는데, 손님을 초대한다는 소식이 전해왔어. 며칠 뒤 십여 명의 손님들이 방문하여 손필드 저택이 북적거렸단다. 손님 중에 블랑시 잉그램이라는 25살 된 아가씨가 있었는데, 로체스터와 사귀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장차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어. 그런데 블랑시는 못된 성격을 가진 아가씨였단다. 무척 불손하고 오만하고 남들을 멸시했어. 로체스터가 왜 저런 여자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어.

 

3.

그런데 손님 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한 명 있었어. 메이슨 씨가 그 사람인데, 로체스터는 메이슨이 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단다. 로체스터는 메이슨 씨를 만나고 잘 이야기가 된 것 같았어. 그런데 그날 밤 3층에서 비명 소리가 나고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어. 다들 잠에서 깨고 로체스터 씨가 3층에 다녀온 후 조용해졌단다. 로체스터 씨가 이야기하기를 하인 중 한 명이 악몽을 꾼 것이라고 해서 사람들은 다시 침실로 돌아갔단다.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도와달라고 하면서 3층으로 데리고 갔어. 그곳에는 메이슨 씨가 칼에 베여 중상을 입고 있었어.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메이슨 씨를 보살펴 주라고 했고, 그 사이에 로체스터는 의사를 데리러 갔다 왔단다. 메이슨은 제 때 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 로체스터는 의사에게 메이슨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단다. 메이슨을 누가 그렇게 했나? 제인이 생각하기에 그레이스 밖에 떠오르지 않았어. 메이슨과 그레이스는 그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던 것 같아. 로체스터는 그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고도대체 어떤 내막이 있었던 것일까.

….

며칠 후 리드 부인의 마부가 제인을 찾아왔어. 먼저 제인이 그곳을 떠난 이후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이야기해주었어. 제인을 괴롭혔던 사촌 오빠 존은 타락의 길을 걷다가 감방을 두 번이나 다녀오고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했어. 그 이후 리드 부인은 병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했어. 딸들도 엄마를 잘 보살피지 않고그런 리드 부인이 제인을 찾는다고 마부가 찾아온 거야. 제인은 로체스터 씨에게 허락을 받고 리드 부인을 만나러 갔단다.

리드 부인은 혼수 상태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고, 잠깐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단다. 리드 부인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제인에게 두 가지 잘못한 것이 있다고 용서를 빌었어. 외삼촌의 유언을 듣고도 제인을 잘 보살피지 않은 점…. 3년 전에 제인의 친가 삼촌으로부터 제인을 양녀로 삼고 싶다면서 연락이 왔었는데, 제인이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했어. 미안하다면서 지금이라도 연락해 보라고 친가 삼촌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제인에게 주었단다. 죽음을 앞둔 외숙모가 그렇게 잘못했다면서 사과를 하는데 착한 제인이 어찌 용서를 안하겠니…. 그렇게 조카와 화해를 한 리드 부인은 얼마 못 가 돌아가셨단다. 여기까지 <제인 에어> 1권의 이야기란다.

아빠가 재미없게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도 이 이야기는 그래도 재미있지 않니? 아빠가 이 책을 읽을 때 Jiny가 고전소설을 한 편 읽어야 한다고 해서.. 아빠가 이 책을 추천했었잖니그랬다가 이 책은 책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숙제 하느라 바빠서 이 두꺼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프랑켄슈타인>을 추가로 추천해 주었잖아. 다시 생각해보니 <제인 에어>가 두껍긴 해도 재미 있어서 술술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무튼 1권에서 나온 몇몇 떡밥들이 어떻게 회수되는지는 2권에서 이야기해줄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산책하는 게 가능하지 않은 날이었다.

책의 끝 문장: 우린 둘 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인간에게 평온한 삶에 만족하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소용없는 일이다. 인간에게는 활동이 필요하고, 그걸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 내기도 하는 법이다. 나보다 더 적막한 운명에 처한 사람이 수백만이고, 자신의 운명에 말없이 항거하는 사람이 수백만이다. 정치적인 반란 이외에도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반란들이 격동하고 있는지 어느 누가 알고 있을까. 여인들은 보통 매우 차분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자도 남자들과 똑같이 느낀다. 그들의 오빠나 남동생처럼 여자들도 자신의 능력을 연습하고 노력해 볼 기회가 필요하다. 여자도 남자들이 괴로워하는 만큼, 경직된 속박과 답답한 정체를 고통스러워한다. 그들에게 푸딩을 만들고 스타킹을 짜고 피아노를 치고 가방에 수나 놓으라고 하는 것은 더 많은 특권을 가진 남성들의 생각이 편협한 탓이다. 관습이 허락하는 것보다 더 배우거나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웃거나 단죄하는 것은 생각이 얕은 자들의 경솔한 행동일 뿐이다. - P167

