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된다 나는 된다 - 일과 인생이 술술 풀리는 자기암시법
니시다 후미오 지음, 하연수 옮김 / 흐름출판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운이 없는 사람일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말에 쇼크!를 받았다면 읽어보시라.

 

 그 동안 많은 자기 계발 서적들이 요구하던 '의식 개혁'이 아니라 '운'을 통해서 현재의 우리를 가로막은 마음의 벽을 깨부수는 비법을 전수해줄 책이다.

 

 언제부턴가 이런 경향의 책들이 눈에 띄게 되었는데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면 어떻게든 성공에 이를 수 있던 경제 부흥기와 달리, 단지 노력만으로는 더 이상 성공에 이를 수 없게된 '노력의 침체기'인 현재에 필요한 자세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갑작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가서 충격적이었던 구절을 이야기해보면 "운이 없는 사람일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보다 '평판'이 중요하다."는 말.

 

아, 나 왠지 운이 없던 사람인가봐. 난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 긍정적으로 될 줄 알았어. 하고 충격 받았던. 흐흑.

거기에 "'평판'이 '내용물'보다 중요하다니! 인정할까보냐!" 하고 외쳐봤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된. 흐흑.

 

그러고 보니 그랬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포장 기술, 광고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고 있는 시대다.

 내용물이 어쨌든 일단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어야 이른바 '팔린다'.

 아무리 성능, 기능이 좋아도 외관이 형편 없으면 보통 사람들에겐 외면당하고 만다.

 

이렇게 어쩌면 지금은 당연해진 이야기, 하지만 외면하고 있을지 모를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해준다.

 한때 이런 이야기가 유행했다. "집은 없어도 차는 좋은 차를 타자." 라든가 "외모 지상주의"라든가.

 

적어두고 보니 한때의 얘기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바보가 되라고 한다. 장애를 가지라고 한다.

 자신의 결점마저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바보'에 부정적 예감을 할 수 없는 '장애'를 말이다.

 우리가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불길한 예감은 왠지 잘 들어맞는 것 같이 느껴지지 않던가?

 반대로 좋은 예감은 자주 빗나간 것 같지 않던가?

 

그 이유란 것이 우리의 뇌가 부정적인 것을 더 깊이 각인하기 때문이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실패했던 기억,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 깊이 새겨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 방어적인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서 '운'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지금의 당신은 10년 전에 당신이 예감한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말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당신이 성공했다면 성공한대로, 실패했다면 실패한대로 어느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이 훨씬 낫다고 긍정적인 반대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동안 '운'을 만난 사람일 것이다.

 

'운'을 우리편으로 하기 위해 저자는 몇가지 방법을 전해주고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운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라."라는 것이다.

 저자는 '운'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혼자서는 '운'이 좋아질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피그 말리온 효과(자신이 원하는 것을 계속 상상하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를 이야기하면서 주위에 '운'이 좋은 사람이 많다면 우리 자신도 '운'이 좋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뉴스를 보니 '아메리카 드림'의 미국에서도 지금은 자수성가가 무척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만큼 산업 구조, 경제 구조가 변했고 성공에 이르는 길도 방법도 달라졌다는 뜻이리라.

 구조가 달라졌다면 그 속에서 성공을 찾아가는 방법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필사적인 고군분투에 지쳤다면, 아직도 성공의 길이 멀고 험해서 너무 외롭고 힘들다면 함께가자.

 감정은 전염성이 강해서 같이 있는 사람의 감정이 쉽게 옮아온다고 한다.

 '성공' 역시 그렇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너무 매력적인 제목이라 되려 시시하게 보일지 모를 이 책에 혹시 당신의 고민을 덜어줄 답이 있을지 어찌 알 수 있을까.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단서가 들어있는 책이라면 뒤져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내게 맞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될 뿐이다.

 

하지만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단지 알게 된 것만으로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해선 곤란하다.

 결국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만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테니 말이다.

 

에디슨은 전구를 개발할 때 2000번의 실패에 이런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이제 5500번만 더 해보면 되겠군. 성공이 멀지 않았어!."

