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 -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
이저벨 윌커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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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카스트 체제는 크게 3개가 있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어 비극으로 치닫다 진압된 나치 독일의 카스트 체제. 좀처럼 사라질 기색 없이 수백 년을 이어온 인도의 카스트 체제. 마지막으로 드러나거나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형체를 바꿔가며 존속해 온, 인종에 기반을 둔 미국의 카스트 피라미드. (p.36)

카스트, 인도 특유의 신분제도로 알아왔다. 그러나 미국 작가 이저벨 윌커슨은 인류에 세 종류의 카스트가 있다고 말한다. 유대인을 말살시키려 했던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 카스트, 종교적 신성함을 명분으로 피라미드를 이뤘던 인도의 카스트가 있다. 저자가 집중하는 카스트는 바로 세 번째, 겉으로는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계급사회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미국의 백일 우월주의다.

책 <카스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자 미국 언론 역사상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이저벨 윌커슨의 작품이다. 미국에서는 '생김새'를 기준으로 흑인과 백인을 구분하고, 이것이 곧 카스트가 된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녀는 왜 누구도 이것을 '입 밖에 내지도 않고 명칭을 붙여 말하지도 않으며 인정하지도 않'고 또 '이 서열을 철저히 지키며 무의식중에도 그에 맞춰 행동'(p.44)하는지, 카스트가 어떻게 내면화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이 소수의(기득권의, 지배세력의) 이윤과 권력 독점 등 비인간적 행위를 당연시하게 만드는 현실을 짚어나간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언급한다. 자신이 기자로서 한 의류 매장에 인터뷰를 하러 갔으나 "당신이 뉴욕타임즈의 이저벨 윌커슨이라는 걸 어떻게 믿죠?"(p.88)라고 묻는 매니저의 일화 뿐 아니라, 백인이 저지르면 투옥되지만 흑인 노예의 경우 '사형에 처하는 죄목이 71가지나 있었'던 버지니아주(p.191)사례까지. 흑인은 백인 사이에 앉거나 식사를 할 수 없고, 호텔 식당 심지어 자신의(임대인일지라도) 건물에서도 뒷문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이런 일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카스트가 없는 세상은 모두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p.471)

이자벨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카스트를 똑바로 자각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만들어내는 위계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걸 환기시킨다. 차별과 위계가 존재하는 사회 어디에서나 인류는 계층과 위계를 무의식적으로 체화했고 생활했다. 이자벨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p.459)하기 때문에 '카스트는 포악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표피의 화학 물질, 얼굴 특징, 성별과 조상이 우리 몸에 남겨놓은 표식 등 우리 내면의 정체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피상적인 차이들로 우리를 파악할게 아니고, 그저 모든 인류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자'(p.470)고 제언한다.

이 미친 차별이 대수롭지 않다면, 당신은 방관자거나 가해자다.

저자는 카스트라를 자주 무대에 빗댄다. 감독의 뜻대로 움직이려 애쓰는 흑인과 백인이라는 배우들. 각자의 생각보다 연출자의 의도가 더 중요하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에서는 미국에서의 '카스트'라는 공연이 그간 어떻게 이뤄졌고, 배우들은 어떻게 행동했으며, 그 결과의 성공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을 보며 우리 사회의 단면이 보여 분노가 일기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이 느껴져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은 '그저 바라보기'라는 소프트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묵직한 주제와 사례들에 비해 다소 허망한 결론이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곳 어디라면 유효한 '카스트'를 날것으로 짚어볼 수 있었다. '카스트가 없는 세상을 꿈꾸기 위해'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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