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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백제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광활한 국토를 장군의 기상으로 넘나들었던 기마민족 고구려, 찬란한 예술 문화를 꽃피운 신라, 그렇다면 백제는,,,? 현재의 증거는 과거이므로 미래를 예측하려면 사학을 공부하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역사에 대해 특히, 백제에 대해 참으로 무지했다는 것을 [대백제]를 읽으며 깨닭을 수 있었다.
[대백제]의 대전제는 일본의 뿌리는 '백제'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국은 그렇다치고 일본은 도대체 왜? 그것은 바로 일본 천황가가 '백제의 화원'이란 사실에 근거한다. 일본의 천황가 혈통의 시초인 오진왕조가 고구려 광개토 대왕에게 밀려 일본 열도로 망명한 웅진 출신, 즉 비류계 백제 왕이었으며 일본의 한 고서에 '백제와 일본이 같은 혈통임을 증명하는 모든 문서를 칸무시대에 불태웠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천궁녀 의자왕'은 잘못된 사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의자왕은 왜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걸까? 그것에 대해 삼천궁녀의 진실과 당대 사람들의 의자왕에 대한 인식을 빌어 증명하고 있다. 첫째, 낙화암의 삼천궁녀는 15세기 말 시인들이 부여에서 읊조린 시구절 가운데에 들어 있는 말이었다고 한다. 둘째, 삼국사기에서는 의장왕을 海東證子 칭했으며, 이는 공자의 제자 증자와 같이 효심이 깊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은 사람이라는 극찬이라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자왕을 부패와 타락의 역사로 인식시키는 국사교육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일본에 뿌리내린 백제의 패션에 대한 설명도 있다. 각종 무덤에서 발견되는 금관 상식과 금 귀걸이, 청동 거울 등의 유물은 고대에 일본에 까지 영향을 줬다는 것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고대 일본인들에게 '백제 스타일'은 최신 유행이자 상류계층의 상징이었다는 것! 무령왕의 금제 관식은 후지노키 고분의 금공 관식과 유사하며 나주 복암리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은 에다후나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신발과 같은 계보를 잇는 다고 한다.
[대백제]는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에 의해 탄생한 책이다. 방송에서도 구석구석 밝히기 어려운 한 나라의 실체를 한정된 책에서는 어떠했겠는가? 결론적으로, 깊이는 부족하지만 '백제'에 대해 재고할 기회는 충분히 제공했다. 그러나 자막을 이어붙인 듯 정리되지 않은 글과 화면을 캡쳐한 듯한 사진들의 두서없는 배열이 '진실'을 알리는 역사서로는 많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