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미래 - 사슴부족 이누이트들과 함께한 나날들
팔리 모왓 지음, 장석봉 옮김 / 달팽이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지만 우리의 기억에 각인되어서 가끔씩 무의식의 세계를 비집고 튀어 나온다. 잊혀진줄 알았던 감정들이 새삼스럽게 들추어지고, 잊혀진 사건들이 어떤 일을 계기로 다시 돌이켜지면 우리는 현재와 과거, 미래가 다른 시간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과거 위에 오늘의 시간이 있고, 이 시간을 바탕으로 미래가 구성된다. 그러므로 과거를 잊어버린다면 미래 또한 기억될 수 없다. 미래는 우리의 멀고 가까운 과거이기 때문이다.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에스키모라는 용어는 원래 그 부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이름이다. 이는 인디언들이 붙인 이름으로 원래 에스키모라고 불리는 이들의 고유의 이름은 '이누이트'이다. 이들은 이누이트쿠, 즉 인간의 강이라고 부르는 호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부족을 가리켜 붙인 이름으로 '인간'이라는 단순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순한 이름은 광대한 자연 속의 많은 생물들 가운데 인간으로 불리는 한 종족을 가리킬뿐이다.

  그 이누이트들 가운데 사슴부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사슴고기를 먹고 사슴의 가죽으로 된 옷과 집을 짓고 살며, 오랜 식습관으로 인해 사슴고기를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이 글은 사슴부족 사람들의 생존기, 즉 툰드라의 극한 기후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캐나다 정부는 이누이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툰드라 남쪽, 그러니까 사슴부족이 사는 북쪽내륙보다 기온이 더 온화하고 살아가기 좋은 남쪽 바닷가에 정착촌을 마련하고 그들의 생활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사슴고기를 먹으며 살도록 진화되어온 그들에게 이것은 재앙이나 다를바 없었다.

  이미 백인들이 북쪽내륙, 백인들이 들어가 살 수 있는 한계선까지 들어가 사슴을 잡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총과 밀가루를 주면서 사슴보다는 여우를 잡도록 두어차례 유혹하여 그들의 생존환경을 무너뜨린 적이 있었다. 이누이트들에게 흰여우털을 가져오면 총과 밀가루를 주면서 교역을 하던 백인들은 경제공황이 밀려오면서 흰여우털이 소비되지 않자 교역소를 일방적으로 폐쇄해 버렸다. 영하 50도에서 70도를 넘나드는 겨울, 여우털을 가지고 교역소를 찾아온 이누이트인들은 모두 빈 손으로 되돌아가야 했고, 사슴을 잡아서 겨울을 대비하지 못한 그들은 기아로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다. 그리고 백인에게서 전해져 온 전염병이 돌아 수천명의 이누이트인들이 죽고 겨우 수백명만이 살아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백인들은 그들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슴을 잡기 위한 총과 탄약뿐, 나머지는 그들이 수천년동안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 부족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텅 빈 공간이라는 사실, 그게 나를 가장 못 견디게 했던 것 같아. 망할 놈의 얼어 죽을 빈 공간, 그게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면 너는 막판에는 소리를 지르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아니면 네 모가지를 분지르고 싶을거야."라는 백인의 말처럼 그들에게는 하얀 툰드라가 재앙이지만 이누이트인들에게는 그 백인들이 재앙이다. 이누이트인들은 자신의 신화속에서 삶을 가꾸어가고, 자신들에게 익숙한 먹거리, 입을거리를 만들며 살아간다. 이누이트인들, 특히 사슴부족이라 불리는 부족이 멸종되어 가면서 그들에게 미래는 잊혀진 미래가 되었다.

  태초에 여신이 개를 낳았고, 그때 개들은 인간의 말을 했기 때문에 개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과 함께 살았다는 그들의 신화는 인간 또한 그 툰드라의 생명 중 하나에 불과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툰트라의 법칙에 따라 살고자 했으나, 개화되었다는 백인들이 그들의 삶을 망쳐버렸다. 캐나다 정부는 그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캠프를 설치하고 의식주를 제공하고 있으나 그들에게 미래는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들 조상이 살아왔던 툰드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사냥을 하며 살았던 조상들의 습성처럼 날이 풀리면 사냥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기아가 찾아오면 나이 많은 순서대로 캠프를 나가 사슴가죽옷을 벗어버리고 조용히 죽음을 맞으며 종족을 이어가기를 원한다.

  그들은 백인들에게 묻는다. "왜 당신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해 왔다가, 우리가 당신들의 도움이 가장 절실히 필요할 때에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겁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