 

긍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분명 긍정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확실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긍정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긍정이라면 한번 동참해봐도 손해볼 것은 없지 않을까?

 

 

마음의 벽을 깨부수는 데 필요한 것은 의식개혁이 아니라 운이다. 운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운은 자기 이외의 다른 무엇, 즉 만남을 통해 얻어진다. 결국 마음의 벽을 돌파하는 일은 사람과의 만남, 일생일대의 여러 가지 중대사와의 만남을 통해 그로부터 놀라운 힘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23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정하라, 그리고 나아가라."  

 

출생부터 불행이었는지 행운이었는지 그는 세가지나 되는 종교적 의미가 담긴 이름을 지니게 된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 

 

그는 이름에 담긴 세 신의 축복을 받았던 것일까, 혹은 서로 다른 두 신을 시기하는 신들의 저주를 받았던 것일까.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행운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들을 가장 긴 밤이 찾아왔다.

 퀴즈쇼 W3B(누가 십억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에 걸린 사상 최대 최고액의 상금 10억의 주인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히 말하면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갓난 아기 때 성당 앞에 버려진 이 후의 삶에서 십억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의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위해 거쳐야했던 열 두개의 퀴즈, 그 답을 알 수 있었던 일화들을 건져 문제 앞에 늘어놓아 정답을 해설하는 과정이라고 할까?

 

길지 않지만 짧다고 할 수 없던, 기구하다는 상투적 표현이 정말 딱 어울리는 삶을 살아온 인도의 빈민가에 사는 웨이터의 이야기가 나를 웃고 울리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일 뿐인지 모른다. 그는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고, 박사 학위를 위한 공부든 뭐든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필사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고 그 삶 속에서 만난 실망, 배신, 기만, 사기, 저주, 우연, 절망 그리고 사랑과 희망에게서 배웠을 뿐이다.

 인생이 그의 삶이 그를 십억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 뿐이다.

 그렇게 그는 결백하지만 세상은 그를 믿지 않는다. 그가 사기를 쳤을 것이라 생각하고 아니 속임수를 썼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그 사실을 강요하려 한다.

 그를 구속하고 고문하여 그의 결백한 삶을 더럽히려 한다.

 단지 빈민가에 사는 가난하고 늙은(열여덟살이 늙은 것이라면) 웨이터이며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그의 이름에 담긴 신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나 보다.

 구속되었던 그에게 그의 변호사를 자칭하는 여자가 찾아오고 그는 정식 기소 전까지 석방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고 다음날이면 정식으로 기소 될 처지에 놓여있었다.

 

자신을 변호사라고 이야기했던 여자 '스미타'는 그 밤 동안 토마스가 문제의 정답을 모두 맞추고 십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객관적이고 정당한 이유를 설명 받기 원한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는 자신의 삶에서 결정적이었거나 절망적이었거나 어쩌면 희망적이었을 시기의 이야기에서 그 퀴즈들의 답을 얻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망적인 그렇기에 더욱 기적같은 그의 '진짜' 이야기에 담긴 '진실'들을 알게 된다.

 

 

자꾸만 줄거리를 되뇌고 되뇌게 된다.

 그렇다.

 답은 늘 우리 삶 속에 들어있던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맞닥드리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우리 인생에 이미 적혀있지 않은가.

 우리는 절망하느라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한 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좌우명 삼아 살아야 했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왠지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모두가 내게 등을 돌려 외면하는 것 같은 소외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돕고 위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어쨌든 견뎌냈다.

 

우리는 자주 많은 것을 포기한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주저앉는다.

 어딘가에서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기보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면 정말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자신의 믿음이 옳았다고 결론 짓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면 우리는 삶에서 불거지는 문제의 답을 알아낼 수가 없다.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맞춘 오이디푸스는 왕이 되었다.

 그가 인간의 삶에 소홀 했다면 그 수수께끼를 풀고 스핑크스를 물리칠 수 있었을까?

