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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거칠지만 그 속에 意氣를 감춰놓은 '걸오'가 있다. 여성스럽고 능글맞은 '용하'도 있다. 그리고 남장을 한 여인 '윤희'와 반듯한 '선준'도 있다. 소위 '잘금 4인방'이라 불리는 이들은 근 30년 동안 들어온 부모님 잔소리보다 위력이 컸다. 월요일, 화요일 나의 귀가 시간을 당겨주었으니 말이다! 지난 화요일 "남색은 바로 저입니다."는 선준의 대사로 끝맺은 <성균관 스캔들>은 나를 안달나게 했고, 결국, 원작<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손에 들게 만들었다.
원작소설과 영상이 함께 하는 작품은 보통 영상이 그 원작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많은 이야기를 제한된 시간안에 표현해야 하므로 임팩트 있는 부분만 극대화 시키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스토리 전개가부자연스럽고 더불어 인물들의 감정 흐름도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작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는 어떨까? 결과는 -지극히 내 생각이지만- win-win이라 하겠다.
원작은 드라마의 미디어 지원을 받는다. 즉, 드라마를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윤희, 재신, 용하, 선준의 동작과 목소리, 표정이 머릿 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재신과 선준의 감정 대립을 지켜보는 용하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과 선준에게 마음을 뺏긴 윤희의 애절함이 어떤 모습일지 너무도 명확하게 그려진다. 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인물을 스스로 만들는 것이 독서의 큰 이점이란 측면에서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윤희를 향한 재신의 표정이 꼭 걸오의 모습이 아니라 얼굴 반을 차지하는 미소년의 큰 눈망울 속 가득 고인 눈물일 수도 있고 백마탄 왕자의 섬세하지만 열의 가득한 눈빛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머릿 속에 아로새겨진 드라마 인물들의 모습은 원작소설을 그 어느 작품보다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원작은 드라마 스토리의 전,후 관계를 정확하게 연결시켜 준다. 예를 들어, 나는 드라마에서 장의를 호위하는 세 인물들에 대해 의구심을 종종 가졌었다. 왜 저렇게 헌신적인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등등. 하지만 이를 원작에 묘사된 김윤식과 영춘의 싸움을 보며 정치적 당파의 위력과 그 대척점을 통해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 또한, 노론의 입장에서 당에 얽메이지 않고 올곧게 길을 가고자 하는 선준의 의지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 초점에 맞춰진 드라마보다 원작에서 더 확실하게 표현됐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드라마도 방영 중이고, 원작 또한 전체 완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작과 드라마가 글과 영상으로 전해주는 '성균관 이야기'는 여타 사극들이 주는 무거움 대신 젊은이들의 감정이 공자님 말씀과 버무려져 경쾌하게 표현됐다는 점에서 끝까지 지켜봐야 할 기대작이라고 하겠다.
<성균관 유생의 나날1>의 마지막 용하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가짜가 더 많은 무리에선 진짜도 가짜인 척하지 않으면 안돼."
여자이면서 남자 행세를 해야 하는 윤희,
의로움을 마음에 품고 걸인처럼 행동하는 재신,
윤희를 마음에 두고 다른 이를 정인이라고 해야 하는 선준,
진지함과 벗에 대한 우정을 가벼운 호색한으로 표현하는 여림,
잘금 4인방의 삶을 빗댄듯한 저 대사에 앞으로의 일들이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