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3 - 1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3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허망할지고. 윤씨부인이 죽었다. 김서방과 봉선네까지. 최참판댁과 깊이 관계한 많은 인물들이 괴질(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병)과 흉년으로 죽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왜군들까지 칼검을 꽂고 드나들기 시작한다. <토지 13>은 이런 악조건에서 변해가는 평사리 인물들의 이야기다
     
#조준구와 이동진의 등장
전 편에서 참판댁에 들어왔던 조준구는 윤씨부인의 죽음을 계기로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내려와 살기 시작한다. 최씨 집안 핏줄인 서희가 어린 것을 이유로 참판댁 가산을 소유하려는 계획이다. 노비들도 서희와 조준구 측으로 나뉜다. 삼수는 조준구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길상과 수동은 삼수를 이를 괘씸히 여긴다.
 
조준구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질려갈 때 즈음 이동진 윤씨부인의 친척 이사부댁 아들 이 평사리에 당도한다. 서희를 보살피는 노비들에게 환대를 받지만 이동진에 대한 평가는 아직 유보적이다. 참판댁과의 오랜 인연은 있더라도 정세를 살피는 속내가 무섭기 때문이다. “이런 시국에는 남의 참견 안 하는 게 제일이지요. 뭣이든 앞장서는 게 화근이니. 왜놈들하고 송살 해봤자 이기는 일 없고 그저 걸려들지 않게 몸조심하는 게 제일입니다.”라는 한 나그네의 말에 이동진은 되내인다. ‘지혜로운 말이군.’ (p.278)
     
#애달픈 귀녀, 월선, 삼월
최치수의 씨를 받으려 음모를 꾸미든 귀녀는 결국 아이를 낳고 죽는다. 귀녀를 마음에 품었던 강포수는 그녀의 옥수발을 들다, 그 아이를 데리고 도망을 친다. 귀녀보다 애처로운 사람이 있다. 월선이다. 무당의 딸로 용이와 서로 사랑하지만 데면데면해야 했던 월선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용이는 용이대로 월선이 보고싶지만 임이네에 대한 책임감에 갈등하고, 아이를 갖게된 용이에게 다시 다가갈 수 없는 월선은 바보같을 정도로 힘들어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해피엔딩, 용이가 어렵게 차장간 월선에게 말한다. , 니 또 도망가믄 그때는 직이부릴 기니” (p.330)
 
귀녀, 월선보다 더 호된 시간을 보내는 여성, 삼월이다. 삼월은 조준구에게 겁탈을 당한다. 시시때때로 조준구의 부름을 억지로 이행해야 했던 삼월은 점차 소실로 들어갈 꿈을 꾸지만 이마저도 묵살당한다. 더욱이 조준구는 서울에서 본처를 데려와 삼월을 괴롭게하고 본처 홍씨에게 삼월은 거의 매일 매질을 당해 정신을 반쯤 놓는다. 더 나쁜 것은 조준구를 따르는 삼수마저 그녀를 범하려 든다는 것이다. 아내나 소실로서가 아닌 노리개로. 준구는 삼수에게 삼월을 가지라 한다. 본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이용할 속셈이다. 이에 삼수는 준구처럼 심심풀이라면 모를까 헌 계집을, 싶었다고 뇌까린다.  헌 계집이라니! 게다가 삼수는 제기럴! 밑져야 본전이다. 그깟 년 살다 버리믄 되는 기고, 아무튼지 간에 노리개는 노리개 아니가. 따지고 보믄 같이 외입을 하자는 건데 머가 나쁘노. 그라믄 이 양반하고 나하고 베갯동서가 되는 거 아니가?’ (p.396) 야무진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옮음과 참
<토지 1부 3편>에는 지금 우리나라 정세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김훈장과 조준구의 대화다. 진실로 옳은 학문은 나라 정치를 휘두를 수 없고 휘둘러지는 것도 아니며 또 휘두를 생각도 말아야 한다구요. 왜 그런고 하니 깨친 바 진리를 정치의 기틀로 삼고자 할 때 그 장소에 깨친 바의 진리가 맞먹질 않는다는 게요. (p.66) , "참말이라는 것이 허황된 것 같기도 하고 참말이 쉬울 듯 하면서 쉽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참되게 산다는 일이 반드시 옳게 산다는 것도 아닐 성싶고 아주 적은 사람들이 옳게들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참되게 산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 같고......착하고 악하다는 것과도 다른 뜻이 있는 듯싶고." (p.69)
 
지금의 위정자들은 '옳음'과 '참'에 대한 구분은 있는걸까.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한다는 방향성은 있는 걸까.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조준구와 같은 사람과 진배없다는 생각뿐이다.  그밖에 아비의 죄로 마을에서 도망간 한복이가 평산리로 돌아왔고 임이네는 용이와 살림을 차렸다.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직 전의 평산리다. 괴질과 흉년을 압도하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들로 13권은 끝난다.
 
