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것처럼 달리고만 있지 않나요?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루프레히트 슈미트.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죽음'처럼 만인에게 평등한 의무가 있을까?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때'가 되서야 비로소 내가 '죽음'이란 의무를 득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갖고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했고 알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있었기에 '죽음'이 앞에 왔을 때는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시점에 다가서기 전 얼마 동안이 너무나 소중한지도.

'루프레히트 슈미트'는 호스피스의 요리사이다. 촉망받는 요리사였던 그는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찾다가 '로이히포이어(등대불빛)'이라는 호스피스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사가 된다. 최고급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준비하지만 이것들은 호스피스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햄버거, 응유같은 평소에 자신들이 즐겨먹던 '보통' 음식들이다. 스파게티 수영장에서 행복해하던 할머니가 등장했던 영화[패치아담스]가 생각난다.

루프레히트의 하루 일과는 각 방을 돌며 주문을 받는다. 오늘이 될 지 내일이 될 지 모를 '그 날'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준비해 드릴까요'라는 루프레히트의 말은 큰 의미를 갖는다.'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미각 신호 그리고 건강하던 '예전'을 떠올리며 기뻐할 희망 신호. 각각의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며 기꺼이 배달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촛대가 켜진다. 누군가가 '때'를 맞이해 이별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 신호를 받아들면 루프레히트는 '좋은 기분을 작동시키는 머릿 속 스위치'를 누른다.

호스피스에서 마지막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얘기는 의외로 덤덤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오히려 '삶'에 대해 더 깊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평범한 진리보다 더 큰, 그래서 '마음은 먹어도 조절할 수 없는' 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의 모든 상황을 스스로 결정하고 조정하고 있을까."라는 롤프 퓌링의 말처럼.

억지 울음이나 슬픔없이 담담하게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의 이야기 [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 혹시 영원히 살 것처럼 숨가쁘게 달려 오진 않았는가? 마지막은 내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가? 그렇다면 루프레히트의 "마지막 식사,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말에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그토록 지겨웠던 평범함'이 '소중한 어떤 것'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서 놓쳐서 안 되는 것들'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