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관련 발언은 분쟁의 소지가 있으니 가능한 피하는게 좋다고 한다. 자기 표현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반해 고개가 갸웃해지지만, 이해와 설득은 차치하고 '편'을 나누고야 마는 세태를 생각하면 반대로 끄덕여지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 영역에서, 늘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 있다. 필터링이 걸렸나 싶은 포털 정치면에서도 자주 이름을 접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강준만 교수다. 이 사람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걸까? 저자가 궁금해서 읽게 된 책 <정치적 올바름>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정치,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이번 신작은 정치 영역의 '올바름'을 다룬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어 사용이나 활동에 저항해 그걸 바로잡으려는 운동 또는 그 철학'(p.9)을 일컫는다. 강 교수는 'PC충(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은 이미 유행어가 되었고, PC의 핵심 콘텐츠가 도덕임에도 불구하고 (도덕과 무관한)자기 과시를 위한 PC가 판을 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이런 세태는 위험하며, 이를 경고하고자 PC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PC 운동의 취지와 당위성엔 동의와 지지를 보내면서도, 동의와 지지를 보낼 뜻이 있는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운동 방식의 문제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p.30)
저자는 PC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전방위적 주제를 건드린다. 자유/위선/계급(1장), 싸이의 흠뻑쇼(2장), 겸손(3장), 소셜미디어와 유치원국가(4장), 마이크로어그레션과 가해자 지목 문화(5장), 언도도그마와 약자 코스프레(6장) 등이다. 머리말과 1장에서 PC에 대한 개념과 흐름, 역사로 개괄하고, 2장부터 사례를 들어 PC의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을 보자.
저자는 5장에서 '마이크로어그레션'을 예로 든다.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은 원래 '흑인에 대한 언어적 차별과 모욕을 묘사하기 위해 만든 것'(p.129)이지만 현재는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으로 무시 혹은 모멸감을 주어 상대방이 소외감을 느낄 때 사용할 수 있는 용어'(p.130)로 정의한다. 명절 때 친척들에게 듣는 언제 결혼할거니? 아이는 낳을거니?와 같은 말들이다. 강 교수는 마이크로어그레션은 결국 '감수성의 문제'(p.137)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여기서 '청자의 반응'과 별개로 '화자의 의도' - 실제로 무시나 모멸감을 주고자 했는지 - 를 언급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말을 빌려온다. 하이트는 "내게 상처를 주겠다는 생각으로 그 말을 한 건 아니겠지만, 그 말을 이러저러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어요."(p.140)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하이트는 이것이 '너그러운 태도'라면서, 이런 자세가 결국 사람들과의 상호 교류에서 긍정적 결실을 맺을 가능성을 높인다고 덧붙인다.
(가장 반발심이 들었던)하이라이트는 강 교수의 결론에 있다. 그는 챕터의 마지막에서 마이크로어그레션을 결국 '자세의 문제'(p.148)라고 말한다. 그는 '상처를 받더라도 상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에 따라 또다른 출구가 기다릴 수도 있다'며, '상처를 느끼는 것도 최소한의 배움과 앎이 있었기에 가능'(p.149)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비처럼 쏟아지는 폭력적 언어 속에서 그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배움'이라 자위하라니. 차별적 언어와 활동에 저항해 바로잡으려는 운동인 PC를 논하는 장에서 결국 '네가 알아서 잘 들어'라는 말은 너무 도덕적인 결론처럼 느껴졌다. 일종의 착한 사람 병이라고나 할까?
책은 임팩트가 있었다. 왜 그가 언급된 기사들이 눈에 띄었는지를 더욱 잘 알게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이번 책을 다양한 기사, 칼럼 등을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저술했다. 다소 산만하게 보일 수 있지만 풍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정치분야의 논쟁이 가득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저자는 삶과 밀접한 주제들을 꺼내 '정치적 올바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자의 모든 의견에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소득은 있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