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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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하라, 그리고 나아가라."  

 

출생부터 불행이었는지 행운이었는지 그는 세가지나 되는 종교적 의미가 담긴 이름을 지니게 된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 

 

그는 이름에 담긴 세 신의 축복을 받았던 것일까, 혹은 서로 다른 두 신을 시기하는 신들의 저주를 받았던 것일까.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행운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들을 가장 긴 밤이 찾아왔다.

 퀴즈쇼 W3B(누가 십억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에 걸린 사상 최대 최고액의 상금 10억의 주인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히 말하면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갓난 아기 때 성당 앞에 버려진 이 후의 삶에서 십억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의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위해 거쳐야했던 열 두개의 퀴즈, 그 답을 알 수 있었던 일화들을 건져 문제 앞에 늘어놓아 정답을 해설하는 과정이라고 할까?

 

길지 않지만 짧다고 할 수 없던, 기구하다는 상투적 표현이 정말 딱 어울리는 삶을 살아온 인도의 빈민가에 사는 웨이터의 이야기가 나를 웃고 울리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일 뿐인지 모른다. 그는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고, 박사 학위를 위한 공부든 뭐든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필사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고 그 삶 속에서 만난 실망, 배신, 기만, 사기, 저주, 우연, 절망 그리고 사랑과 희망에게서 배웠을 뿐이다.

 인생이 그의 삶이 그를 십억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 뿐이다.

 그렇게 그는 결백하지만 세상은 그를 믿지 않는다. 그가 사기를 쳤을 것이라 생각하고 아니 속임수를 썼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그 사실을 강요하려 한다.

 그를 구속하고 고문하여 그의 결백한 삶을 더럽히려 한다.

 단지 빈민가에 사는 가난하고 늙은(열여덟살이 늙은 것이라면) 웨이터이며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그의 이름에 담긴 신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나 보다.

 구속되었던 그에게 그의 변호사를 자칭하는 여자가 찾아오고 그는 정식 기소 전까지 석방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고 다음날이면 정식으로 기소 될 처지에 놓여있었다.

 

자신을 변호사라고 이야기했던 여자 '스미타'는 그 밤 동안 토마스가 문제의 정답을 모두 맞추고 십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객관적이고 정당한 이유를 설명 받기 원한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는 자신의 삶에서 결정적이었거나 절망적이었거나 어쩌면 희망적이었을 시기의 이야기에서 그 퀴즈들의 답을 얻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망적인 그렇기에 더욱 기적같은 그의 '진짜' 이야기에 담긴 '진실'들을 알게 된다.

 

 

자꾸만 줄거리를 되뇌고 되뇌게 된다.

 그렇다.

 답은 늘 우리 삶 속에 들어있던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맞닥드리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우리 인생에 이미 적혀있지 않은가.

 우리는 절망하느라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한 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좌우명 삼아 살아야 했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왠지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모두가 내게 등을 돌려 외면하는 것 같은 소외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돕고 위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어쨌든 견뎌냈다.

 

우리는 자주 많은 것을 포기한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주저앉는다.

 어딘가에서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기보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면 정말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자신의 믿음이 옳았다고 결론 짓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면 우리는 삶에서 불거지는 문제의 답을 알아낼 수가 없다.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맞춘 오이디푸스는 왕이 되었다.

 그가 인간의 삶에 소홀 했다면 그 수수께끼를 풀고 스핑크스를 물리칠 수 있었을까?

 인간을 유심히 살피지 않고서는 "아침에는 네발로 점심에는 두발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의 답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의 해답조차 인간의 삶 속에 들어있었다.

 하물며 인간이 내는 문제의 답이라면야 인간의 삶 이외에 어디서 답을 구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이 소설이 더 깊이 와닿는 것이느껴진다.

 

그는 살고자 했고, 사랑을 얻고자 했고, 어쩔 수 없던 순간에는 포기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단지 자연스럽게 자신을 향해 들이닫는 삶을 그는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슬픔과 절망과 좌절을 빼내려 노력한다.

 그것을 어떻게든 피해가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것이 모범답안일까.

 인간의 삶을 담은 모든 이야기들에서 공통적으로 깨닫는 것은 삶을 인위적인 것으로 만들어서는 결코 행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불행이 있고 좌절이 있기에 행복을 느끼고 성공에 기뻐할 수 있다.

 우스개처럼 하는 말에 "천국엔 웃음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슬픔이 없는 세상에 웃음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지당하신 말씀이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같은 맥락이 아닐까.

 

우리는 절망만 할 필요가 없다.

 절망만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면 된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무엇인가 결정할 때면 던져올렸던 행운의 동전 이야기를 읽어보길 바란다.

 

우리의 삶은 늘 필연적이다.

 그리고 그 필연적 삶의 주인공은 늘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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