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지음, 윤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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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소설처럼> <몸의 일기>란 책으로 아빠가 좋아하게 된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또 다른 책 <학교의 슬픔>을 읽었단다. 아빠가 다니엘 페나크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글 속에 유머와 진지함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야.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빠의 영혼에 영향을 주었거든. 그래서 그의 다른 책을 찾아보다가 선택한 책이 바로 <학교의 슬픔>이란다.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는 지은이의 이름을 다니엘 페나크가 아니고, 다니엘 페낙이라고 적었네. 외국 작가의 이름들이 가끔 출판사마다 다르게 적어서 출간하는 경우가 있는데, 출판협회도 있고 그러니 어디선가 중재해서 작가의 이름은 하나로 통일해서 출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처럼 리뷰를 쓰는 사람들이 책의 지은이도 같이 적어 두는데, 다니엘 페나크로 써야 할지 다니엘 페낙으로 써야할지 고민하지 않도록 말이야.

이 책 <학교의 슬픔>을 보면서 너희들이 생각이 났어. 학교에 가기 싫다는 소리를 많이 하는 너희들이잖니..^^ 이 책의 표지를 보면 교실 안에 세 학생이 보이는데 모두 심각하거나 아주 재미없거나 당황한 표정을 짓는 두 아이와 시계를 쳐다 보는 한 아이의 사진이 있단다. 이 표정들만으로 이 아이들이 학교를 얼마나 싫어한다는 것을 절실히 알 수 있었어. 너희들도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가끔 하지만, 이 정도 표정까지는 아닌데 말이야. ㅎㅎ 어떤 선생님들은 학교 수업을 참 재미있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빠도 생각해보면 수업이 참 지루했던 것 같아.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그 시절에 책상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도 곤욕이었고 말이야.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어. 이 책은 지은이의 학창 시절의 경험과 선생님이 되어 직접 가르친 학생들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란다.


1.

지은이가 자신이 어렸을 때 열등생이고, 유급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가질 않았단다. 이렇게 재미있고 다양한 분야에 글을 쓰시는 분이 어렸을 때는 열등생이었다고 하는데, 믿기지가 않아. 그러면서 자신이 왜 다른 형들과 달리 열등생이 되었나에 대한 원인을 찾아보기도 했어. 교양 있고 안정적인 부모님, 똑똑한 세 형들 사이에서 자신만 돌연변이처럼 느껴졌거든. 알파벳도 제대로 못 외우고, 중학교는 재수를 해서 가고어렸을 때 지은이 때문에 부모님이 무척 걱정을 하셨대. 지은이는 자신이 그렇게 열등생이 된 이유를 자신은 기억도 잘 하지 못하는 여섯 살 때 쓰레기통에 빠졌다가 정신을 잃고 치료를 받았던 일화에서 찾고 있단다. 도저히 원인을 찾지 못하다 그나마 찾아낸 쓰레기통 사건. 그냥 웃으라고 엮은 이야기지만 지은이는 상당히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어. 그래서 더 재미있지만 말이야.

아무튼 지은이는 자신을 말하길, 명랑한 열등생이 평범한 생활을 하는 학생이라고 했단다. 그렇게 그런 열등생이 어떻게 선생님이 되고 소설가가 되었나. 그가 열등생이긴 하지만 열등생과 어울리지 않는 취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거야. , 역시 책이 답인가. 그리고 몇몇 선생님들을 잘 만났다고 하는구나. 자기 같은 열등생을 포기하지 않고 잘 지도해주신 선생들 말이야. 특히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지은이에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숙제를 내주었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다니엘 페나크에게 소설을 쓰는 숙제라고 하더구나. 정말 훌륭하신 선생님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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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나를 구해냈던 그리고 나를 교사로 만들었던 선생님들은 그 일을 위해 양성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무능한 학교생활의 기원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았다. 원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거니와 나에게 설교를 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위기에 빠진 청소년을 마주한 어른이었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던졌다. 그들은 나를 놓쳤다. 하지만 매일같이 다시 몸을 던지고 던지도 또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거기서 건져냈다. 나와 더불어 다른 많은 아이도 건져냈다. 말 그대로 우리를 낚아올린 것이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생명의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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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초반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신이 좋은 선생님이 만나서, 결국 자신도 선생님도 되고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헤피 엔딩의 이야기지금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는 아이들이나 열등생과 그들의 부모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그가 다닌 시대가 다르고, 그가 살고 있는 나라가 다르고, 그처럼 좋은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을 수 있고, 그처럼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구나. 그래서 선생님들이 더욱 존경스럽구나.


