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무언가를 접어놓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자주, 또는 얼마나 뜸하게 불쑥불쑥 나타나 사람을 몽상에 잠기게 하는지를. 그래서 마음속에 접어놓은 것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 접어놓은 것이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 마음 속에 접어 둔 사람 하나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책을 읽고 책장의 가장 아래 칸에 넣어 두었던 책,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스밀라는 내 책장의 가장 아래 칸으로 떨려 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주자주 나를 몽상에 잠기게 만들었다. 이 책을 손이 잘 닿지 않는 책장 맨 아래 칸으로 넣은 이유는 두 번 끄집어 낼 일이 잘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재를 쥐방구리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딸아이의 눈에 띄지 않는다면 아마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 쓰고 숨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읽기에는 어렵고, 추리소설을 두 번이나 꺼내서 읽을 일이야 뭐 있을라구 싶었다. 그렇지만, 물론 책 자체가 다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책의 주인공인 스밀라는 어느 책보다도 자주 내 기억 속으로 드나들었다.
나는 남성적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소리를 잘 듣지 않게 되었다. 도시에서의 팍팍한 삶을 견디고, 나이가 주는 삶의 중압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말수가 줄었고, 쓸데없이 나대는 성질도 바뀌었고, 그러다보니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남성적이라는 소리가 어느 날부터인가 점잖다는 소리로 바뀌었고, 더 심하게는 조용하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면서 이걸로 내 청춘은 영영 끝인가 했었다. 점잖다는 소리도, 조용하다는 소리도 내가 듣고 싶은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주관이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싶었는데 내 몸은 자꾸만 뒤로 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태도에 대한 아쉬움 속에서 발견한 스밀라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때로는 원시적이기까지 한 야생적인 힘이 넘치는 매력적인 아가씨이다. 학교를 몇 번이나 퇴학당하고, 덴마크의 부자 아버지보다는 그린란드의 사냥꾼인 어머니를 더 좋아하는 여자, 이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소리는 ‘갇힌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덴마크의 도시로부터 도망치는 서른이 넘은 여자, 이 여자는 어느 날 친구처럼 지내는 동네 꼬마의 죽음을 목격한다. 3층 건물의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것처럼 보이는 꼬마는 그러나 스밀라의 눈에는 자살로 보이지 않는다. 그린란드에서 자랐으므로 눈과 얼음에 대해서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스밀라의 눈에 보인 지붕위의 눈 자국이 꼬마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다. 꼬마의 죽음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서 스밀라는 덴마크 빙정석 주식회사가 얽혀 있는 거대한 음모를 찾게 되고, 이론과 실천적인 용기까지 갖춘 스밀라는 그 음모 속으로 직접 몸을 던진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가장 크다. 지루하거나, 내내 보던 책이 너무 딱딱하거나, 뭔가 일상을 바꿔 보고 싶을 때 나는 소설을 본다. 소설에서 무슨 교훈을 찾는다거나 하는 건 내 체질이 아니다. 소설은 그냥 소설다우면 그만이다. 소설답다는 것은 욕구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고, 한나절 정신없이 빠져들 수 있고, 무엇보다 일상을 잊어버릴 만큼 재미있으면 된다. 내가 가장 충족시키지 못하는 욕구불만 중의 하나는 바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돈과 시간과 자유만 있다면 나는 이 밤에라도 차를 몰고 가거나,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다.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모조리 돌아다니다가 지치면 집으로 털레털레 돌아오고 싶은 욕구불만,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이 욕구불만을 나는 소설에서 많이 해결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덴마크와 그린란드는 지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북극해를 끼고 있고 빙산이 있는 그린란드는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여자들도 남자들과 같이 사냥꾼이 될 수 있고, 남자들과는 오직 사냥으로만 평가받는다. 덴마크의 부자인 아버지가 반해 버린 위대한 사냥꾼이었던 스밀라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고 싶어하던 도시로 가지 않고 결국 사냥터에서 실종되지만 그것이 그곳에서는 당연한 삶이다. 덴마크령의 그린란드인들은 도시에서는 하층 계급으로 살지만 그린란드에서는 땅의 주인이 된다.
안개가 어는 것은 어떤 풍경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정말 궁금했던 것은 안개가 얼면 어떤 풍경이 그려질까 하는 것이었다. 안개가 언다는 것,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자세한 문자의 설명으로도 그려지지 않는다. 지도에 묘사된 빙산 공동묘지라는 곳, 빙산들의 묘지라니, 빙산들이 어느정도의 크기로 부서져야 공동묘지에 입성할 자격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빙상 공동묘지라니 생각만 해도 풍경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이런 생각들로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밀라가 따라가는 범죄의 현장보다는 스밀라가 타고가는 배가 지니가는 바다쪽으로 더 마음이 끌렸다. 사진에서 본 빙산과 극 사진들이 머릿속을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결국 내가 상상한 것은 몽상의 작품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고, 이 소설을 자주 생각했고,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이고, 도회적이면서도 야생적이고, 다정다감하면서도 인간의 아킬레스를 칼로 자를 줄 아는 스밀라에게 반해 버렸다.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세상 속으로 스며들거나, 아니면 그 세상을 버리거나,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찾아가는 스밀라를 통해 가면을 쓰고 사는 내 삶을 보게도 됐다. 그러다 보니 자주 소설이 꽂혀 있는 책장의 맨 아래칸으로 눈이 가게 됐고, 나중에 우리 아이가 눈이 밝아 나이보다 좀 더 빨리 이 소설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