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 - 님을 위한 행복한 인간관계 지침서
김경일 지음 / 저녁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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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는 심리학 책을 읽었다. 밑줄 긋고, 인덱스를 붙이고, 단상을 적고, 발췌도 했다. 꼼꼼하게 읽고 적용해보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방송 <어쩌다 어른> <책을 읽어드립니다>에 출연해 친숙해진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의 책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이다.

"팀장은 왜 자꾸 화가 나있는거야?"

책을 읽으며 팀장 생각이 많이 났다. 섬세하게 직원들을 살피기로 유명한, 게다가 일도 잘해서 조직에서 인정받는 분이었다. 그가 팀장 3년차가 되었을 때 나는 그의 팀원이 되었다. 존대말을 써주고, 자세하게 가이드하는 그의 방식이 너무 좋았다. 존중받고있다 느꼈다. 문제는 일년에 두어번 있었던 그의 (감정적)폭발이었다. 해를 거듭할 수록 빈도가 늘었다. 대내외 주변에서 막무가내식 요청이 오면, 그는 불만을 혼자 삭혔다. 그리고 분함이 축적되면 언행으로 주변에 간접 표현했고, 팀원들은 그 '때'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때마다 다들 소위 말해 '알아서' 기었다.

책 1부 <감정적인 사람에게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에 '리커트 척도'가 등장한다. 리커트 척도는, 마음의 정도를 표현하는 일종의 눈금자라고 할 수 있다. 예를들어 어떤 이는 감정에 좋다/싫다만 있고, 또 다른 이는 좋다/조금좋다/적당히좋다/싫다/약간싫다/매우싫다처럼 여러 칸이 있을 수도 있다. 책은 누군가와 잘 지내고 싶다면 "상대방의 촘촘한 눈금 영역이 어디인지 조사해야 한다."(p.25)고 말한다. 즉, 함께 일하는 사람이 혹시 눈금자가 적진 않은지, 그래서 지적을 비난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지 확인하라는 뜻이다.

팀장의 척도는 어땠을까? 'AI산업 발전전략 기획안을 일주일 안에 제출하시오'라는 말은 요청자가 곧 '너 지금 한가하지, 이거나 가져와'라는 무례로 해석돼 분노로 표현되었을까. 또, 한 팀원의 보고를 듣고 책상을 쾅 내리쳤던 건 뭘까. '팀원이 팀장에게 보일 수 있는 자세에 대한 감정'이 10정도로 세분화되어 있었는데 보고를 한다/안한다만 생각하던 팀원의 자세를 보고 '극혐'의 10에 다달었던걸까. 김경일은 책에서 "내 마음의 눈금이 많아지면 내가 더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된다."(p.31)고 강조한다. 어쩌면 팀장의 활화산같은 태도도 내가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마음의 범위가 좁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예민한 사람 vs 둔감한 사람>에서는 변화적 이동/조사적 평가를 설명한다. 갈등 상황에서 잘못을 따지기 보다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려는 자세(변화적 이동)와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따지고 분석하는 자세(조사적 평가)에 대한 설명은 과거의 여러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회의 아젠다를 정하며 논쟁했던 지리한 시간, 보고서 구성만 놓고 고민했던 그 때.. 회사에서 만났던 다채로운 갈등상황이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그때 그 본부장은 '조사적 평가'의 자세였던 거구나. 그래서 표식, 이름까지 돌다리를 열번씩 두들기며 지나갔던 거구나. 한 때 짜증과 분노만 일으켰던 상황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접근 동기란 좋은 것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 내가 하고 싶고 보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을 누리려는 욕구를 말하고, 회피 동기란 싫어하는 것을 피하려는 욕구, 내가 싫어하는 것은 안 보고 안 겪고 싶은 욕구를 말합니다. 저는 전형적으로 접근 동기가 강한 사람이에요. 예민한 사람들은 대부분 회피 동기가 강합니다. (p.43)

책은 접근동기와 회피동기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좋은 것을 하고 싶은 접근동기와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회피동기. 특히, 3부 <꼰대 소리 듣지 않고 잘 소통하는 법>을 보면서 무릎을 안 칠수가 없었다. 일을 진척시키려면 후배에게 얘기는 해야겠고, 말을 하자니 잔소리가 되는 것 같아 망설였던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책은 "세대가 다르면 시간의 속도도 다릅니다."(p.223)고 말한다. 나와 다른 시간의 속도를 느끼고 있는 사람과 소통할 때 거기에 맞는 동기를 활용하라는 설명이다. 지각을 자주해 눈의 가시같은 후배가 있었다. 어르고 달래고 혼도 내봤지만 지각의 습관은 바뀌지 않았었다. 그때 내가 "시간맞춰 다녀. 지금 몇시니?"라고 할게 아니라 "근태가 좋은 사람들은 업무도 잘하다고들 하더라."로 조언했다면 어땠을까.

책은 '사람'을 이해하고 '관계'를 잘 이어갈 수 있는 방법들을 설명한다. 1부, 타인에 대처하는 자세 2부, 온전한 나로 서기, 3부 한발 더 나아가기의 흐름이다. 각 챕터는 삶에서 직면하는 상황을 예시로 들고, 이를 심리학의 이론과 근거로 설명한다. 강의하는 말투로 이해하기 쉽게 적고 있다. 책을 읽으며 과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분명 다르게 행동했다면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느껴져 부끄럽기도, 후회되기도했다. 간혹 이불킥도.. 해야했다. 책의 효용은 감정에 기반한 솔루션을 제시할 때 빛을 발한다. 일상적인 감정이고 누구나 하는 것들인데, 그 상황에서 해당 감정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깨달음도 함께다. 예를 들어 예민/둔감으로 감정의 결이 달라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책은 '감사'라는 솔루션을 제시한다. 감사는 '어려운 여건이나 환경 속에서도 자신에게 여전히 허락되고 있는 것에 고마워하는 행동은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는 심리적 고통의 양을 감소시킨다'(p.41)고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의 표현. 이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단초이자, 내 마음을 고양시키는 실마리가 된다는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좋든 싫든 관계안에서 살아간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일 수 없고, 모두가 독심술로 내 생각을 먼저 알아차릴 일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해'가 관건이겠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인지심리학은 인간이 대상을 감지하고 식별하고 기억하고 사고하고 추론하는 정신과정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심리학의 분야라고 한다. 인지심리학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지침을 담은 책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이, 그 길을 열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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