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스톡홀롬증후군(Stockholm Syndrom)'은 1973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롬에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에 침입해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6일 동안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유래한 말이다. 당시 인질들은 처음에는 인질범들을 무서워했으나 점차 그들을 옹호하거나 사랑하게 되고 결국 경찰에 대항하기에 이른다. 즉, 스톡홀롬증후군은 인질이 인질범에 동화되는 심리현상을 일컫는다.

패트리샤 캠벨 허스트(Patricia Campbell Hearst)는 미국 신문 재벌의 상속녀이자 현재 미국에서 활동중인 배우이기도 하다. 그녀가 19살이던 1974년 2월 어느 날, 좌파 무장단체인 SLA가 허스트가 약혼자와 함께 지내는 아파트에 침입해 그녀를 납치한다. SLA는 방송국을 통해 그녀의 몸값을 요구한다. 하지만 납치 후 두달이 지난 4월 15일, 그녀는 '타니아'로 개명을 하고 SLA와 함께 은행을 습격해 강도 행각을 벌인다. 이후 1974년 5월 FBI가 SLA의 아지트를 급습하며 패크리샤는 도망치기에 이른다. 그리고 6월 패트리샤는 타니아라는 이름으로 방송국을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국가적 심볼이 되기에 이르고, 이후 경찰과 FBI를 피해다니다가 1975년 9월 FBI에게 체포된다.

롤라 라퐁의 2017년 작품인 <17일>은 패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다룬다. 책에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을 조사해 보고서를 쓰는 30대 미국인 '진 네베바 교수', 그녀의 조수로 일하는 10대 프랑스인 '비올렌', 그리고 진 교수를 '당신'이라고 부르는 화자 '나'다. 책은 패트리샤의 재판을 앞두고 있던 1975년 10월로 시작한다.

책에서 패트리샤의 주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타니아의 이름으로 "끝까지 싸우겠다"고 주장하던 그녀는 재판 중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가짜로 SLA에 가입한 것"이라고 말한다. 패트리샤의 변호인단은 그녀의 범죄 행위가 세뇌 - 스톡홀롬 증후군 - 에 의한 것이라며 패트리샤에게 유리하게 적용할 보고서를 '17일'간 작성해 줄 것을 진 네베바 교수에게 의뢰한다. 이 일을 위해 진 교수는 비올렌을 고용한다. 진과 비올렌은 패트리샤의 행적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을 읽고 들으며 그녀의 심리를 따라간다.

1970년대의 SLA는 미국에서 활동한 좌익 서양의 집단으로 "삶이란 총을 똑바로 쏘는 것이다"와 같은 말을 남겼다. 이들의 패트리샤 납치 목적은 체포되어 수감중인 SLA 단원과의 인질교환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후 이들은 허스트가에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라 요구했다. 흥미로운 건 세간의 반응이다. 당시 십대들은 '타니아'와 기존의 인종차별주의, 자본주의, 파시즘 등에 대항하는 SLA에 열광했다고 한다. 그 근거는 패트리샤의 말에서도 등장한다. 비올렌은 진에게 "심문 중에 패트리샤가 왜 기회가 있었는데도 도망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고 계세요? '제가 도망쳐서 어디로 간단 말이예요?'"라며 "이것은 어른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 대답이었습니다. (p.276)"라고 말한다. 아마도 SLA에 대한 추종이 곧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 정도의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 아닐까.

"단순히 어떤 사람의 선택이 우리에게 부자연스럽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유롭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자유로운'의 반대는 '얽매임'인가?" (P.112)

소설 <17일>은 겹겹의 층위를 가진 작품이다. 패트리샤의 행동과 목소리 위헤 진 네베바와 비올렌의 시선이 각각 존재한다. 그 위에는 비올렌에게 영향받는 화자 '나'가 있다. 패트리샤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1970년대의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발과 빈부격차, 여성에 대한 편협함 등이 강한 시대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납치를 빌미로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패트리샤는 SLA가 아니었더라도 당시 여성이나 젊은이들에게 '자유의지' 혹은 '해방'의 의미는 아니었을까. 스스로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작품은 많지만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처음이다. 그 와중에 패트리샤의 행적은 씁쓸함을 안겨준다. 35년형의 재판을 받은 후,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이 석방 탄원서를 제출해 징역이 7년형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투옥된지 22개월만에 1977년 지미카터 대통령 체제에서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과연 패트리샤가 재벌가의 상속녀가 아니었어도 특별사면이 될 수 있었을까? 책에서는 답을 주지 않는다. 과연 패트리샤의 선택은 선택이었을까, SLA의 세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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