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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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스스로 "상상력의 불은 꺼졌다"고 선언하며 '절필'하고 용인 변방의 외딴집 '한터산방'에 들어가 3년 동아 침묵의 은거에 들어갔다. 1996년 작가로 다시 돌아온 이후부터 인간 존재의 본질을 그려내는 격조 높은 소설을 왕성하게 발표,,,,잇달아 수상했다. - 박범신 작가 소개 중 -



93년에서 96년까지, 다시 작가가 되어 돌아오기 전까지 박범신 님께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그저 없던 상상력이 생겨서 돌아왔다고 여기기엔 그의 작품들이 내 호기심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작가 소개 글에 있는 것처럼 96년 이후 그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그려내는 소설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게다가 2010년 겨울, 세상에 나온 [비즈니스]는 자본주의 경쟁 구조를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비즈니스.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는 이 사회의 모든 관계를 아우르는 아주 통 큰 개념이다. 이 개념은 협상 테이블 뿐 아니라 결혼에 대처하는 우리 자세에도, 공부를 하는 목적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아들을 성골(盛骨)로 성장시키고픈 엄마에게도 있다. 요가로 몸을 다져온 '나'는 아들의 과외비를 대기 위해 몸을 판다. 그리고 나는 '한 남자'를 만난다. 세상은 미처 돌아간다. 시장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도시를 깨부수고 다듬는다. 원래 계획이 아닌 우회 길을 선택한 이유는 그저 '친척들이 그 쪽 땅을 많이 샀기'때문이다. 발전할 줄 알았던 도시는 쓰레기가 차고 넘쳐 벌레들이 들끓는다. 횟집을 운영하던 '한 남자'는 인간에서 '타잔'으로 변한다.



[비즈니스]에는 두 가지 주제가 물려있다. 정상처럼 보이는 - 자본주의 하에서 -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모습과 그 모습을 닮은 사랑을 하고 있는 내가 진짜 사랑을 찾게되는 과정이다. 부의 대물림이 전 국민이 공통 목표가 되버렸다. 부를 위해서는 학벌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없는 엄마들은 아이들의 학벌을 만들어주기 위해 뛴다. 파출부로 종업원으로 간혹 몸을 이용한 일터로. 연애의 설렘을 잊은 남편들은 아내의 이런 모습을 의미없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비난도 없다. 남편들은 기계처럼 회사로 나간다. 열정의 깊이가 청춘이라면 그들은 이미 죽음에 가깝다. 의욕도, 꿈도 없다. 그저 하던대로, 돈만 벌어다주면 그 뿐이다. 아이들은 뺑뺑이 학원 놀음에 혹사당한다. 하루의 계획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의 학원과 과외 스케줄 뿐이다. 놀이터에서 뛰어 놀 시간도, 친구네 집에 놀러갈 시간도 이들에겐 없다.



부(富)의 세습적 구조는 날이 갈수록 오히려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구조는 전선(戰線)조차 뚜렷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이었기 때문에, 뿌리치거나 깨부술 방도가 전무했다. 뿌리치면 실패자로 세상 끝으로 밀려나야 했고, 깨부수려 하면 감옥에 가야 했다. 그러니,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귀족의 전사가 되는 길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129p



박범신 님의 눈을 통해 드러난 우리 세상이다. 그러나 그는 그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의 해결책은 사랑에 있다. 아이와 남편 그리고 가정이 몸 숨길 곳 없는 전쟁통이라면 사랑은 깊은 구덩이다. 돈을 벌어다주지 않지만 유일하게 만족감을 준다. 비즈니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사랑' 뿐이다.



주리의 얘기를 읽으며 결국 '사랑도 자본재(資本財)란 말인가?'라고 씁쓸해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야 난 작가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여름이와 함께 사는 나, 그 사람을 기다리는 나 그리고 바다가 돌아눕는 소리. 자본주의 쓰레기로 가득 차 아파하던 바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알고 보면, 진실로 두려운 것은 사랑밖에 없었다(141p)"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소설은 그 시대의 거울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일게다. 그럼 우리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리라. 하지만 '사랑'처럼,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은 모든 자아들의 숙제다. 이것이 소설 [비즈니스]가 우리에게 던져준, 작가 박범신이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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