2.

책 후반부는 지은이가 선생님으로 경험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아빠의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이 떠오르기도 하더구나. 학생들의 거짓말을 모른 척 받아주는 선생님들아빠도 그런 선생님들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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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7)

하지만 선생이 거짓말을 모른 척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좀더 깊숙이 숨겨진 이유인데, 명석한 의식에 비춰보자면 대충 이런 거다. 즉 그 아이가 교사라는 내 직업의 실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발전시키지도 공부시키지도 못한 채, 그저 내 반에 들여놓고 그 아이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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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만 그렇겠니, 부모님들도 그렇겠지. 아직 너희들이 어려서 엄마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좀 더 크고 그러면 거짓말을 하겠지? 아빠를 포함한 모든 청소년들이 그러니까 말이야. 아빠도 그걸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모른 척할 때가 있을 거야.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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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지쳐버린 수많은 부모들은 사람의 진을 빼는 이런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척한다. 우선은 그들 자신의 고통을 잠시나마 진정시키기 위해(1515년 마리냐노 전투 같은 극소량의 진실은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엔 가족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하여 저녁식사 시간이 비극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제발 오늘 저녁은 아니기를, 각자의 마음을 찢어놓은 고백의 시련을 늦추기 위해, 요컨대 틈틈이 편지함을 살펴보던 당사자에 의해 다소 교묘하게 위조된 학기말 성적표를 받아들고, 사실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으면 학교생활의 재앙의 범위를 가늠하게 될 순간을 밀어내기 위해서다.

내일 생각해보자.

내일 생각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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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아빠가 공감하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시간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특히 그랬던 것 같구나. 아빠 같은 나이에 10년은 정말 휙 지나간단다. 그렇다 보니 너희들의 10년 또는 5년도 금방 휙 지나갈 것으로 생각되어, 대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그럼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준비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된단다. 하지만, 지은이가 이야기하길 어른과 아이가 생각하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는 거야. 아이가 생각하는 일 년의 길이는 생각보다 길다는 거지. 그 이야기를 듣고 아빠도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더구나. 일 년이 참 길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던 생각. 지금의 일 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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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11)

우선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알다시피 어른과 아이는 시간을 동일하게 지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십 년 단위로 계산하는 어른의 눈에 십 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 오십이 되면 십 년은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빠른 속도감 때문에 어머니들은 아들의 장래를 근심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오 년 후면 벌써 대학 입시네, 아니 이제 금방이잖아! 이 어린 것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근본적으로 뭐 그리 변할 수 있겠어? 그런데 아이에게 그 시절의 일 년은 천 년과도 같다. 아이의 눈에 자신의 미래는 뒤 이은 며칠 안에 몽땅 달려 있다. 아이에게 장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한을 센티미터로 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되다라는 동사가 아이에게 주눅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어른들의 걱정이나 질책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장래란 최악의 상태의 나를 말하며, 바로 그것이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선생님들의 말에서 내가 대충 이해한 바였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시간이란 게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조금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냥 순진하게 영원히, 언제나 바보일 거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영원히언제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열등생에게 시간을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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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 열등생으로 겪었던 경험이 있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기억으로 자신도 그런 선생님이 되려고 무척 노력하신 것 같아. 예전에 자신을 잘 이끌어주신 몇몇 선생님들을 늘 생각하면서, 자신도 학생들을 잘 이끌기 위해서 말이야. 물론 변한 시대에 맞게 아이들을 대하기도 하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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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24)

