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의 벼랑으로 몰린 나는 한 동안 책을 끊었었다. 자의는 아니었으나 울분인지 눈물인지 그 어떤 것으로 가득찬 심신으로 책을 펴 들때,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에 불과했다. 그렇게 약 2개월을 내 사랑 '책'과 떨어져 지냈었다. 그리고 인생의 중대한 결단을 내린 순간, 거짓말 처럼 '책 읽을 수 없어'병을 벗어났다. 그렇게 서서히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시기에 읽게 된, 첫번째 책 <구해줘>.

제목처럼 내 인생을 구해준 책이다.

 

내일 모레 서른, 딱히 이루어놓은 것은 없지만 배우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뉴욕에 온 프랑스 여자, 줄리에트가 있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졌지만 아내의 죽음이라는 과거에 메여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남자, 샘이 있다. 줄리에트와 샘은 천둥에 맞아 감전사하는 것 보다 더 힘든, 극한의 확률로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 곁에는 그레이스, 조디, 루텔리가 있다.

 

이 다섯 사람이 버무려 내는 이야기들이 가벼운 연애소설이라고 하기엔 강한 후유증이 남는다. 그 이유는 운명, 사랑, 기욤 뮈소표 문체, 이 세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그레이스는 미션 수행을 위해 등장한다. 흡사 무협지에서 속세의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과거시대의 능력자가 현세로 오듯, 그레이스는 샘에게 나타난다. 그레이스는 믿을 수 없는 말들을 한다. 정해진 미래, 과거의 어긋남, 자신의 존재 이유,,, 그레이스와 샘의 대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말은 '그건 제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이다. 즉, '운명'을 논한다. 케이블카에 타야 할 운명, 몇 시에 죽어야 할 운명, 만났어야 할 운명,,, '구해줘'를 연발하게 만드는 삶 속에서 그레이스를 세상에 던진 운명처럼 각자의 운명이 정해져 있을까? 그 운명의 지도대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거라면, 이렇게 아등바등 할 필요도 없을텐데!   

 

그리고 내용의 중심 축을 이루는 샘과 줄리에트의 사랑. 너무 소설스럽고 영화스러워서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지만, 하이틴 소설에서 느껴지는 환상을 가득 심어줘서 더 애착이 간다. 임신을 말해야 하는 순간, 아기를 갖자는 가정적인 남자의 멘트와 사력을 다하지만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침잠할 때쯤, 기적처럼 나타나는 그녀의 실루엣. 바로 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기욤 뮈소의 '세련된 영상기법'의 하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욤 뮈소의 표현은 참 숨 고르기 편하게 한다. 경직된 긴장을 만들지 않고 인위적인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어쩜 이리도 잘 연결 시키셨습니까를 연발 할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영화 같다. 또, 그가 이야기 별로 묶어놓은 명언들은 각 장의 흐름과 같이하며 가슴에 아로 새겨진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한 구절 '대기 속에는 천사들이 뿌려놓은 빛이 있을 뿐이다.'.

 

몽환적인 표지, 경제학자 출신인 작가, 발음하기 힘든 저자 이름! 처음에는 참으로 의아한 요소였다. 하지만 완독 후, 기욤 뮈소의 다른 장편소설 시리즈를 찾고 있는 나를 보니 감성 충만 코드로 습한 늦여름을 보내야 할 듯 하다. 그리고 이 책,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샘과 줄리에트처럼 몹시 우연스럽지만 절절한 사랑에 빠지고 싶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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