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반이 남자고 반이 여자인 엄연한 현실앞에서도 여자인 우리는 가끔씩 여자이기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고등학교 진학할때부터 내가 여자라는 것, 그래서 필연적으로 남자에게 권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강요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이지 못해 부모님과 오랜 기간동안 대치(?)했지만 결국 내가 져야 했고, 그 기억은 내 삶에서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되어 있다. 

여자로 산다는 것은 어렵다. 남자들은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일들에 여자들은 노출되어 있고, 그 부당함을 이야기해보았자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해하지도, 받아 들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목소리가 높아지면 으례히, 많이 배운 여자들은 드세다고 핀잔받는다. 남자들이라면 당연히 누릴 권리들을 여자들은 투쟁을 통해 얻어내어야 할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내 부모님 세대가 아닌 내 세대에서도 나는 충분히 차별받으며 자랐다고 생각한다. 먹고 입는 사소한 문제에서는 차별을 못 느꼇지만 내 인생을 결정지을 중대한 문제 앞에서는 어김없이 여자라는 것 때문에 위축되기를 강요받았고, 그때마다 나는 분노했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말을 딱 부러지게 잘 하는, 그래서 벅차고 드센 여자라는 평판이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자란 여자가 얼마나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다고 믿는가. 

 물론 그렇지 않은 여자들도 많은 것이다. 나는 단지 우리 세대의 대부분의 여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시골 중학교 동기 중에서 정상적으로 대학을 간 여자 친구는 단 한명이었지만 남자들은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 남자들보다 훨씬 우수한 여자들은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어렵게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하고 집안의 또다른 남자 형제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던 것이다. 

<공자의 이름으로 죽은 여인들>을 읽어 보면 그래도 우리의 삶은 목숨을 담보로 한 삶은 아니었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가문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했던 여인들, 더 나아가 순장의 운명을 받아 들여야 했던 여인들 앞에서 나의 한탄은 어린아이의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명청시대 중국의 여인들은 예의 관습에 얽매여 목숨을 버려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것도 남편이나 약혼자가 죽었을때 자신의 절개를 보여 주고 가문의 영광을 위해 공개적인 목 매달기, 즉 탑대의식을 통해 자살을 했다. 구름처럼 모인 관중들은 여인의 탑대의식을 구경하면서 여인의 절개를 칭찬하고 가문의 영광을 부러워했다니 여인의 목숨을 통해 가문의 영광을 얻으려 한 그 가문이 오히려 초라하고 비참해 보인다. 

'충신은 두 군주를 섬기지 않고 열녀는 재가를 하지 않는다'라는 가르침은 역사적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지금까지 여인의 재가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게 한다. 통치자들의 통치도구로써 쓰여졌던 이 말이 얼마나 여성을 억압하고 세뇌시켰는지 그 가치를 생각해 보면 차마 말을 잃게 한다. 거기에다 여아의 살해 현상으로 여자가 부족한 중국에서는 과부를 팔아 재산을 챙기려는 시댁 식구들의 파렴치한 행위와, 자결을 통해 여인의 절개를 보여 주고 가문의 영광을 드높이기를 바라는 친정 식구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여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거기에다 직접적으로 여인을 규제하는 각종 법규들, 가령 '여성은 결혼, 토지, 재산 등에 관한 문제로 다른 사람을 고발하기 위해 법정에 서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은 여인의 생존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었다.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고소 고발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지역 사회로부터 배려를 받을 수도 없었던 여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 아니더라도 자살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것은 중국의 과거 이야기이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멀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다. 여성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법률 개정을 하나 하는데도 전국의 유림이 벌떼처럼 일어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많은 법률이 여성들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개정되고 있지만 아직도 곳곳에는 틈이 많다. 거기에다 홀아비에게는 동정의 눈길을 보내면서 과부에게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 사회의 정서도 여성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현풍에 가면 현풍곽씨 12정려각이 있는데 여기에 모셔진 열녀, 효자들은 모두 15분이다. 그 열다섯의 사람들 중에서 6명이 열녀이다. 여자를 팔아 가문의 영광을 샀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정려각 앞에서 어느 한 해 자랑스럽게 가문을 자랑하던 집안의 어른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거슨 차라리 슬픔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도덕적, 법적, 종교적 , 문화적 요인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많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여성들을 남성들과 동등한 자리에 놓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반문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열녀각이 한 여인을 어떤 아픈 삶으로 몰아 넣고 결국은 죽음으로 몰아 갔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히 생각만 하던 것들을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하면서 치밀하게 분석해 간 이 책을 보면서 이 책을 쓴 중국의 한 학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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