나는 손필드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문지방을 넘어가면 정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용한 현관홀을 지나 어둠침침한 계단을 올라, 외로운 내 작은 방으로 들어가고, 늘 변함없는 페어팩스 부인을 만나 오로지 그녀와만 긴긴 겨울밤을 보낸다는 것은, 오늘의 산책이 깨운 나의 희미한 흥분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일이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한결 같은 생활의 보이지 않는 족쇄를 다시 나에게 채우는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감사할 수 없는 것이 되어 가는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의 족쇄. 차라리 힘겹고 불안정한 삶의 폭풍우에 내던져져 모질고 쓰라린 일을 다 경험한 후에, 지금의 이 평온함을 갈망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너무 안락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지겨워진 사람이 오래도록 산책을 한 것만큼 좋으리라. 그리고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처럼, 나 같은 상황에서 꿈틀거리고 싶은 소망이 일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 P177

"솔직히, 저는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제 이해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라서 이 대화를 계속할 수가 없겠어요. 다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요. 나리는 자신이 선량하지 않다고 하셨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애석해하셨어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거 하나예요. 나리는 더럽혀진 기억이 영원한 맹독이 될 수 있다고 하셨죠. 제가 보기에 나리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날로부터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 단호하게 시작한다면 몇 년 후에 새로이 오점 없는 기억들, 즐거이 돌이켜 볼 수 있는 기억들이 쌓일 거예요." - P209

"그러지, 간단하게. 당신은 혼자이기 때문에 추워. 그 안에 있는 불을 일으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당신은 병들었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최고의 고상하고 달콤한 감정을 멀리 떼어 놓았거든. 스스로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에서 다가오라고 손짓하지 않으니 당신은 어리석어. 당신은 그게 기다리는 곳으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 P297

예감이란 이상한 것이다! 교감도 그렇다. 정조도 그렇다. 이 세 가지가 합해지면 인간이 아직까지 풀어내지 못한 하나의 신비가 된다. 나는 이제껏 예감을 비웃은 적이 없다. 나 스스로가 그런 기이한 예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교감이라는 것도 존재한다고 믿는다(예를 들면, 멀리 떨어져 오래도록 왕래가 전혀 없던 친지들 사이에, 그렇게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교감 작용은 인간의 이해력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정조라는 것 역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일 수 있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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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브라이트비저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품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미학을 논한 예술품 도둑은 없었다. 여러 언론사와 장시간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죄를 감추려는 마음 따위 없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당시의 감정을 현재 시제를 사용해 즉각적으로, 그리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자세히 묘사한다. 정확성을 위해 필요 이상의 말을 할 때도 있다. <아담과 이브>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할 때는 야구 모자와 가짜 안경을 쓰는 등 변장을 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나사를 뺀 방식과 작품을 감상하는 척할 때 취했던 자세 등을 재연하기도 했다. 다른 절도 사건도 비슷하게 재연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경철 보고서가 수백 건이다.

 

(37)

브라이트비저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 작품은 성적으로 자극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침대가 가까이에 있으면 좋다. 기둥이 네 개 달린 침대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파트너도 옆에 있다면 타이밍이 절묘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빼면 그는 방에 있는 작품 하나하나를 금지옥엽 보살핀다. 온도와 습도가 괜찮은지, 빛은 적절한지, 먼지가 많지는 않은지 세세히 살핀다. 그는 자신의 방이 박물관보다 작품에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를 야만적인 다른 도둑들과 하나로 묶는 것은 잔인하고도 불공평한 처사다. 브라이트비저는 예술 도둑이 아닌 조금 색다른 방식의 예술 수집가로 여겨지기를 원한다. 그도 아니라면 예술 해방가라 불려도 좋다.

 

(72-73)

<모나리자>를 훔친 도둑도 처음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8개월 동안 수리공으로 일했다. 1911 8월 어느 월요일 오전 7, 빈센초 페루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작업복을 입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박물관에 들어갔다. 대청소 때문에 박물관은 폐장했고 보안 요원도 대부분 쉬는 날이었다. 페루자는 특별히 중요한 몇몇 작품에 추가로 안전 장치를 설치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 덕분에 벽에 걸린 <모나리자>를 떼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나리자>를 들고 나선형으로 된 직원용 계단 아래에 있는 방으로 재빨리 숨어들어갔다. 그러고는 그림을 액자에서 분리한 뒤 백양목 화판(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나무 화판에 그림을 그렸다)을 천으로 감싸서 밖으로 들도 나왔다. 페루자는 <모나리자> 말고 다른 작품은 훔친 적이 없다.

 

(102-103)

이처럼 예술의 역사는 절도의 역사와 맥을 함께 한다고 브라이트비저는 이야기한다. 인류가 기록을 시작한 초창기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도굴꾼을 조심하라는 문구가 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 역시 예루살렘에서 언약궤를 빼왔고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그리스는 페르시아를, 또 로마는 그리스를 약탈했다. 반달족은 로마의 부를 탐했다. 16세기 초 에스파냐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에르난 코르테스는 각각 잉카와 아스테카를 파괴하고 강탈하지 않았는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1648년 프라하에서 그림 1,000점을 빼앗아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하사했다.