 
[발췌]
양반하고 상놈우 사는 세상이 천 리 밖이구나 생각했구마. (p.17)
 
귀녀의 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의 강포수 인생과는 같을 수 없는, 다른 것으로 변할 것이라는 뜻이다. (p.20~21)
 
남정네가 사람 죽인 죄인이라 해서 아낙도 따라 죽으라는 법은 없다. (p.26)
 
농사꾼 여편네가 일 안 하는 것 이상의 부도덕은 없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p.27)
 
내가 와 그 눔의 탈바가지를 잡아 뜯지 않았는가 아나? 이런 세상일수록 남에게 원수지믄 안 되는 기라. 사람이란 앙심을 묵으믄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 (p.34)
 
어린 방랑자. 철새같이 옛 둥우리를 잊지 못해 찾아오는 한복이를 마을 사람들을 누구나 다 가엾게 생각했다.(p.39)
 
어린 서희는 만 이태 동안 조석으로 곡을 할 때마다 슬픔을 키워나갔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날이 지나가는 데 따라 자신이 고아나 다름이 없는 사실과 아울러 부친의 죽음의 뜻을 알기 시작했다. (p.39)

정초에는 그렇게 많은 연이 푸른 하늘에 떠있었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모를 줄 끊긴 연 하나 없고. 찾지 못한 연은 높이 올라가서 수미산에 닿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길상은 떠내려가는 구름이 못 견디게 좋았다. 하늘 빛깔도 좋았고 맴을 도는 소리개의 쭉 뻗은 날갯죽지, 그 날갯죽지에 올라앉아서 꿈을 꾸었을 때처럼 넓은 하늘을 날고 싶은 기분이 용솟음친다. (p.45)
 
길상이도 심부름 갔다왔다는 말을 안 했거니와 김서방도 심부름을 시켰노라는 변명을 해주지 못한다. 길상의 경우는 변명이 될 것이요 김서방의 경우는 역성을 드는 것이 되겠기 때문이다. 식객으로 주제넘은 짓이나 그는 엄연한 양반 나리요 두 사람은 노비인 것이다.(p.50) 
    
사람 병신쯤이야 가문 병신보다는 나을 테니 그렇다면 앙혼인들 못하까 (p.54)
 
양반들도 상것들의 업신여김을 당한다는, 어린애와도 같이 철없는 설움이 북받치는 것이다. (p.58) -양반들의 고고한 자존심  
     
비천한 자들은 궁궐을 돼지 우리로 꾸며놓고 거룩할진저 하며 찬탄하고, 슬기로운 자는 한줌의 흙을 빚으면서도 높은 곳에서 울려오는 절묘한 소리를 듣는다는 게요. (p.69)      
    
지아비 없는 여인에게는 이미 청춘은 없소이다.” (p.70)
 
그는 지금 그 과부 며느리의 청춘이 가엾어서 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양반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서 잡인들이 그 절대불가침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세상 추세에 통분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김훈장의 울음은 이조 오백 년 저변에서 지탱해온 불길이 꺼져가는 데 대한 만가였는지도 모른다. (p.71)
 
아무리 야단을 맞고 백 고프고 매질을 당하여도 울지 말아야 한다는 것. 보리 타작이 있을 때 임이는 어미와 함께 이삭을 주우러 나갔었다. 보리 임자 몰래 보릿단 옆에 붙어서서 보리 모개를 분질러 바구니 속에 넣는 것을 (p.81)
 
거지의 옷이 성하면 밥을 잘 주지 않는 경험을 통하여 습득한 지혜였었는지 모른다. (p.82)
 
나는 저 죽은 바우나 간난할멈, 월선네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었소. 윤씨부인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의 권위와 달렴과 두뇌는 오로지 최씨 문중에 시종하기 위한 가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p.115)
 
그 양반이 명문의 자제로서 호의호식할 수도 있었겠는데 이십 세의 약관으로 장사들을 이끌고 국사를 바로잡을 충심에서 거사한 것도 장하고 만리타국, 말조차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 가서 빈주먹으로 의술을 배운 것도 장한 일이었소. 허나 그 양반이 어디 우리나라 백성이오? 이름 석 자를 버리고 그곳 이름에다 그 나라 백성이 되었고 그 나라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근본이 잘못 되어버린 그 사람 본을 따는 것은, 글쎄올시다.” (p.145) 
    
식객이라 하기에는 엄연한 최참판댁 친척이요, 친척이라 하기에는 또 뭔지 모르게 막고 나서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상대방은 양반임에 틀림이 없다. 상사람이 항거해서는 안 되는 양반이다. (p.155)
 
한 가지 좋은 것은 흉년하고 달라서 있는 놈 없는 놈 차별이 없는 그기라. 벵이사 어디 수숫대 움막집만 찾아가나?” (p.229) 
     
이웃사촌이라 안 카나. 와 내가 니 망하는 것을 바라겄노. 물 한 모금을 얻어묵어도 이웃사촌이 잘 살아야재. 자고로 남으 공것을 묵으믄 배탈이 나고 부정한 재물을 쌓으믄 고방에 사가 생긴다 캤는데 내 니 배탈이 날까 염려가 돼서 안 그러나. 너거 고방에 사가 생기도 안 될 기고. 그러나 그것도 갈라묵으믄 방어가 되니께로.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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