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5 - 2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5권에서는 간도(용정)로 이주한 평사리 사람들이 그려진다. 월선이는 간도에 기거했던 삼촌(공노인)의 도움으로 국밥집을 하고, 서희는 국밥집 한 켠에서 기거한다. 용정에 화재가 발생하지만 토지를 사고팔아 목돈을 만든 서희가 길상과 함께 집을 짓는다. 주목할 것은 길상과 용이의 변화다.
 
무당의 딸이라서 월선을 안지 못했던 용이는, 강청댁을 보내고 임이네와 가정을 차리지만 4권에서 월선에게 돌아갔다. 결국 간도에서는 넷(용이, 임이네, 임이네 아들 홍이, 월선)이 함께 한 집 살림을 한다. 문제는 임이네다. 국밥집 일을 돕는 임이네는 셈에 약한 월선을 이용해 돈을 모아 이자놀이를 하는 등 재물욕에 빠진다. 보다 못한 공노인은 용이에게 꾸중을 하고, 임이네의 행동에 치가 떨리는 용이는 월선에게 못된 말을 해 억지로 정을 떼고임이와 홍이를 데리고 다른 집 살림을 시작한다.
 
4권 말미부터 주목받은 길상의 진면목은 5권에서 드러난다. 듬직하고 잘생긴 길상은 하인들 뿐 아니라 서희의 마음도 얻는다. 길상은 서희에게 마음을 둔 상현와 일종의 기싸움을 한다. 서희도 상현과 길상을 두고 고민하는 듯 하지만 화재를 당한 본인을 모르는척 하는 상현에게 의남매를 맺자는 말로 선을 그어버린다. 하지만 길상은 명확하게 마음을 못 잡는다. 5권에서는 간도와 하동, 서희로 대표되는 속세탈속세를 꿈꾸는 길상의 마음이, 상충된다.
 
이 외에 평사리를 떠났던 영팔과 거복이가 다시 나타나고 금녀, 윤이병, 이상현 등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다. 의병운동을 하고, 광산으로 일을 가고, 또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하는 등 간도이주와 더불어 인물들의 많은 변화가 그려진다.

<발췌>
죄책, 무섬증, 잔인한 증오심, 뒹굴며 싸운다. 힘을 준다. 힘을 준다! 뱀의 창자가 터진다. 뒹굴고 굽이치면서 뱀은 죽는다. 용이 얼굴에 땀이 흘러내린다. ‘배미다! 배미! 저 기집은 숭악한 독사배미다!’ (p.27)
 
세상이 달라지고 곳이 달라졌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비겁한 놈이 됩니다. 세상이 달라지지 않고 곳이 달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억지를 쓰시는 일은 선비 체통에 어긋나는 일 아니겠습니까?”(p.45)     
양반 내세우면 뭘 하나. 이불 밑의 활개치기지. (p.48)
 
얼굴에 열이 오르면서 전신이 떨려온다. 뭔가 견딜 수 없는 것이 파동치기 시작한다. 차츰차츰 빠르게 세차게 피가 역류하고 솟구치면서 바람이 인다. 마음 바닥에서 바람이, 바람이 울부짖고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을 몰고 온다. 나뭇가지가 수없이 부러지고 흩날리고 거목(居木)이 통째 뽑혀서 나둥그러진다. 새들의 날갯죽지가 찢어진다. 뇌성벽력, 천지가 아우성이고 뭇 짐승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포효한다. 길상은 두 손으로 머리 골을 움켜쥔다. 얼마만 한 시간이 지나갔을까. 미친 바람은 썰물처럼 멀어져서, 멀어져가고 남은 빈터에…… 현기증이 난다. 적막한 바람과 눅진눅진한 현기증과 오색의 환상과 환상, 장작불 타는 시꺼먼 밤의 오광대놀이가 한 마당 막을 올리고 지나간다. 숲이 나타나고 강물이 나타나고 황톳길이 나타나고 섬진강을 따라 굽이쳐 뻗은 삼십 리, 하동으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그 위로 세월이 발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마음 바닥을 쿵쿵 밟으며 지나가는 세월의 발소리, 끊이지 않는 기나긴 세월의 행렬, 지나가다가 어떤 것은 되돌아오곤 한다. (p.65~66)
 
