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학 학사를 따고 미술사 관련 석사와 박사를 땄다는 저자의 경력이 눈에 띄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다 한 저자의 책을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한 장 한 장 넘겼다. 삶이 막막할 때면 그림을 바라보며 치유의 길을 묻는다는 그녀다웠다. 누군가의 삶에 그림이 이토록 적절히 스며들 수 있을까.

 

<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세 가지 테마를 갖고 있다. 사랑, 관계, 자아. '인생'과 '삶'이라는 화두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가 아닐까. 사랑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을 사랑하는 이에게 비추어보기를 좋아한다. 특히 연인의 눈은 자신을 실시간 촬영해주는 동영상 카메라와 같다고나 할까. 연인들은 서로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상대방에게서 찾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모습이다.(65p)' 결국 사랑도 '나'를 알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까. "사랑이란 말야, 나한테만 꽂혔던 생각이 다른 사람한테 옮겨갔을 때, 그게 바로 사랑이야!"라고 외치던 나의 사랑론을 점검하게 해준다.

 

관계에 대한 주제가 아마 저자에게 제일 어렵지 않았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관계와 감정들, 또 이를 표현한 수많은 그림들의 연결고리는 오로지 자신의 '관점'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부분이니까. 특히 질투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흥미롭다. 에드바르드 뭉크의 <질투>를 전면에 내세운 '고통스러운 상상, 질투'에서 저자는 '상대방을 의심하고 불안한 상상을 키워가는 것이 바로 질투이다. 그 상상은 사랑함에 있어서 또 사랑받음에 있어서 자신감을 결여한 자가 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네가 더 가졌고 내가 못 가진 상대적 부족함에 대한 인식이 결국엔 자신감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간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질투심을 느꼈던가. 그 사람들보다 내가 자신감이 부족했던가?! 

 

마지막엔 자아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을 아는 것은 손쉬워 보이는데 반해 '나'를 아는 것은 평생의 업보처럼 여겨진다. 도대체 나를 아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어떤 식으로든 내가 알게 된 나는 정답의 나일까. 타인에게 나와 나에게 나는 같을 순 없는걸까. 자아편에는 상당히 많은 저자의 지인들이 등장한다. 다시 오르지 못할 인생이라는 꼭데기를 맨 밑에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친구부터, 훌훌 털고 떠난 멋진 선배까지. 자아를 말하는 부분에서 타인들을 더 언급한 저자의 설명을 읽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에 손을 대는 내게 <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그저 one of them이었다. 베스트셀러라서 누구보다 빨리 읽고 싶은 경제학 책 한 권, 고전읽기 코스 중 한 권인 또 다른 책, 소녀들의 성장기를 담은 소설 한 권 그리고 이주은 저자의 심리치유에세이 한 권. 마음이 꽤나 복잡한 몇 주를 보냈다.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놓고 밤잠을 설쳤다. 내 심장을 누군가 쪼물딱거리려 숨 쉬기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였을까. 그저 one of them 중의 하나였던 심리치유에세이 <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내게 단숨에 흡수됐다. 그리고 난, 완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심장을 만지는 대상이 누군지 알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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