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투어
김상균 지음 / 이야기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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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조 바이든 후보자가 가상 현실 ‘동물의 숲’ 안에서 선거 캠페인을 벌었다. BTS는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 안에서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발표했다. 2022년 대선때는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 청년들과 4개 정당 후보 캠프 관계자들이 모여 청년 일자리 문제를 논의했다. ‘메타버스’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재페토' 플렛폼 안에서 캐릭터로 만나고 대화하면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독자라면 책 <브레인 투어>의 ‘메타버스 단편소설’이라는 부제가 잘못되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가상/증강현실, 메모리 투어, 인공지능 에이전트, 라이프로그 등, 플랫폼 범주를 벗어난 여러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중


현실에서 메타버스에 대한 정의는 분분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메타벅스를 '하나의 고정된 개념'으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중 가장 이해가 쉬운 정의를 꼽으라면 '현실세계와 같은 3차원 가상세계' 정도이지 않을까. 미국의 비영리 기술 연구단체 ASF는 메타버스를 가상세계, 거울세계, 증강현실, 라이프로깅(일상기록)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이를 따르자면, 재페토 안의 아바타가 아니더라도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신기술이 적용된 세계라면 모두 메타버스 범주에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로보틱스, 인지과학 등을 공부한 김상균 교수는 그간 <메타버스 플랜비 디자인> <메타버스 새로운 기회> 등의 책을 출간해왔다. 이제는 책 <브레인 투어>의 18개 단편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메타버스를 간접체험하게 해준다. 보안은 CCTV 대신 로봇 경비 시스템이 대신하고(「아무도 없었다」), 가상현실 장비를 활용해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의 고통을 극대화하기(「올드보이의 악몽」), 돈을 내고 셀럽의 머리 속을 탐험해보고(「브레인 투어」), 누군가의 미래 감정을 예측하기(「승진시험」) 등이다. 이것은 모두 작가의 상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실제 학술논문도 인용’하고 있으며 ‘소설 속 스토리가 그저 헛된 망상이 아님을 얘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제게 있어 메타버스는 인간의 마음을 연결하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p.161)




과학기술과 연관된 내용이라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짐작은 그만. 소설집은 꽤 흥미롭다. 각 에피소드는 ‘일주일 뒤’ ‘한달 뒤’ 등으로 시간 토막을 구분하며 빠르게 전개된다. 교수가 썼는데(?) 가독성도 좋다. 가끔 내용 속에 '김상균' 교수가 실명으로 등장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는 책에서 다른 세상을 이미 체험하고 있는 당사자거나 VR헤드셋을 개발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너무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거 아니야?'라며 읽으면서 꽤 웃었는데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걸 또 집고 넘어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메타버스 세상은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두려움이 미래에 닿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을 등장시켰지 '자기애가 넘쳐서 그런것은 아니'(p.161)라고. 기술 내용이지만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더 있다. 소설들은 미래 기술을 언급할 때면 꼭 따라붙는 어두운 미래, 암울한 그날과 같은 ‘두려움’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모든 소설의 결말은 열려있고, 상황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저는 메타버스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는 또 다른 세계이기를 희망합니다. (p..162)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군은?' 인공지능이 등장했을 때 포털을 장식했던 뉴스들 제목은 대동소이했다. 이제는 '대체불가 영역'을 찾기 보다 기술과 '상생 방안'을 찾을 때가 아닐까. 기술 발전은 막을 수 없는 고속열차 같다. 그 길을 인간이 만들지만, 길 밖에 서서 열차를 바라만 보고 서있기보다, 함께 열차에 타야할 때다.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다. 재페토가 이제 좀 친숙하다 싶은 요즘, 기업들은 자신들만의 메타버스로 신입 직원을 교육시키고, 만남의 장을 개최한다. 메타버스로 구현되는 세상은 이제 더 이상 망상이 아니다. 기술에 잡아먹히느냐, 함께하느냐. 그 갈피를 잡는 것이 인류의 과제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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