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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그녀의 책을 모두 섭렵하고 싶었다. 한 권 한 권 읽었다. 빌려 읽고 사서 읽고 서점에서 읽고. 영화의 테이크를 보는 듯한 깔끔한 챕터 구분이 인상적인 [두근두근 내 인생]을 보면서 '사람 마음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작가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글쓰기 수업에서 김애란 이라는 작가에 대해 듣게 됐다. 작가로서 탈 수 있는 모든 상을 20대에 전부 수상했다는 것. 여전히 그녀만의 필체로 많은 작품을 쓰고 있다는 것. 또 내 또래라는 것. 그래서 시샘 반, 존경 반으로 그녀의 모든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비행운]의 <서른>을 읽고는 마음을 바꿨다.
'샘 여기 분위기 쩔어요. 원래 이런 건가염. 샘 배고파요. 밥 사주세염. 샘 왜 제 문자 씹어요. 샘 전화 좀. 샘 어디세요. 샘 전화 한 번만. 샘 저 좀 꺼내주세요......'(317p)
'나'는 아는 언니에게 편지를 쓰며 그간의 일들을 차분히 전한다. 학원 선생님이었어요.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어요. 집이 어려웠어요. 예전의 그 남자를 다시 만났어요... '나'는 예전 그 남자의 말에 따라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곳으로 들어간다. 내 돈으로 산 홍삼, 내 돈으로 산 배즙, 치약, 칫솔. '나'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꿀꿀이 죽을 먹으며 짐승같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내 인맥을 총동원해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만나고 설명한다. '나'의 인맥이 시들해졌다 싶을 때 한 때 제자였던, 눈에 띄게 사랑스러웠던, 아이에게 연락이 온다. "샘, 잘 지냈어요?"
작가는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아찔할만큼 우울한 군상들에 대한 모티프를 얻었을까. 그들의 모습을 읽노라면 물 속 어두워서 캄캄한 어느 한 지점, 설마 내가 상어 입속에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소름이 쭈삣도는, 그런 심연에 갇힌 느낌이 든다. 그래서 혹자가 [비행운]에 대해 '비행운(飛行雲)을 꿈꾸다 비행운(非幸運)에 빠지는 악순환'이라고 말했을까. 옛 남자의 달콤한 말에 비행운을 상상하다 옛 제자의 '꺼내주세요'로 끝나는 <서른>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벌레들>과 <물속골리앗>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오싹함, 그 안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무기력함도 잊혀지지 않는다.
슬프고 싶어 '울 꺼리'를 찾아 한없이 음울한 영화를 찾을 때가 있다. 아마도 그럴 때 김애란의 [비행운]도 효과를 톡톡히 발휘할게다. 단, 주의해야한다. 너무 무겁게 우울해 마음이 쉽게 회복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김애란 님의 쫀쫀한 문장들이 살아 있으니 매력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서른]을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