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신호를 기다리던 한 남자, 불이 바뀌었지만 그의 차는 출발하지 못한다. 뒤에서는 클락션을 울려대고 사람들이 차창을 두드린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무어라 말을 한다. 그의 입은 이런 말을 반복하고 있다. 눈이 안 보여, 눈이 안 보여, 눈이 안 보여.

본다는 건 무엇일까.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에게는 인간다운 것일까. 그는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먼자들이 인간 정체성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가치와 윤리를 상실하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갑자기 실명하는 병 백색질병이라 불리는 - 에 걸린다. 감염자들은 실명 당시를 즉시 눈이 멀었지만, 이상하게도 눈에서는 어떤 증세도 찾아볼 수 없었지, 또 시야는 눈부신 백색이었고, 눈이 멀기 전이나 후에 아무런 통증이 없었어(p.171)’라고 회고한다. 정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에 걸린 자들을 격리 수용한다. ‘눈먼 자들의 수용소에서는 ‘보는 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자행된다. 약탈이 만연하고 여성은 식량을 배급받기 위한 재물로 전락한다. 생존의 욕구 앞에 사람들은 극한의 으로 변해간다.

작가는 인간의 잔혹성을 부각시키는 장치 두 가지 - 무명과 안과의사 아내 - 를 설정한다. 이야기는 여덟 명의 주요 인물들이 이끌어간다. 안과 의사와 안과 의사의 아내, 맨 처음 도로에서 눈이 먼 남자와 그의 아내, 도로에서 눈이 먼 남자의 차를 훔친 도둑, 안과를 찾았던 손님 세 명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노인, 검은색 안경을 쓴 여자, 소년 이다. 이들은 끝까지 무명(無名)이다. 감염으로 대표되는 불행의 전조들이 보편적인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안과의사의 아내는 어떤 의미일까. 그녀는 수용소의 유일한 보는' 자다. 안과 의사의 아내는 모든 것을 목도한다. 혼자만 볼 수 있다는 책임감, 피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녀를 지치게 했는지 모른다. 시각에서 해방된 자들의 일들을 보며 그녀는 경멸스럽고 외설적으로 느껴졌다(p.96)’고 말한다.

소설은 무책임한 윤리 의식과 붕괴된 가치관, 그리고 폭력이 만연한 현대 사회를 암시하는 장면을 여러 양상으로 보여준다. 첫째, 정부의 태도다. 감염자들은 정신병원 건물에 수용된다. 군대가 문을 지킨다. ‘문 밖으로 나오면 즉시 사살 한다는 엄포가 수시로 전달된다. 둘째, 식량 불균형이 초래하는 불평등이다. 식량은 배급되지만 전체 수용 인원을 포괄하지도, 균등하게 배분되지도 못한다. 결국 계급과 층위가 발생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사라마구가 제시하는 인간 본성의 극한 모습을 직면한다. 무기를 앞세워 식량을 독점한 자들은 '먹고 싶다면' 여성을 대령하라 명하는데, 여성들 귀에 지원자 없소?’ 또는 내가 원한 것이 아니요라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자는 내 이웃의 불행을 감당할 수 있다. (p.241)”는 남성들은 연민과 동정심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패배했다. (p.235)”고 일침을 놓는다.
 
사라마구에게 눈먼 자들은 동정 혹은 아픔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공동의 목표를 위해 소수 혹은 약자를 희생시키려 하는 다수 혹은 강자의 모습이다. 안과의사의 아내가 식량을 독점한 자들의 우두머리를 처단한다. 이때 눈먼 자들은 누가 그를 죽였는지 찾아내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나 대신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생존을 도모하는 이기심의 처절한 표현 아닐까. ‘나만 아니면 돼라는 농담에 쉽게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 이유다.

책이 인간의 잔혹함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주제 사라마구는 휴머니즘 혹은 인간애를 표현한다. 안과의사의 아내는 수용소 내에서 마치 어머니와 같다. 그녀의 보살핌에 따라 눈먼 자들은 함께어려움을 타개해간다. 먹을 것을 구하고 살 곳을 마련한다. 그 노력을 저 너머의 누군가가 알아준 걸까. 안과 의사의 집에서 눈 먼 자들끼리 휴식을 취하던 중, 맨 처음 눈이 먼 남자가 외친다. 눈이 보여요, 눈이 보여요, 눈이 보여요.
 
주제 사라마구의 글에서는 대화가 등장하지 않는다. 따옴표가 없는 건 흡입력을 만들어내는 그만의 방식일 테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의 의도를 깨닫는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p.461)”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의미 아닐까.
 
<눈먼 자들의 도시> 1995년 포르투칼에서 출판되고 3년 뒤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주제 사라마구가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소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결국 2008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가 개봉했다. 텍스트가 영상으로 어떻게 변형됐는지 알아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확인해보자. 브라질 영화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백색질병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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