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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7년 같은 14일을 보냈다. 구미에서 이틀, 수원에서 하루, 서울에서 여러 날, 그간 내 손에는 <7년의 밤>이 들려있었다. 왜, 지금, 이 책이, 내 손에 있을까? 근묵자흑인가. 그렇게 몇 일을 <7년의 밤>을 온몸으로 읽었다. 하루는 세령으로, 하루는 현수로, 하루는 서원으로, 또 하루는 승환으로. 그리고 열병을 앓았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엄마의 탯줄보다 더 강력한 끈이 있다. 남성으로서의 동질감, 넓은 어깨로 철벽수비를 해줄 사람에 대한 무한 신뢰. 서원에게 현수는 그런 존재다. 수술실 불빛에서 떨고 있을 때, 휘파람을 불며 '돌격 앞으로'를 해줄 수 있는 '아빠'다. 그런데 어느 날, 서원에게 아빠의 죽음이 날아든다.
그 날 세령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선데이매거진이 꼬리표처럼 서원을 쫒는다. 교실 책상에 선데이매거진이 얌전히 놓여있다. 전학을 간다. 몇일 후 또 선데이매거진이 날아온다. 서원은 또 전학을 간다. 서원은 승환을 찾고 승환은 글을 쓴다. 그리고 어릴적 현수가 선물했던 나이키운동화가 또 다시 서원에게 배달된다. 오영제가 있다. 하영이라는 부인과 세령이라는 딸을 둔 완벽주의자. 지정된 장소에 '그의 것'인 하영과 세령이 있어야한다. 오랫동안 메달려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처럼 오영제의 인생도 하나의 작품이다. 흠잡을데 없는 완벽함 그리고 교정.
사실은 무엇일까?
세령호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에는 명확한 선과 악, 뚜렷한 대립구도, 확실한 울분이 있다. 그러나 작가 소개글에 있듯 '사실과 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는 현실'도 있다. 확실해야 할 진실이 오히려 불투명 유리로 가려져있다. 세상 속 인간다반사가 그런 것처럼.
삶 속에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일까. 피해자와 가해자가 꼭 존재할 때만 '사건'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까. 하나의 사건 속에는 꼭 한명의 가해자만 있는 걸까. 그 가해자가 이면의 피해자는 아닐까. 그 시작과 끝은 누가 알고 있을까. '시간이 해결해주리라'는 일반의 믿음처럼,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있는걸까. <7년의 밤>을 읽고 소설가 조용호가 '작가의 에너지가 경이롭다'라고 평했다. 온몸이 아플정도로 뼈 속에 강한 필치를 심어준 정유정이라는 작가가, 진실로 존경스럽다. 당분간 그녀의 글에 빠져살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