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있었노라. 나는 있노라. 나는 있으리라."

 

2017년에 로자 룩셈부르크를 읽는 기분은 특별했다. 무혈봉기가 광화문에서 일어나 전국을 들불처럼 휩쓸었고, 정권이 무너졌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으며, 그 새로운 정권은 날마다 언론을 향해 미소를 보내고 있다. 고요한 것은 고요가 아니었고, 인내는 인내가 아니었다. 어떤 권력도 자유와 평등을 날려 버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자유와 평등은 존중되어야 할 가치일뿐 억압하거나 탄압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로자는 나는 있으리라고 했지만 마르크시즘이 그러하듯이 지나간 사상가이며 정치가이다. 혁명을 주창하고 혁명의 대오에 몸을 던진 여자이지만 지금 시대에는 그러한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보았듯이 광화문에는 노래와 춤이 넘쳤고, 밤이면 촛불이 타올랐다. 혁명은 다른 이름으로 호명되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구시대의 혁명가인 로자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그녀의 자유와 평등, 인간애를 향한 열정일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로자를 읽는 것은 우리 가슴속의 열정을 끌어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마르크시즘은 죽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문화와 예술에서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촛불로 타올랐다. 마르크시즘을 인간이 살기 좋은 사회에 대한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 불공정하고 자유롭지 못하며 불평등한 사회의 혁명을 꿈꾸며,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잠재되어 있는 꽃씨와도 같다. 로자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죽었으나 살기 좋은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꽃씨처럼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이론으로는 탁월했으나 전술과 현실정치에서는 무능했던 로자는 결국 반대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로자는 어쩌면 정치인보다는 사상가로서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자는 혁명을 원했고, 정치와 사회가 바뀌기를 원했지만 전술과 현실정치에서 전략가들에게 밀렸다. 로자는 어쩌면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로자를 읽는 이유는 무력하게 가라앉아 있는 삶의 열정을 되살리고 싶어서이다. 혁명의 낯선 대열에 몸을 던지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로자의 열정은 시대를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다. 열정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영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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