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들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서운 일을 많이 당한다. 그것이 배신이라고까지 생각되는 일이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삼키기가 어렵다. 그러나 사람살이라는 것이 내가 남을 배신하기도 하고, 남이 나를 배신하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 버리면 더 이상 타인의 배신 따위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게도 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타인으로 인해 상처를 받으며 산다. 설령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이 소설 <열정>은 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친구가 자신의 아내와 간음을 하고, 급기야 자신을 죽이기까지 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장군은 자신을 떠나버린 친구를 평생 기다린다. 자신의 아내였던 크리스티나는 친구가 떠나버리자 장군의 옆 성에서 7년을 혼자서 보내다가 결국은 병으로 죽는다. 사냥터에서 친구가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날, 느낌으로 친구의 열정을 감지한 장군은 사냥터에서 돌아와 곧바로 친구의 집으로 간다. 그러나 이미 친구는 열대 지방으로 떠나 버린 후, 거기서 우연히 크리스티나를 만난 장군은 한순간에 그 모든 사실을 알아 버린다. 친구가 자신의 아내와 사랑을 했고, 그래서 사냥터에서 자신을 죽이려다 말았다는 것을. 

 이후 장군은 성의 문을 닫아 건다. 이후 성에는 단 한번도 파티가 열리지 않았고, 어떤 손님이 와도 장군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친구는 평생동안 그 친구만 기다린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 정말 친구가 자신을 죽이고 싶어 했는지, 정말 자신의 아내와 친구가 사랑했었는지. 그 모든 것들은 장군은 친구로부터 직접 듣기를 원한다. 젊은이였던 장군은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고, 이제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한다. 

 드디어 장군의 성으로 친구가 찾아 오겠다고 기별이 온 날, 장군은 친구가 떠나 버린 그날 그대로 간직해 두었던 성에서 친구가 떠난 이후 처음으로 손님맞이 준비를 한다. 모든 것은, 식탁의 음식까지 친구가 떠난 마지막 날 그대로이다. 둘은 그날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그날과 똑같이 꾸며진 거실의 난로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백처럼 이어지는 장군의 말, 정말 친구는 자신을 죽이고자 했는지, 아내와 친구는 정말 사랑을 했었는지, 그래서 한때 자신은 증오와 배신감, 복수의 열정으로 시간을 보내었는데 이제는 모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친구에게 담담히 밝힌다. 그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독백처럼 말하는 곁에서 친구는 침묵한다. 장군의 이야기가 끝나자 친구는 끝까지 침묵하면서 성을 떠난다. 

 우리도 그런 순간이 많지 않았는가. 젊은 날 한때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것 같은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을, 그러나 그것은 그 당시에는 우리를 증오와 복수심으로 들끓게 한다. 죽음을 앞두게 되면 그런 것들로 하찮게 여겨지기 시작한다는 장군의 말을 나는 받아 들일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결말 부분의 장군의 독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문체는 사소한 일들에 들떴던 일상속의 우리들을 성찰의 시간으로 돌려 놓는다. 장군의 말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타인을 보게 되고, 타인을 재단하려 했던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소설의 제목이 <열정>이라는 것에 많은 의문을 품었다. 열정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 답은 장군의 말 속에 있다. "어느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 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그렇다.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의 삶의 의미가 있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 정열로 인해 우리는 삶을 이어가며, 그 정열이 가라앉는 날, 드디어 우리의 삶은 삶보다는 죽음을 향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열에 헛된 열정을 태우지 말기를. 무엇으로부터 배신당하거나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에 괴로워하는 날, 이 소설을 읽는다면 마음 한 켠 저 멀리서 그 들뜸을 가라앉히는 그 무엇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날의 삶을 헛사는 것이 아니라고 위안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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