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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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글을 처음 본 건 경향신문에서다. 이완구 전 총리가 고 성환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돼 총리직을 사퇴하고 그 후임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목을 받은 때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성환종리스트 사건을 이총리의 사퇴로 갈무리하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고, 병역비리라는 흑역사를 가진 황장관이 그나마 깨끗하다는 이유로 총리로 임명된 데 분개했다. 서민교수는 이런 정황을 <황교안 총리를 지지한다>라는 글로 역설했다.

 

*경향, ‘15.5.2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261406351&code=990100 

 

서민을 검색했다. 서민금융나들목, 서민경제가 연관검색어로 등장한다. 한 포털은 그를 대한민국의 기생충 학자이자 칼럼니스트, 방송인라고 설명한다. 책은 그 중에서 글쓰는 사람서민에 집중했다. 1부는 저자가 글을 쓰게 된 이유, 2부는 (그가 체득한)잘 쓰는 법, 글쓰기 노하우 등을 담았다.

 

서민 교수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부제(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를 통해 알 수 있다. 눈이 작고 못생겨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는 저자. 소심함과 외모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시절 동아리 편집부장을 맡아 회지를 자신의 글로 도배하고, 급기야 후배로부터 서민 칼럼을 고정적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기에 이른다. 이를 지지대 삼아 <소설 마태우스>도 펴낸다. 그 후 한겨레를 거쳐 경향신문 칼럼니스트로 자리매김. 어디 그뿐이랴. ‘글쓰기가 배우자의 미모를 좌우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만큼 아름다운 아내도 글로써얻는다.

 

책은 저자의 솔직함을 부각시킨다. 1부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못났다’, 처녀작을 쓰레기라 말하는 등 폄하에 가까운 자기비하 태도를 보인다. 하여 글을 쓰게 된 동기, 무작정 쓰고 보는 추진력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반면, 2부는 분량 채우기의 느낌이 강하다. 구성의 문제로 보이는데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소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그가 터득한 글쓰기 노하우를 담으려고 했다. 그 방법은 이렇다. 쓰는 건 쉽게, 경험은 솔직하게, 시작은 인용으로, 구성은 기승전결로. 인용과 예시가 주를 이뤄 이해는 쉽지만 흐름이 산만하다. 저자가 언급한 글쓰기 방법 또한 여느 글쓰기 책과 콘텐츠 면에서 차별성이 떨어진다.

 

두 가지 관점에서 구성을 바꿔보면 어떨까. 그의 열등감을 분석해 전반부로, 극복기를 후반부에 담는다면? 모든 사람은 일종의 장애를 지니고 산다. 학벌, 가정사, 경제력 등 자신만의 콤플렉스로 위축되는 내적 장애 말이다. 저자 특유의 솔직함으로 열등감의 근원을 깊이 파고들었다면, 독자들도 본인의 장애열등의식을 반추하고, 더 나아가 장애를 극복하는 동력을 얻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에만 집중했어도 괜찮은 구성이 될 수 있었으리라. 독자들은 칼럼이 어떤 생태계 안에서 생성되는지 알지 못한다. 신문 고유의 색체를 담은 가이드라인 안에서 칼럼니스트들이 글을 쓰는지, 투고로 들어온 글 안에서 언론사가 글을 선별하는지. 여러 신문사를 종횡무진하며 글을 써온 저자인 만큼 칼럼쓰기에 초점을 맞춘 글도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그가 적은 칼럼, 에세이 등 장르별 성격, 각 글을 대하는 태도와 하나의 글을 낳기까지의 분투를 녹인다면 더 많은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을 터.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충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글 세상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 역사를 알게 된 건 큰 소득이다. 글쓰기가 곧 PR인 시대. 140자로 영화 대사를 남기든, 원고지 10매로 블로그에 글을 쓰든, 생각을 누군가에게 알리는글쓰기가 주목받는 세상이다. 이런 시대에 글과 좀 먼 분야에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글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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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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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글쓰기 전략이 아닌, 삶에서의 글쓰기와 이에 대한 글쓰는 이의 자세를 알 수 있어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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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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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하는 이유를 몸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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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해릴린 루소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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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사람은 불행한가요? 가출하지 않고 집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가요? 가출 청소년들에게 왜 집에 돌아가라고만 하나요? 혹시 집보다 길이 더 안전해서 나왔을 거란 생각은 해보셨나요? 무엇을 근거로 한 사람의 선택, 집을 나온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가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곳에서 일하는 분이 말씀하셨다. /불행의 잣대, 그 학습된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 속에, 집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위험할 것이고 자연스레 어렵고 험한(혹은 나쁜) 길로 빠지리라 예상했던, 고지식하고 뻔한 사고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됐다.

 

내 사고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가출 청소년들에 관한 질문들과 어우러져 내 사고의 근원을 되짚어 보게 한 책이 있다. 해릴린 루소의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1946년 생으로 미국의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자 여성 운동가, 심리 치료사, 작가, 화가인 저자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장애와 여성, 보편적 사고로 나쁜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는 저자는 자신의 일생을 관통한 장애를 차분하게 설명한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가 녹아있다. ‘뭐가 잘못돼 장애를 갖게 된 건지묻는 무지한 사람들, 육체적 장애를 거부한 자신과 가족, 거울 속의 자신을 똑바로 보기까지의 여정,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까지의 고단함, 나아가 장애를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된 데까지의 오색찬란한 감정의 결까지. 하여 이 책은 한 사람을 아우르는 물적, 영적인 것들을 모두 설명하고 있어 언뜻 자서전을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해릴린의 생각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장애에 대한 인식 변화다. 부정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장애를 해릴린은 심리치료사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장애를 인정하기 꺼렸던 주된 이유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내 태도에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 태도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p24)’ 태도. 자신을 대단하다고 하지 말라는 저자를, 그래도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바로 여기 존재한다.

