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0
재닛 윈터슨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보다도 작가에게 더 관심이 갔다. 레즈비언 소설을 쓰는 레즈비언 작가냐는 질문에, 자신은 작가인데 우연히 레즈비언일 뿐이지 레즈비언 작가는 아니라고 답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말질문에'바로 나'라고 답했다고한다. 우문현답을 구사하며, 철저한 자신감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여류작가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사고방식 만큼이나 파격적인 구성과 내용을 이룬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는 종교와 인간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교회가 가족이며, 오직 주의 은혜로 구원받는 일이 진정한 삶이다. 학교는 사육장이며, 온통 부도덕한 것들로 가득하다. 항상 선교활동을 하며, 주님의 말씀을 공부한다. 그러나 속세의 부인들이 갖은 '부'에는 민감하다. 좋은 집을 가진 부인은 좋은 집을 가졌기 때문에 부도덕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철두철미한 하나님의 신봉자, 지넷 어머니의 모습이다. 지넷은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항상 성경공부를 한다. 어린 지넷이 성장해가며 여러 혼란을 겪는다. 멜라니를 사랑하게 되며, 이로 인해 사탄이 씌웠다며 손가락질을 받는다. 오직 종교적 믿음으로 선과 악을 구분짓는 어머니는, 종교적 가치관의 대립을 용납할 수 없다. 그녀의 딸일지라도,,, 이때 어머니는 지넷에게 '오렌지'를 건넨다. 왜 오렌지를 주는지 지넷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멜라니가 주는 오렌지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어머니에게 있어 '오렌지'는 하느님의 다른 표현이고, 제 2의 성모마리아인 자신에게 하느님이 주시는 절대 선의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넷에겐 타인들과 다른 가정의 한 형태였으며, 깨부수고 싶은 속박이었다.
지넷의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여덟 편으로 각 장이 이루어져있고, 중간중간 원탁의 기사와 위닛 스톤자의 동화가 그 맥을 함께한다. 종교적 문외한인 내게 지넷 어머니의 가치관이 큰 흐름인 이 책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영국에서 소위 '파격'이라고 일컫는 지넷의 글이 왜 '버지니아울프'라는 찬사를 받는지는 알것 같다. 종교가 가지는 성과 가정에 대한 적대성, 그리고 과격하리만치 편협한 자신들의 이상을 억지로 주입하는 방식으로 인해 흔들리는 한 소녀의 성장을 보여주며, '그 무엇도 절대적으로 옳음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오렌지가 투박한 겉껍질 속에 상큼하고 부드러운 속내를 품고 있듯 종교라는 어렵고 단단한 내벽 속에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조금은 허락해도 된다는 관용이 내포된 듯한 이 책은 이해라기 보다는 받아들임이라는 자세로 접해야 할 것 같다. 작가와 주인공의 동일한 이름처럼, 어쩌면 자전적 소설일지 모르는 이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를 통해 우리도 겉껍질을 벗겨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