 인간을 유심히 살피지 않고서는 "아침에는 네발로 점심에는 두발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의 답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의 해답조차 인간의 삶 속에 들어있었다.

 하물며 인간이 내는 문제의 답이라면야 인간의 삶 이외에 어디서 답을 구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이 소설이 더 깊이 와닿는 것이느껴진다.

 

그는 살고자 했고, 사랑을 얻고자 했고, 어쩔 수 없던 순간에는 포기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단지 자연스럽게 자신을 향해 들이닫는 삶을 그는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슬픔과 절망과 좌절을 빼내려 노력한다.

 그것을 어떻게든 피해가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것이 모범답안일까.

 인간의 삶을 담은 모든 이야기들에서 공통적으로 깨닫는 것은 삶을 인위적인 것으로 만들어서는 결코 행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불행이 있고 좌절이 있기에 행복을 느끼고 성공에 기뻐할 수 있다.

 우스개처럼 하는 말에 "천국엔 웃음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슬픔이 없는 세상에 웃음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지당하신 말씀이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같은 맥락이 아닐까.

 

우리는 절망만 할 필요가 없다.

 절망만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면 된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무엇인가 결정할 때면 던져올렸던 행운의 동전 이야기를 읽어보길 바란다.

 

우리의 삶은 늘 필연적이다.

 그리고 그 필연적 삶의 주인공은 늘 우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리학 시리즈(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와는 조금 색깔이 다르게 느껴지는 책이다. 

 

조금 더 진솔하게 서술된 그리고 한정된 주제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사랑을 시험하는 것들{운명, 사랑, 섹스, 21세기(나르시시스트),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 된 이야기는 사랑하는데 필요한 마음가짐들에 대해 찬찬히 풀려 나간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지, 섹스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랑이 판치는 세상에서 자신이 하려는 사랑이 어떤 모양인지를 아는 것은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지는 몰라도 생각해볼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사랑의 목적인 '사랑과 행복'에 이르기위해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리라.

 머리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는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해도, 또 너무 계산적이고 순수하지 못해 보인다고 해도 사랑하고자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비난 받아서는 안될 일이다.

 한번이라도 사랑에 실패해 깊은 절망을 느껴야했던 사람이라면 그 두려움을 알테니까.

 

언제까지나 같은 실수, 같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개선의 의지도 노력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하늘이 내려주신 천생연분"만 기다리면 될 일이다.

 그러다 그런 사람을 못만나면 혼자 살면 될 것이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모른다는 변명만큼 설득력없이 들리는 변명이 또 있을까?

 그들은 너무 거창한 규모의 자기 혁명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작은 변화를 위한 노력이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단지 생각에 그칠 뿐 행동으로 옮길만한 동력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한꺼번에 변하지 못하면 곧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만을 떠올리고 만다.

 

사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한다.

 먼저 자신을 보고 자신의 문제를 알고 그 문제를 고쳐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전부를 주려고도 말고 모든 것을 가지려고도 말고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욕망에 치우치지도, 동정에 치우치지도 말고 과거에 얽매이지도 말고.

 적어놓고 보니 무척 어려운 일들 뿐이다.

 하지만 적어둔 것은 단지 결과라는 것을 떠올린다.

 과정은 작은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 있으리라. 그 노력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리라. 그리고 결과에 닿으리라.

 

특별히 이 책을 통해 전혀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거나 놀라운 발견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동안 수 없이 보아왔고,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던 것들을 재확인 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학습은 반복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자주 망각하고 착각하고 오해한다.

 그런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번 되풀이해서 그것을 배우고 익혀 잊지 않게 한다.

 

단지 "함께 노력하는 것"으로 우리는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욕심과 욕망을 조절하는 것으로 더 큰 행복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배우는 자'다. 그래서 반복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자극제가 있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사랑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나 조언을 구하려는 의도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으므로 추천하지 않으련다.

 다만 사랑함에 있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이나 바램, 심리상태에 대한 단서나 조언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도 좋겠다.

