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아웃케이스 없음
데이비드 핀처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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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적이 있었는가. 이별했던 사람과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고,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고, 꼭 하고 싶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기 위해 한번쯤 시간이 거꾸로 흘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가. 불가능한 일을 열망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정서다. 욕망은 불가능한 것에 더 강렬하게 타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찌기 헤라클리이토스가 설파했듯이 흐르는 강울에는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이고, 또 사실 우리네 인생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간다.

 우리 인간을 만든 창조주도 한번쯤은 그 인간을 대상으로 살짝 장난을 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창조주의 치기 어린 장난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 벤자민 버튼이라는 한 사내에게 일어난다.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한 아들의 죽음 앞에서 그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갈망하는 한 시계공이 만든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벤자민에게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80대의 노인에서 삶을 시작하는 벤자민은 태어날때 이미 양로원의 노인들과 같은 행색을 하고 있었다. 벗겨진 머리에 주름진 피부, 희귀병을 안고 태어난 벤자민은 아버지에게서 버려져 양로원에서 일을 돌보는 한 흑인 여자에 의해 길러진다. 벤자민이 괴물처럼 생긴것을 보고도 운명이 있다는 것을 믿는 여자는 기꺼이 벤자민을 돌보기 시작한다. 어느날 휠체어에서 일어나고, 어느날 목발에 의지해 걷기 시작하고, 어느날 누구의 도움도 없이 걷기 시작하는 벤자민은 시간이 흘러 갈수록 점점 젊어진다. 아직 머리가 벗겨진 노인일때 예인선을 운행하는 선장을 따라가서 첫 경험을 하고, 처음으로 술을 마시며 강을 따라 떠돌면서 벤자민의 머리카락은 나기 시작하고 주름도 적어진다. 

 벤자민에게는 아이이자 노인이었을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한 꼬마 여자친구가 있었다. 이 여자친구가 늙어서 죽음을 기다리며 벤자민이 쓴 노트를 딸이 읽어주는 것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영화는, 그러므로 이 노인과 딸의 대화를 통해 이어진다. 액자소설 같은 형식을 빌어 회상으로 이어지는데 회상은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자면 동트는 새벽에 찾아오는 존재에 대한 추억이다. 노인은 벤자민이라는 한 존재에 대한 추억을 통해 자신들의 아름다웠던 사랑 이야기, 시간을 거꾸로 사는 한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한평생 벤자민을 사랑했던 노인과 벤자민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은 어머니의 입을 통해 그 노트를 쓴 벤자민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알게 되고, 그 벤자민이 아주 훤칠한 청년기였을 때 단 한번 본적이 있음을 회고한다.

 

점점 젊어지면서 키도 자라고, 주연을 맡은 브레드 피트의 본 얼굴이 드러나는 청장년기를 정점으로 이 영화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자신이 점점 젊어지는 대신에 자신의 딸은 점점 자랄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한 벤자민은 딸에게 그 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 방랑의 길에 오른다. 벤자민이 떠난 후 여자는 재혼을 하고, 세월이 흘러 재혼한 남자도 죽은 어느 날, 벤자민은 아이의 모습으로 자신이 자란 양로원으로 돌아온다. 거기에서 벤자민은 10대의 모습이 되고, 어린애의 모습이 되었다가 결국은 갓난 아이의 상태로 여자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자신의 딸에게는 늙어가는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지 데리고 놀아줘야 하는 어린 아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벤자민의 말은 늙어감을 한탄하는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남긴다. 자연스럽다는 것,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처럼 다행스럽고 편안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만의 시간이 거꾸로 흘러 내가 내 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가 된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므로 영화는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우리 삶에 안도하게 하면서도 벤자민의 삶에 안타까움을 가지게 할 수밖에 없다.

 

죽지 못하는 인간의 삶을 다룬 소설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이유로 죽지 않는 축복을 받게 된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는 몇 백년 동안 죽지 않았다. 상처를 입어도 자연회복이 되었고, 이빨이 빠지면 새로 올라오기를 반복하면서 이 남자의 가장 간절한 소원은 죽은 것이 되어 버렸다. 삶은 견딜 수 있는 것만을 견딘다. 우리 삶이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죽음이 앞에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의 극한 순간에는 죽음에 자신을 맡겨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죽을 수 없다는 것, 어떠한 고통이 자신을 짓눌러도 그 고통을 오직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인간을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지 못한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한번쯤 시간이 거꾸로 흘러 갔으면 하고 바란적은 많다. 그러나 몸에 치명적인 병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런 불행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을 때쯤 우리는 이제 이 세계로부터 서서히 물러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세계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 내 거처를 누군가에게 물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기왕이면 잘 늙어 잘 죽는 순간이었으면 한다. 벤자민처럼 갓난 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처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모습 그 자체가 추해 보일 때 죽음이 찾아 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것이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죽는 방식이므로.

 

이런저런 매체에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우연히 비디오방 앞을 지나다가 광고판을 보고 망설임 없이 빌렸다. 액션이나 쇼킹한 것을 보고 싶다면 보지 않는 것이 좋지만, 삶이 버겁고 한번쯤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이 영화를 보면 많은 위로가 된다. 거기에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매혹되었던 배우 브레드 피트의 조각같은 얼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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