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 뮤지컬 《순신》, 영화 《한산》 《명량》 《노량》의 감동을 『난중일기』와 함께
이순신 지음,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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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집권시, 조선은 이종무가 쓰시마섬 정벌에 나서고, 부산/진해/울산을 개방하며 일본과 계해약조를 맺는다. 이는 16세기에 들어 일본의 악랄함으로 3포왜관, 을묘왜변으로 번져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의 빌미가 된다. 이때 각지에서 권율, 곽재우 등이 의병으로 활약할 때 이순신은 '한산도 대첩'을 치른다. 왜군을 한산도 '견내량'으로 유인해 '학익진' 전법을 사용했던 그 대전이다. 이순신은 지형이 좁고 암초가 많은 지형을 이용해 원을 그려가며 왜군을 둘러싸 50여척의 왜선을 격파시킨 것이다. 영화 <명량> <한산> 등에서 다룬 우리 역사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다. 

책 <난중일기>가 출간되었다. 한산도 대첩과 학익진이 아닌 '사람' 이순신의 진면목을 담은 책이다. 책은 1592년 1월 1일부터 노량해전에서 장군이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9월 17일까지의 그의 일기를 담고 있다. 이순신은 거의 매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적었다. 맑음, 흐림, 비와 같은 '날씨'로 시작한 일기는 활쏘기 연습, 누가 방문했고,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또 장수와 부하들의 갈등, 나라의 정세, 왜군의 동태, 가족에 대한 걱정, 나라에 대한 우려 등을 담고 있다. 

갑오년 12일 맑음. 아침 식사 후에 어머님께 하직을 고했더니 잘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고 두 번 세 번 타이르시며, 조금도 이별하기 때문에 탄식하시지는 않으셨다. 선창에 돌아왔으나 몸이 불편한 것 같아 바로 뒷방으로 들어갔다. (p.102~103) 

이순신은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로서의 마음을 일기에 자주 적었다. 그는 사촌이나 지인이 왔을 때는 늘 어머니의 상태를 묻고 들었다. 그런 우려와 달리 (어쩌다 뵙게 되는)어머님은 늘 그에게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던 이순신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계유년 4월 13일, 어머님을 마중하려 바닷가로 나가는 길에 종 순화에게 어머님의 부고를 듣고 만 것. 그는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날뛰었으나 하늘이 캄캄했다. (중략) 길에서 바라보며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다 적을 수가 없다."(p.328)고 적고있다. 함께 슬픔을 느끼게 되는 장면이다. 이후 몇 달, 그의 일기에는 꿈 속에서 만난 가족과 어머님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순신은 같은 해에 막내 아들도 잃고 만다. 아들 '이면'은 왜군이 이순신 장군을 협박하기 위해 생포하나 끝내 사살되고 만다. 10월 14일 '새벽 2시경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다가 발을 헛디뎌 내 가운데 떨어졌으나 쓰러지지는 않고 막내아들 면이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을 하면서 깨었는데 이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p.385)며 이순신은 불길함을 직감한다. 같은 날 저녁, 그의 손에 당도한 집안 편지 겉면에는 '통곡'이라는 글자와 함께 아들의 죽음이 적혀있었다 한다. 이순신은 '간담이 타고 찢어졌다'며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떳떳함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는가'(p.386)라고 한탄한다. 한 사람의 아버지의 슬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의 일기에는 전술과 전략만이 가득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책 <난중일기> 속 이순신은 아들이었고, 아버지였으며, 사람이었다. 매 순간 고뇌하고 갈등하며 슬픔에 젖기도 한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는 것은 오묘한 긴장과 스릴을 선사한다. 더 나아가 이순신의 글에서는 자신을 평온하게 유지하려는 '의지' 혹은 '결기'가 느껴진다. 그런 마음이 혼란스런 전장 안에서도 하루를 되돌아보고 기록을 남기는, 하여 세계문화유산을 지정될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난중일기'를 탄생시킨 동력이 아니었을까. 책은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길 수 있었던 한 사람의 마음의 바탕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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