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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5:55 10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알람을 기계적으로 끄며 일어난다. 6:00 외국어 공부는 평생의 과업이라는 믿음으로 매일 20분동안 - 눈도 뜨지 않은채 - 전화로 외국인과 떠들어댄다. 6:30 읽는건지 눈으로 사진을 찍는건지 신문을 훑으며 단 세 숫가락만에 식사를 끝낸다. 7:10 커리어우먼의 내공을 보이기 위해 아무리 피곤해도 깨끗한 옷차림과 화장은 빼먹지 않는다. 그리고 직장으로 향한다. 업무시간, 눈은 모니터와 싸울 듯하고, 연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대는 손가락은 몹시 바쁘다. 불규칙한 퇴근 시간, 그래도 오늘이 끝나기 전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귀가한다. 빠르면 9시, 보통 12시를 찍는 귀가 시간은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쓰러지듯 침대에 흡수되게 한다.
이렇게 2년반 정도를 살다보니, 어느 새 '나도 모르는 내'가 되어있었다. 여유가 없는 것이 성공했다는 것의 증명이라도 되는 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일을 만들고 끝내고 해결하며 살았다. 그리고,,, 주인공 '리즈'도 그랬다. 명백히 성공한 삶이었고, 경제적으로 안정됐으며, 부와 명예를 지녔다. 하지만 결혼 생활의 위기를 통해 흩날리듯 달려온 삶에 회의를 느끼고 욕실 바닥에서 '신'을 갈구하기에 이른다.
결국, 몸에 꼭 맞는 자아와 인생을 찾으러 삼색 여행을 떠난다.
언어의 미학에 빠져들어 가게 된 첫 번째 나라, '이탈리아'. "너의 단어는 뭐야?"라는 친구의 말에 정신이 아뜩하다. 단지, Attraversiamo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할 뿐. 신앙 추구를 위해 찾은 두 번째 나라, '인도'.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며, 빈정거림으로 단련시키는 리처드를 벗으로, 영적 평화를 경험하고 유지해 나간다. 결국, 자신의 단어를 찾기에 이른다. 마지막, 세 번째 나라, '인도네시아'. 2년 전 농담처럼 들었던 주술사의 예언데로, 발리에 다시 와서 '라고프라노(행복한 몸)'의 별명을 얻어간다. 그리고 격자무늬의 정형성이 안정된 삶이라는 발리인들의 사고처럼, 정사각형 속 자신을 만들고, 다듬고, 나아가 사랑을 찾는다.
욕실에서 울부짖던 초반 모습에 비해 아기자기하고 동화같은 리즈의 삼색여행 결론은 약간 싱겁다.
하지만 리즈가 여행을 통해 만들어내는 '108개의 인생 단추'는 하나 부터 열까지 그녀의 삶에 빗대어 나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불어 돌진하던 일 멈추고 한 숨 고를 수 있는 '빈둥거림의 미학'까지. 행간을 따라가며 느끼는 리즈의 이야기 중 한 토막에서 내 인생의 핵심가치를 찾아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지옥은 어떤 곳이예요, 끄뜻?"
"천국과 똑같아. 우주는 원처럼 순환해."
"그럼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뭐죠?"
"가는 방법이 달라. 천국은 올라갈 때 일곱 개의 행복한 장소를 거쳐.
지옥은 내려갈 때 일곱 개의 슬픈 장소를 지나야 해. 그러니까 올라가는게 좋은 거야." (390-391p)
'성공과 실패는 같아.
무언가에 대한 것은 마음 가짐에 달려있지. 하고 싶어서 즐겁게 하느냐, 해야 하기에 마지못해 하느냐
가 다를 뿐이야. 그러니까 이왕 하는거 즐겁게 하고 싶은걸 해야지'
인생의 기로에서 내 마음의 외침과 타인들의 시선을 비롯한 세속적 가치 사이에서 번뇌하는 나 자신에게 끄뜻이 이렇게 말해 준듯 하다. 결국,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고,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리즈의 여행기엔 내적 평화를 위한 심오한 대화들과 명상, 종교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작가라는 리즈의 직업이 무색하지 않게 암기하고 싶어질 정도의 감탄스러운 문장들이 빼곡하다. (그 덕에 멋진 문장마다 인덱스 붙이는 습관이 있는 나를 주인으로 맞은 이 책은 흡사 고시생의 교과서처럼 변했다.)
그리고 고백하건데, 이 책을 읽고난 후의 느낌을 정확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마치 - 리즈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혼의 구도의 극한에 도달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아직 난 리즈처럼 자아를 찾기 위해 여행을 가지 않았다. 심지어 이런 장기 여행을 계획할 자금도 없다; 또, 매일 아침 동굴에서 명상을 하지도 않는다. 손금을 봐준 주술사도 없다. 하지만, 세계를 배회하다 아쉬람에 당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여행을 떠나 인도에 도착했을 때의 리즈의 마음이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전의 나'를 던지고 '본연의 나'를 찾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 즉, 이탈리아와 인도, 인도네시아를 아우르는 한 여성의 '자아찾기'는 나에게 '진짜 나'를 찾도록 하는 신호탄이 된 것이다. 내 인생 여행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