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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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보다 좀 더 나이가 들어 이제는 사랑 따위를 입에도 올리지 않을것 같은 나이가 되면 과연 사랑은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나 있을까. 예언컨데 우리가 지금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10대를 거슬러 20대, 30대를 지나고 있듯이 사랑도 아마 영원히 과거형이나 현재형, 또는 미래형으로 이야기되고 있을 것이다. 20대의 불같은 열정을 품은 사랑은 아니라 해도 여전히 가슴 속에는 사랑의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 사랑이 주는 고독감에 때로 하루를 우울하게 보낼지도 모른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좋아한 것은 그의 유명한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 때문이었다. 어릴적 멋모르고 읽었던 소설이지만 나는 이 소설에 깊은 영감을 얻었고, 라틴아메리카인들의 자유로우면서도 우수에 찬 삶,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은 카리브해를 떠도는 공기처럼 내 마음을 떠돌고 있었다. 비규격적이고 난해하면서도 엄격성을 지니고 있던 소설에서의 라틴아메리카인들은 무엇보다도 삶을 사랑하는 것 같았고 사랑에 목숨을 걸 줄도 아는 유쾌한 민족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때 마르케스란 이름은 내게 자유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그 이름은 자유로운 사유의 대리인으로 내 영혼을 활보한다.  영화 '일 포스티노'를 통해서 드러나는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색과 열정적인 사람들, 그 바닷가에서 시를 쓰며 체제에 저항하던 파블로 네루다, 오토바이 한대에 의지해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는 체 게바라와 더불어 마르케스는 항상 한번도 가보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작가였다.

 이국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지리하면서도 끝도 없는 멀미를 느끼게 한다. 방학이 시작되자 나는 한때 멀미를 일으켰던 영어를 극복해보고자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가끔은 이 낯선 문자의 숲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체득되어야 할 언어를 암기를 통해 습득하려니 때로는 미친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렇듯 지리멸렬한 시간 속에서 나는 바닷바람을 쐬이는 심정으로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펼쳤다. 항상 이렇다. 복잡한 터널 속에서 허둥거리고 있을때 나는 소설을 보거나 시를 읽는다. 그러다 터널속을 되돌아보면 그 터널이 명료해질때가 있는데 그러면 다시 나는 터널속에서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손에 든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1권을 읽을때까지, 이거 뭐 어쩌자는 거야, 도대체 마르케스가 뭘하자는 거지, 라는 의문점에 시달렸다. 당연히 이국의 언어에 대한 멀미처럼 아련한 멀미도 느꼈다. 마르케스의 자전적 겯향이 강하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본듯도 하여, 마르케스가 이런 사랑을 했구나 라는 막연한 심정으로 읽었다. 그리고 이 나이에 연애 소설이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흔한 대중연애소설처럼 가볍지는 않다. 때로 라틴아메리카인들의 삶의 습관을 내밀히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고,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사랑을 하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사랑은 사실은 순전한 겉모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 주변 사람을 돌아보건대 성인군자연하는 그들도 사실은 이 소설처럼 모두들 은밀한 사랑을 하는건 아닐까 하면서 괜히 주변 사람들을 의심해 보게도 한다. 그러다가 1권을 읽었으니 끝장을 내자는 심정으로 2권을 읽었고, 2권의 후반부에 가서야 드디어 이 소설이 많은 문학평론가들이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이유를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 

 십대에 우연히 알게된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는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그 여자 곁에서 맴도는데, 사실 그 여자는 한때의 사랑이었던가 싶었던 모호한 실체를 부정하면서 그 사랑을 잊어 버린다. 그리고 결혼생활이란 행복보다는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남편의 말에 따라 살다가 남편이 우연히 사고로 죽자, 오랫동안 그 여자 주변을 맴돌던 남자는 다시 그 여자에게 구애의 손길을 뻗친다. 당시 라틴아메리카에는 콜레라가 유행했는데 선박회사의 사장이었던 이 남자는 그 회사에서 가장 좋은 배를 타고 여자와 강 여행을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많은 짐들과 손님들 때문에 지쳐하는 여자를 보고 남자는 당시 배 안의 승객에 콜레라 환자가 있으면 노란색 깃발을 달던 관습에 따라 배에 노란 깃발을 달고 항해한다. 배에는 그 남자와 여자, 선장과 중간에서 탄 선장의 애인, 승무원 몇 뿐, 어느 항구에도 설 이유가 없고, 누군가를 태울 이유도 없다. 누구도 곁에 오기를 꺼리는 노란 깃발을 단 배를 타고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온 남자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적인 고통에 맞서 선장에게 다시 배를 돌릴 것을 요구한다. 그러한 왕복여행을 언제까지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선장에게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목숨이 다할때까지"

 이미 오십을 넘어 당시의 평균수명으로 볼때는 죽음이 가까운 나이인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은 아마도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평생을 바라보았으나 젊은날에는 한번도 사랑을 해보지 못했던 불행한 사랑이었지만 남자는 한번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소설에 나오는 여러가지 형태의 사랑은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볼때 비도덕적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건대 문학작품에서 윤리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문학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비윤리적이어서 소설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하는데, 그러한 기준을 적용해 버리면 그 소설은 하나도 재미가 없다. 우리 삶에서도 그러하지 않은가. 윤리적인 삶은 안정감은 주지만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윤리니 비윤리니 하는 것들의 기준조차 모호하기 그지없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명한 소설을 독파한다는 마음으로, 이왕 시작한 거 끝장 내겠다는 심정으로 읽다 보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어 있다. 나는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문장을 해석하다가 분명이 어제 외운것이 깜깜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 짜증을 견딜수 없을때마다 이 책을 펴고 읽었다. 며칠동안 영어 단어와 연애소설을 왕복하는 사이 어쨌든간에 영어책의 페이지수도 넘어가 있었고, 소설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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