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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시학 ㅣ 동문선 문예신서 183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곽광수 옮김 / 동문선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책들을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는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보다 더 어렵다. 나의 한 책의 독서에 대한 역사를 더듬어 보아도 그것은 과거의 시간과 나의 행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예전에 읽었던 낡은 책들은 전혀 처음으로 읽는 것처럼 새롭게 읽을때가 있다.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인 것이다.
현상학과 해석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넓게 펼쳐 놓았던 공부의 범위를 좁히면서 깊이 파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읽게 된 책이 바슐라르의 책이다. 현상학을 더듬어 가며 세계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서 책들은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섣불리 단정하고 규정지었던 많은 일들과 문자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사실 문제는 좀 더 복잡해졌다. 단순함에서 복잡함의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철학적 현상학을 원하지 않았던 나는 내가 결국 추구하고 있는것이 문학적이면서 철학적인 현상학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고, 그것은 자칫하면 철학으로부터도, 문학으로부터도 외면받을 일임을 알면서도 그 길로 들어서기로 했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더듬다가 마주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미 그 전에 바슐라르의 대략적인 사상을 거쳐 온 후라 책을 읽는 것이 별로 어렵지는 않다. 바슐라르까지 더듬어 온 사람이라면 별로 부담없이 읽을 수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워낙에 난해한 철학서들에 진저리를 낸터라 오히려 이 책은 재미있고 즐겁게 읽을수 있기조차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깨달았던 것은 우리시대의 많은 시론서들이 바슐라르의 이론을 차용하고 있거나 거기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인양 하는 사람들이 이 바슐라르의 책에 나오는 몇가지 주장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마치 자신의 이론인양 써먹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공간의 시학』은 그런 바슐라르의 책 가운데서 공간, 즉 우리 삶에서 항상 마주치게 되는 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펼쳐 놓고 있다. 가령 여기서 인용되는 집이나 상자, 새집, 조개껍질 따위, 도는 구석이라는 공간이나 세미화 속의 공간, 더 넓게 말하자면 안과 밖, 원등이 저자의 현상학적인 시각으로 보여지고 있다. 이런 공간들을 명상하면서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행복한 공간의 이미지”를 검토하려고 했다고 실토한다. 집이라는 공간, 상자나 서랍, 옷장등의 공간, 새끼를 낳기 위해 짓는 새집등은 모두 행복을 창조하기 위한 공간인 것이다. 또한 저자는 “상상력에 의해 파악된 공간은 기하학자의 측정과 숙고에 내맡겨지는 무관한 공간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 공간을 우리들이 사는 것이다. 그 공간의 실제성에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상상력의 모든 편파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바슐라르의 현상학이 상상의 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어진다는 것을 알면 이런 주장들은 한결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우리 문학의 숱한 모티프가 되는 이런 공간에 대한 바슐라르의 명상은 물론 우리들이 느끼는 동양적인 공간과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일치한다. 우리가 굳이 공간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고 싶어하는 이유는 거친 세상과 단절되어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인 것이다. 힘들여 집을 짓고, 기분이 우울하면 공간 속으로 숨어 드는 것은 그곳에서 우리 삶의 위안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의미들을 이해하고 나면 문학작품들을 해석해 내기가 한결 쉬워진다. 작품 해석에 어떤 규범이 있어야 한다는데는 별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순전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에도 동의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바슐라르의 논의는 의미가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바슐라르의 대부분의 책을 구입했다. 내 공부의 목표점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아서 여기서 어떤 과제를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역사를 더듬어 몽상의 시학과 물과 꿈을 더듬어 읽으면서 나는 시를 쓸때처럼 행복한 기분에 젖어든다. 그리고 약간의 몽환적인 기분에도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