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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문학 좋아한다면서 아직 <콧수염>도 안읽어봤어?" 2009년 뜨거운 여름, 빌딩 숲에서 들었던 말이다. 말 궁둥이 때려주는 채찍같은 말에 자극받은 나는 곧장 <콧수염>을 구입하려했다. 그러나 책은 절판이었고 난 '<콧수염>을 읽지 않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았어야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콧수염>이 출간되었습니다'는 출간알림 문자가 왔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눈속임의 전문가이자 괴기담의 대가라고 한다. 문단으로 부터 '문학의 천재'라는 평을 받는 그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라는 가정에서 <콧수염>을 시작했다. 명백한 사실, 내가 만약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 과연 누굴까? 호기심을 넘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소소한 행복이 느껴지는 대화들로 시작한다.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10년동안 길러왔던 콧수염을 자른다. 아내가 콧수염이 없는 모습을 본다면 깜짝 놀라겠지? 서프라이즈 이벤트에 그는 들떴다. 그러나 아내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하다. 그는 생각한다. '아네스(아내)가 나와 게임을 하려는 건가?'
콧수염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쓰일까. 그가 콧수염을 면도하면서 시작하는 <콧수염>은 아내와 그의 게임, 싸움 결국 죽음까지 만들어낸다. '나비효과'를 닮았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아네스가 게임을 하는 거라고 여긴 그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콧수염이 원래 있었음'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원래 콧수염이 없다'는 말을 한다. 아네스가 사람들을 조종한다고 여긴 그는 먼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또 다시 증명하려 한다.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주며 '그 사람의 생김새가 어떠합니까?'를 묻는다.
굳이 콧수염 유무에 대해 결론을 내리자면 난 카레르의 가정 -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면 어떻게 될까? - 에서 힌트를 얻었다.'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에 착안한다면 그는 '콧수염이 있다'로 해도 되지 않을까. <콧수염>에서 주목할 것은 카레르가 사실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등장인물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내용이 빼곡하고 방대하다. 콧수염 하나로 호흡이 끊기지 않게,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 장황한 내용을 말한 그가 대단할 뿐이다.
엠마뉘엘 카레르, 미국의 폴오스터와 한국의 성석제와 비슷한 느낌의 작가다. <완벽한 하루>의 마르탱 파주와 비슷하기도 하다. 더불어 이 작가로 인해 프랑스 작가에게 더 흠뻑 빠지게 됐다. 몽환적 느낌의 프랑스 소설, <콧수염>. 이 소설을 읽고 스스로가 당연시하는 어떤 것을 의심해 보는건 또 다른 재미같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