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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영화 소개 프로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나선 남자와 전직 형사, 그녀의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드러나는 충격적 미스터리를 담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베스트셀러 소설 <화차>를 각색한 작품'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TV속에는 이선균과 김민희가 있었다. 오묘한 눈빛에 긴 생머리를 한 한 여성 그리고 분노라고 해야할지 체념이라고 해야할지 정확히 읽히지않는 매서운 눈빛의 한 남자, 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원작을 꼭 읽어야겠다' 미야베 미유키,,, '미미여사'의 작품이다. <모방범>으로 익히 알려진 그녀, 이번에는 어떤 이벤트를 그녀답게 풀어낼까.
총상을 입고 휴직 중인 한 형사에게 먼 친척이 찾아온다. 아내의 장례식 때도 모습을 비치지 않았던 이 청년은 형사만의 '능력'을 언급하며 자신의 약혼자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결혼을 약속했던 약혼녀, 그녀의 이름은 세키네 쇼코다.
<화차(火車)>는 세키네 쇼코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뼈대는 '잃어버린 사람'을 '되찾는다'는 원인, 결과의 구성을 띄고 있진 않다. 그 대신 욕망의 허상을 좇고 결국 파멸해버리는 어리석은 선택들과 신용카드, 소비자금융과 같은 자본주의 결과물에 먹혀버리는 사람들과 또 이를 방치하는 데 그치지않고 더 깊은 타락으로 인도하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담고있다. 결국 작가는 사회 현상을 전반적으로 꿰뚫어 그 사례를 투영한 인물을 통해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변호사의 입 또는 형사의 생각을 통해 '현상'을 '문제'를 부각시켰다. 아마도 사회를 맹렬하게 비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야기의 흐름은 아주 명쾌하다. 사토루(형사의 아들)의 문제와 혼마(형사)의 문제가 평행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멍청이('개'의 이름)를 잃어버린 사토루, 멍청이를 찾아다니는 꼬마들, 멍청이의 죽음, 멍청이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사토루의 슬픔, 체념,,, 아이의 마음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혼마의 생각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분명한만큼 베일을 벗는 세키네 쇼코의 정체와 소비자본주의의 문제는 너무 참담하다.
메세지 또한 분명하다. 물질적 기준으로 판단되는 성공과 실패에는, 한 사람의 의지 외에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돈의 흐름과 이를 좌지우지하는 큰 실체가 있다는 것. 이를 이용해 누군가의 등에 칼을 꽂으며 살아가는 이들도 대단히 많다는 것.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짊어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멍청이가 죽임을 당한 것처럼.
이야기 중간에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중략)...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346p)
토크쇼에 나온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난 행복한 사람이구나'를 깨닭은 사람들이 있다고한다. 건강한 신체가 있어서, 행복한 가정이 있어서, 나를 지켜주는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에는 '그 사람 불쌍하다'는 본의가 숨은 것 같단 생각에 마냥 기쁜 마음으로 동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란 사람도 결국 '나'만 바라보는 존재였나보다. 세키네 쇼코를 찾아가면서 내 마음 속에도 그런 종류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 사람 불쌍하다'는 꿍꿍이를 내포한 '난 그래도 괜찮은 편이구나',,, 이게 바로 미미여사가 <화차>를 통해 단죄하고 싶었던 현실이었을거라 확신하면서도. 세키네 쇼코가 그랬듯, 이미 많은 사람들이 허물을 벗어왔고 지금도 벗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나오겠지,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