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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체수유병집 - 글밭의 이삭줍기 ㅣ 정민 산문집 1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8년 1월
평점 :
1. 고전에 담긴 지혜
<시경>의 "저기에도 남은 볏단이 있고, 여기에도 흘린 이삭이 있다"는 구절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체수유병집. 추수가 끝난 들판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모으듯, 10여 년간 요청에 따라 쓴 이삭 같은 글들을 모아놓은 듯하다. 국문학자답게 연암과 다산의 저서가 가진 고전적 가치를 현대로 가져와 적용하는 방식을 역설한다.
특히 <2장>은 이 책의 백미다. 갑자기 눈을 뜬 장님이 집을 못 찾아가고 울자 다시 눈을 감게 해서 집을 찾아가게 했다는 화담선생의 일화나, <낭환집서>의 짝짝이 신발을 신은 임제 이야기를 가져와, 제도에서 자유로워야 할 글조차 억압하면서 편을 갈라 싸우기만 하는 세태에, 연암이 느꼈을 답답함을 친절하게 해석해 놓았다. 정민 교수의 해석이 너무 흥미로워 원문을 찾아보았지만, 역시 어려웠고 더더욱 저자의 해석이 고마웠다. 저자는 연암의 글을 이렇게 설명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출몰하는 그의 글쓰기는 역사의 행간을 미끄러지면서 여기저기 덫을 놓고 상징을 묻어두었다. 하고 싶은 말은 대놓고 하는 법이 없이, 돌려 말하고 비꼬아 말하고 숨겨 말했다. 너무 재미있지만 몹시 어렵다. (...)그는 말하자면 고도의 전략적 글쓰기를 진행했다. 그것은 '다 말하되,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로 압축된다. 할 말을 다 했지만, 드러내놓고 말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고는 다시 너스레를 떨며 딴청을 한다. 딴청에 낄낄대다 보면 그는 어느새 정색을 하고 날 선 비수를 들이댄다.” p.88
연암이 묻어 놓은 상징에 대해 저자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문득, 파드마 삼바바의 <티벳 사자의 서>에 대해 “이 책은 닫힌 채로 시작해서 닫힌 채로 끝날 것이다”라는 칼 융의 말이 떠올랐다. 볼 수 있는 깜냥이 되는 자에게만 보일 것이라는 말인데 연암의 글이 아마도 그런 고도의 글쓰기 였던 것 같다. 나는 연암의 원문을 볼 깜냥이 못되지만 정민 교수가 풀어놓은 연암의 글은 쉽고 통찰력 있다.
2. 왜 지금 고전을 봐야하는가?
“당시 조선에서 자신을 옥죄던 질곡에 답답해하던 연암이나, 실용의 만능 속에 인문이 말살되고 인문정신이 발 디딜 곳 없게 된 오늘의 우리나 어쩌면 처지가 똑같다. 중국 체험을 통해 막혔던 숨통을 틔우고 나갈 방향을 찾고자 했던 연암으로 하여금 답답증과 조급증을 느끼게 만들었던 현실은 지금도 이름만 조금 바꾼 채 우리 앞을 막아선다. 도대체 인간은 발전할 줄 모르는 존재다. 변화를, 당위를 외치면서도 변화를 거부한다. 실용의 잣대 아래 저질러지는 만행들은 오늘도 인문학을 질식시킨다. 그저 내버려두기만 해도 좋겠는데, 따라오지 않는다고 윽박지르고, 바꾸지 않는다고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운다.”p.93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연암의 시대에도 파를 나누어 대립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연암뿐인가? 기원전 5세기경의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그러했고, 21세기의 오늘도 여전히 그러하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 하기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편을 갈라 싸우기만 하는 모습을 보면 어째서 연암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늘 디폴트 값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지 참으로 신기하다. 양쪽의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점을 찾는 지혜를 고전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물론 고전 안에 우리시대에 딱 들어맞는 정답은 없다. 그러나 그 안에 축적된 경험데이터는 적어도 우리의 출발점이 제로베이스에 있지 않다는 명확한 근거는 된다.
고전을 보다 어느 순간 안도한 적이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이미 수세기전 사람들도 동일하게 했다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 그리고 그것이 이미 언어화 되어 있다니 놀랍다.’ 고전을 한 권이라도 제대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봤으리라 짐작한다. 그들이 남겨놓은 글을 통해 현재에 존재하는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그것이 고전의 가치다. 단,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지혜를 현재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고전은 현재와 소통할 때만 가치가 있다. 형식에 집착해서 본질을 놓치면 아무런 보람이 없게 된다. 고전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옛것을 끌어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다.”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