아니 갈보하고 일본사람하고 어째서 같소!”-“같지. 일부종사 못한 년이 갈보요, 두 나라 섬기는 놈이 역적이니.” (p.131)
 
전쟁에서 진다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처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욱 처참한 것은 동족이 상쟁하여 나라가 망하는 일이며 그보다 더 처참한 것은 오늘날과 같이 제 민족이 제 나라를 팔아먹는 그것입니다. (p.159)
 
여러분들은 편지를 쓰기 위해 글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셈을 하기 위해 글을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싸우기 위해 글을 배우는 것입니다. 알아야만 싸울 수 있습니다. 알아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p.162)
 
천성이 악독하고 교활한 자에게는 지식도 그 악독과 교활에 쓰이는 법이다. 연장도 쓰기 나름이 아니겠느냐? (p.166)
 
우리는 도둑의 무리 못지 않게 경계를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현의 길을 배웠으되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모르는 무리 말이다. 이들이 도둑과 합세하여 나라를 망해 먹은 셈이야. 첫째는 왕실 왕실은 왕실의 안녕만을 위해 백성을 배반했다. 둘째는 고관대작, 일신의 영달과 일문의 무사 태평을 위해 백성을 배반했다. 셋째는 선비들, 제 한 몸 닦기 위해 청탁만을 가려 백성들을 이끌지 못했으니 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배움에의 길은 내 나라를 위한 것, 내 겨레를 위한 것, 총도 될 수 있고 칼도 될 수 있고 분필도 될 수 있고 (p.168)
 
독수리 같은 중이었소. 늙은 독수리…… 대자대비하시고, 준열무비하시고, 교활무쌍하시고, 호방음탕하시고. 나는 그 어른이 비구인지 세간인이지 잘 모르겠소. 하하핫…….” (p.189)
 
지금 애기씨는 내게 있어 한 마리의 꾀꼬리 새끼란 말일까? 나는 애기씨를 위해 누구의 목을 비틀고 있는 게지?’ (p.214) 
    
아내가 있는 처지, 어쩔 수 없는 강을 끼고 맴을 돌면서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입히며 서로의 애정을 학대하며 마음을 엄폐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다 할지라도 종말을 그렇게 지은 것은 잔혹한 일이었으리라. 결의남매의 제의로써 상현의 가슴에 칼을 꽂았고 길상을 지아비로 맞이하겠노라는 말로 치명상을 주었다. 그만했으면 발걸음을 끊음으로써 서희에게 상처를 준 그 사내에게 앙심대로 열 배 스무배의 보복은 한 셈이다. 마지막 내뱉고 간 상현의 독설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절망의 절규, 상처 입은 울음이겠는데 그러나 서희는 백번 그렇게 생각이 미쳐도 터럭만큼의 위안도 받을 수가 없다. (p.262)
 
홀로 걷는 굽이져 뻗어가는 이 타관의 외줄기 길이 새삼스레 서러울 까닭이야 없겠는데 가도 가도 황토의 남도길, 등짐장수가 맨발로 갔으며, 액병과 보리 흉년에는 집 안에, 길바닥에 송장이 썩던 그 고국의 산천, 척박한 땅에선들 아니 서러울 날이 있었을까마는, 기름지다고 찾아온 간도땅의 사위는 어찌 이다지도 삭막한가 하고 용이는 생각한다. (p.321~322)

어매, 우찌 아들자식 하나 못 두었소. 살아 생전보다 어매 죽은 뒤가 더 서럽소. 무배믄 우떻고 사당이믄, 백정이믄 우떻소. 서러운 사람끼리 만내서 아들딸 낳아서, 와 그리 못 살았소. 참말로 차생이 없다믄 땅속에 누운 어맨들 우찌 한을 풀 것이며 낸들 우찌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겄소. 서럽게 나서 서럽게 살다가 서럽게 죽어야 하는 우리네들 신세가…… 어매, 우찌 아니 서럽다 하겄소?’ (p.363~364)
 
세상에 못할 것은 맘고생이제. 육신을 부리묵는 기이 훨씬 편치. 안 그런가? 오장에 기름이 끼니께 인간이 더럽어지더라구마.”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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