 

 나를 안다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를 안다는 것도 그 다음으로 무척 중요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자신을 가둬둔 사랑을 방해하는 심리적인 감옥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데 작은 도움이 발견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죽은 것엔 관심없어."라고 말하곤 냉정하고 울 줄 모르는 스물 넷 청년 길버트 그레이프.

 그에겐 지능 여덟살의 저능아인 남동생 어니와, 허영 덩어리 사춘기 여동생 엘렌, 마음씨 고운 큰 누나 에이미, 스튜어디스이며 길버트와 앙숙인 작은 누나 제니스, 자살한 아빠를 제일 먼저 발견했던 저능아 동생 어니의 생일에만 집을 찾는 형 래리, 그리고 남편이 자살한 후 폭식을 반복한 결과 웅장한 체구를 지니게 된 뚱뚱한 엄마 보니로 구성된 가족이 있다.

 

그의 뚱뚱한 엄마는 항상 "나는 내 아들이 열여덟 살이 되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야. 그게 그렇게 무리한거니?"하고 묻곤하며 길버트는 없는 것처럼 대하고 어니만을 아끼는 것 같아 보인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7년, 대부분의 친구들은 외지로 나갔고 마을에 남아있는 친구는 몇 되지 않는다.

 그는 그 마을을, 그의 가족을 "떠나지 않을" 길버트다.

 그의 아빠는 그가 8살 때 아무런 표징도 없이 느닷없이 지하실 기둥에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 후 그의 엄마는 과식에 폭식을 더하여 나날이 비대한 몸뚱이를 가진 뚱뚱한 보니가 된다.

 2층의 자신의 방에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뚱뚱해진 이후로 지내게 된 거실의 바닥이 둥글게 가라앉아 언제든 부서져 버릴 것 같이 불안하게 만들 만큼 뚱뚱한.

 

길버트는 아빠가 자살한 집, 뚱뚱한 엄마가 늘 거실을 차지하고 큰 볼륨으로 티브이를 보며 언제나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집, 저능아 동생 어니가 있는 집을 떠나지 못한채 죽은듯이 지낸다.

 자신은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던 절망과 증오를 머금은 표정으로.

 그러던 어느날 미시간에서 온 소녀 베키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반하게 되지만 어딘지 묘한 관계가 되고 만다.

 

그 소녀를 만나고 가족,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며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실행일을 곧 다가오는 저능아 동생 어니의 생일로 정한다.

 하지만 어니의 생일이 다가올 수록 정작 어디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그런 와중에도 일상은 계속되고 어니의 생일은 다가온다.

 

어니의 생일 전날 그를 찾아온 베키는 거울을 통해 지치고 증오를 품은 것 같은 길버트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길버트는 그 거울을 깨뜨리려 하지만 깨지지 않으며 저능아 동생 어니는 다시 사고를 친다.

 내내 자신이 지켜오던 어니에게 분노를 쏟아낸 길버트는 곧 후회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베키를 통해 어니와 극적인 화해를 한다.

 

드디어 그레이프가 사람들이 기다리던 어니의 생일날, 그날은 엄마가 늘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었으며 그레이프가의 구성원들이 화해하고 웃게되는 아빠가 자살한 후 처음으로 맞는 최고의 가족적이고 화목한 날이 된 것 같았는데...

 

안쓰던 줄거리를 써보려니 왠지 어색하고 머뭇거리게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왠일로?" 후훗.

 

퉁명스럽고 냉정한 것 같이 보이는 길버트는 사실은 굉장히 예민하고 다정다감한 청년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런 청년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능아 동생을 이해하려하고 지켜주려는 마음도, 아빠와 형이 부재 상태인 그레이프가를 지탱하기 위해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는 고운 마음이 그렇다.

 

그런 착한 길버트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하고 감동하는 고운 마음을 가진 길버트를 위하는 것도 당연했다.

 

길버트가 이야기하는 일들의 중심엔 항상 저능아 동생 어니가 있다.

 아마 길버트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어니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가 가족을 사랑하고 베키를 사랑한 것처럼, 가족들도 베키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솔직하고 순수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존재.