 

인간은 모두 장애를 갖고 있다. 저자와 같은 육체적 장애일 수도, 학벌, 취업, 직장, 돈에 대한 비교우위, 피해의식 하물며 정치이슈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과 같은 정신적 장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의 결을 선명하게하고 자신을 분명하게 밝히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누구나 자신의 열등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실천은 전무하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해릴린이 장애를 이해하기 위해 태도를 문제 삼는 부분에 우리가 집중해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가출청소년들이 왜 불행할거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가출을 하지 않아서? 행복하니까? 아니, 그보다 미디어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한다. 가출한 사람을 알지도, 내가 경험해보지도 못했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시사 프로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여러 폭력에 노출되는 걸 수없이 봐왔다. 그렇다면 또 이런 물음에 닿는다. 나는 왜 미디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던 걸까. 정부의 정책일 수도, 비난하고 싶지 않은 내 귀차니즘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릴린과 가출 청소년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를, 내 태도를 자꾸 되짚어보게 한다. 내가 믿어왔던 보편적 기준들이, 사실은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학습된 결과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삶의 뿌리를 흔든다는 측면에서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는 그래서 무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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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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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내게 옛 남자친구와 같다. 떼어낼 수 없다. 그를 부정하는 건 함께 했던 내 시간을 스스로 지우는 일이다. 그는 내게 아름답기도 혹은 추하기도 하다. 함께 만들었던 감정의 향연은 짜릿하지만 꺼내기 버겁고 가능하면 잊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그렇다. 항상 글을 쓰고자 한다. 허나 쉽지 않다. 쓰다보면 의도하지 않은 글이 되는 게 다반사. 문장은 생각의 주변만 맴돈다. ‘쓰자고 마음먹었지만 무엇 때문에, , 쓰려고 했는지 기억하지 못해 초라할 때도 많다. 하여 가능하면 옛 남자를 언급하지 않는 것처럼 나 글쓰기 좋아해요.’라는 말도 주저하게 된다.

 

하기는 해야겠는데 잘 할 수는 없는 일, 글쓰기. ‘왜 안 써질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고른 책이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다. 이런 저런 소개 글에서 유독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다. ‘글 쓰는 사람

 

보통의 글쓰기 책은 어떻게를 말한다. 이 책은 글을 써야하는지, 글쓰기란 무엇인지, 또 글쓰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담고 있다. 글쓰기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이라고 할까.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는 부제가 참 잘 어울린다.

 

왜 글을 써야 할까? 나는 경험과 감정을 고스란히 글로써, 재현하고자 했다. ‘에 대한 교과서를 만들고 싶었다. 실시간으로 복잡다단한 일이 발생한다. 그보다 더 난해한 감정들에 휘둘린다. 이런 를 글로 적어 묵혀, 나를 마주하고 싶었다. 그러면 좋은 사람이 되는 버, 잘 사는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작가는 글쓰기의 시작을 나와 삶의 한계를 흔드는 일(p.53)’이라고 말한다. 는 육체와 정신 그리고 관계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나 아닌것들로 구성되는데, 이는 곧 물성이 가진 모든 것에서부터 타인, 타인과 나의 시간이 남긴 의미까지 포함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자기감정에 집중하라만약 누군가 자기 과거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유사한 삶의 경험치를 가진 타인을 동정과 수치로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과정은 자기의 편견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p.62)”고 말한다. 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으로 외부에서 찾지만 결국은 자신’에 의한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국 모든 갈등의 해결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시작은 자신을 내밀하게 보는 일이다.

 

어떻게 써야 할까? 엉덩이에 땀띠 나게 쓴 글은 모두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변화에 있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것이어야만 한다고 했다. 비공개로 쓰는 일기가 아닌 이상 내가 쓴 글은 누군가에게 읽는 이 된다. 글은 그 읽는 사람의 얼어 있는 바다를 깰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바다가 깨지는 지점은 얼마만큼 생각이 변화했는지에 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고통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존의 사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의 미세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읽는 자는 그 글을 읽기 전의 모습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고, 글로써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 그 욕망의 근원을 이 책을 통해 마주했다면 과장일까. 글이란 결국 . 나를 검열하고 사유해야 나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작가는 마지막에 글쓰기를 한다는 일은 마음껏 슬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p.269)’고 말한다. 세상이 등지려고 하는 세월호에 대해 학인들과 가감없이 말하고 슬퍼한 일을 들어 하는 말이다.

 

세월호 1주기 때 한겨레 칼럼을 보며 울분을 토했던 일이 기억난다. 언론과 정부가 숨기고 있는 일을 낱낱이 성토하며 분노했고 움직이자 했다. 그때 나는 힘이 없는우리가 이를 알리는 길은 글쓰기 아니냐 했다. 쓰자고 했다. 써서 알리자 했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목소리를 내는 일인 가도 싶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나와 세상을 자꾸 채찍질한다. ‘쓰겠다는 생각이 결국 글쓰기의 최전선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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