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육처럼
이지현 지음 / 지우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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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자란 사람들의 학창시절 경험담에는 '철학 공부'가 빠지지 않는다. 모국어로 읽어도 이해가 어려운 소크라테스, 니체 등의 사상을 원문으로 읽고 토론했다는 누군가의 경험. 부러웠다. 그들에게 부여된 기회와 교육환경이. 책 <프랑스 교육처럼>도 마찬가지다. 예고 진학에 실패한 열다섯 시절의 저자는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도피처럼 보였던 프랑스 유학길에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고 분투한 그녀의 생생한 이야기. 현재 저자 이지현은 프랑스 대사관 IT분야 부상무관이자 플루티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교실 밖에서는 맞담배를 필 정도로 스스럼없이 지냈던 선생님을 교실 안에서는 철저히 존중하는 학생들의 태도(p.172), 수학 문제의 답은 숫자가 아닌 글(p.62)로 판단

책은 저자가 경험한 ‘프랑스 교육’을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한다. 사례는 교실 밖에서는 맞담배를 필 정도로 스스럼없이 지냈던 선생님을 교실 안에서는 철저히 존중하는 학생들의 태도(p.172), 수학 문제의 답은 숫자가 아닌 글(p.62)로 판단하며, 답(숫자)이 맞더라도 어떤 개념을 적용해 왜 이렇게 풀었는지 글로 작성해야 하는 교육 방식 등이다. ‘담탱이’로 불렸던 선생님들, 제 시간에 얼마나 정확하게 ‘답’을 낼 수 있는지 측정하는 수능. 우리와 많이 대비되는 현실이다. 그 외에도 지각이나 결석은 선생님이 아닌 담당 행적직원이 관리(p.41) 하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함께 체육수업과 시험을 치르게 한다는 점 등은 교육 환경 안에서 프랑스가 지향하는 평등의 개념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어릴 때부터 단계적으로 체화(體化)를 도와주는 프랑스 교육 시스템

- 시 학습과 바칼로레아

저자가 알려준 프랑스 교육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시’ 학습과 프랑스 수능에 해당하는 ‘바칼로레아’다. 프랑스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반 친구들 앞에서 매주 시를 외우게(p.81) 한다. 불문학 수업 시간에 보들레르, 랭보 등 프랑스 작가들의 시를 외우게 하는 데 저자는 이 교육의 효과를 프랑스 주요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기사 – 우리는 왜 학교에서 시를 위우는가? - 를 인용한다. '첫째, 외운 시를 낭송하면서 자신의 발음과 목소리 크기를 개선하고 억양을 다양화하여 청중들의 주의를 이끌기 위한 자세와 시선 처리, 표정과 제스처 사용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익히게 되며, 둘째,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외울 시의 분량을 늘려, 암기해야 하는 습관을 미리 알려 주는 효과'(p.82)가 있다는 것이다. 면접이나 진급 시험을 앞두고 발표 연습을 하거나, 시험 기간에 학생들이 능력껏(?) 암기해내는 우리 현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효과를 위해 어릴 때부터 단계적으로 체화(體化)를 도와주는 프랑스 교육이 부러웠다. 

그 부러움은 바칼로레아에서 극한에 달한다. 저자는 책에서 바칼로레아를 우리의 수능에 빗댄다. 하지만 둘은 시험의 형식과 내용 뿐 아니라 대학 진학과 연결하는 프랑스인들의 마인드 또한 많이 다르다. 하루에 한 과목씩 일주일 동안 치르는 바칼로레아는, 20점 만점에 전 과목 평균이 10점 이상이면 바칼로레아를 '취득'(p.118)하게 된단다. 즉, 수능처럼 단 하루에 모든 것이 결정돼 그 점수에 맞춰 대학을 '골라'가는 게 아니라 바칼로레아를 취득해 프랑스의 대학 입학 자격증을 얻는 셈이다. 물론 16점 이상(매우우수), 14점 이상(우수), 12점 이상(양호) 등의 등급을 부여받지만 이것은 지난 고등학교 3년간의 학습에 대한 평가일 뿐, 합격만 한다면 본인이 바라는 학과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바칼로레아 이후 학생들은 에콜(직업전문학교), 그랑제콜(특수 대학교), 위니베르시테(정규 대학교) 같은 식으로 자신들이 선택해 갈 수 있는 폭이 넓고 대학 진학률 또한 40%을 조금 넘는다고.

200년 동안 변하지 않은 바칼로레아 제도 그리고 바칼로레아를 치를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토론하며 논리적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 구조. 이걸 넘어서는 건 바칼로레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태도다. 프랑스는 바칼로레아 시즌(매년 6월말)이 되면 각종 언론에서 올해 철학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예상해보고, 당일 저녁 TV에서는 사회 각계각층의 지식인들이 나와 바칼로레아 문제 –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예술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왜 필요한가? 등 - 를 두고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입학 자격시험이라는 당위성을 넘어서는 문화'(P.137)라고 말한다. 또, 이를 두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권리'(P.138)라고 덧붙인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교육'의 키워드라고 하는 우리네 현실과 대비되어 씁쓸함이 남는다.

책은 매 챕터 마지막에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노트'칸을 마련해두고 있다. 저자가 경험한 프랑스 교육의 좋은 점을,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지 고심한 흔적으로 보였다. 한국 엄마들은 하루에도 수백번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한다고 한다. 혹시 내가 뒤처지는 건 아닌지, 아이를 도태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고 자책하는 부모들도 많이 본다. 헬리콥터맘(자녀를 과잉보호하는 엄마), 잔디깎이맘(자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엄마)이라는 말이 왜 등장하는 걸까. 온전히 극성스러운 부모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우리 교육을 여러 지점에서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키울 부모도, 특히 교육 관련 정책입안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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