나폴레옹은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기 위해 훔쳤고 스탈린은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채우기 위해 훔쳤다. 히틀러는 야심만만한 수채화가였으나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서 두 번이나 입학을 거절당했고 나중에는 고향인 오스트리아 린츠에 직접 박물관을 지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모두 모아놓고자 했다. 1759년 계몽 시대에 개관한 세계 최초의 국립 미술관인 영국 박물관은 어떠한가. 영국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인 베닌 브론즈와 로제타석은 각각 나이지리아와 이집트에서 약탈했고 엘긴 마블스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왔다.

 

(139)

브라이트비저가 내부 액자를 한번 잡아당겨 보니 벨크로 몇 개로 고정한 게 전부다. 벨크로를 뜯어내는 소리가 커다란 전시관에 울려 퍼졌지만 그림은 금세 느슨해졌다. 브라이트비저는 망설임 없이 액자채로 바지 안에 밀어 넣고 셔츠로 덮어 가린다. 바지 앞쪽이 툭 튀어나와 어색하지만 경비원이 이쪽을 쳐다본다 해도 브라이트비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쪽으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제 재빠르게 몇 걸음만 걸어 타일 바닥을 지나면 마법처럼 바로 문이 나온다.

 

(149)

그럼에도 지구상의 어느 문화에나 예술이 존재하며, 그 형태는 실로 다양하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 이론가들은 예술이 이토록 널리 퍼진 것이 인류가 자연선택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믿지만, 사실 예술은 짝을 유혹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다윈주의에 부합한다. 예술은 생존의 압박과는 거의 무관하며 여가 시간에 나오는 부산물이다. 인간이 더는 포식자를 피해 도망 다니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도구라고 알려진 대뇌를 이용해 상상력을 펼치고 탐구하며 깨어 있는 동안에도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신의 생각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은 인간의 자유를 상징하고, 진화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151)

많은 도둑이 눈독 들이는 피카소의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 현대 미술은 예술을 느끼기보다는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티치아노와 보티첼리 같은 르네상스 시대 슈퍼스타들의 작품 역시 훌륭하고 강렬하긴 하지만 브라이트비저에게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심지어 다빈치의 작품조차 그저 그렇다. 브라이트비저는 예술가들이 돈 많으 후원자에게 종속되어 그들이 원하는 작품 스타일과 구도, 색감을 구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이 위대한 화가들이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일깨우지 않고 재능에만 의지하는 바람에 작품을 망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재능을 좀 덜하더라도 감정적으로 깊이가 있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예술가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197)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제 브라이트비저가 작품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술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라고 늘 주장해왔지만, 그뤼예르성의 섬세한 융단을 창문으로 던지고 침대 밑에 처박아두는 것은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들은 어떠한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벽에서 잡아채 급하게 액자에서 빼내고 차 트렁크에 실어 덜컹거리는 길을 이동한다. 보안 카메라를 등지고 훔쳤던 약제상 유화는 나무판 세 개가 결합되어 있는데, 다락에서 이미 화판 사이가 벌어지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198-199)

앤 캐서린은 경찰 조사에서 예전에는 브라이트비저의 미학적 안목을 존중했지만, 이 시점부터는 그가 더러운방법을 써서 병적으로도둑질을 했다고 말한다. 한때는 아름다움을 숭배하며 작품 하나하나를 귀한 손님처럼 대하던 브라이트비저였지만, 이때부터는 마치 사재기를 하듯 그저 무엇이든 끌어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집에 가져오는 물건 대부분은 앤 캐서린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중 일부는 추하기까지 했다.

 

(232)

어미는 다락으로 올라간다.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아들이 도둑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락을 직접 볼 마음의 준비가 된 건 아니다. 제정신인 사람이 모았다고 볼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공간. 다행히도 아들과는 달리 다락에 들어서자마자 색감에 취하거나 아름다움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나이만 먹었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애 같은 아들 덕에 인생을 망친 듯하다. 그녀는 방을 보며 전부 훔친 물건이겠구나생각한다. 장물을 은닉해주는 것 역시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300개가 넘으니 시소도 300건 이상일 수 있다. 모욕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결국 파멸할 것이다. 스텐겔은 다락에 있던 예술품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을 향한 화살처럼 느껴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235-236)

성 밖으로 던져서 갖고 나온 융단은 독일 국경 옆 84번 국도 도랑에 버려져 있었다. 며칠 수 소변을 보려고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발견했다. 보기에도 귀한 융단인 것 같아 해당 구역 경찰서에 갖다 주었지만 경찰은 융단을 알아보지 못했다. 누가 갖다 버린 값싼 카펫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색이 화려하니 경찰서 휴게실 바닥에 깔아두었다. 융단 위에 당구대를 올려놓고 몇 주 동안이나 밟고 다니다 운하에서 예술품이 대거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프랑스 경찰과 폰데어뮐에게 알렸다. 17세기 융단은 운하에서 나온 물건들을 보관 중인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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