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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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까지 만난 책 속 세상 중, 이렇게 특별한 세상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상들의 잔잔한 세상이 어느 새 나에게 낯설어져 버린 현실이 슬프기도 하다. '무우,,'하는 소 울음과 흙내, 풀내가 진동하는, 고향같은 푸근한 <워낭>에게 다가가보자. 

 

그릿소가 차무집에 들었다. 노비의 세습제가 폐지되고, 천주교 금지령이 해제되고, 러시아인이 성냥공장을 세웠다는 병술년 어느 겨울 날, 어미 젖도 때지 못한 그릿소가 왔다. 흰별소, 미륵소, 버들소, 화둥불소, 흥걸소, 외뿔소, 콩죽소, 무명소, 검은눈소,,, 어지러운 시국 속, 차무집에 온 그릿소는 자신의 후손들을 통해 차무집과 역사를 같이 해 나간다.

 

사람의 삶을 닮은 소의 운명은 어미소에게서 발굽을 세상 속으로 들이 밀면서 시작된다. 태반과 함께 쏟아져 나온 새끼 소는 코뚜레를 한 후, 쟁이질을 해나간다. 묵묵히 주인의 논답을 일구다가 생을 내고, 새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차무집 소들은 태어난 후 밭갈이 그리고 새끼잉태, 마지막 고기 신세로 변화는 단순한 소들의 인생과는 달랐다. 어미의 혼이 들어간 외뿔소가 나기도 하고, 새댁의 화를 대신해 의병 노릇을 하는 화둥불소도 있다. 

 

<워낭>에는 -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 - 잔잔한 울림이 있다. 그리고 검은소가 얘기해주는 조용한 감동이있다. 옛적 소들은 사람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수단이기 전에 한 가족이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친구이자, 고단하던 삶을 함께해 주는 파트너였다. 그런 '소'가 어느 새 우리 곁에서 보이지 않는다. 농작방식의 변화, 기계의 생활화,,, 삶의 진보와 비례하여 인간의 마음 가짐은 반비례했기 때문이리라. 하나의 생명으로 존중하며 아끼던 소를 밭갈이 '능력'으로 평가하고 그에 대적하는 기계들의 등장에 냉정하게 내쳤을 뿐이다. 그렇게 소는 우리 삶에 터전을 잃었다.

 

결론이나 대안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논하지 말자. <워낭>은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라는 뜻처럼 투박하지만 잔잔하다. 그렇게 우리가 잊고 지낸 흙과 자연과 삶과 터전에 대해 여운을 준다. 낭랑한 새벽녘 이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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