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주동과 반동이 엎어지면서 뱅글뱅글 돌아가는구조를 예상해 리뷰 제목을 '뫼비우스의 띠'로 하려 했다. 그러나 [π]에 가서 '이건 아니구나' 싶었다. 인물도, 구조도, 사건도, 예측 가능성의 여지라곤 조금도 남지 않는다. 여기에는 주동인물도 반동인물도 없으면서 사건은 존재한다. 그럼 사건은 똑 부러지게 존재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한 마디로 '뽕 맞은 느낌'의 소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여섯번째 꿈'을 읽을 때는 뻔한 추리 소설 같았다. 의문의 사건이 발생해 당사자들끼리 문제를 풀어가다 결국 밝혀지거나 다 죽거나하는, 제목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본 소설이 떠올랐었다. 그런데 역시, '복수의 공식'에 가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다. 여기서는 영화 [쏘우]가 생각난다. 서로 모르는 이들이 아무 이유없이 모였는데 알고보니 공통점이 있더라하던. 묘하게 수미쌍관이 이뤄지면서 '∞'를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죄 짓고 살면 안된다'라는 현실적 교훈까지. 그런데 또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어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179p)

 

3.141592... 순환하지 않는 무한 소수이므로 소수점 둘째자리까지만 외워라 하던 그 부호가 등장하면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에 갇힌다. 번역가의 일감 속, 미모의 여친이 구전동화 처럼 전해주는 또 하나의, 그 안에 들어있는 주인공의 또 다른,,, "자네가 겪은 일이 이곳의 조각들을 가져다 만든 퍼즐이라고 생각하지? 그럼 이런 생각은 안 해봤나? 여기 이 병원도, 어딘가의 다른 현실에서 조각들을 가져다 만든 퍼즐일지 모른다는 생각. 그렇다면 진짜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271p)" 각 사건들이 각각의 층을 구성해 복합구조물을 형성했다면 그 속에서 M이 가장 표면에 있는 1차 구조라고 우기는 길은 '커서의 위치' 뿐이다. 이쯤에 와서는 저자가 어떤 관계 구조도를 놓고 이 글을 만들었는지 그 생각 속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마지막 챕터의 두 번째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을 이렇게 시작할 생각이었어요.(287p)

 

예전에 뭣 모르고 도전했던 물담배 때문에 몽롱한 기운에 토악질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이 즈음에 와서, 3인칭 관찰자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급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변한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공학과 사회과학 서가에 몰래 숨겨두고픈 미스터리 소설 책 제목이 내 손에 들려진 책과 동일한 제목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탁! 무릎을 쳤다. 아하! 작가의!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조금의 과장도 섞지 않고, 책 펴자마자 끝장을 냈다. 그리고 QR코드까지 스캔해가며 음악과 이미지까지 감상했다. 'QR코드'를 접목했다는 책 소개글을 보며 'IT를 문학과 연결했군. 발칙해!'라는 생각으로 집어 들었는데, 발칙한건 둘째치고 내용은 새롭다 못해 희한하다. 미스터리 소설인데 내용과 구조의 신선함에 오히려 머리가 산뜻해지는 기분이랄까? 진짜 오랜만에 흡족한 소설!! 별 7개!! 일차 뒤집기 이차 꼬기같은 평면구조가 아니라 예상치 못하는 미로를 탐험하는 기분,,, 끝내준다!! 최제훈이라는 작가, 앞으로도 꼭 챙겨볼 작가로 리스트 업 해야겠다. fiction의 끝을 보고 싶다면 [일곱 개의 고양이 눈] 꼭 한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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