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나 질문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질문하는 것이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체제에 순응하고 집단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다 어떤 계기를 통해 자아를 잃고 삶에 대한 무력감에 직면한다. 그제서야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그 끝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기다리고 있다. 자아에 대한 고민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호기심을 쫒아 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 답에 가까운 무언가를 만나기도 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기도 한다.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는 지점인 것이다. 각자 그 계기가 다를 것이고 의미를 부여할만한 대상이 다를 것이다. 나에게는 '나'라는 존재와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계기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채사장의 글을 만나면서 조금씩 의문을 풀어가기 시작했었다.
채사장의 일관된 관심은 죽음과 의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이나 의식은 왠지 금기시되는 주제. 먼저 채사장은 현실에 대한 문제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확장된 대중성을 기반으로 책을 낼 때마다 의식과 자아에 대한 사유를 조금씩 녹여냈고 #열한계단 에서는 1/5 정도, #우리는언젠가만난다 에서는 1/4 정도로 그 분량을 조금씩 늘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지대넓얕제로에서 자아와 세계는 하나라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한 권 분량으로 집대성 했다.
2.
지대넓얕제로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출발한다. 자아와 세계라는 두 존재가 실제로는 하나이며 근원에서 분리되지 않는다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독자들로 하여금 깊게 체험하도록 하는 것.
다중 우주의 가능성과 우리 우주의 시작, 지구와 인류의 탄생, 문명의 발생으로 시작해서 고대 인도의 <베다>, 아시아의 노자와 공자, 붓다를 거쳐 서양철학과 기독교까지 폭넓은 지식을 다루고 있다. 하나의 이론만으로는 이 세계와 시대를 관통하는 일관된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채사장은 설명한다.
“개별적인 고전이나 철학서만으로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길어 올릴 수 없지만, 전체의 맥락 속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선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10
그리고 왜 일원론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우리 눈앞의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도, 그래서 마음과 정신은 소홀히 하고 눈앞의 물질세계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나의 인생이라는 것은 덧없고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도, 나의 내면은 보이지 않으니 그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게 되는 것도 모두 우리가 자아와 세계를 나누는 이원론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갖게 된 사유의 흔적들이다. 우리가 이원론을 넘어 일원론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 한 발을 내디뎌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잃어버린 절반의 세계인 일원론의 세계, 그곳의 주인이 원래 당신이기 때문이고 당신이 들어서기 전까지 그곳은 깊은 어둠 속에 버려져 있기 때문이다.” 549-550
3.
앞서 채사장이 나열한 거대 담론들에 지레 겁먹거나 압도되지 않아도 된다. 채사장의 친절함 때문이다. 그는 각 이론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왜 그 이론이 출현했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에 대해 구조화하고 단순화시켜 정리한다. 채사장이 대중작가로 인기가 높은 이유는 어려운 담론을 자기 안에서 소화하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채사장은 친절했다.
고전을 쉽게 접하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심연의 깊은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