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8 - 2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8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서희가 평사리로 돌아간다. 간도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길상과 가정을 이뤄 윤국과 환국을 낳았다. 허나 길상은 허공에 뜬것 같다. 하인에서 양반의 남편이 되었기 때문일까. 평사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일까. 8권에서 길상은 다각도로 등장한다. (구천)이와 의병운동을 일으키는 선봉에 서고, 지아비로써 아내를 원망하며 하얼빈으로 갈 것을 도모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씨 가문의 진실한 하인으로써 아픈 진실을 서희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길상의 마음은 결국 어디로 향할까.
 
8권의 가장 큰 사건은 월선의 죽음이다. 병에 걸려 오랜 세월 앓다가 죽어가는 그녀를 위해 홍이는 아비를 찾아간다. 사람을 보내고 편지를 보내도 오지 않던 야속한 사람. 어느 날, 그가 월선을 찾아온다. 생사를 앞에 둔 그들은 의뭉한 대화를 나눈다. “니 여한이 없제?” “,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p.244) 용이를 기다렸던 걸까. 애끓듯 가늘게 이어지던 월선의 생명이 용이와의 대화 후 끊어지고 만다. 월선이 앓던 오랜 시간 보이지 않던 용이를 욕하는 사람들 속에서 영팔은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벌 하는 것이라고. 월선의 세간에 탐을 내던 임이네는 꼴좋게 용이에게 버림을 받고 혼이 난다.
 
시국은 점점 어지러워진다. 러시아, 중국, 일본 사이에서 의병운동은 본격화된다. 반면, 김두수의 밀정 활동도 가시적으로 변한다. 얼굴을 고쳐가면서까지 잠입하고 숨어들기 시작한 그는 심녀를 찾아내 의병 활동의 뿌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조준구의 몰락과 함께 김두수의 결말이 더욱 궁금해진다.
 
 
 
<발췌>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 (p.59)
 
그 자신 의식하지 못한 일이나 그것은 상민의 피, 공노인 내부에 흐르고 있는 상민의 피 탓이다. 김개주의 아들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저 준수한 젊은이가 김개주의 아들이라니. 김개주는 영웅이다. 상민의 영웅이다. 이조 오백 년을 들어 엎으려던 그를 사람들은 살인귀라 하였다. 압제자의 목을 추풍낙엽같이 날려버린 살인자, 살인귀건 흡혈귀건 아무래도 좋았다. 뭣이든 그는 핍박받아온 백성들 가슴에 등불로 살아있다. (p.62)
 
망해라. 망해라, 최서희! 망해라! 망해! 망해! 망해라. 그러면 넌 내 아내가 되고 나는 환국이 윤국이 아비가 된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망해? 어떻게 망하느냐 말이다! 비적단이 몰려와도 최서희는 안 망한다. 고향에는 옛날같이, 옛날과 다름없는 엄청난 땅이 최서희를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p.87)
 
노상 몸이 성할 줄 아냐? 피라미라도 열 마리 잡으면 중고기야! 되지도 않을 고래 잡을 생각만 하구서, 판판 생일은 굶고 넘기면서 생일 잘 먹을 생각만 하고 이틀 굶는 놈이 바로 네놈이다!” (p.130)
 
서희의 가진 것과 서희의 소망의 무게 탓이다. 시초, 치열한 소망과 기득권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관 때문에 휘청거렸지만 최서희는 기왕의 자리에서 떠나지는 아니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무게에 최서희는 눌리어 떠나질 못했다. 그 무게는 소망과 가치관의 약화와 반비례하여 가중되어 왔다. 이제 무게는 완벽하다. 그렇다. 떠나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마상에 상전 아씨를 싣고 말고삐를 잡으며 가는 하인이 아니고서는 돌아가지 못할 길상의 문제가 남아 있다. 서희에게 그것은 처절하고 절체절명의 판단이다. 아이 둘이 아비의 옷깃을 잡아주리니 그 희망에 기대를 걸지 못하는 것도 자신이 애소하지 못하는 것도 그 판단 때문이다. (p.142) - 서희와의 결혼이 못 마땅했던 길사, 이제 이를 이용해 결국 떠날 수 있는 상황에 놓임
 
내 조카가 조도전대학 사학과에 다녀요. 수재지요. 그 아이 말이 일본인과 조선인은 혼인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피를 섞어서 조선인이 없어져야 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중국은 워낙이 인구가 많아 어렵겠지만 조선쯤이야 가능한 일이라나요? 서양 역사에서 보면 알렉산더 대왕도 그 땅을 정복하면은 그 땅에서 반드시 제 나라 남녀를 데려가서 씨를 뿌렸다는 거예요.” (p.157)
 
생과 사 그 틈바구니의 빛깔이란 참으로 미묘하다. 시신은 아직 방에 있고 땅 속에 묻히는 그동안 숨막히는 그 시간을 사람들은 고인과 그리고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얘기로 하여 숨구멍을 트고 있는 것이다. 슬픔이 덜한 사람은 그것으로 보충하는 마음, 슬픔이 깊은 사람은 그것으로 위로 받고. (p.249)
 
아까 자넨 영팔이더러 그 돈을 맡으라 했는데 그거는 처음부터 안 될 얘기네. 사는 사내니까, 하는 오기에서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홍이에미가 원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피땀을, 홍이는 그것 없이도 큰다. 그것 없이도…… 홍이가 기여 공부를 하겠다믄 무신 짓을 하더라도 내가 공부시킬 것이요, 하지마는 자식은 제 부모가 젤 알지. 홍이는 공부에 별로 생각이 없아. 이곳에 있자 카니 공부랍시고 한 거지. 또 장가드는 일도 그렇다. 형편 되는 대로 정화수 한 그릇 가지고 예는 올릴 수 있는 거고, 피땀나게 살다 간 사람 땜에 우리가 편하게 살아 옳겄나?”...“그래 이거는 내 생각이네만 그 돈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고 홍이 처지로서도…… 길가에 버릴 수는 없는 돈 아니가? 그러니 독립운동 하는 곳에 기부하는 게 좋겄다. 홍이에미가 홍이에게 남긴 거라면 홍이가 그걸 받아서 독립운동 하는 데 썼다 할 것 같으면 과희, 안 그렇나?” (p.275)
 
어찌 그리 못 살았습니까. 아재하고 아지매는,” ...(중략)...“아니다. 우리는 많이 살았다.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았네라.” (p.275)
 
아무리 일 잘하다고 무슨 일인들 허용된다 생각하면 잘못이오.” (p.360)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는 그 자신을. 그것은 생명의 유한이다. 죄에 얽매인 것 아닌 삼라만상, 모든 것은 생명이 있고 또 생명이 없는 유한, 역설이라면 기막힌 역설이겠으나. 어느 시기까지 유지될 안정일지는 모르지만 길상은 서희와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담백한 상태로 자리잡는 것을 느낀다. (p.375)
 
예라는 말이란 편리한 것이어서 곧잘 그것을 앞장세워 용무를 보게 되는 오늘날의 인심을 내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것도 염치의 정도 나름이지.” (p.381)
 
혼란과 혼란이 부딪고, 그 와중에서 서희는 필사의 헤어짐을 한다. (p.395)
 
모래밭을 핥고는 물러가고 핥고는 물러가는 물결 소리만, 목마른 사람같이 핥고는 물러설밖에 없는 안타까운 갈증에 몸부림치듯 강물은 달빛 아래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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