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임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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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갈수록 험난하고 가난하여 이 길이 가야 할 길인가를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그러나 그 물음은 헛되다. 나는 이 길이 가야 할 길인지 아닌지를 물을 겨를도 없이 가고 있으며 가야 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 묻고 물으며 천천히 발을 내디딘다.

무용한 것들의 대표적인 예가 예술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실용과 무용을 따지자면 예술은 무용의 대열에 서겠지만 그러나 사랑하지 않을 도리 또한 없다. 그리하여 예술은 생존한다.

폴리나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늘 의문을 가지는 현대 예술에 대한 물음이다. 현대 예술이라 일컬어지는 예술은 여전히 예술로서 유효한가. 물론이다. 그것이 예술이라는 이름을 얻고 있는 한 현대예술이든 고전예술이든 예술로서는 유효하다. 다만 형식이 다를뿐이다.

폴리나는 클래식 댄서이다. 끊임없이 질문은 던지는 보진스키 교수는 다른 댄서들과 불화를 일으키지만 폴리나는 묘한 매력을 느낀다. 댄서 개인의 생각은 없이 가르치는 교수의 생각에 따라 생각없이 따라하기를 강요하는 다른 교수들에 비해 보진스키는 자신이 구현한 실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에 예술가의 퍼포먼스는 항상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야 실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보진스키의 말은 예술의 과정에서 겪는 불만과 절망을 위무해 주지만 도달해야 할 길 또한 멀고 험난함을 알려 준다. 춤보다는 춤의 실질적인 가치, 즉 철학을 요구하는 보진스키는 당연히 댄서들에게 인기가 없다. 폴리나 역시 보진스키를 떠나 독일로 가서 현대예술가들과 합류한다.

그러나 연극과 춤의 조합으로 성공을 거둔 폴리나는 늘 마음 한 켠에 보진스키를 생각한다. 즉 자신의 춤의 밑바닥에 보진스키가 존재했다는 말이다. 보진스키가 가르쳤던 춤의 기본 위에 자신의 성공이 있음을 폴리나는 인정하는 것이다. 탄탄한 기본기를 쌓은 후에야 모든 퍼포먼스가 가능함은 어떤 분야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예술은 특별하다. 얕은 바탕은 퍼포먼스의 격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만큼 오랫동안의 탄탄한 기본기 수련이 후에 날개를 달아줄 바탕이 되는 것이다.

현대예술은 결국 예술의 기본이 튼튼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칫 현대예술은 개인기나 테크닉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그 테크닉은 잠깐의 눈속임에는 유효하나 오래가지는 못한다. 질낮은 개인기나 테크닉의 성공에 환호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의 본래성으로 돌아가기를 권하는 이 짧은 만화는 내가 가고 있는 예술의 길을 잠깐 멈추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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