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의 세 번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단다. 이 작품도 엄청 유명한 작품이란다. 아빠도 16년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여전히 줄거리가 기억이 나는구나. 아빠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툴툴거리곤 하지만, 오래 전에 읽은 <노인과 바다>의 기억이 생생한 것으로 보아, <노인과 바다>가 명작이긴 명작이었나 보구나. 그런데 <노인과 바다>가
이렇게 짧은 소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오래 전에
읽었을 때는 꽤 길었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만큼 이야기가 강렬해서 아빠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산전주전 다 겪은 산티아고라는 노인이 거대한 물고기와 상어떼, 아니
더 거대한 바다와 싸우는 서사시. 그렇게 한 마디로 <노인과
바다>를 평해보았단다. 너무 거창한가?^^
…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라는 말은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당사자 분들도 ‘노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아. 호칭을 부를 때는 주로 어르신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구나.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보면 거센 바다를 상대로도 당당하고 노련한 존재로 ‘노인’이라는 단어에 이미지를 추가하게 되더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도 자꾸 떠올랐어. 문득 <파이 이야기>가 <노인과 바다>를 모티브로 삼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1.
산티아고 노인은 평생 바다를
사랑하며 아끼는 사람이었어. 심지어 바다가 폭풍으로 피해를 주어도 이해하는 그럼 사람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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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그는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건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할 때 스페인어로 부르는 말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험담을 하지만, 그런 때에도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말한다. 부표를 낚싯줄의 찌로 사용하고 또 상오 간(肝)을 많이 팔아 번 돈으로 사들인 모터보트를 타는 젊은 어부들은 바다를 <엘
마르el mar>라고 남성형 명사로 불렀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 하나의 정복 장소 혹은 적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노인은 바다를 언제나 여성으로 생각했고, 엄청난 혜택을 줄 수도 있고 거두어 가기도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거칠고 사악한 짓을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달이 여성에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바다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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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할아버지는 평생
어부로 살아온 사람인데 84일째 고기를 낚지 못했어. 그와
함께 배를 타던 마놀린이라는 소년이 있었어. 마놀린은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늘 존경했으며, 그로부터 고기잡이에 대한 것도 많이 배웠어. 하지만 오랫동안 아무것도
잡지 못하자, 마놀린의 부모님은 마놀린에게 산티아고의 배에 타지 못하게 했단다. 마놀린은 죄송한 마음 가득했지. 산티아고는 그것에 마음 상할 사람이
아니지.
이제 그는 혼자 바다를 나갔단다. 그러던 중 엄청나게 큰 고기를 낚았어. 그 고기의 힘이 엄청나서
산티아고의 배까지 끌고 갔지. 산티아고는 낚싯대를 잡고 버텼지만, 그
큰 고기의 힘을 이길 수 없었어. 낚싯대에서 손을 놓을 수도 있지만,
산티아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단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며칠을 고기가 끄는 대로 끌려가다가
결국에는 그 고기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단다. 산티아고의 배보다 훨씬 큰 고기를 잡게 된 거야.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지. 하지만, 또 다른 장애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피 냄새를 맡고 온 상어들의 공격이야. 처음에
온 상어, 그 녀석의 이름은 덴투소였지. 산티아고는 그 사나운
덴투소를 작살 등으로 죽였어. 또 한번의 승리였단다. 하지만, 그 다음 찾아온 상어 무리들을 상대하기는 어려웠어. 하지만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노를 이용하여 상어들을 공격했지만, 결국 큰 물고기를 상어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단다. 집에 도달했을 때 앙상하게 남은 물고기의 가시와 함께였단다. 그래도
노인은 실망하지 않았어. 그는 이번 고기잡이에서 두 번의 큰 승리를 거뒀으니 말이야.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어차피 상어에게 빼앗길 것, 그 큰 물고기를 죽인 것에 미안함 마저 들었단다. 하지만, 덴투소라는 거대하고 잔인한 상어를 제압한 것에 대해 산티아고는 자부심을 가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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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02)
너무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하는구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꿈이었더라면. 저 고기를 낚지 않고 차라리 신문지를 깐 침대 위에 그냥 누워 있었더라면.
“하지만 인간은 패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 저 말린을 죽인 것이 정말 미안하군. 그는
생각했다. 이제 어려운 때가 닥쳐 오는데 난 작살마저 없어. 덴투소는
잔인하고 노련하고 강인하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지. 하지만 나는 그놈보다 더 똑똑했어. 어쩌면 더 똑똑한 게 아닐지도 몰라. 단지 내가 더 잘 무장하고
있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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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나간 지 며칠 동안
소식이 없어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걱정하던 마놀린이 걱정을 내려놓으며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맞이해 주었단다. 이젠
더 오랫동안 고기를 낚지 못해도 마놀린은 늘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지 않을까 싶구나.
...
그리고 산티아고 할아버지
자신도 이번 일로 실망에 빠질 사람이 아니었단다. 그는 아마 다시 같은 일어 벌어져도 또 상어를 상대로
온 몸을 대해 싸울 거야. 그에게는 덴투소와 사투를 벌여 승리를 경험이 또 하나 축적되었고, 그와 함께 희망도 같이 축적되었으니 말이야. 다음 번에는 큰 물고기
온전히 데리고 올 거야. 반드시… 아참, 그의 옆에는 자랑스럽게 밝게 웃는 마놀린이 서 있을 테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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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그는 생각했다. 희망이 없다는
건 죄악이야.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 죄악 말고도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아. 게다가 나는 죄악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해.
난
그걸 잘 모르고, 또 그걸 믿는지 어떤지도 불확실해. 어쩌면
물고기를 죽이는 건 죄악일지도 모르지. 생계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더라도 그건 죄악일 수 있어. 그렇다면 모든 게 죄악이야.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세상에는
돈 받고 그런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도 있어. 그런 자들이나 죄악에 대해 생각하라고 해. 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넌 어부로 태어났을 뿐이야. 위대한
디마지오의 아버지가 어부였던 것처럼 산 페드로도 어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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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산티아고이다 보니, 꿈을 꾸더라도 사자 꿈을 꾸지… 비록 몸은 노인이지만, 그의 정신은 꿈 많은 청년이었어라.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이 이런 멋진 문장으로 끝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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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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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서
혼자 낚시하는 노인이었고,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이제
84일이었다.
책의 끝 문장: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아무튼 바람은 우리의 친구야. 그는 생각했다. 이어 때때로 그러하지, 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의 우군과 적군이 함께 있는 저 위대한 바다도 우리의 친구야. 그리고 침대도, 하고 그는 생각했다. 침대도 나의 친구지. 침대는 아주 멋진 물건이야. 패배당했을 때는 더욱 그렇지. 그게 이렇게 편안한 것인지 예전에는 몰랐어. 그런데 무엇이 자네를 패배시켰나?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날 패배시키지 못했어."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단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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