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를 좋아한단다. 아빠도 읽어보기는 했어. 군대 있을 때그 유명한 <상실의 시대>를 읽었지. 읽고 나서 느낀 생각은 사람들이 왜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단다. 그리고 군대 제대하고 집에 와 보니, 집에 예상 밖의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 한 권 있었어. 단편집이었던 것 같은데너희 고모가 어디서 얻어온 책인 것 같았어. 혹시나 열어봤는데음… 역시 아빠와는 안 맞아… 이러면서 책을 덮었단다.

그 이후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어. 그가 신간을 내놓을 때마다 사람들이 열광을 하고, 베스트셀러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단다. 그런데 몇 년 전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거기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소개시켜 주었고, 일부를 읽어주었는데아주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이런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하루키 소설을 읽어볼까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이제서야 하루키의 첫 번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소설을 읽게 된 것이란다. 책도 얇아서 하루키 소설을 맛보는데 좋을 것 같았단다. 맛이 별로면 다시 안 집어 들면 되고 말이야. 예전에 읽었으면 읽고 나서이런 것도 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 있겠지만, 그 동안 형식 파괴의 소설을 여럿 읽다 보니 잔잔하니 읽을 만하네…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니까 맛을 보긴 했는데정확히 잘 모르겠다는 말이야. 그럴 때는 한번 더 맛을 봐야겠지. 역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키 초기 4부작이 있다고 하더구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이 소설이 앞서 이야기한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소설로이것도 일단 구입은 해놨어.) <댄스 댄스 댄스> 이 책들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1.

이 짧은 소설은 앞서 이야기했지만, 소설이라도 해야 하나 할 정도로 특별한 줄거리가 없단다. 책 읽기 좋아하는 21살 주인공 ‘나’가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 때 고향에 내려와 지내는 일상을 적은 것이 전부란다. 하필 ‘쥐’라는 별명을 가진 부잣집 친구와 만나고, 제이가 운영하는 제이스 바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술집의 화장실에서 심하게 취한 여자를 집에 데려다 주었어. 그리고 며칠 뒤 우연히 들른 음반 가게에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되어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깊은 사랑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단다. 다시 도쿄로 학교로 떠나면서 여자와 헤어졌고, 겨울 방학에 다시 돌아온 고향의 그 음반 가게에 그녀는 없었어.

이렇게 특별한 줄거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강렬함이 읽는 이를 끌어당기지 않았나 싶구나. 첫 문장은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어떤 작가가 한 말이라고 했고, 마지막 문장은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주인공 ‘나’가 좋아하는 작가 하트필드라는 작가의 묘비명이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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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하루키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하루키 소설에는 항상 음악이 등장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 이 소설에도 주인공 ‘나’가 음반가게에 들러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찾았는데, 그때 음악가로 아빠가 얼마 전에 읽은 글렌 굴드가 나와서 반가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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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고 3번도.

그녀는 잠자코 이번에는 두 장의 LP를 들고 돌아왔다.

“글렌 굴드와 박하우스어느 쪽이 좋아?

“글렌 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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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늘 거창하고 극적인 줄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우리 일상과 비슷한 소설도 괜찮은 것 같아. 오늘은 여기서 끝~~~

  

PS:

책의 첫 문장 :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책의 끝 문장 :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10)
물론 모든 것으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게 그렇게 크게 고통스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론이다.
스무 살이 좀 지났을 때부터 나는 줄곧 그런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 그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여러 번 뼈아픈 타격을 받고, 기만당하고, 오해받고, 또 동시에 많은 이상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30)
"옛날 옛날에 아주 마음씨 착한 산양이 살고 있었단다."
멋진 첫마디였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씨가 착한 산양을 상상해 보았다.
"산양은 항상 무거운 금시계를 목에 걸고 헉헉거리면서 돌아다녔지. 그런데 그 시계는 너무 무거운 데다가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도 않았어. 그래서 친구인 토끼는 이렇게 물었지. ‘이봐, 산양, 왜 자네는 가지도 않는 시계를 늘 목에 매달고 다니는 건가? 무겁기만 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걸 말이야.’ 산양은 ‘그야 물론 무겁지. 하지만 익숙해졌거든. 시계가 무거운 것에도, 움직이지 않는 거에도 말이야’ 하고 대답했지."

(116-117)
어떤 신문 기자가 인터뷰 중에 하트필드에게 물었다.
"당신 소설의 주인공 월드는 화성에서 두 번 죽고, 금성에서 한 번 죽었습니다. 이건 모순 아닙니까?"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우주 공간에서 시간이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알고 있나?"
"아뇨,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도 모릅니다."
기자의 말에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걸 소설에 쓴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123
거짓말을 하는 건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의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대한 두 가지 죄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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