 

사랑하고 방황하고 고민하고 결심하는 젊은 영혼의 이야기가 짜임새있게 어우러져 감동과 위로와 교훈을 준다.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할 때가 많고, 서로 자주 오해하게 되며, 다투고 화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때로 천사를 상상하기도 하고 극적인 희극 혹은 비극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냈을 때 우리는 행복과 마주 할 수 있다.

 

사랑, 사랑.

 사랑을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 장 '책을 내려놓는 방법'을 읽게 되기만을 기다리며 읽었던 책.

 

우와, 정말 오랜만에 벙~하고 머엉~하니 부웅~떠서 흐물흐물한 정신상태로 읽어야했던 책을 만났다.

 처음 의도는 프루스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고 싶어서 구입했던 것인데, 이 사람 '보통'이 아니다.

 

이 책은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의 견해에서 프루스트의 작품과 생전의 행동, 이야기, 친구들의 말을 통해 프루스트라는 사람을 '해석'이랄까 '해설'이랄까를 해주고 있다.

 읽는 내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난 후에 이 책을 읽었으면 조금 더 프루스트라는 인물에대해 이해하기가 수월했을까?하는 물음을 되뇌고 되뇌고.

 

이 책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재미있고 매우 상쾌한 책이다."라는 서평을 내놓고 있는데 난 "뭐가? 이 책이? 재밌어?"라는 의문만 더하게 됐다.

 

프루스트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불과 수 개월 전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매력적으로 들려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읽지 않고 있는 것은 역시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방대한 '분량'이다.

 알랭드 보통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아주 많이 아프거나 다리가 부러지기 전에는 읽을 기회를 얻기 힘들다'고 할 만큼.

 (이부분은 좀 웃기긴 하다.)

 

그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을지 몰라도 무척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수 많은 끊임없는 질병에 시달려).

 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고통이 뛰어난 작품을 낳게 해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를 괴롭혔던 고통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프루스트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열차 시각표'를 보곤 했다고 한다.

 그는 '작가란 외관상 위대한 예술과는 전혀 조화되지 않는 듯 보이는 것을 향한 열광을 가졌으리라고 여겨질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작품과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열차 시각표를 보면서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열광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프루스트적 자극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은 '슬픔 속에 빠졌을 때에야만 비로소 우리는 어려운 진실에 맞서고자하는 자극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삶을 고통과 함께 보냈던 프루스트지만 그 고통을 넘어 뛰어난 통찰과 묘사를 담아낸 작품을 지어낸 그의 노력을 기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해가 어렵다라고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많았다.

 "저자는 우리가 아니다."라는 말은 좀 더 특별했는데,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고 해도 저자의 뜻이 우리의 뜻과 완전히 부합할 수 없다는 독서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금은 마음 편히 책을 읽어도 되는 이유가 그것이리라. 난해해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저자가 내 생각을 어떤 방향으로든 의도적으로 끌고가려고 하는 것 같은 태도에 거부감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며 나를 꺽고 굳이 작가의 생각에 맞출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지 그것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딱 거기까지가 우리가 책에서 기대해야 할 것은 아닐까?

 저술가는 결코 예언가가 아님을 잊지 말자.

 

이 책을 마무리하며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프루스트에게 바치는 진정한 경의는 그의 눈으로 우리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지, 우리의 눈으로 그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테니까.라고.

 난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프루스트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진심을 보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현지 배경이나, 인물, 음식 등의 표면적인 것에 혹되지 말라.라고.

 

위대한 작가는 그 작가가 그 작품을 쓰는데 배경이 된 지역이나 풍경 소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 그 자체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리라.

 

프루스트를 알고 싶어서 산 책인데 되려 궁금증만 더하고 말았다.

 역시 프루스트를 만나려면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보다.

 

곧 만나기로 약속하고 오늘은 이만 보내주기로 하자.

 

 

독서를 훈련으로 만든다는 것은 동기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일이다. 독서는 정신생활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이다. 독서는 우리를 정신생활로 이끌어준다. 그러나 독서 자체가 정신생활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27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