모든 점을 잘 따져보면 이 세 분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 우리의 고백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철자법의 결함을 이유로 내세우며 지 선생님은 내게 얼마나 여러 번 논술문을 다시 쓰게 했던가? 발 선생님은 내가 복도에 멍하니 있거나 자습실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러 번 보충수업을 시켰던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한 십오 분만 더 사학을 해보면 어떨까? 페나키오니? , 십오 분만 해보자……”)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 그들의 과목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 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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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선생님으로서의 경험을 주로 이야기를 했지만, 부모로서도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도움이 된 것 같구나. 아빠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이 책의 내용을 금방 까먹을 수도 있으니, 이 책을 엄마에게도 추천을 해야겠구나. 그런데 공부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나게 뛰어 놀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쌓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내일도 가기 싫은 학교를 가야 할 너희들을 생각하니 아빠도 회사 무척 가기 싫구나. 아참, 너희들은 내일 줌 수업이구나, 부럽구나. ㅎㅎ


PS:

책의 첫 문장: 에필로그부터 시작하자.

책의 끝 문장: 그뿐이다.


두 남자는 미소지으며 산책길을 따라간다. 그 모든 일이 그들 뒤로 아주 멀리 있다. 둘 중 한 사람은 이십오 년간 교직에 있었다. 대략 2500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중 상당수는 ‘심각한 난관’에 처한 학생들이었다. 두 남자는 저마다 가정을 꾸린 아버지다. 그들은 "선생님이 그랬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안다. 열등생이 지루한 푸념 속에 들어앉히는 희망, 그래 그거다…… 선생님의 말이라 급물살을 타고 추락하는 강물 위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붙잡고 매달리는 부표일 뿐이다. 열등생은 선생님이 한 말을 반복한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고, 규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놓여나기 위해’ 하는 말이다.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 P22

선생이라는 직업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다시 시작하는 일. 만일 우리가 한 명의 학생을 우리 수업의 직설적 현재에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의 앎과 그것의 활용에 대한 안목이 이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실존은 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막연한 결핍의 늪지에서 질척거릴 것이다. 물론 우리 선생들만이 그런 갱도를 파낸 것도 아니고, 그걸 메울 줄 몰랐던 것도 우리 책임만은 아니지만, 그때 그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혹은 몇 년의 어린 시절을 우리 앞에 마주앉아 함께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망쳐버린 학교생활 일 년은 하찮은 게 아니다. 어항 속에서는 영겁의 세월이다. - P82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이란 놀랍고도 짧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렇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걸. 예를 들자면 한 젊은이가 – 우연히 맞닥뜨린 불행한 사고는 제쳐놓는다 해도 –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나날조차도 나들이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옆 마을로 말을 타고 나설 작정을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자벨은 존경심을 표하며 그 작가의 이름을 말했다. 프란츠 카프카.
- P133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막시밀리앵은 젊음만능주의라는 동전의 이면이다. 우리 시대는 젊음의 의무로 이루어져 있다. 젊어야 하고, 젊게 사고해야 하고, 젊게 소비해야 하고, 젊게 늙어야 하고, 유행은 젊고, 축구도 젊고, 라디오방송도 젊고, 잡지도 젊고, 광고도 젊고, 텔레비전도 젊은이로 가득하고, 인터넷도 젊고, 사람들도 젊고, 살아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사람들도 젊게 남아 있고, 우리의 정치인들마저 마침내 다시 젊어졌다. 젊음 만만세! 젊음에 영광을! 젊어야만 한다! - P275

이때 담임선생님의 질문.
"신발은 걸어다니는 데 쓰이고, 상표는 뭐에 쓰이지?"
교실 구석에서 터져나온 돌발 발언.
"뽀다구 내는 데요!"
모두의 폭소.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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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5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7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