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전미옥.김윤희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생애 다섯 번째로 자살을 시도하다 서른 아홉 살에 사망한 다자이 오사무. 그의 움푹 패인 볼우물과 어울리는 제목과 내용이다. '기준 미달이나 기준 초과, 규칙 위반 따위로 자격을 잃음'을 뜻하는 실격. 그의 초라한 자아상은 [인간 실격] 후반부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는 금년에 스물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흰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서 대부부의 사람들은 나를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175p)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머리말이다. '일본의 위선을 증오한 연약한 청년'이라는 제목으로 묘사된 이 머리말은 저자의 삶이 '실격'임을 단번에 알게 한다. 고리대금업으로 성공한 자신의 집안을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축적되는 부의 치부, 농민들의 원망을 자신의 문학의 뿌리로 만든다. 귀한 도련님으로 성장하지만 결국 몸도 마음도 너무 약했기에 인간 실격 판정을 받는다. 위선이 싫은 어린 청년에게 기성세대의 삐뚤어짐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나는 그 사내의 사진 세 장을 본 적이 있다'(11p)로 시작하는 [인간실격]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또 다른 '나'로 설명된다. 색마 혹은 파탄자로 불리는 나는 익살꾼이다. 뭐든지 간에 그냥 웃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 실없이 익살을 부리고 인간들을 즐겁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난 공포로 떨고 있고, 우울과 소심증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 내게 사회는 꽤나 이율배반적이다. 그래서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니 도덕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난 그저 익살꾼이다.

 

미술을 하기 시작한다. 사회 운동 단체에 가담한다.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의지, 유물론을 받아들이는 자세 따위는 없다. 그저 나는 그들의 익살꾼 '동지'. 익살을 부릴 뿐인데 여자와 술이 따라온다. 여자들은 이상하리만치 내게 무언가를 갈구한다. 술의 유혹을 뿌리쳐 약방을 두드린다. 처음엔 귀신같이 일어서던 약방 아내가 언젠가부턴 날 보면 눈물을 흘린다. 나도 운다. 점점 미쳐간다.

 

폴오스터가 침소봉대 스러운 말투로 긴장감을 준다면 다자이 오사무는 남의 얼굴에 자신을 투영해 가슴이 졸아드게 만든다. 책 뒷면 표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구보다 인간이기를 원했으나 끝내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한 한 인간 실격자의 처절한 고백'. 후기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나(요조)의 이야기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얘기다. 신흥 졸부라는 사실에 평생 동안 부끄러움을 느껴 좌익운동을 하기도 했고 극심한 정신적 공황을 겪었던 그의 이력은 요조를 빼다 밖았다. 결국 fiction의 모양을 한 non-fiction인 게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자신의 부와 평온한 위치를 철저히 사회주의 입장에서 돌아볼 수 있는 - 말하자면 남 얘기 하듯 할 수 있는 -  다자이 오사무란 사람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무섭기도 하다. 그만큼 인간실격은 솔직하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 죽기 전까지 그는 '부끄럽게 살아왔습니다'는 고백을 대체 몇 번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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