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뿔(웅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저자 바르가스에게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어서는 안되며, 독자를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붙잡아 둘 수 있어야 하고, 독자를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는 바르가스의 원칙을 약 98.5% 지켜졌다고 평가하겠다.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는 이야기의 전개 과정을 철저히 지킨 추리소설이다. 미행이라는 특이 습관을 지닌 저명한 해양 학자와 육감을 지닌 장님의 만남은 '도입'이자 '발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둔하고 느리지만 - 주인공이 언제나 그렇듯 - 완전 무결한 일처리 능력을 지닌 아담스베르그와 몇 명의 경찰 동료들, 그리고 파란 동그라미의 발견들이 '전개'부분이다. 또, 부정의 기운이 전혀 감돌지 않던 동그라미 안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위기'이며 네 명의 인물들이 용의자에서 점차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로 바뀌는 부분이 '절정'이고 썪은 사과 냄새, 잡지 따위로 반전 효과를 표현한 부분이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덮음과 동시에 이야기 흐름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이 부분이 바르가스의 첫번째, 두번째 원칙이 잘 지켜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바르가스의 지적 유희를 증명하는 표현들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다음은 책에 딱 한번 등장하는 아담스베르그의 누이가 아담스베르그의 여자친구를 평가한 부분이다.

 

"그 정도면 합격, 완벽한 몸매, 한 시간 정도 함께 있으면 즐겁고, 머릿속은 중간 정도에서 아주 심한 정도록 복잡하며, 정신세계는 구심성이며 주된 생각 또한 구심성며, 대략 세 가지쯤 되는 중심적인 생각이 축을 이루고 있어서 두 시간쯤 같이 있으면 대화가 공회전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침대에서 사랑을 나눌 때는 노예처럼 순순히 남자의 요구에 따르며, 다음 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론은 지나치게 남용하지 말고 가능하면 바꾸는 것이 좋다."(91p)

 

종합적으로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는 탄탄한 짜임새, 개성 넘치는 인물들, 위트 있는 표현들이 가득한 소설이다. 그리고 옮긴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처럼 바르가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또 그녀의 소설에 등장한다고 한다. 스쳐가지만 언젠가는 만날 인연처럼 흑백영화의 낭만을 품고 있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사뭇 궁금해진다. 깊어가는 가을 따뜻한 커피와 어울리는 바르가스의 깨끗한 추리 소설의 세계에 꼭 한번 빠져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