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기록
심혜경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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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베이킹, 영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글쓰기, 독서지도, 역사, 철학, 그림, 요가... 내 시간을 채웠던 취미들이다. '인간이란 자고로 죽을 때까지 배우는 존재'라는 말에 따라, 꽤 많은 시간을 배움에 할애했다. 직업없이 독서만 한다고해도 쏟아지는 신간들을 모두 읽을 수 없는 안타까움처럼, 하루 종일 배우기만 한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것을 한번씩 해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틈틈이 배우려고 애썼다.



감히 '배우려고 애썼다'고 말할 수 없는 '고수'를 만났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의 저자 심혜경이다. 책은 도서관 사서(현재는 은퇴함)이자 번역가인 저자가 온갖 공부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매일매일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기를 꿈꾸는 공부 생활자'로 소개한다. 책과 영화를 좋아하면서 기회가 닿는대로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바이올린, 뜨개질 등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특징은 출발에 겁이 없으며, '안되면 말고'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 저자가 일본 드라마 제목을 인용한 문장에서 그 정신의 본질을 알 수 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p.27)고. 중도 포기의 효용을 이처럼 확실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가야 할 길이 아니라면 아무리 멀리, 아무리 많이 걸어갔다 해도 미련 두지 말고 냅다 돌아 나오는 게 좋다' (p.24)

그 정신 때문일까? 저자의 선택은 다채롭다. 지인이 직접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하기에 함께 1인출판 과정을 듣기도 하고, 책 얘기를 나누기 위해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또,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지내고 싶어 - 간판을 읽고, 메뉴를 주문하기 위해 - 해당 지역 언어를 공부한다. 육퇴 후 야간 출입이 가능해지는 시기가 오자 방송대에 등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과는?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의 공부가 늘어지고 지지부진 해 보일 게 틀림없다.'(p.68)고 말한다. 하지만 방송대에서 외국어를 공부한 덕에 '다른 언어로 된 책을 읽는 재미가 늘었'으며 '번역되지 않은 재미난 책을 발견해서 국내에 소개하고 싶어 직접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며 이것이 바로 '밑지지 않는 거래'(p.69)라고 말한다. 그 말에 공감하기 어려운 독자는 없을 테다.

'배운다'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일체의 행위가 '공부'다. (p.11)

저자의 궤적을 함께 해온 다양한 공부들을 소개한 이 책은 결국 '책'으로 귀결된다. "독서는 책을 읽으려는 행위를 넘어서 인생을 배우려는 마음 그 자체"(p.171)라고 말하는 저자는 독서가 배우려는 마음을 북돋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독서를 통해 정보처리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고 자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파스칼이 말했던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책 속의 여러 목소리와 만나 깨지고 부숴지고 엉겨붙고 어그러지다 보면 가치관이라는 게 정립되고 삶의 방향이 설정된다는 맥락일테다. '(독서는) 기존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관을 붕괴시키고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p.172)고 말하는 저자의 생각과 닿아있다.

몇일 전 읽은 칼럼(경향 <책 읽기를 부르는 책 읽기>)에서 올해 독서계획을 세웠으나 아직 시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를 권했다. 책으로 성장하고 확장되는 삶을 경험한 이야기가 '올해는 책을 꼭 읽자'는 계획을 세운 누군가에게 독서로의 걸음을 내딛을 수 있고, 또 그 걸음이 보다 더 선명해질 것이란다. 나는 이 책 덕분에 올해 첫 글을 쓰게 되었다. 몇달을 묵혀두었던 서평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또,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순간에 다다른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좋다'(p.10)는 말에도 저격당했다. 지금 나는 인생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한번도 쉬지 않았던 직장생활을 잠깐 벗어나, 내 자신과 맞닿은 시간을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내 발걸음도 이 책 덕분에 꽤 선명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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